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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관심은 주유성에게는 달가운 것이 아니다. 그는 남들의 무관심이 좋다. 그게 게으름 피우는 데 더 편하다. 그 런 그에게 남궁서천이 다가왔다. "주 소협, 이거 큰일났소. 취걸개 어른과 다른 장로님들이 보이지 않소." 남궁서천은 어느새 주유성에게 중요한 문제를 가져와 의논 하고 있었다. 게으름뱅이 주유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상당히 희석되어 있었다. "잉? 그 할아버지들이 어디 가셨대요?" 남궁서천이 진이 설치됐던 곳의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저곳에 지하고 통하는 입구가 있소. 구조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고수 백 명을 이끌고 저곳으로 들어갔다고 하시더 군. 진법가들도 같이." 주유성이 드러누운 채로 하늘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저기 혹시, 기관이나 그런 거 설치된 건 아니죠?" "바로 그렇소. 사람들 말이 기관 해체를 하면서 들어가려 고 고수들이 필요했다고 하더군." "미치겠네. 그동안 놀았다고 벌받나?" 그럴싸한 소리다. 주유성이 바들바들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나 좀 업어줘요. 저기 가자고요." 검옥월이 깜짝 놀라 말했다. "주 공자, 공자는 이제 한계예요." "난 입으로 할 테니 뚫는 건 알아서들 해요. 내가 이래 봬 도 기관도 조금 공부했거든요." 사천의 유명한 기관 전문가 관지장이 그의 기관 스승이다. 남궁서천이 반색을 하며 주유성을 업었다. "기관까지? 역시 주 소협이군. 걱정 마시오. 내가 편안히 모시지." 검옥월이 앞에 섰다. "할 수 없지요. 선두는 제가 맡을게요." 그들의 대화를 들은 무공고수들이 모여들었다. 손이 남는 사람들 중 일부는 구경이라도 해볼까 해서 다가왔다. 취걸개 일행은 기관 함정을 전부 부수며 전진한 것은 아니 다. 상당수의 기관은 작동 장치를 미리 찾아내서 피해 움직이 는 방법을 썼다. 일행은 대부분 고수다 몇 명의 진법가는 고 수들이 챙겼다. 그래서 실수로 기관을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 다. 그들은 피하는 데 실패해서 기관이 발동되는 경우는 무공 을 이용해서 기관 함정의 공격을 때려 부쉈다. 따라서 주유성 일행이 들어갈 때는 아직 상당수의 기관이 살아 있었다. 이건 목표물을 꼬드기기 위해서 적당한 수준으로 설치한 기관이다. 하지만 그 목표가 검성이나 천마 정도의 고수다. 따라서 함정의 위험도는 대단히 높다. 주유성이 남궁서천의 등에 업힌 채 손가락을 힘겹게 뻗었다. "저기 저거, 그 돌 옆에 뾰족한 부분. 거기 칼을 콱 찔러봐 요." 검옥월이 검을 곧추세워 바닥을 찍었다. 곧바로 뭔가 끊어 지는 소리가 났다. "됐어요. 조심해서 지나가 봐요. 성공했으면 괜찮을 거고 실패했으면 왼쪽 벽에서 화살 같은 게 튀어나올 거예요." 검옥월은 주유성의 말에 따라 왼쪽을 노려보며 앞으로 전 진했다. 기관은 작동하지 않았다. 취걸개 때와는 다르게 주유성은 이런 식으로 기관들을 모 조리 부수며 전진하고 있었다. 검옥월이 횃불을 들고 충분히 전진한 후 손을 흔들었다. 그 걸 보고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남궁서천이 감탄하며 말했 다. "주 소협, 정말 대단하군. 어떻게 보기만 하면 함정을 다 구분하고 또 해체 방법까지 찾아낼 수 있소?" "별거 아녜요. 기관 설치한 사람 실력이 형편없어서 다 보 이거든요. 너무 이론에 충실해서 의외성이 적어요. 방금 지나 온 곳도 그 벽에 다른 잡다한 것들을 붙여두면 화살발사기를 숨겼다고 소리치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랬다면 오행이론으로 볼 때 격발기가 있을 위치도 뻔하고. 아, 검 소저. 그만 가요. 그 앞에 또 뭐 있어요. 좀 보자고요." 주유성은 골골대면서도 함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금을 타거나 그림을 그리는 동작까지 한번 보고 거의 비슷 하게 따라 했던 주유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동작 하나 도 놓치지 않는 엄청난 관찰력이 필요하다. 그는 그런 관찰력으로 동굴을 샅샅이 훑으며 자신이 가진 기관에 대한 지식을 아낌없이 활용했다. 주유성은 지금 정말 죽을 맛이다. 막대한 내공은 완전히 바 다났다. 단전이 말 그대로 텅텅 비었다. 머리는 너무 써서 멍 하다. 그걸 억지로 쥐어짜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다가는 정말 쓰러져 죽을 것만 같다. 이제 슬슬 메슥거리기까지 했다. '죽겠으니까 제발 좀 끝나라. 무슨 통로가 이렇게 길어?'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큼지막한 철문 이 그들의 앞을 막고 있었다. 여기 도착하기 얼마 전부터 사람들은 긴장한 상태였다. 다 들 철문에서 간간이 울리는 쇳소리를 들었다. 남궁서천이 주유성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철문에 손을 대고 고함을 질렀다. 목소리에는 내공이 실려 있었다. 그 목 소리가 몸을 타고 철벽에 전달됐다.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펼 칠 수 없는 무공이다. "남궁서천이 왔습니다!" 철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곧바로 취걸개의 목소리가 철문 너머로 들렸다. "으하하하! 살았다! 우리 여기 갇혔어. 출구라고는 이 문뿐 인데 도저히 부서지지가 않아. 어서 좀 구해줘라. 거지 굶어 죽겠다." 남궁서천이 검을 빼 들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검에 검기가 흐르자 철문을 거세게 후려쳤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철문은 조금 파여 나갔 을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주유성이 남궁서천을 말렸다. "그렇게 해서 될 거였으면 안쪽에서 뚫고 나왔겠죠. 하지 마요. 너무 오래 걸려요." "주 소협,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주유성이 비틀거리면서 철문에 다가섰다. 떨리는 손으로 철문을 매만졌다. "주 공자, 방법이 있겠어요?" "물론이지요.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어요. 죽이 려고 만든 덫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럼 당연히 안에 있는 사 람들을 꺼내기 위해서 이 문을 열 방법이 있어야 해요. 바깥 어딘가에." 주유성은 거의 한 식경을 이것저것 건드려 보면서 조사했 다. 지금까지의 함정은 하나 해체하는 데 반 다경조차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자 사람들은 초조해졌다. 하지만 방해가 될까 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문 안쪽에서는 사람들이 가득 몰려 있었다. 그들은 바깥에 서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몰 랐다. 내공을 써서 대화를 한 것은 남궁서천이다. 주유성이 와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래도 구조에 방해가 되지 않 기 위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주유성이 문 옆 아래쪽의 문양을 가리켰 다. "열쇠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공간을 보면 어떻게 됐든 저쯤에 지지대가 있어야 해요. 검 소저, 저 부분을 박살 내봐 요." 검옥월이 검을 들어 검기를 세웠다. 주유성이 가리킨 부분 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돌로 된 부분은 푹푹 잘려 나갔다. 그 안쪽으로 기관 장치의 핵심이 보였다. "어쭈? 이거 일회용이네. 문을 다시 올리는 방식이 아니에 요. 그냥 못 움직이게 버티고만 있는 거예요. 그거 잘라 버려 요. 그럼 열릴 거예요." 주유성의 말에 검옥월이 검으로 기관 장치를 콱 찍었다. 단단히 물려 있던 장치가 힘없이 부서졌다. 그 장치와 연결 된 다음 장치가 풀려 나갔다. 그렇게 두 단계를 더 거친 후 철 문 아래쪽에 숨겨져 있던 튼튼한 지지대가 풀렸다. 지지대의 아래에는 철문 하나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었다. 두껍고 단 단한 철문은 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마침내 사흘 만에 철문이 열렸다. 문 안쪽에는 사람들이 가 득 몰려 있었다. 주유성은 긴장이 탁 풀렸다. 이제 정말 더 이상 서 있을 힘 도 없었다. 제일 앞쪽에 있던 자들 중에 마해일이 소리쳤다. "열렸다!" 그가 제일 먼저 사람들을 밀치고 튀어나갔다. 주유성은 철문이 열린 공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마해일은 며칠 동안 갇혀 있으면서 그 더러운 성질을 억누 르느라 잔뜩 열받은 상태였다. 그는 그의 앞에 끔찍이도 싫어 하는 주유성이 서 있자 화가 치밀었다. '이 꼴도 보기 싫은 새끼가 여기 왜 와 있어?' 주위에서 보는 눈도 많은 상황에서 대놓고 때릴 수는 없었 다. 그래도 그냥 지나가기에는 그의 성격이 너무 나빴다. '이 새끼 무공이 제법이었지? 그럼 이 정도는 해야지.' 내공을 조금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냥 밀 듯이 주유성의 가 슴을 가볍게 쳤다. 당연히 이 정도는 주유성이 막을 줄 알았다. 만에 하나 못 막아도 주유성 정도 무공이면 큰 피해는 입지 않을 거라고 생 각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일 거라고 믿 었다. 마해일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시비였다. 그런데 지금 주유성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내공은 바닥 나서 진기는 한 줌도 모이지 않는다. 인간의 한계 이상의 집 중도를 발휘했던 머리는 긴장이 풀리자 제대로 돌지도 않았 다. 바보처럼 멍해져 있었다. 속은 미식거리고 혹사한 몸은 혼자 걷기도 힘들어 남궁서천에게 업혀 다니던 신세다. 서 있 는 것도 기적이다. 마해일의 장력이 무방비 상태인 주유성의 가슴을 정확히 후려쳤다. 고수에게는 별것 아닌 공격이다. 그러나 그 손에는 내공이 실려 있어 일반인이라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위 력이 들어 있었다. "악!" 주유성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 나갔다. 입에서 피분수 까지 뿜었다. 장내의 시간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뒤에 서 있던 남궁서린이 급히 주유성의 몸을 받았다. 검옥월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아악! 주 공자!" 검옥월은 한 자루 검과 같은 무인이다. 그녀는 마해일이 주 유성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먼저 이해했다. 곧바로 대응 동작에 나섰다. 즉시 위협을 제거해서 주유성 을 보호하려고 했다. 검옥월이 마해일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검에는 어느새 날카로운 검기가 맺혔다. 살기를 풀풀 날리는 그녀는 마해일 의 목을 향해 용서없이 검을 날렸다. 마해일이 기겁을 하며 자기 검을 들었다. 채 뽑지도 못하고 검옥월의 검을 겨우 막았다. 검옥월의 검에 담긴 힘은 마해일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 다. 강력한 검기에 충돌한 마해일의 검이 검집째 꺾이며 부러 졌다. 마해일 역시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크악!" 마해일이 비명을 지르며 자빠졌다. 단 일 초의 공격에 내기 까지 손상당했다. 검옥월은 그 정도로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검이 쓰 러진 마해일을 향해 매섭게 떨어졌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그녀의 검이 정지했다. 검옥월의 눈이 더 날카로워졌다. 그녀의 공격은 적명자의 검에 막혀 있었다. 적명자는 청성의 장로이자 무림맹의 장로이다. 아무리 검 각의 후기지수라 해도 이제 겨우 스무 살인 검옥월로서는 버 거운 상대다. 검옥월이 한 걸음 물러서며 검을 세웠다. 그냥 끝내지 않겠 다는 자세였다. 그녀의 검에 검기가 더 강하게 맺혔다. 검 전 체를 푸른 검기가 감쌌다.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박수를 쳐줘도 부족한 높은 경지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적명자가 눈을 꿈틀거렸다. 그의 검에도 시퍼런 검기가 넘실거렸다. 적명자는 청성의 후기지수 중 하나인 마해일이 단 한 수 만 에 패한 것에 화가 치밀었다. 마해일의 나이가 더 많은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상대가 검각 출신이라고 해도 청성으로서는 크게 창피한 일이다. 적명자는 청성의 체면을 조금이라도 덜 상하게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검옥월을 향해 호통을 쳤다. "비겁한 것! 암습을 하다니!" 적명자의 말은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마해일이 먼저 주유 성을 공격한 상황에서 검옥월의 행동은 적절했다. 상황을 제 대로 본 앞줄의 사람들이 비난의 눈길로 적명자를 쳐다보았다. 적명자는 그 눈길을 무시했다. 어차피 하루 이틀 억지 부려 본 것이 아니다. 예전의 청성이 아니라며 손가락질당한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지금은 욕을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청 성의 무공이 저평가되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적명자 의 기세가 강해졌다. 적명자를 쳐다보던 사람들이 그 기세에 찔끔했다. 그들은 공연히 청성과 척을 지기 싫었다. 뒤쪽의 변화를 느낀 적명자는 만족했다. '어차피 소문이야 퍼지겠지. 하지만 내 말이 거짓이라고 대놓고 공표할 놈은 없으렷다. 그 정도면 급한 불은 끈 거지. 그럼 이제 이 검각의 계집을 혼내볼까?' 적명자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검옥월은 입을 열어 대답하지는 않았다. 서릿발 같은 기세 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장이라도 검을 날릴 것만 같았다. 분위기가 나빠지자 취걸개가 급히 나섰다. "그만, 그만. 일단 진정들 하라고." 취걸개는 우선 쓰러진 마해일을 걷어찼다. "이 새끼, 왜 갑자기 살수를 쓰고 지랄이야?" "캐액!" 매섭게 걷어차인 마해일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의 몸 은 적명자 쪽으로 굴러갔다. "저 두 놈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 고. 옥월아, 일단 유성이 녀석부터 살펴야 하지 않겠냐?" 주유성에게 생각이 미친 검옥월의 검에서 검기가 사라졌 다. 살기마저 씻은 듯이 없어졌다. 그녀는 즉시 남궁서린에게 안겨 있는 주유성에게 달려갔다. "주 공자, 괜찮아요?" 주유성은 이미 혼수상태다. 아무리 대단한 무골이라도 무 방비로 받아들이기에는 타격이 너무 강했다. 청허자가 재빠리 다가와서 주유성의 몸 상태를 살폈다. "내상을 심하게 입었군." 청허자는 주유성의 진법 실력을 꽤 아꼈다. 친분까지 조금 있다. '보아하니 이 녀석이 우리를 구하는 일에 큰 공을 세웠겠 군. 마해일 저 녀석이 배은망덕한 짓을 했어. 그런데 만약 이 녀석이 잘못되면 마해일과 같이 있던 사람들도 도매금으로 넘 어가서 욕을 먹겠지? 거기에는 나도 포함될 테고. 그럼 우리 무당에게 누를 끼치는 거지. 보물이 아깝지만 이 녀석을 죽도 록 놔둘 수는 없으니 할 수 없지. 사형도 이해할 거야.' 그가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다. 마해일에게 모든 책임을 넘길 수 있다. 실제로 마해일의 책임이다. 하지만 주유성을 아끼는 청허자다. 그가 자신이 가진 귀한 약을 외인에게 쓰려면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낸 그가 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내게 좋은 약이 있으니 기다려라." 청허자가 품에서 아주 조그마한 상자를 꺼냈다. 그것을 열 자 잘 밀봉된 작은 환약이 하나 나왔다. 환약을 꺼내자 청량 한 향기가 풍겼다. 냄새를 맡은 취걸개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이 냄새, 맡아본 적 있어. 늙은 도사, 설마 태청단을 내 놓은 거야? 그건 무당파 장문인의 허락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약이잖아." 청허자가 정말 아깝다는 표정으로 환약을 만지며 말했다. "우리 사형이 내가 무림맹 장로가 됐을 때 준 거외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쓰라고." 그가 주유성을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을 살리는 데 태청단이면 되겠지. 우리 태청단은 소림의 대환단만큼은 아니어도 소환단보다는 나으니까. 그 런데 이것 참." "왜? 무슨 문제가 있나?" "이 녀석이 정신을 잃어서 먹이기 좀 불편하군." 검옥월과 남궁서린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들은 같 은 생각을 했다. '씹어서 입으로 먹이는 방법!' 두 여자가 즉시 손을 뻗어 태청단을 받으려고 했다. 취걸개가 더 빨랐다. 그는 주유성에게 달라붙더니 턱과 목 을 잡더니 콱 눌렀다. 주유성의 입이 벌어졌다. "이런 건 거지가 전문이지. 개방의 어떤 초보 거지들은 구 걸해 온 음식을 더럽다고 못 먹기도 하거든. 내 손에 걸리면 이렇게 잡고 강제로 삼키게 하는 거야. 늙은 도사, 떨어뜨려 보라고. 그냥 삼킬 거야." 청허자가 벌어진 주유성의 입에 태청단을 떨어뜨렸다. 취 걸개는 태청단이 잘 넘어가도록 주유성의 목을 잘 주물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약 중에 손상된 혈도나 주화입마 등에 최고로 잘 듣는 약은 대환단이다. 대환단은 정말 심각한 주화입마를 제외하고는 후유증도 없이 완벽하게 치료한다. 무인에게는 여벌의 목숨이라고까지 불린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으로 꼽는 것이 태청단이다. 그만큼 귀 하고 비쌌다. 주유성의 신색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그걸 본 취걸개가 말 했다. "일단 데리고 나가자. 이 안은 위험해. 태청단을 먹였으니 당분간 문제는 없을 거다." "당분간이라니? 우리 무당의 태청단을 뭐로 보고 그런 소 리를 하는가. 가만 나둬도 다 치료가 될 게야." "좋았어. 그럼 나갈 때 다들 기관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 하자.' 검옥월이 벌떡 일어섰다. "최대한 빨리 나가요. 기관은 전부 파괴됐으니까요." "잉? 옥월아, 그게 무슨 소리냐?' "주 공자가 모든 기관의 파해법을 가르쳐 줬어요. 지금 작 동하는 기관은 하나도 없어요. 나는 나가서 저 은혜도 모르는 놈과 끝을 보고 싶어요." 검옥월과 마해일의 싸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 사이의 실력 차이를 눈치 챈 적명자가 마해일을 감쌌고 취걸개와 청 허자가 말렸다. 검옥월은 이를 갈았지만 당장은 주유성의 안 위가 더 급했다. 주유성이 마해일의 일장을 얻어맞고 인사불성이 된 일에 대한 목격자는 많았다. 그것 때문에 마해일은 사람들에게 엄 청난 비난을 받았다. 청성은 덤으로 욕을 먹었다. 마해일은 적극적으로 변명했다. "그저 가벼운 일장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한 거였습니 다. 고수라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주유성 그자가 저렇게 약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벼운 일장이란 것은 사실이다. 고수들도 눈이 있어 그것 을 구분했다. 평소라면 시비거리 정도가 발전된 단순한 사고 로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주유성은 이번 일을 거의 혼자 수습하다시피 했다. 정체불명의 진을 해체한 것도 주유성이고 중상자 오백여 명 에 대한 응급처치를 해서 목숨을 구한 것도 주유성이다. 그리 고 함정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구해낸 것도 주유성이 없었다 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주유성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주유성에게 구함을 받은 주제에 떡을 만들어놨으 니 마해일을 좋게 볼 사람은 없다. "소문에 청성이 예전의 청성이 아니고 그중에 마해일이 특 히 성질이 더럽다더니. 진짜였네, 진짜였어." "어떻게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드나. 은혜도 모르는 놈 같 으니라고. 개새끼네." "그놈은 무늬만 정파야." 마해일에게 욕을 바가지로 퍼부은 사람들은 주유성에 대 한 인식도 새롭게 정의됐다. "주 공자가 학문도 높고 진법도 잘하고 응급처치에 관한 의 술도 제법이고 기관에 대해서도 상당히 잘 알지만 정말로 무 공은 영 아닌가 봐? 아무리 지쳤다고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나?" "그렇지? 원래 학문이 높다고 알려졌지만 게으르다고 하잖 아. 하나만 하기도 힘든 것이 사람인데 게으르기까지 하다니. 무공을 수련해 봐야 얼마나 했겠어?" "그래도 저게 어디야. 오늘 보여준 것 중 하나만 잘해도 밥 은 먹고산다고." 주유성이 평범한 일장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는 것이 그 의 무공을 평가절하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주유성이 지친 상 태인 것은 다들 알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몰랐 다. 그저 오백여 명의 부상자를 치료하느라 지친 것으로만 생 각했다. 심신이 모두 완전히 바닥난 상태였다는 것은 짐작도 못했다. 검옥월만 조금 추측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유성은 하루 만에 깨어났다. 남궁서린과 검옥월이 주유성을 간호하고 있었다. 그 곁에 화산의 백미화도 한자리 끼어들어 물수건을 빠는 정도는 했 다. 주유성이 눈을 떠보니 여자들만 몇 명 보였다. 여자들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걸 본 주유성이 엄 살을 피웠다. "아이고 죽겠네.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어요." 남궁서린과 검옥월은 기쁨에 겨워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옆에서 고개를 내밀고 주유성을 본 백미화가 눈 물을 뚝 떨어뜨렸다. "흐흑, 주 공자님. 이제 일어나셨어요?" 그녀는 사흘이나 갇혀 있던 곳에서 구해준 사람이 주유성 임을 알고 그 고마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주유성은 젓가 락으로 자신이 즐겁게 노래할 수 있게 해주었던 그 사람이다. 금상첨화로 아주 잘생기기까지 했다. 그래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간호라도 해볼까 하고 찾아 왔더니 이미 남궁서린과 검옥월이 자리를 단단히 잡고 있었 다. 차마 그냥 돌아가지 못하고 잔심부름이나 하며 주변을 맴 돌았다. 그러다 보니 자존심이 엄청나게 상했다. 하지만 신세를 진 처지에 간호하겠다고 와서 그냥 돌아갈 수도 없다. 눈칫밥을 먹으며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주유성이 일어나자 지난 하루의 설움이 끝 났다는 생각에 절로 눈물이 나왔다. 주유성은 당황했다. 백미화가 자기가 일어났다고 해서 눈물 까지 흘려주는 줄 착각하고 조금 감동했다. "백 소저, 난 괜찮아요. 뭘 이 정도 일 가지고. 하하, 아이 고." 주유성은 일어나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몸이 제대 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태청단이 워낙에 명약이라 혈도에 후 유증은 없지만 다치기 전에도 몸 상태는 바닥이었다. 그런 몸 을 제대로 두드려 맞았으니 몸 상태는 정말 최악이었다. 백 소저의 눈물과 주유성의 친근한 반응을 본 검옥월과 남 궁서린의 얼굴에 가벼운 경련이 스쳐 지나갔다. '이년이!' * * * 혈마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모든 사황성의 장로들 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총관이 혈마의 앞에 엎드려 머 리를 땅에 박고 있었다. 혈마가 살기를 풀풀 날리며 낮게 말했다. "아수라환상대진이 깨져? 아무도 아는 자가 없어 절대로 단시일에 깰 수 없는 진이라 하지 않았냐?" 총관은 변명할 수가 없다. 확신을 하고 추진했지만 일이 예 상과는 다르게 진행됐다. 더구나 꽤나 억울한 상황이지만 상 대는 사황성주인 혈마다. "죄송합니다, 성주님. 설마 아수라환상대진을 알고 있는 자가 정파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별 이름도 없는 주유성이 라는 자는 계산 밖이었습니다." 혈마가 호통을 쳤다. "몰라? 이게 모른다고 끝낼 일인가!" 그의 목소리에는 내기가 깃들어 있었다. 실내의 집기들이 무섭게 떨렸다. 총관이 땅을 연신 이마로 박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죽여주십시오, 성주님." 혈마가 이를 갈았다. "으드득. 아수라환상대진을 재현해 내고, 그걸 하남에 설 치하고, 또 가짜 검마의 기관을 만드느라 쓴 황금이 얼마며 시간이 몇 년인데. 그런데 그게 사흘밖에 버티지 못해? 무슨 일 처리를 그렇게 하나!" 엄밀히 보자면 이 일은 혈마와 총관의 공동 작업이다. 혈마 도 그걸 알고 총관도 안다. 하지만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되면 고생하는 건 대부분 아랫사람이다. 책임을 나눠야 할 사 람이 최고위층이면 보통 아랫사람이 다 뒤집어쓴다. 지금 총 관이 그 꼴이다. 장로 하나가 변명 삼아 말했다. "그래도 정파 놈들 천여 명을 잡았습니다. 오백은 완전히 죽였고 다른 오백은 중상이라고 합니다." "바보 같은 놈. 겨우 천 명 잡다고 그 짓을 한 줄 아느냐?" 혈마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몸에서 살기가 꽤 수그러들었 다. 자기가 일의 추진을 강하게 주장한 일이다. 망쳤다고 계 속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걸 본 총관이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이호경식의 계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패 는 아직 절반입니다." "그래, 그게 남았지. 이호경식." "잘 풀리기만 한다면 이번의 손해를 복구하고도 남습니다." "알았다. 이건 제대로 처리했겠지?" "물론입니다.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하겠습니다." * * * 주유성이 깨어날 때쯤에는 무림맹이 추가 조사단이 도착 해 있었다. 청허자 등의 장로들은 새롭게 접한 소식들에 대한 회의에 집중했다. 청허자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이것이 그 훈장이라는 자의 집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의 앞에는 쓰다 만 문서 한 장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집을 샅샅이 뒤져서 겨우 찾아냈습니다. 조 금만 대충 찾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문서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어둡다. 적명자가 말했 다. "내용으로 보면 이건 분명히 마교의 마뇌에게 가는 보고서 가 틀림없군. 상태로 보아 쓰다가 버린 파본이 틀림없고." 취걸개가 혀를 찼다. "쯧쯧.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이번 일이 마 교의 짓이라고 확신하기는 좀 그렇잖소?" "마교가 아니면? 이런 규모의 덫을 놓을 수 있는 세력이 무 림에 얼마나 되겠소? 그것도 우리 무림맹에 적대적인 곳에서." "마교 말고 사황성도 있으니까. 아니면 황제가 미친 척하고 저질렀든지. 황제도 무림맹을 좀 고깝게 보잖소." "그렇다면 이걸 좀 더 찾기 쉽게 해놨어야지요." "결국 찾았잖소." 둘의 설전을 청허자가 말리며 말했다. "둘 다 진정하시오. 일단 체포했던 그자들을 이리로 압송 해 오라고 지시했소. 그자들을 심문해 봅시다." 청허자와 사이가 나쁜 적명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들이 이용만 당한 거라면 조사를 한들 얼마나 나오 겠소이까?" 아수라환상대진의 발동을 담당했던 삼십 명의 사람들은 줄 줄이 묶여서 걸어갔다. 그들을 감시하는 것은 오십여 명의 정 파 무인들이었다. 잡힌 자들은 무공이 거의 없다시피한 일반인 수준이다. 호 송하는 사람들도 평범한 실력의 무인들이었다. 범인들이 단 순히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사 강한 자들을 동원하고 싶었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범인들을 처음 잡을 때는 고수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고수들은 진을 파훼하는 데 관심이 더 많았다. 그때는 포로 감시를 위해 이만큼의 무사를 빼내는 것도 어려웠다. 이 중에도 고수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바로 호송대를 이끄 는 산동일월검 동낙춘이었다. 그들은 무림맹 조사대로부터 잡아놓은 사람들을 데려오라 는 지시를 받고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간단한 일은 쉽게 끝내기가 어려웠다. 인적이 드 문 곳에서 이십 명의 복면인이 갑자기 뛰쳐나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깜짝 놀란 동낙춘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이것은 무림맹의 일이다! 썩 물러가지 못하 겠느냐!" 복면인 중의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알아. 그러니까 닥치고 죽어라." 분위기가 나빠지자 동낙춘이 검을 뽑았다. "나는 산동일월검 동낙춘이다! 내 명성을 들어봤다면 물러 가라!" 복면인이 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그런 잡배의 이름은 모른다." 모욕을 당한 동낙춘이 살기를 뿜었다.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다. 모두 쳐라!" 동낙춘의 명령에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숫자가 이미 두 배가 넘는 그들이다. 더구나 멀지 않은 곳에 무림맹의 고수 들이 잔뜩 몰려 있다. 그들은 함성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기세 좋게 덤벼든 무사들은 곧바로 도륙을 당했다. 그들은 복면인들의 일검도 제대로 막지 못했다. 복면인들의 실력은 모두 고수급이었다. 동낙춘이 검을 들고 나서다가 멈췄다. 그의 얼굴은 이미 파 랗게 질려 있었다. "이, 이건!" 처음 나섰던 복면인이 동낙춘에게 걸어왔다. "너는 내가 직접 죽여주마. 영광으로 여겨라." 동낙춘이 이를 악물었다. 달아나고 싶어도 벌써 퇴로를 복 면인 몇이 막았다. 동낙춘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쉽게 당하지는 않아!" 그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검에 검기가 살짝 맺혔다. 그 상 태로 복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끝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복면인이 몸을 슬쩍 피하며 도를 거칠게 휘둘렀다. 동낙춘의 검이 복면인의 도에 부딪쳤다. 검은 잠시도 버티 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도는 그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 고 동낙춘의 몸까지 잘라 버렸다. "으아악!" 동낙춘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복면인의 얼굴에서 복면이 서서히 떨어졌다. 사내가 투덜 거렸다. "제법이구나. 나 상관악의 복면을 건드리다니." 무성한 구레나룻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왼쪽 귀가 없었다. 구레나룻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정파의 무사들은 전부 쓰러져 있었다. 그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형제들을 구해라!" 복면인들이 호송되던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풀려난 사람 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청허자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뭣이? 호송대가 전멸해?" 적명자가 뒤따라 질문했다. "범인들은?" 보고를 하던 사람이 다급히 말했다. "호송하던 범인들은 전부 탈취당했습니다." 청허자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당했구나. 흉수는 누구인지 알아냈느냐?" "호송대 중에 생명이 경각에 달했으나 죽지 않은 자가 있 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흉수의 대장이 산동일월검 동낙 춘 대협의 공격에 복면이 벗겨졌다고 했습니다. 그런게 그 얼굴 은 구레나룻에 한쪽 귀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 특징으로 어찌 찾는다는 말이냐?" "그리고 상관악이란 이름도 들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취걸개가 벌떡 일어섰다. "뭐야? 독이괴마 상관악? 그거 마교의 마두잖아!" "마교. 결국 마교의 짓이라는 건가? 생존자의 상태는 어떤 가?" "부상이 워낙 심하여 결국 사망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적명자가 자신있게 말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이건 마교의 수작입니다." 취걸개가 조금 불안한 듯이 말했다. "하지만 마교의 짓이란 게 이리 쉽게 드러나다니." "쉽지 않았어요. 마뇌에게 가는 보고서도 운이 좋아 찾았 고, 이번의 생존자가 잠시나마 목숨을 연장한 것도 하늘이 도 운 것이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사안이 워낙 중요하니 이 문제는 무림맹 에 돌아가서 좀 더 논의해 봅시다." 자기가 어떻게 당한 건지 이야기를 들은 주유성이 이를 갈 았다. "마해일 그 새끼가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요? 아주 박살을 내버리겠어." 검옥월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몸이 낫거든 가만두지 말아요."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백미화는 주유성의 실력을 제대로 모른다. 그녀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주 공자님, 마해일은 꽤 강해요." 주유성이 피식 웃었다. "개뿔이 강해요? 마해일에게 전해둬요. 내가 조만간에 무 림맹에 찾아갈 테니까 목을 씻고 기다리라고." 원래 무림맹에 갈 계획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만 큼 맞았는데 그냥 넘어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복수의 달콤함 은 게으름의 편안함보다 강하다. 하지만 워낙 게을러서 언제 갈지는 그도 알 수 없다. 검옥월이 아직도 주유성을 모르고 반색을 했다. "좋아요. 빨리 쾌차해서 무림맹에 오시기를 바랄게요.' 주유성은 편안한 마차에 실려 주가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무림맹에서는 돈을 들여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마차를 수배했 다. 검옥월과 남궁서린, 그리고 덤으로 백미화가 주유성의 간 호를 핑계로 달라붙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일정은 어차피 주가장까지다. 주유성을 넘 겨주고 나며 주가장에서 길어야 하루 이틀 신세지는 것이 고 작이다. 그 후에는 명분이 없으니 무림맹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주유성이 무림맹으로 찾아온다는 소리에 모두 반색을 했다. * * * 혈마가 낮게 웃었다. "크흐흐. 그나마 뒤처리는 잘했군, 총관." "상관악으로 위장하기 위해서 부하 녀석 하나가 귀까지 잘 랐습니다." "크하하하. 마땅히 상을 줘야지. 한몫 챙겨주고 이번 일이 일단락될 때까지 잘 숨어 있으라고 해." "이미 그렇게 처리했습니다." "그 생존자들은 어떻게 처리했나? 진을 재현하기 위해서 이용했던 녀석들. 그자들은 정말로 우리에게 속았으니 아는 것이 없잖아." "그놈들은 무림맹의 눈에 띄면 문제가 됩니다. 그놈들은 공식적으로 마교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져야 합니다. 비밀 유 지를 위해서 모두 제거했습니다." "잘했어. 무림제패를 위해서 그 정도야 뭐. 참, 상관악의 얼굴을 보라고 살려뒀던 녀석 말이야. 원래는 적당히 하기로 했잖아. 그런데 좀 심하게 했다며? 그러다 정보를 불기 전에 죽으며 어쩌려고 그랬나?" "그 녀석을 거의 죽였던 부하가 원래 사람 잡아다 죽이는 취미가 있던 놈입니다. 그놈을 특별히 투입했습니다. 적어도 몇 시진은 확실히 살려두는 재주를 가진 놈입니다. 길 가던 몇 놈 잡다아가 시험까지 해봤는데 모두 세 시진을 버티고 네 시진이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이 정도로 철저히 하지 않으면 무림맹에서 믿지 않습니다." "잘했어. 과정이야 어쨌든 성공했으면 된 거야. 수고했네, 총관. 아, 팔독문은? 입단속 잘 시켰고?" "물론입니다. 어차피 팔독문에서 진법을 우리가 만들었다 는 사실을 아는 자는 그곳 문주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팔독문 은 철전 보관 시설로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곳입니다. 비밀 유 지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으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좋았어. 이제 무림맹과 마교 사이에 싸움만 붙이면 되겠 군." "마교는 이미 무림맹의 비무대회를 건드렸습니다. 한 번 한 놈들은 두 번도 할 수 있습니다. 무림맹도 그걸 알지요. 이 만큼 했으니 무림맹은 마교가 본격적으로 도발하고 있다고 믿을 겁니다." * * * 회의실에서 마뇌가 머리를 싸고 앉아 있었다. 마뇌 옆에는 많은 참모들이 탁자 주위에 둘어앉아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 자리에는 그가 이번 일에 투입시킨 열 명의 부 하들 중 조장 가환일이 앉아 있었다. 가환일은 사흘 동안 고생해서 얼굴이 다 핼쑥해져 있었다. 더구나 아홉 명의 부하들은 전부 죽었다. 그에게 덤빈 자는 그의 손에 죽었고 도망간 자는 진을 헤매다가 다른 자와 싸움 이 붙어 죽었다. 그가 살아난 것은 그의 무공이 꽤 높은 덕분이다. 그리고 주변의 부하들을 다 죽인 후 움직이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마뇌는 마교의 두뇌다. 그는 극히 우수하다. 하지만 뭐든 지 듣기만 하면 척척 결론을 낼 정도는 아니다. 그의 판단에 는 수많은 정보를 분석하는 노력이 따랐다. 그리고 그가 거느 린 많은 참모들의 노력도 한몫했다. 마뇌는 정보를 철저히 분석하고 결론을 낸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완벽히 갖추어 교주를 만난다. 교주에게 있어서 마뇌 는 만박무불통지다. 마뇌가 일부러 그런 인식을 교주에게 심 어주었다. 사실 마뇌는 만박무불통지가 아니라 정보 조직을 효과적 으로 통제하는 지휘관형에 가깝다. 그 마뇌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었다. "그렇게 해서 너 혼자 살아남았다?" 가환일이 즉시 탁자에 머리를 찍었다. "죄송합니다. 진의 위력이 너무 강력해서 어쩔 수가 없었 습니다." 마뇌가 남는 손을 저었다. "그래. 보통 진은 아니겠지. 정파 놈들도 천 명이나 당했다 며? 하지만 그놈들은 겨우 일 할이 당했는데 내가 보낸 놈들 은 일 할이 살았구나." 가환일의 안색에서 핏기가 사라져 갔다. '교주를 조종한다는 소문까지 있는 마뇌에게 찍히면 출세 는 고사하고 잘못하면 죽는다.' 마뇌가 창백해진 가환일을 힐긋 보더니 직속 참모들에게 말했다. "누구 그런 진에 대해서 들어본 사람 있나?" 마뇌가 모든 분야에 박식한 건 아니다. 대신에 그의 참모들 중에는 진법에 해박한 자가 많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꿀 먹 은 벙어리가 됐다. "무능한 놈들. 진의 위력이 그렇게 강력한데 아는 자가 없 단 말이냐? 설마 이번 일을 위해서 새롭게 개발한 진이라는 말이냐? 그런 규모로?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하겠냐?" 마뇌의 말에 참모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가능한 진이 없는 것은 아니오나..." "짐작가는 것이 있으면 말을 해라. 설혹 틀렸다 하더라도 책하지 않으마." 용기를 얻은 참모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정보를 종합해 보면 그 진은 기를 왜곡시키는 것이 주된 효능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시야를 막는 안개 기능도 있습니 다. 길을 잘못 가게 만드는 것은 상당수 진의 특징이니 논외 로 쳐도 그 두 가지가 그렇게 강력하게, 그리고 동시에 발생 하는 진은 많지 않습니다." "있기는 있구나. 그런데 왜 망설이느냐?" "그런데 그 많지 않은 진 중에서 그렇게 대규모로 설치가 가능한 것은 몇 가지 없습니다." 참모의 자꾸 망설이는 태도에 마뇌의 인상도 절로 심각해 졌다. "무엇이냐? 무슨 문제가 있기에 그리 망설이느냐? 이미 내 가 내 입으로 처벌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서 말해라." 그 참모는 주변에 진법을 잘 아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 들이 말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몇 개 중에 가장 특징이 일치하는 것이 아수라환상대진 입니다." 마뇌가 벌떡 일어섰다. "뭐얏!" 언제나 침착한 모습을 보이던 마뇌로서는 흔치 않은 모습 이다. 책상을 짚은 그의 팔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겠지? 너는 혹시 지금 그것이 아수라 환상대진이라고 말했느냐?" "그 규모에 그런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아수라환상 대진이 가장 유력합니다. 사실... 사실 저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뇌의 떨림은 이제 온몸을 타고 돌았다. 다른 사람들은 감 히 말도 붙이지 못했다. 마뇌가 겨우 떨림을 자제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수라환상대진은 우리 교에서도 교주님만이 익힐 수 있 는 진법이다. 교주님 비전의 진법이란 말이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감히 말씀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에서도 절전되었다 알려진 진법이지. 절전 된 지 삼백 년이야. 누가 그걸 배웠다면 내가 모를 리 없다." 마뇌가 기력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당했구나. 가짜일 수도 있지. 하지만 이제 무림맹은 이번 일이 우리 짓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군. 무림맹을 가볍게 자 극해서 사황성의 반응까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강한 수법 으로 반격해 오다니. 사황성의 수작이 만만치 않구나." 마뇌의 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참모들의 얼굴이 변했다. "잘못하면 무림맹과 우리가 먼저 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하지만 교주님에게 어떻게 보고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책을 먼저 세우자. 대책없이 보고 드릴 수는 없다." 마교 참모부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 * * 무림맹은 설설 끓고 있었다. 이번 일로 피해를 본 문파가 적지 않았다. 무려 오백여 명이 죽고 오백여 명이 중상을 입 었다. 중상자 중 상당수는 기혈이 망가져 무공마저 잃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림맹 수뇌부에게 새로운 소식이 보고되었다. 무림맹주 검성 독고진천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것이 아수라환상대진이었다?" 청허자도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진을 직접 경험한 진법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본 결과 마교의 아수라환상대진이 팔 할 이상의 확률 로 틀림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수라환상대진은 실전된 지 삼백 년은 지났다고 알고 있는데? 그야말로 전설의 절진 아니오?" "전설의 반로환동 고수마저 나타났는데 새로운 전설이 또 드러난다고 해서 뭐거 이상하겠습니까? 더구나 세상에 그렇 게 알려진 것뿐입니다. 정말 마교 내에서 실전된 것인지는 우 리도 알 수 없습니다." 적명자가 재빨리 호응했다. "그렇습니다. 설사 실전되었다 해도 마교 내에서 일어난 일, 다시 찾아냈어도 마교에서 찾아냈을 겁니다." 사람들은 특별히 이 의견을 부정하지 않았다. 취걸개만 예 외였다. "이거 뭔가 냄새가 나. 이 거지 코가 썩을 만큼 냄새가 심 하단 말씀이야." 적명자가 취걸개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취걸개 장로! 모든 정보가 이번 일은 마교 짓이라고 하고 있소. 그런데도 마교 짓이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야 마교 짓임을 인정하겠소?" "그러니까 이상하지. 너무 마교 짓이라고 확실히 주장되니 까. 마교가 바보들만 모인 곳도 아닌데 이건 너무 쉽잖아." "너무 쉽다니. 진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모두 운이 좋아서 알아낸 것들뿐. 조금만 실수했다면 놓쳤을 증거들이거늘!" "그건 우리 생각일지도 모르니까." "그럼 마교 교주가 나타나서 자기 짓이라고 인정하기를 바 랄까? 취걸개 장로는 그렇게 돼야만 믿겠다는 소리요?" 취걸개도 할 말은 없다. 그가 의심하는 근거는 범인이 너무 쉽게 밝혀진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만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반대의 근거를 세우기 부족하다. "분명히 하남의 사파들 중에 이 일에 동원된 놈들이 있을 걸? 그놈들을 족쳐 보는 게 어떨까 하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시는군. 하남에 사파가 한둘이 아닌 데 누구를 조사해 본다는 것이오? 사파가 우리 마음대로 움직 여지는 존재라고 생각하시는 것이오?" "아무래도 수상한 건 수상한 거지 뭐. 쳇." "어허. 그래도 인정하지 못하고. 무릇 아무리 잘 숨겨둔 음 모도 한번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일순간에 모든 것이 밝 혀지는 법. 더구나 이번 일은 음모가 아니라 우리 정파의 정 신에 피해를 입히려는 도발이라고 보는 것이 옳소. 그러니 이 것은 틀림없이 마교의 짓이오." 적명자는 신이라도 난 것처럼 떠들었다. 그 모습이 조금 거 슬려 보인 무림맹주가 말했다. "그만 합시다. 적명자 장로의 말처럼 이번 일은 마교의 짓 이 맞는 것 같군. 취걸개 장로 말고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있 소?" 다른 장로들은 이만큼의 증거가 있는데 취걸개를 따라간 다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좋소. 그럼 이번 일은 마교의 짓이라 생각하고 대응 방안 을 세워봅시다." 적명자가 벌떡 일어서서 두 주먹을 격정적으로 흔들며 말 했다. "당연히 복수를 해야지요. 마교가 우리에게 천 명의 피해 를 입혔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천 명의 피해를 주어 복수해야 지요." 무림맹주 검성 독고진천이 조금 이맛살을 찌푸렸다. '전쟁은 싫은데.'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 청허자가 반대했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 그리하다 잘못하면 공멸할 수 있 습니다." 적명자는 청허자에게 경쟁심을 많이 느낀다. 청허자의 반 대를 듣자 곧바로 발톱을 드러냈다. "청허자 장로는 지금 마교가 두려워서 맞고도 가만있자는 뜻입니까?"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좀 알아보자는 거지요." "더 이상 뭘 알아본다는 말입니까? 이미 모든 증거가 이렇 게 명확하거늘!" 그들의 말싸움에 취걸개가 끼어들었다. "다른 것도 생각해 봅시다. 이번 일에 제일 큰 공을 세운 것은 주유성이란 게으름뱅이란 말씀이지. 불러다가 상이라도 줘야 할걸?" 적명자는 주유성을 싫어한다. 주유성의 태도가 싫고 주유 성 때문에 비무대회에서 청성의 체면이 서지 않았다고 생각 해서 싫다. 주유성을 공격한 마해일이 욕이란 욕은 모조리 먹 다가 청성으로 도망갔다. 그 덕에 청성의 체면이 제법 손상당 했다. 그래서 주유성이 더 싫다. 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취걸개 장로는 일의 경중을 모르시오? 지금 상을 주는 것 이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소?" 취걸개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상을 주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 암." 적명자는 잘 걸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대의가 무엇인지 모른단 말이오? 대의를 위해 일한 자, 어 찌 상을 바란단 말이오?" "그 녀석이 아수라환상대진일지도 모르는 그 진법을 깨뜨 렸거든. 그럼 그게 정말 아수라환상대진인지는 그 녀석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좋지." 취걸개의 말에 적명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불리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청허자가 반색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요. 그 녀석, 진법의 대가이니까." 적명자가 찍소리를 한번 내봤다. "그럼 불러다 물어보면 되지, 왜 상은..." 취걸개가 웃었다. "흐흐, 그냥 부르면 올 놈이 아니거든. 상을 준다는 말로 꼬시면 그 녀석은 물론이고 금검이나 소소도 반대하지 않겠 지. 그렇게 무림맹으로 불러온 후에 제대로 부려먹어야지." 청허자도 취걸개의 말에 즉시 동의했다. "허허허. 그렇지요. 그 녀석. 이번에 오면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렵니다." 적명자는 이제 할 말이 없다. 그는 혹시나 해서 맹주를 돌 아보았다. 독고진천도 환한 표정이었다. '그럼그럼. 그 녀석이 오기만 하면 내가 제대로 가르쳐 봐 야지. 정통 무가도 아니고 상가의 사람이라니 내가 가르친다 고 해서 누가 제자를 빼앗겼다고 항의하겠어?' "그렇게 합시다. 큰 공을 세웠으니 그에 어울리는 큰 상을 내려야지요. 이는 마교의 눈을 흐리게 하는 효과도 있으니 일 석이조외다." 적명자는 주유성에게 포상하는 문제는 양보해야 함을 알 았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어쨌든 마교에 복수해야 합니다. 이미 이번 일에 대한 정 보가 정파무림인들 사이에 꽤나 돌았을 겁니다. 누군가는 이 것이 아수라환상대진인 줄 알아냈겠지요. 가만있으면 우리 무림맹은 물론이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입니다." 취걸개는 아직 꺼림칙함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당장은 적명자의 주장이 더 먹혔다. 이미 복수를 주 장하는 열혈장로들이 적명자의 편으로 돌아선 상태였다. * * * 주유성이 돌아오자 주가장이 뒤집어졌다. 특히 당소소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사색이 됐다. "유성아!" 그녀는 주유성의 몸을 잡고 통곡이라도 할 기세였다. "어머니, 그냥 몸이 조금 상한 것뿐이에요. 금방 나을 거예 요." 이미 돌아오는 며칠 사이에 꽤 회복이 된 주유성이다. 걷는 자세가 조금 불안정했지만 그 외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당소소가 급히 주유성의 맥을 짚고 진찰을 했다. 그녀는 이 런 종류의 치료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당문의 직계다. 그녀의 의술은 결코 낮지 않다. 한참을 진찰하던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혈도는 괜찮구나. 몸은 쇠약해져 있지만 특별히 문제는 없어 보이고." "청허자 할아버지가 저한테 태청단을 먹였다고 들었어요." 당소소의 얼굴에 조금 놀라움이 깃들었다. "태청단? 그 귀한 것을? 네가 그분에게 큰 신세를 졌구나." 정확히 말하면 주유성도 청허자를 구해줬으니 서로의 은 혜는 상쇄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소소는 아들의 목숨을 청허자의 것보다 훨씬 높게 쳤다. 그러니 아들에게 귀한 약을 쓴 청허자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어서 들어가자. 그런데 모르는 얼굴이 있네?" 당소소의 질문에 빌붙어 따라왔던 화산의 백미화가 즉시 인사를 했다. "화산의 백미화가 사천제일미 당소소 여협을 뵙습니다. 지 난번 무림맹 조사단을 따라왔을 때는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 지 못했어요." 그녀는 지난번에 남궁서린이 당소소를 사천나찰이라고 불 렀다가 얼마나 무시당했는지 똑똑히 봤다. 그래서 잊지 않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호칭을 무림명 대신 불렀다. 당소소는 지난번 조사단에서 백미화처럼 젊은 사람들에게 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연히 기억에도 없다. 하지만 백미화가 사천제일미라고 말하자 마치 기억났다는 것처럼 웃 으며 말했다. "어머, 그때 왔던 그 예쁜 아가씨군. 그런데 성이 백씨면 화산의 매화검 백대원 대협과는 혹시 관계가 있니?" 백미화가 조신하게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제가 손녀예요." 당소소의 눈빛이 반짝였다. '옳지. 그 매운 칼을 쓰는 화산 장문인의 손녀구나. 이게 웬 떡이냐?' "그래, 우리 유성이를 데려다 주러 따라왔니?" 당소소의 목소리에는 친근감까지 배어 있었다. "예. 주 공자님께서 이번에 저를 포함한 일행의 목숨을 구 해주셨기에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 따라왔어요." 당소소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가문도 좋고, 성격 착해 보이는군. 어른 공경할 줄도 알 고. 그럼 너를 내 며느리 후보의 두 번째로 놓아주마. 어서 구 십팔 명을 더 찾아야 할 텐데.' "어서 들어오너라. 손님들이 오셨으니 밖에 세워둘 수는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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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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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기대됩니다.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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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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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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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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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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