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금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카오스 같다 / 10/24(화) / 중앙일보 일본어판
◆ 독일 나치즘과 일본 군국주의
이탈리아와 독일을 장악한 파시즘과 나치즘은 유럽 전체를 최악의 학살의 장으로 만들었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등장하는 과정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자신들의 힘이 아닌 좌파를 두려워한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합법적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정치인과 국민의 안이한 태도가 그들에게 정권을 주었다. 그리고 곧 파시스트에 의해 배신당했다. 둘째, 전간기(戦間期/1919~39년) 사회적 불안과 경제 대공황이 파시즘 등장의 큰 배경이 됐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독일 국민은 파시즘과 나치즘이 사회를 구하는 대안으로 생각했다. 러시아 혁명으로 촉발된 볼셰비즘을 막기 위한 대안이기도 했다.
1930년대 이후 동아시아에서 히틀러의 '우리 투쟁'은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다. 일본에서는 1932년 226 쿠데타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지지자들에 의해 만주국이 수립되고 군국주의 정권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 강대국 미국과 영국의 외교 실패
당시 최강대국 영국과 미국의 대외정책도 문제가 있었다. 1930년대부터 전쟁이 잇따랐다. 1931년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만주 침략이 시작되었고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1935년), 독일의 프랑스와의 국경불가침조약 파기(1936년)와 라인란트 및 오스트리아 병합(1938년)이 이어졌다. 이 같은 침략행위에 대해 국제사회의 항의가 이어지자 파시스트들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했다.
영국과 미국은 이런 상황에 대응했지만 적극적이지 않았다. 독일이 소련을 공격할 경우 공산주의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일본이 확장하더라도 미국 영토인 하와이까지 침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제2차 세계대전이 되었다.
요즘 주변에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또 세계대전이 시작되는가다. 사실 지금의 세계는 100여 년 전의 전간기와 많은 공통점을 갖는다. 경제적 불안은 2008년 경제위기에서 비롯됐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됐다. 인플레이션과 비정상적 소비, 흔들리는 자원가격과 주식시장은 마치 1920년대를 옮겨온 듯하다. 팬데믹도 배타적 민족주의의 고양을 초래했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
◆ 또 하나의 냉전, 위험한 한국
30년 전 냉전은 해체됐지만 또 다른 냉전이 시작됐다. 냉전과 냉전 사이의 전간기를 거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1990년대 걸프전부터 유고 내전, 르완다 학살, 200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그리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전쟁은 미국과 중국, 즉 선발제국과 후발제국 사이의 힘겨루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과 미국이 한편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방공협정이 경쟁하던 1930년대를 연상케 한다. 국지전은 모두 국가주의 종족주의 민족주의에서 비롯됐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경제도 좋지 않지만 대만 위기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북한의 핵무장이 고조된 한반도 상황에 또 다른 위기감을 던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선발·후발제국은 모두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더욱이 사회 내부에서는 극단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뉴스가 객관적인 뉴스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또 우리 사회는 국내외 위기에 대응할 힘도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책적 대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내년 총선에서 이 나라 지도자는 희망을 보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