귀로 아는 사이
배종영
오래 봐온 얼굴같이
귀로 아는 사이들이 있습니다
가령, 가을 풀숲에서 우는 쓰르라미라든지
새벽녘 나뭇잎에 듣는 빗방울 소리들이 그렇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허물없는 사이는 아마
이웃집 남자의 술주정일 것입니다
한 사람의 또 하루의 고단함이 제 주인과 다투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그건,
쓰르라미도 빗방울도 이웃집 남자도 다
제 몸을 쓸거나 깨트려서 내는,
제 얘기 들어 달라는 헛헛한 푸념일 것입니다
그 사람 온다는 전갈(傳喝) 같은,
창문 덜컹거리는 소리는
자박자박 바람의 옷깃 스치며 오는 소리
기다리는 사람의 기척은 그렇게
몇 발짝 미리 나가 듣는 소리입니다
환청, 어스름 달빛 묻어있는 그 소리는
듣고 싶은 목소리와는 절절한 사이입니다
부재의 통점을 누르며 들릴 듯 말듯 다가옵니다
늦은 밤 옆집의 문 여닫는 소리는 그제서야 완성되는
고단한 하루의 일과들과도 아는 사이지만
옆집의 물 내리는 소리와는 왠지
칸막이 없는 노지(露地)처럼
여전히 서먹한 사이입니다
미로 속으로 들어온
귀로 아는 사이들은 모두 얼굴이 없습니다.
막상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쾌청하거나 허허 웃는 웃음뿐
오래된 골목 같은, 익숙한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