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행복한 귀향, 참 행복한 추억
“아! 아프다.”
그렇게 비명을 질러야 했습니다.
악수를 하겠다고 손을 내 밀었는데, 내민 그 손을 잡아주는 제 또래 여인의 그 손에 힘이 실려 있었습니다.
우리 점촌초등학교 8회 동기동창인 임경님이라고 하는데, 낯이 섭니다.
얼핏 거친 성품인 것 같았는데, 전정자 누님과, 또 제가 건희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전경숙 여사가 마련해온 음식들을, 덥석덥석 집어서 나눠주는 그 손길에 정겨움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아지매라고 불러야지.”
“아지매는 무슨 아지매, 학교 동창이면 친구인 거지.”
누군가 친구 둘이 그렇게 속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울 엄마 살아계실 때 그때, 간혹 고향땅 문경 점촌의 벌판 한 가운데 마을인 동천마를 가서야 만날 수 있었던, 제가 쭉 누나뻘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집안 소녀 하나가, 저와 역시 같은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라 했고, 항렬도 하나 더 높다면서, ‘아지매’라고 새롭게 호칭을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난, 얼굴은 안 찍힐래.”
“얼굴이 가장 고운 곳인데, 거길 안 찍히겠다면 안 되지.”
제가 사진을 찍겠다고 나설 때,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의는 하나 없었습니다.
이번 우리 고향땅 문경새재 방문길에 동행을 한 조혜숙 친구가 끔찍이도 아끼는 권숙희 친구는, 지팡이에 그 몸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 동기동창인 김완태 친구의 처남댁이 된다는 현순자 친구도 차츰 낯설지 않아졌습니다.
여자 동기동창들 모임의 점촌 회장이라고 하는 강금순 친구가, 꼭 닭다리 같기도 하고 또 뭣 같기도 한, 썩은 나무토막 하나를 주워들고, 노래를 부를 때에는, 우리 모두 배꼽을 잡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날 만남에서, 같은 점촌초등학교 출신이 아니어서, 저보다 더 낯선 사람일 수밖에 없는 조혜숙 친구는, 서울에서 같이 내려온 김점숙 친구의 도움으로 그 낯설음을 잘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점촌초등학교 8회 동기동창 재향 회장인 이상섭 친구가, 그렇게도 의젓한 품위를 갖추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짐작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초등학교 다닐 때 그때에는, 제가 이상섭 그 친구보다는 조금 더 잘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우리 그 어릴 때에는, ‘야! 자!’하면서, 어깨동무하고 잘 어울렸을 것인데도, 어언 반세기가 지나면서, 우리 그렇게 낯선 모습으로, 우리 서로 그 정겨움을 저울질해야 했습니다.
조심스럽던 우리들의 그 낯선 만남들도, 우리의 호프 천송길 친구의 색소폰의 선율에, 서서히 하나로 어울려지고 있었습니다.
전병환, 양재원, 유명하, 이상태 등, 대구에서 온 우리 친구들과의 어울림은 또 하나의 정겨움이었습니다.
황학현 친구의 헌신이 정말 돋보이는 하루였습니다.
“내가 서울 가면 꼭 가고 싶은 곳이 한 군데가 있어.”
“어디?”
“인호 어머님의 독도참치에 한 번 가고 싶어.”
“그래. 좋다. 내가 초대한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그 순간들이 늘 즐겁기만 하다는 황학현 친구의 그 정겨움에 감사하는 뜻으로, 저 그 약속 꼭 지킬 것입니다.
이렇게 다짐함으로써 말입니다.
‘학현아! 네가 서울 오는 날이, 내 그 약속 지키는 날이다.’//
내 그렇게 글 한 편 쓴 적이 있었다.
지난 2008년 6월 3일의 일로, 그 쓴 글을 지금 내가 카페지기로서 관리하고 있는 우리들 Daum카페 ‘아침이슬 그리고 햇비’의 전신인 Daum카페 ‘참 아름다운 동행’ 사랑방에, 이른 아침 시간인 오전 7시 13분을 막 찍고 넘어가는 시각에 게시했었다.
내 그 글을, 그때로 14년의 세월이 지난 2022년 9월 7일 수요일인 바로 오늘에 다시 한 번 꺼내 읽었다.
내 환갑을 기념해서 친구들과 어울려 문경새재 옛 과것길을 올랐었는데, 그때의 사연을 담은 글이었다.
글뿐만이 아니라,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의 사진들도 수두룩했다.
내게 있어서는 참으로 행복한 추억이 순간이었다.
내가 그 글을 다시 꺼내 읽게 된 것은, 내 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고향땅 지킴이처럼 문경 점촌에서 오랜 세월을 터 잡고 살아온 황학현 친구 때문이었다.
예상치 않은 선물이 택배로 보내왔는데, 바로 황학현 그 친구가 보내준 것이었다.
일전에 생일을 맞았기에 카카오톡 메시지로 작은 케이크 하나 선물로 보냈더니, 그에 대한 답인 것 같기도 했고, 나의 영구 귀향을 축하하는 의미인 것 같기도 했고, 마침 추석 명절을 맞게 되었으니 그 명절 잘 보내라는 뜻에서 보내준 것 같기도 했다.
명분이야 어찌 됐든, 친구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워서, 그냥 받기로 했다.
풀어봤다.
여는 순간 웬 꿀 향기가 확 코끝을 스쳤다.
사과였다.
사과 11쪽이 5킬로 들이 상자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들어있는 사과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두 주먹을 합친 것처럼 큼지막한데다가, 발갛게 잘 익었을 뿐만 아니라, 흠집 하나 없었고, 하나하나가 마치 꿀을 가득 품은 꽃에서나 맡을 수 있는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친구가 일일이 골라서 담았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친구의 우정도 같이 꽉 차있었다.
순간, 친구와 같이 했던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대검찰청중앙수사부 제 3과 수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대, 당시 과장이시던 강신욱 부장검사님을 비롯해서 소속 수사관 10여 명과 함께 1박 2일 일정으로 충주 탄금대를 거쳐 우리 고향땅 문경새재 옛 과것길을 찾았을 때, 그 계곡을 관리하던 황학현 친구의 도움으로 살아생전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긴 사연도 있었고, 내 나이 예순으로 환갑에 접어드는 것을 기념해서 또 다시 문경새재 옛 과것길을 올랐을 때, 황학현 친구의 도움으로 잔치판 같은 음식상을 차릴 수 있었던 사연도 있었다.
그 모두가 참 행복한 추억들이었다.
그래서 그 추억들을 다시 되새기고 싶어서, Daum카페 ‘참 아름다운 동행’ 사랑방을 검색하게 됐고, 그리고 그 한 편 글을 찾아내게 된 것이었다.
돌이켜 참 고마운 세월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