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197장)
※말씀: 마가복음 1장 21-34절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2절)
■ 주님의 뜻
"변화의 촉매가 되라" "주님이 보시기에 기쁜 하루를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침 마다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돕는 일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임을 즉시 알아차립니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기쁨과 행복 또한 커질 것입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은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니 그저 주님이 들려 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고 거기에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맡길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두 팔로 나를 감싸안아 주시는 그분의 사랑이 나를 인도할 것입니다. 두려움이나 증오나 분노는 나를 대적하지 못하고 저절로 뒷걸음칠 것입니다. 가는 곳곳마다에 비난보다는 격려와 칭찬의 말로 용기와 의욕을 북돋우고,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변화의 촉매가 되어 건강한 웃음으로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전파할 것이며, 하루를 즐겁고 의미 있는 일들로 채울 것입니다.
현대를 권위 상실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포압적인 힘)는 있어도 참권위(설득하는 힘)는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스승과 제자, 정치인과 국민, 경영자와 노동자, 심지어 부모와 자식, 그리고 종종 목회자와 성도 간에도 대립하고 큰 갈등을 겪게 되는 원인은 바로 권위 상실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도덕적 규범은 무너져서 쾌락과 본능만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나 공동체가 안정되고 튼튼하게 서려면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부모로서의 권위, 어른으로서의 권위, 지도자로서의 권위,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그럼 "예수님의 권위를 가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 말씀의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22절에 보면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사람들이 그의 교훈에 놀랐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 실천하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입으로만 가르치는 선생은 아니셨습니다. 그 분은 말씀을 실천하고 사셨습니다.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에는 삶의 무게가 동반된 것입니다.
□ 희생하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거짓된 권위자는 희생하지 않고 희생하는 체하며 사랑은 말하지만 진정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어찌 이 크고 놀라운 희생적 사랑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이 물러가고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 온전케 되는 권위를 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온전케 되는 권위를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주시는 권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절)고 말했고, 또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주 예수께서 주시는 권세를 받을 수 있습니까? 첫째는, 기도 말씀 묵상을 통해 영성을 키우셔야 합니다. 둘째는, 주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요15:7). 그러면 “예수님의 권위가 우리의 권위”가 됩니다. 권위를 회복한 그리스도인, 권위를 회복한 부모와 스승이 되어, 마귀와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날마다 감사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 주님께 기도
하나님, 권위 상실의 시대에 주님이 주시는 권위를 가지고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