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무장현(현 고창군)의 동학 접주 손화중 장군이
선운사에 난입해서는 18미터 높이의 도솔암 마애불에 새끼줄 300동을 연결해 올라가서
도끼로 마애불의 배꼽을 깨트린다. 그리고 거기서 1200년 전 검단선사가 비장했다는 예언서를
꺼내 갔다고한다.
그 예언서는 조선이 망하고 미륵의 새 세상이 온다는 내용이 적혀있다고 해서, 그 이후 수만 명의
농민군이 손화중 장군에게 모여들었다. 2년 후, 1894년 무장현에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장군이 모여
농민군을 규합해 출사표를 올리고 출전해 호남의 고도 전주성을 점령했다. 최근에 이 무장현의 거병
기록은 유네스코 문화 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설화와는 달리 미륵의 복장을 깨자 거기서 나온 것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라고
전해지는데. 이 설화는 미륵의 예언과 동학전쟁의 명분을 합치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이후 10년 동안 동양의 조그만 나라 시골 절집의 사건은 세계를 홀랑 뒤집는 수차의 전쟁을 격발 시킨다.
이어지는 청일 전쟁과 삼국간섭 그리고 러일전쟁과 러시아 혁명, 그다음 러시아 짜르의 몰락이 숨
가쁘게 꼬리를 물고 진행됐다. 동양에서 수천 년 지속 됐던 노비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러시아
혁명으로 농노제 역시 무너지며, 악의 축 영국과 일본 등 제국주의가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소용돌이치는 세계사 얘기의 복판에 어영부영 소환된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그중에 경세유표는 "경세론 " 일종의 정치 경제학인 셈인데 이 책은 박헌영이 레닌대학에서 공부할 때
만난 월남 호지명이한테 선물했다고 했다가, 요즘은 베트남 박물관에서 공식적으로 부인까지했던 책이다.
경세유표의 핵심 중의 핵심 내용은 토지 개혁으로 <정전제 井田制 >를 주 내용으로 했다. 이 정전제라는
거는 동양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온 토지제도로 조정에서 짤리고 귀양 간 인사들, 국회의원 떨어진 분들이
단골로 언급하는 토지공개념이랄까. 문제는 양반 지주가 가진 땅을 무슨 수로 몰수해 농민들에게 나눠주느냐?
정약용이 그 몰수 방법을 우물쭈물하다가 전봉준장군한테 패스한 꼴이 됐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세계에서 한1억 명은 죽어야 해결될 개혁이라는 거를.
그대,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선운사] : 송창식 노래, 작사, 작곡 중 일부 (1986년)
천연기념물 184호,
고창의 선운사에는 수령이 500년 , 600년 된 동백나무 3천여 그루가 있는데
이 꽃들이 피는 시기가 너무도 절묘해서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고창군은 매년 4월~ 5월 초에 선운사 동백 축제를 한다. 온 나라의 동백꽃이
져버린 봄의 끝자락인 5월 초에 붉은 모가지를 떨구며 선운사의 동백이 진다.
이 꽃의 이름도 애매하다, 가을에 피면 추백(秋栢)이라 하고,
겨울에 피면 동백(冬栢)이라 부르고, 봄에 피는 애들은 춘백(春栢)이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씨의 표현을 빌자면,
남도의 마을마다 장독대 뒷 담장 너머로 목을 떨구며 떨어진 춘백들이
황톳길에 핏빛으로 낭자하게 뒹구는 모습은 가히 남도의 아름다움의
첫 번째로 꼽는다, 하였다.
선운사 동백이 지고 한 달이 되기 전에 고창에는 청보리축제라는 걸 한다
조선시대의 소작농들이 60%에 육박하는 소작료를 지불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보릿고개의 시간, 아이들은 "마른버짐이 피고 힘이 없어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모가지가 픽픽 돌아가는" 그때 동백은 붉게 모가지를 떨구고
한 달만 버티면 보리가 피어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우리에겐 꽃피는
모든 것이 축제의 시간이 됐다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더 웃기고 심각했다.
친일 지주들의 소작료 징수는 거짐 80%에 육박했고 가뭄이라도 들면 쌀 한가마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때 정읍. 고창. 암태도까지 수백만 평의 땅을 가지고
소작인을 죽음의 소작료로 내몰던 그 사람들은 토지개혁에서 땅을 빼돌려
학교를 짓고 지금은 목포의 유명한 사립학원으로 훈장 받고 존경받는 집안이 됐다.
그 들의 이름은 지금 < x태 학원 >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24 교구본사인 선운사는 입구부터 3개의 천연기념물과
20여 개의 보물유적을 가지고 있는 작지만 문화적 위용을 떨치는 절집이다.
선운사뿐만 아니라 선운사가 있는 고창군은 유네스코 자연. 문화유산이
7개나 등록된 지역으로 땅 전체가 보물인 셈이다.
갈재를 통해 서울로 가고 노령의 서쪽으로 고창은 곰소만에서 서해바다에 연한다.
겨울에는 눈이 많고, 풍천강이 지나가는 고창 평야는 풍요롭고 기름진 곳이고,
풍천장어의 명성을 간직한 맛집의 땅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천여 년 미륵이 다스리는 약속의 땅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광활한 무진주에서 미륵정토를 건설하기 위해 봉기한 곳,
고창은 무진주의 북쪽 끝이다. 미륵은 석가모니 이후 56억 몇천만 년 후에
이 세상에 내려와 우리의 은행빚을 모두 갚아주고 정력을 씽씽하게 해준다는
약속의 신으로, 유럽.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미트라 동양에선 미륵으로 불린다.
설화의 56억 년은 오래 있다 가라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견훤과 동학의 농민들은
그이가 곧 내려올 것으로 믿었다.
매년 들르던 선운사를 올봄에는 건너뛰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힘든 봄이었다.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랴 만은 세상에 속 뒤집어 놓구 도망가는 것들이
어디 동백뿐이랴, 인간사 한 두 놈이어야 말이지
어찌 생각하면 꽃이 지는 거야 내 알바가 아니지만
세월이 나 혼자 두고 도망가는 마당에 누가 먼저 옆구리 찔렀는지, 그런 거로
어그로를 끌어봐야 먼 소용이란 말이냐.
https://youtu.be/e2rc8x0aCpk
맹자의 정전법 井田法
유항산이면 유항심이요 , 무항산이면 무항심 인가?
< 有恒産 有恒心 無 恒産 無恒心>
백성이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으면 항심을 가지고
안정적인 수입이 없으면 역심과 변심에 노출될 수 있다.
이 말이 동양 수천 년 경세의 원칙이었는데,
맹자는 그 경세론으로 정전법을 주장했다는.
그러니까, 맹자. 주자. 정약용 할 거 없이
막스. 엥겔스. 모택동 모두가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인 셈이며
이 말은 또 혁명이론의 명분 중 명분인 셈이다.
맹자의 정전법은 우물 정자 (井) 처럼 토지를 9조각으로 나누어 분배하고
그중 한 곳을공동 경작하게 해서 세금으로 거두자는 주장인데 , 이경우 세금은 생산량의
약 10%조선 500년 동안 세금 징수의 기준이고 동양 몇천 년의 기준이기도,
문제는 10%로 가지고는 공무원 관리자 월급도 안 되는 액수라 동양에서 정전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모두 망했다. 정약용이 얘기한 정전법도 일종의 낭만적 주장이다.
특히 지주 양반들이 소유한 땅을 어떻게 뺐어서 나눠주느냐의 방법론에서는 조금 이해 난감한
주장일 수도 있다.
지주하고 잘 상의해서 땅을 뺐어 나눠주자는 주장인데, 그 기간이 몇백 년이 걸리더라도.
정약용은 빨리 귀양이 풀리고 정계에 복귀해야 하는 입장, 그들의 땅을 폭력적으로 뺐자는
말을 그는 할 수 없었겠다.
가방끈 길고 똑똑한 사람들의 말은 실제로 현실에선 쓸만한 게 별로 없는 경우가 다반사.
그들은 다양한 기회에 밝아서 항상 퇴로를 열어 놓고 말한다. 과연 유항산이면 유항심인
걸까? 어찌 보면 정약용이 경세유표에서 방법론을 제시하고 실제 실행에 있어선 전봉준과
농민군에게 패스한 꼴이 됐다. 죽음의 수건 돌리기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농민군은 전주를 점령하고 정부와 합의하에 군대를 해산하고 전라도 전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 직접 개혁에 들어갔다. 일종의 전라도 소비에트인 셈이다.
그들의 주장, 과부의 재혼을 허용해라, 10세 전후의 어린 여자애의 매춘혼을 금해라.
노비제를 철폐하고 등등을 직접 실행했다.
오직 김개남 장군만 군대해산에 반대하고 왕조를 무너트릴 때까지 기만적인 화약에
속지말자는 주장을 했다. 그이가 백번 옳았다. 그러는 사이 일본군의 <경복궁 범궐>
사건이 벌어진다
범궐이란 그냥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해 조선이 망했다는 다른 표현이다. 대원군과 밀서를
주고 받은 전봉준은 다시 봉기하고 이때는 남쪽의 남접뿐 아니라 충청도 경상도의 북접을
지휘해 손병희도 참전을 했다.
동학군은 서울로 향하고 공주성을 점령하기 위해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정부군 병력 수천과
혈투를 벌였는데, 수십 차례를 싸워 모두 패하였다. 금강은 피로 붉게 물들고 동학군은 흩어지고
전국에 동학잔당의 사냥이 시작됐다. 그날 이후로 자기 백성을 죽이기 위해 외국군대를 끌어들이는
이 씨 왕조는 역사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오지 않는 파랑새를 기다리는 전국의 농민들에겐 집단
살육이 자행 됐다. 인간답게 살겠다는 꿈의 실현은 유보되고 우리나라는 봉건시대를 마감하고
고행의 식민 시대로. 팍팍한 황톳길에 청춘을 사뤄, 오지 않는 파랑새를 기다리는 염원은 매년봄
동백으로 피어오르는 걸까.
선운사에 피고 지는 동백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미륵의 땅 무진주를 상기시킨다.
두 남자, 김개남 장군과 손병희
전국에서 젤 아름답다는 선운사 부도밭, 여기서 추사 김정희를 만난다.
추사가 직접 비문을 지었다는 백파율사의 대기대용 지비이다. 해서는 내리찍듯이
힘차고 뒷비문의 행서는 날아갈 듯 날렵하다. 무수히 많은 문인 재사들이 이곳에와
추사를 경배하고, 미륵님과 나라의 운명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는다.
우리나라 19세기 말은 일종의 봉건시대가 끝나는 세기말, 문인과 혁명가들이 혜성처럼,
유성처럼 별무리처럼 떠오르고 수도 없는 절세가인들이 사약을 받거나 유배를 당한다.
이곳 선운사를 찾아 글을 남긴 이광사나 추사 김정희, 윤선도. 정약용. 수도 없는
문화영웅들이 귀양 길에 올랐다. 세기말 형극의 역사 속에서 화려한 불꽃으로 박재된
그들을 다시 만나는 건 참 가슴 울렁거리는 일이다.
1919년 3월 1일에 파고다 공원에 사람들이 운집해서 손병희와 민족대표 33인 나타나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고종이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져나가고
고종의 장례에 맞춰 전국에서 파고다 공원으로 모여든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간이 지나도 손병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손병희의 33인은 기생집 태화관에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낭독이라기보다는 등산카페 운영위원
회의보다 작은 인원 33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읽고 기생들의 룸서비스를 받으며 축하연을
베풀었다. 자칫 집회가 폭력사태로 번질까 염려해 몰래 기생집에서 선언서를 읽었다고.
이후 3.1 독립운동은 전국에서 2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5만 명이 구속되는 헌법적 사건인데
폭력 사태를 염려해 기생집으로 아무도 모르게 장소를 옮겼다고.
한참을 기생들 룸서비스로 술을 마셔도 경찰이 체포하러 오질 않아서 살짝 자존심이 상한
손병희 일행은 집주인에게 종로 경찰서로 전화를 걸게 했다, 체포해 가라고.
종로경찰서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고 체포조를 보냈는데, 늦게 도착한 경찰들에게
손병희가 나가 일갈을 한다, 민족 대표들이 다 모였는데 모양 빠지게인력거를 가지고 체포하러
왔느냐고. 다꾸시를 가져오라고.
자진해서 체포된 그들 33인은 뒤에 거의 대부분이 변절을 한다. 충청도 청주인근에서 아전의
서자로 태어난 손병희는 재물을 밝히며 허세를 부렸다. 그는 동학교도들의 돈을 거두어들여
우리나라 최초로 캐딜락 리무진을 사서 타고 다니며 독립운동을 했다.
우금치에서 패퇴한 전봉준과 김개남.손화중 장군은 회문산 근처에서 재기를 꾀하다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돼 교형을 당하고 목을 잘려 효수됐다. 김개남 장군은 잡혀 전주로 압송되는즉시 목을 자르고
배를 갈러 내장을 들어내고 사지를 난자했다. 전라도 전역에서 양반들이 전주감영에
난입해 김개남 장군의 살점을 다투어 찢어갔다. 간신히 수습된 모가지는 서울로 보내져 길바닥에
효수됐는데 개가 좀 뜯어먹고 아이들이 입에다 오물을 집어넣어 가지고 놀았다고.
김개남 장군이 충청도 음성으로 출진할 때에는 50만 명의 농민군이 80리 길에 늘어서 장관을
이뤘다고 했다. 당시 전라도 인구를 감안할 때 숫자가 부풀려졌지만 신화나 야사는 당시 백성들의
염원을 기억해 남긴 것이니. 선운사에 동백이 골백번 피고 지는 동안 그들은 김개남 장군을
기억했다.
첫댓글 유사이래 새로운 일은 없다고 합니다.
선운사의 동백은
어제도 피었고
오늘도 피고
내일도 필 것입니다.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꽃을 피우는 사람,
꽃이 되는 사람,
꽃을 피하는 사람.
후두둑 떨어지는 동백은 사라졌고
화사한 능소화가 무성할 초여름이 시작되는 시기
장마가 시작됩니다.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운치 삼아
표표하고 초연하게
세상을 오시하고
술 마시며
한 세상 살아가시죠.
외로우니까 글을 쓰지요 .
세상도 사람도 고장날 때는 어쩔 수 없어요
이게 트라우마일까요
비올 때 마다 지난날 세상과 함께했던 상처가 도져가지고
온몸의 관절들이 다 쑤시네요 .
세상에 표표하고 씽씽하게
여름 잘 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가슴이 저려오고 숙연해지네요 산다는게 뭔지 ㅠ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리 편히 살고 있슴을 알고 있습니다
대장님 장마에 잘 지내시죠.
재미지게 살때는 이분들 생각이 안나는데,
사는 거 퍽퍽하고 장마비 내리니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
궁시렁 거려봤자 별 도움이 안되겠지만,
사는 날까지 까먹지말고 기억은 하려고 해요 .
송창식의
선운사에 가보셨나요?
최영미의 선운사
동백꽃과 수선화 그리고 상사화가 가슴아픈곳!
잘 읽고
잘 듣고
우금치 전투를 소환해 보고
손병희에 대한 새로운 사실에 "끙" 못 마땅한 신음 소리 내보고.....
송창식의 노래 한번 더 듣고....
꾸우벅 ~~
오우~ 방장님 !!
장마에 잘 지내시지요? 오늘도 힘차게 화이팅
밤늦게 댓글 봉사활동을 하셨네요.
제가 나름 글쓰기 원칙이
70%는 내 공부를 위해서 쓰고 30%는 다른분들께 인사하고 의견을 들을라고 올리고
그라니께 재미가 없이 장황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가볍게 패스하는거도 지혜로운 일.
너무 남 보기 좋은 글만 써 버릇하면
자기글로 자기를 소외시키고, 쉬이 지치게 만드니께 서로 손해 같음
스캔도 스캔 나름이지만.. ㅋㅋㅋ
사진으로 찬란한 우리 문화유산
그것도 백제
유 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서기
생각도 나고요..
독후감은
나중에.. (맨 정신으로.. )
용서해 주실거죠?!!
(어짜피 꽐라.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