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지처럼 하얀 집을 주문하다
잡지에서 개조한 집들을 살펴보며 리모델링을 의뢰할 곳을 찾던 부부는 집을 커피숍처럼 고치는 인테리어가 영 내키지 않던 차에 레몬트리에 소개된 깔끔하고 모던한 집을 발견했다. 이렇게 인월디자인의 김주연 실장을 만난 이들은 수납, 구조 변경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 아니라 바닥과 벽, 창호 프레임, 방문, 붙박이장 등 가구와 소품을 제외한 기본 틀을 모두 화이트로 해달라는 것이 제일의 요구였다. 심지어 바닥까지 화이트로 하겠다는 이들 부부의 말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좀 놀랐다고 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화이트를 요구한 이유는 가구와 소품이 포인트가 되는 집을 원했기 때문이다. 공간에 컬러가 있으면 묻혀버리지만 공간이 희면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나머지 소품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싱가포르에서 살던 집도 바닥이 화이트였기에 부부는 그 효과와 느낌이 뭔지 알고 있었던 것.
본래는 바닥에 대리석을 깔 계획이었는데 생활하기에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해서 마루로 대체했다. 대신 예전에 본 일본 집을 떠올리며 반사 효과를 내기 위해 바니시를 칠했다. 국내에는 화이트 온돌마루가 없어 홍자작 컬러의 마루를 구해 공장에서 워싱 처리해서 컬러 톤을 연하게 바꿔 시공했다. 바닥뿐 아니라 이 집에는 남편의 방과 안방 침실에 딸린 드레스 룸 외에는 모든 벽이 화이트이고, 방문, 섀시, 신발장, 수납장도 화이트 시트지로 래핑했다. 거실과 주방 벽은 도장을 했고, 나머지 공간은 도장한 느낌이 나는 벽지를 고르고, 기존에 있던 안방 붙박이장과 주방 싱크대는 문짝만 교체해 공사 비용을 줄였다. 여기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거실과 주방의 천장을 높여 이들 부부가 원하는 밝고 화사한 집으로 완성했다.
2 현관 입구. 본래 색이 있던 벽돌 벽을 하얗게 칠했다. 왼쪽 현관으로 들어가는 중문도 화이트 프레임에 투명한 손잡이를 달아 환하고 밝은 집의 이미지에 맞췄다기획 이나래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부부가 함께 꾸민 집
보통 인테리어는 여자들의 몫이다. 남편의 엉뚱한 간섭보다야 차라리 다행이기도 하지만 함께 살 집을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는 것은 이상적이고 행복한 모습이다. 남편은 기자에게 아내 방의 소파를 커버링한 인도 실크는 얇고 질기나 비치는 것이 흠이라 두 겹으로 커버링했다고 설명해줄 정도로 섬세하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 서재의 책상 의자는 싱가포르에 있을 때 자신이 그림을 그려서 맞춘 것이고, 서양란 화분은 조화를 사다가 직접 신문지를 넣고 돌을 올려 심었고, 아내 방의 책상도 남편이 직접 고른 것이다. 어린 시절을 독일, 쿠웨이트 등에서 보냈다는 남편은 유난히 동양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거실에 놓인 평상은 집에 꼭 두고 싶었던 가구라고 한다. 집을 꾸미면서 이들 부부는 굉장히 즐겁고 행복했다고 한다. 남편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물으니 소품을 고르는 일이라 대답한다. 들어보니 소품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싱가포르에 살면서, 홍콩, 중국 등지로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둘이서 발품을 팔며 집을 꾸미는 추억을 쌓는 것에 의미를 둔 말이었다.
2 남편이 가구를 선택해 오히려 여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아내의 방. 소파는 도무지 1980년대 삼익가구 제품을 리폼한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기획 이나래 | 포토그래퍼 김덕창 |
유기적으로 쇼핑하다
많은 소품을 배치하며 그림을 만드는 능력, 완벽한 디스플레이의 비밀은 안주인에게 있었다. 아내 K씨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공간에 콘셉트를 잡아가는 콘셉추얼리스트로 일했다. 이렇게 많은 소품들을 어떤 기준으로 고르고 배치했는지를 물으니 물건을 고르는 단계부터가 유기적이다.
복도에 걸린 빨간색 패브릭 액자(놀랍게도 기자가 2007년 5월호 레몬트리 액자 맞추기 칼럼에 소개하기 위해 맞춘 바로 그 액자였다)는 홍대 화방에서 우연히 발견해 구입하였고, 그 액자 아래 두려고 빨간 서랍이 달린 콘솔을 샀다. 그리고 이 콘솔 위에 둘 소품을 마련했다. 즉, 물건을 살 때는 눈에 띄는 대로 맘에 드는 것을 구입한 후 어울리게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놓을 곳을 정하고 맞춰 고르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집에는 고이 싸서 창고에 두는 소품이 하나도 없이 구입한 것은 모두 전시(?) 중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렇게 소품의 가짓수가 많지만 혼란스럽거나 지저분해 보이지 않도록 공간에 시선 포인트가 되는 물건을 정한다. 예를 들면 거실에는 하얀 꽃을 가득 꽂은 꽃병이 가장 눈에 잘 띄도록 연출하고, 그 이후에 소파 뒤 액자로 시선이 가도록 배치하는 식.
2 현관 입구에서 바라본 남편과 아내의 방. 현관 신발장 문짝은 교체하지 않고 오크 컬러 위에 화이트 시트지를 래핑했다.기획 이나래 | 포토그래퍼 김덕창 |
리사이클링과 합리적인 쇼핑
집을 둘러보면 고가의 가구와 물건들로 채워진 듯 고급스럽다. 재미있고도 다행스럽게도(?) 거실에 놓인 가죽 소파와 식탁, 침대는 이케아 제품이다. 싱가포르에서 호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집을 구하는 바람에 기본 가구를 집 앞에 있던 이케아에서 급히 사게 된 것. 당시 소파, 식탁, 침대, 거울을 구입했는데 모두 베이식한 디자인으로 골라두어 지금처럼 중국풍 가구나 클래식한 라인들과도 믹스 매치하기 좋다. 특히 소파는 논현동의 수입가구점에서 몇백만원을 주고 샀다고 해도 믿을 만큼 훌륭해 기자는 국내에 이케아 가죽 소파가 판매되지 않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집에는 오래된 물건을 되살려 쓴 것도 많다. 아내 방에 놓인 클래식한 디자인의 소파 세트는 부모님 댁에 있던 1980년대 삼익가구 제품을 리폼한 것이다. 본래 갈색 프레임에 먼지 많이 이는 자카드 원단이었는데 화이트 컬러의 인도 실크로 커버링하고 페인팅 해 신혼부부의 집에 잘 어울리는 섀비 시크풍 소파가 되었다. 소파 뒤에 족자처럼 나란히 걸려 있는 4장의 그림은 오래되어 모서리가 상한 병풍에서 그림만 곱게 떼어내 아크릴 액자에 끼운 것이다. 또 이국적인 문양의 4폭짜리 가리개를 흰색으로 페인팅해 2짝씩 나눠 하나는 거실 에어컨 가리개로, 하나는 현관 가리개로 활용했다.
2 안방 침대 헤드 뒤와 주방 식탁 뒤에 나무 문살 포인트 벽을 시공했다. 공항이나 중국 호텔에 가면 동양적인 이미지를 내려고 이런 문양을 벽에 넣곤 하는데 거기서 힌트를 얻은 것.
첫댓글 55평..운동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