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거의 모든 것 - 최초의 자전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5. 29. 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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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의 거의 모든 것
최초의 자전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비행기와는 달리 자전거는 언제 누가 발명했는가에 대한 주장이 엇갈린다. 고대문명이 남긴 그림에 두 바퀴의 탈것이 남아 있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 da Vinci)의 스케치에도 자전거와 비슷한 것이 전해온다. 심지어는 조선 중엽에 한 양반 가문의 하인이 자전거와 비슷한 탈것을 발명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여기서는 구조와 특징이 현대의 자전거와 맥을 잇고 있는 모델들을 기준으로 초기의 자전거를 살펴본다.
발로 땅을 박차고 나가는 ‘셀레리페르’
셀레리페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과 실물을 근거로 보면 1790년 프랑스의 귀족 콩데 드 시브락(Comte de Sivrac)이 만든 셀레리페르를 자전거의 시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같은 크기의 목제 바퀴 2개를 앞뒤로 연결하고,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안장을 얹은 형태다. 페달이 없어 킥보드처럼 발로 땅을 밀어서 달리는 구조다. 앞뒤 바퀴가 일직선으로 고정되어 지금의 자전거처럼 방향 전환도 쉽지 않았다.
그때까지 말과 마차가 주류이던 시절에 셀레리페르는 흥미로운 발명품으로 한때 파리를 중심으로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무게가 40kg에 달하고 방향 전환이 되지 않는 데다 브레이크 같은 안전장치도 없어 잠깐의 유행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셀레리페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자전거 진화와 발전의 기폭제가 된다.
방향 전환이 가능한 ‘드라이지네’
드라이지네
독일의 카를 폰 드라이스(Karl Baronvin Drais)는 셀레리페르의 가장 큰 단점이던 방향 전환 문제를 해결했다. 기본 형태는 셀레리페르와 같지만 앞바퀴를 움직여 방향을 틀 수 있는 두 바퀴 자전거를 만들어 1817년 파리에서 공개했다. 드라이지네(Draisine, 1817년)라고 이름 붙여진 이 자전거는 상당히 큰 인기를 모으면서 현대적 자전거의 토대가 된다.
드라이지네는 영국으로 건너가 더욱 개량되면서 ‘호비 호스(Hobby horse)’ ‘댄디 호스(Dandy horse)’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모았다. 이제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3국의 발명가들이 자전거에 눈을 뜨기 시작해 개발과 진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드라이지네는 페달 없이 발로 땅을 차서 움직였지만, 능숙한 사람은 시속 10km 정도를 낼 수 있었다.
최초로 크랭크를 사용한 ‘맥밀런의 자전거’
맥밀런의 자전거
영국으로 건너간 드라이지네는 큰 진전을 이루게 된다. 스코틀랜드에서 대장간을 하던 커크 맥밀런(Macmillan)은 발로 땅을 차며 움직이는 드라이지네의 구동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우스꽝스럽고 효율도 떨어졌다.
그런데 가속을 얻거나 내리막길에서는 땅에서 발을 떼도 넘어지지 않고 잘 달리는 것을 보고 아예 땅에서 발을 떼는 방식을 고안하게 된다. 맥밀런은 좌우로 2개의 발판을 밟아서 연결봉과 크랭크를 통해 뒷바퀴를 돌리는 자전거를 만들어낸 것이다(1839년). 드디어 땅에서 발을 뗀 채 달릴 수 있는 자전거가 탄생한 것이다.
맥밀런은 이 자전거로 122km나 떨어진 글라스고까지 장거리 투어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몰려든 구경꾼 틈에서 한 소녀와 충돌해 부상을 입히는 바람에 특허를 단념하고 만다. 하지만 그의 발명은 자전거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고, 또 다른 발전을 촉진하게 된다.
앞바퀴에 페달을 단 ‘벨로시페드’
벨로시페드
현대의 자전거처럼 페달을 돌려서 바퀴를 구동하는 방식은 1861년에 등장했다. 파리에서 마차를 만들던 피에르 미쇼(Pierre Michaux)와 그의 아들은 맥밀런의 자전거 발판 구조가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해서 단순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들 부자가 고안한 것은 간단했다. 앞바퀴 양쪽에 페달을 달아서 사람이 돌리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는 지금도 어린이용 세발자전거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효율도 높아진 미쇼의 나무 자전거 벨로시페드(Velocipede, 1861년)는 타기 쉽고 배우기도 쉬워서 큰 인기를 끌었다. 1861년 2대, 1862년 142대, 1865년에는 400대가 판매되어 최초로 대량생산된 자전거다.
영국으로 건너간 벨로시페드는 ‘본 쉐이커(Bone shaker)’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게가 40kg이나 되었던 본 쉐이커는 철판을 나무바퀴 둘레에 씌웠는데, 비포장도로나 조약돌이 깔린 길을 달리면 요란한 진동으로 뼈까지 흔들린다고 해서 이런 익살스런 이름이 붙었다. 이후 통고무 바퀴를 도입하면서 승차감이 한결 좋아졌고 속도도 빨라졌다.
점점 발전한 벨로시페드는 새로운 탈것으로 자전거의 위치를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모델로 꼽힌다. 1860년대 후반에는 벨로시페드를 이용해 파리에서 최초의 자전거 경기가 열렸고, 자전거 쇼도 개최되었다. 사실상 미쇼의 자전거는 대량생산과 보급을 촉진시킨 선구적 역할을 했다.
19세기 말 벨로시페드를 탄 여성들의 경기 장면
자전거는 여성해방에도 기여했다.
커다란 앞바퀴를 단 ‘오디너리’
오디너리
벨로시페드를 이용한 경기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보다 빠른 속도를 추구하게 된다. 1871년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James Starley)는 벨로시페드를 기본으로 하되 페달이 달린 앞바퀴만 크게 만든 자전거를 발명한다. 바퀴가 크면 속도도 빨라지는 원리에 착안한 것이다. 앞바퀴가 커진 대신 무게를 줄이고 승차가 쉽도록 뒷바퀴는 작아졌는데, 큰 바퀴를 사용해 ‘빅 휠(Big wheel)’이라 불리거나 보편적인 형태라는 뜻의 ‘오디너리(Ordinary)’라고 불렸다.
오디너리는 가는 철선으로 된 스포크를 이용해 바퀴를 만들고 통고무 타이어를 끼웠다. 전체 무게는 20kg 정도로 가벼워져 경주용 모델은 시속 40km 이상의 고속으로 달릴 수 있어서 지금의 자전거와 큰 차이가 없었다.
앞바퀴 지름이 1.5m에 달한 오디너리는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덕분에 자전거 경기도 순식간에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했다. 오디너리는 빠르고 승차감도 좋은 데다 디자인도 멋져 지금까지도 클래식 자전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오디너리를 타고 경기하는 모습
체인을 사용한 ‘세이프티’
세이프티
오디너리는 성능과 승차감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앞바퀴 위에 있는 안장이 너무 높아 승하차가 힘들고, 앞바퀴가 장애물에 걸리면 앞으로 고꾸라질 위험이 높았다. 이런 결점을 해결한 것이 세이프티(Safety, 1874년)다. 이름부터 아예 ‘안전’이다.
1874년 영국의 해리 로손은 앞뒤 바퀴의 크기를 같게 하고 앞바퀴에 페달을 다는 대신, 두 바퀴 중간에 설치한 크랭크의 페달을 밟아 체인으로 뒷바퀴를 구동시키는 세이프티를 개발한다. ‘안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안장에 오르내리기 쉽고 달리기도 수월하며 위험하지 않은 안전한 자전거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세이프티는 지금도 사용되는 다이아몬드 형상의 마름모꼴 프레임을 도입해 현대적인 자전거의 원형이 되었다. 이후의 모든 자전거는 세이프티를 기초로 소재와 부품, 구조가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이프티가 사실상 현대적 자전거의 시초인 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초의 자전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전거의 거의 모든 것, 2014. 4. 15., 김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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