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있는 자
성경 본문: 계 1:1-3
오늘은 만국 성서주일입니다. 성서주일을 통해서 성서의 중요성
과 바른이해 그리고,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하기 위해서 설정한 주일
입니다. 이 주일을 통해서 성경을 새롭게 인색하고 성경을 주신 하
나님께 감사하며 또한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고 또
한 듣고 그대로 실천히서 복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글이 사람의 말이요, 사람의 글이지만 성경은 하나
님의 말씀입니다. 딤후3: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
록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벧후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
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감동과 영감
은 같은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여어로는 inspiration이라고 하는
데 희랍원어로는 '데오스(하나님)'와 '퓨네오(숨쉰다)'의 합성어로
서 '하나님의 숨쉼'이라는 의미 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사
람들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한 책이 성경이며 동시에 하나
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또 성경은 1,400년동안에 시대와 환경이 다
른 각계 각층의 사람들 40여명이 기록한 책이지만 서로 통일되 사
상과 의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이 주도하신 하나
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2. 성경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참 생명의 길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예수 그
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인류를 구원한다는 구원의 말씀입니다. 구약
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약속한 내용입니다.
신약은 재림하시는 주님을 약속한 내용입니다. 그런고로 신구약은
하난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일찌기 듣고, 보고, 믿은 모
든 사람들이 변화를 받고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우는 썬다싱은 "나는 성경을 통해서 구주를
알았습니다. 성경은 구주를 나에게 소개하였습니다. 그가 묵시로
내 마음에 자기를 나타낼 때에 나는 회심하여 땅에 있으면서도 하
늘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복음의 목적은 다만 그리스도
를 우리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 성경은 인격을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
화시키며 생활을 변화시키는 신기한 책 입니다.
불량아였던 어거스틴이 성경말씀을 통해서 변화되어 성자가 되었
습니다. 벤허의 저자 류 웰레스는 무신론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없
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도서관을 뒤지고 많은 책을 보았습니
다. 그러나 그가 성경을 읽는 가운데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하
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무신론자를 변화시켜 벤하
라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게 했습니다. 또한 깡패 청년 클리 브랜드
를 변화시켜서 대통령을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죄인을 의인으로, 병든자를 건강한 자로, 슬픈 자가 위
로를 받고, 절망중에 있는 자가 소망을 얻게 됩니다.
2)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영생을 주는 책입니
다.
성도는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영의 양식으로 삼을 때 영혼이 살
찌고 심령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
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
로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생명이 약
동하기를 축원합니다.
3) 성경은 신앙생활의 표준이 되는 책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바로 믿는가, 성경대로 믿으면 바로 믿습
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까, 혹자는 양심을
따라서 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양심도 외적인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혹자는 기도해봐서 결정한다 하지만 이것도 잘 못하
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으로 할 수가 있습니다. 혹자는
유명한 신학자의 해석에 따른다고 하지만 그것도 잘못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는 말씀입니다. 이 성
경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함이 없고, 제일 오래된 책이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시대와 환경과 여건에
대해서 언제나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
다. 성경만을 우리를 인생의 표준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3. 성경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일찌기 받아 성경대로 산 개인이 다 복음을 받았습니다.
우리 나라만 해도 성경을 일찌기 본 사람들이 다 개화가 되었습니
다. 이승만 박사, 서재필 박사, 김환란 박사, 백낙준 박사, 김기식
박사, 조만식 박사 이런 분들이 성경을 일찌기 믿어서 개화기에 큰
등불 노릇을 한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민족적으로도 성경을 일찌
기 받은 나라는 다 복을 받았습니다. 영국이 그러한 나라였습니다.
원래 바이킹족이였는데 기사국이 되었습니다. 597년에 페허가 된
영국은 7왕국으로 분열되어 싸웠습니다. 귿대 로마의 국왕 그레고
리 1세가 40여명의 전도단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간다빌에서 생활
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간다빌 대 감독교회가 이때 세워졌던 것
입니다. 영국이 기독교를 수용해서 세계에 성경을 보급하는 대영성
서공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대한성서 공회가 있기 전에
는 영국에서 찍어 온 성경을 보았던 것을 여러분이 잘 압니다. 성
경이 보급되면 문명국이 됩니다.
미국은 퓨리탄들이 하나님을 성경대로 믿자는 결심으로 신앙생활
을 했습니다. 그 생활목표가 1. 하나님 제일주의 2. 말씀 중심의
생활 3. 철저한 신앙생활(주일.십일조.시간) 4. 감사생활 5. 협동
생활입니다. 그랬더니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대국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일찌기 믿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고로 성경대
로 믿고 성경대로 살기 바랍니다.
스위스는 영토가 작은 산악의 땅입니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제일
G.N.P가 많습니다. 칼빈에 의해 일찌기 개신교를 전파해서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도 마찬가지 입니다. 덴마크는 모래땅입
니다. 그런데 '그룬트비'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이웃
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땅을 사랑합시다.'하면서 성경대로 가르쳤
는데 이제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미개한 나라를 보십시요. 기독교가 못 들어간 나
라입니다. 불교, 흰두교, 모슬렘교의 나라등 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이고, 축복의 말씀입니다.
4. 성경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
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1) 읽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으십시오. 성경은 1189장인데 하루에 3장
주일은 5장 읽으면 1년에 성경을 한번 통독하게 됩니다. 건전한 신
자요 뿌리 깊은 신자는 성경을 읽는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십시요, 읽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2) 성경을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웨슬레가 1738년 5월 24일 영국 런던 올더스게일의 작은 거리에
서 이름없는 주의 종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마음이 뜨거워졌습니
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 그대
로를 하나님의 말씀, 케리그마라고 하고 제가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이 말씀은 레마의 말씀입니다. 생명이 있는 이 말씀이 여러분의 심
령에 부딪칠 때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10:14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
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
니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라고 말했습니다.
눅10:40에 마리아와 마르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마리아
는 예수님의 턱밑에 바짝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르다는 준
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
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5:1에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의 양식을 삼으시
기 바랍니다.
행10:44절에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가 가서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을 듣는 순간에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성경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입체낭독 형식의 테
잎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들어서 영의 양식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3)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성경은 아무리 읽고 들어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법입니다.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창26장에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축복을 받은 것은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신28:1-14에 많은
축복이 있습니다.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성읍에
서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성읍에서
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자녀 소생이 복을 받고, 우양
육축이 복을 받고, 토지 소산이 복을 받고,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
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너에게 명
하는 그 말씀을(14절) 지켜 행하면(1절), 순종하면(2절)이라고 했
습니다. 약1:25절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
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행함으로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가지고 다녀도 읽고 붉은 줄을 쳐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
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을 받습
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성령을 간절히 구하면 다 받습니
다. 그러나 축복은 우리가 지켜 행할 때에 임합니다. 모든 사람은
성경을 사랑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성경이 가르친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성경 본문: 계 15:1-8
주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들의 각인의 눈이 그를 보고 또 구름타고 다시 오
실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누구나 다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믿는 성도들에게는
위로 감사,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진노,후회 심판
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요약한다면 주님의 최후의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사탄과의 싸움, 세상과 교회와의 싸움, 여자의 씨와
용과의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는 주님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일곱 재앙은 환란과 박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고, 일
곱 나팔은 경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경거하
고 있는 말씀임과 동시에 회개의 촉구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
다. 일곱 재앙은 준비하는 것으로 일곱 나팔은 회개와 기도의 기회를 주는
경고의 소리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곱 재앙, 일굽 나팔 다음에 일곱 대접이 나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
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을 의미하고 있습
니다. 진노의 반대되는 말은 복입니다. 세속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에게
는 경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공의이자 확신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는데 이 언약을 파괴할 때 임합니다. 우
리는 언약의 백성으로 이 언약의 깨어진다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는 주된 요인은 바로 우상을 숭
배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영적인 관계를 깨뜨리는 직접적인 결과를 가
져옵니다. 또 이방 나라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힐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
합니다.
신약에서는 로마서 1:18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납니다. 경건
치 않은 것과 불의를 저지를 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나 불경건은 하나님과 나라는 종적인 관계를 의미하고 있고, 하나
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것과 불의는 이웃과 관련된 횡적인 관계를 의미하고
있는 말입니다. 종적인 관계와 횡적인 관계가 깨질 때 하나님의 진노 즉 심
판을 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2절부터 4절까지의 내용은 어린양의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어떠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알곡으로 추수함
을 받은 성도가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기도
는 없어지지만 찬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울려 퍼진다는 사실을 기억해
야 합니다. 노래의 기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구원, 하나님의 공의, 예배
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
장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말아야 합니다. 정
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어
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르는 자가 되여야 합니다.흠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고 의의 세마포 옷을 입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 구원 받았네
성경 본문: 계 18:4-20
유수같이 흐르는 세월, 어느새 94년도 4개월만을 남겨 놓았습니다. 참 빠
르죠 이렇게 우리의 세상살이는 좋은일 하기에도 빠듯하게 흘러가고 있습니
다. 여러분의 남은 생을, 어디 어느곳에 투자를 많이 하시겠습니까?
여기에 세 부류의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사람들은, [나 구원 받았으니, 너도 구원 받아라]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너무나 감사하며 그 구원의 영광을 혼자만 갖지 않
습니다. 언제나 삶에 충만한 은총이 흐르고 낙심이 되지 않으며, 즐거운 찬
송만이 흐르는 사람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감사를, 행복의 삶을 혼자만 움켜쥐지 않고 타인에게도 하나님을 전합니다.
타인과 더불어 주안에서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바로 여러분이 가져야 할 모
습입니다.
두번째 사람들은 [나만 구원 받았네, 너는 구원 받지 말아라]
기쁨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신앙생활은 하지만, 자기 자신만을 알기에 급급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
의 배만 가득차면 그만인 사람, 그래서 언제나 긴장하고 눈치를 보며 삽니
다. 행여나 내것이 축날까, 없어질까 지킵니다. 나눠줄 줄 모르는 사람들입
니다. 신앙생활 하는데도 자신만 구원받으면 된다고 하는 얌체신앙을 소유
한 사람들이지요 이들이 결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
다.
세번째 사람들은. [나 지옥 가네,너도 가자]
신앙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안락과 불의에 쑥 빠
져들어 헤어날 줄 모릅니다. 세상적인 기쁨은 잠시라는 것을 결국엔 알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 마저도 꼬득입니다. 불의
로 못 끌어서 안달입니다. 자신의 지옥행을 혼자가려 하지 않고 꼭 동반해
서 가려는 사람, 혹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예수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호화 찬란하게 생활을 했던 로마의 네로황제를 기억하시는지요,사냥과 낚
시때에는 천여 명의 군사들이 뒤를 따랐고, 낚시에 사용되었던 바늘은 금낚
시 바늘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적 부귀와 영광을 누리며 살았지만 네로는
행복하지도 만족하지도 않았습니다. 끝없는 세상적 욕망과 불의속에 네로는
서른 두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못했떤 세상속의 황
제였지요.
같은 시대의 인물 사도바울을 소개합니다. 예수를 알기전 세상 집착에 살
았던 그였지만, 예수를 안 뒤에는 예수를 전하는데 전념하며 살았습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바울의 용기와 확신에 찬 믿음의 자세를 제지할 수 없었
습니다.
세상속의 순간적인 안락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세상적인 달콤함은 달려
옵니다.
사랑하는 신우회 직장인 여러분,우리는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으로 살아야
겠습니까? 사도바울의 그 믿음을 우리의 마음 속에 새겨 넣읍시다. 그래서
옆 동료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확실한 지옥의 존재
성경 본문: 계 19:19-21
디 엘 무디는 말하기를 '만일 지옥이 없다면 성경책은 다 불태워 버려야
하고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예배당을 건축할 필요도 없고, 있던 예배당도
오락장소로 개조해 써야한다"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최후에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예수믿을 필요도 없고, 예배당 지
을 필요도 없고, 전도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탄이 불못에 들어갈 때가 얼마 못된 줄 알고, 사람들의
마음에서 궁극적인 목적인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습니
다. 그래서 많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운 목사들이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고,
나아가서 십자가의 구속이나 부활도 믿지 않고 또 못 믿게 합니다. 그리하
여 구라파나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때야말로 그 어느 때 보다도 죄의 심판과 지옥의 형벌을 설교해야 될 때
라고 봅니다.
오늘날 많은 지식인들이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
원받는다고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마치 선물이나 갖다주며 웃고있는 산
타크로스 할아버지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도 아니며,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
는 분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
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세상에는 마귀의 자식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
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
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또 그들은 결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자식들, 예
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귀들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
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지옥을 만들어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
들을 지옥에 집어 넣어 고통을 당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묻는 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의 자녀들을 지옥에 집어 넣지도 않으며, 또 지옥은 애초
에 인간을 반역하고 인간을 범죄케 하고 괴롭히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
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
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이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1. 지옥의 확실성
사람들이 지옥의 사실을 부인할 수는 있어도,지옥의 실재를 없애 버릴 수
는 없는 것입니다. 불은 믿든지 안믿든지 태웁니다. 독약을 믿든지 안 믿든
지 죽입니다.지구는 믿든지 안 믿든지 둥글고 회전하는 법입니다. 이와 같
이 지옥은 실재합니다.
그리스도를 거절하면 믿든지 안 믿든지 그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1)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질서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국법을
어기면 형무소에 가거나 사형집행도 시행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법과 질서를 위해 형무소도 만들고 사형집행도 행
하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봄에 파종하고 여름에 거름주고, 김매며 구슬땀을
흘려가며 고생하는 것은, 가을 추수기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추수기가 되
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서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서
불태우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최후에 모든 인간을 심판하여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 놓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
이 있으리라"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 성경말씀이 지옥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사람은 크리스챤도 아니고, 대화의
대상도 되지 않습니다. 그가 집사이든 장로이든 목사나 신학박사이든, 거듭
난 사람도 아니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신앙의 대화를 나눌 사람
이 못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한 번만 기록되었어도 반드시 이루어졌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
라"고 예수님 오시기 전 700여년 전에 예언했는데,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
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습니다.
하물며 성경은 지옥에 대해서 수백번 말씀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
루어 지지 않겠습니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천국에 대한 말씀보다 지옥에
대한 말씀이 더 많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고로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대해서 설교하고 그 곳에 가지 않도록 듣든지 아니 듣든
지 경고해 주고,지옥으로부터 영혼들을 구원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되겠습니
다.
3)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의 불은 영원히 꺼지지도 않으며 벌레 한 마리도 죽지 않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마 5:22,계 20:10,14,15,21:8,막 9:48)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
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간곡히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43-48절에 있는 예수님 말씀에 지옥이란 말씀이 몇 번 나오
나 보십시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
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
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쩔뚝발이로 영
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 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
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
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
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간
곡한 말씀입니까?
누가복음 16장에는 거지 나사로와 한 부자에 관한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
씀은 결코 비유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는 "비유로 가
라시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 말씀에 역사적인 인물 아브라함이 나오고
나사로 한 개인의 이름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천상천하에 못보시는 것이 없으신 예수님께서 지
옥에 관한 비참한 영혼을 실례를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사실이기에 이렇게 경고하셨겠습니까?
지옥은 확실히 존재합니다.
4) 무신론자들의 최후고백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무신론자들이 하나님
이 없다고 하나님을 한껏 조롱했지만, 죽는 순간에 육신의 눈이 못 보게 되
면서 영의 눈으로 지옥을 바라보며 공포에 싸여 부르짖으며 지옥의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a) 볼테르(Voltaire)의 고백
불란서의 무신론 철학자, 계몽주의 철학자인 볼테르는 "기독교가 생겨나기
까지 수백년이 걸렸찌만 이제 불란서의 한 사람이 50년안에 기독교를 다 파
괴해 없애 버리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장담했고, 또 "100년 안에 성경은 다
없어지고 만다"고 큰 소리 쳤습니다.
이 사람에게 죽음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아!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
을 당하였구나, 의사여, 나를 6개월만 더 살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보
물의 절반을 주겠소"라고 애원할 때,의사는 "6주간도 못삽니다"라고 대답했
습니다. 그러나 극도로 고민하며 의사를 못살게 들볶다가 마지막에는 "나는
멸망으로 들어갔다!"고 하며 숨을 거두며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기독교는 파괴되지도 않았고, 성경책은 여전히 베스트
셀러로 전 세계에 반포되고 있습니다.
b) 프랜시스 뉴톤(Francis Newton).
유명한 무신론자 프랜시스 뉴톤은 임종하면서 "나는 영원히 정죄받았구나!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되었으니 누가 나를 구원하리요? 아! 지옥과 저주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나는 받게 되었노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성경 본문: 계 21:1-4, 22:1-5
지난 주일 총력전도주일에는 "지옥은 어떤 곳인가?" 에 대해 설교하
는 가운데 1부부터 6부까지 입추의 여지없이 모인 많은 사람들이 큰
은헤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천국은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생각하는 중에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지난주일 말씀과
오늘의 말슴 두가지가 기독교 진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말씀입니
다. 왜냐하면 한마디로 예수 믿고 죄사함 받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것이요.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
는 지옥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의 의미를 상실
한 기독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사란 타이틀
(Title) 을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하고 기독교 간판을 가지고 딴짓을 하
는 것입니다.
1. 천국은 존재하는가?
물론 확실한 천국은 있습니다.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iyan)이란 사람이 에집트를 여행하다가 3천년 된 미이라
속에서 말라빠진 밀(Wheat)을 발견하고 한 웅큼 쥐어다가 집에서 심었
습니다. 그랬더니 약 한달이 지나서 싹이 나고 잎이 나서 그 이듬해
다른 밀 종자와 같이 수확을 했습니다. 그후부터 브라이언씨는 방방곡
곡에 다니면서 "3,000년 묵은 밀알갱이에서 새생명을 솟아 오르게 하
시는 하나님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죽음에서 부활시킬 수 없겠느냐?
"고 하면서 전도하며 다녔습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가 있고 영생하는 존재로서 내세
의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미래를 위해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말로는 다 표현 할 수 없는 천국을 예비하시고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도 예비해 두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이하에 인간의 가장 큰 불안과 고민을 해결하시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
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려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마디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이 이렇게 아름답고 광대하거늘 주님께 승
천하신 후 2,000년동안 만드신 천국의 맨션(처소)이 얼마나 아름답습
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
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
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19에 "만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
이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옳
습니다. 천국이 없다면 예수믿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고 천국이
있으니 세상에서는 고생을 하고 죽임을 당해도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
다.
또 예수 안믿다가 지옥 갈 사람은 아무리 잘 사는 것 같아도 제일 불
쌍한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확신이 없으니까 천국, 지옥을 말하면 현
실도피주의자나 시대에 뒤떨어진 삶으로 몰아부치고 그대신 인권운동
이나 반정부 운동을 신앙생활의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장
큰 교훈과 핵심은 죄로 멸망할 인간을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하고 천국
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
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3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날이 가까
워올때 하신 말씀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
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
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한절만 기록되도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데 천국에 대한 말씀은 수백번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반드시 있습니
다.
2.천국은 어떤 곳인가?
시바 여왕이 솔로몬(Solomon)왕을 찾아와 보고 말하기를 "사람들이
당신의 나라와 지혜에 대해서 말할 때 믿지 아니했더니 와서 보니 그
들의 말은 절반도 못됩니다."고 한 것처럼 천국의 아름답고 화려함은
인간의 말로는 백만불의 일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눈먼 소년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산천 초목과 아름다운 꽃들과
해와 달과 별을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주곤 했는데 다행히 수술을 받
고 눈을 떠보고 하는 말이 "엄마 왜 저렇게 아름다운 것을 말해주지
않았어?" 하더랍니다. 천국의 아름다움과 좋은 점을 다 설명한다면 거
기에 매혹돼서 이 세상을 너무 무가치하게 여기고 누구나 빨리 죽고만
싶어할 것입니다.
1) 천국에 없는 것들(소극적인 면)
(1) 밤이 없습니다.
밤은 어두운 것으로 흑암은 공포의 상징입니다. 미국의 L.A나 뉴욕
(New York),시카고(Chicago)등의 대도시는 해가 떨어지면 혼자 나다니
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범죄가 밤에 저질러집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밤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5에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한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화로운 빛이 구석 구석마다
비취기 때문에 전깃불이나 등불이 필요 없습니다.
(2) 질병과 고통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무서운 질병과 고통이 많습니다. 의슬로도 해결 못하는 질
병과 고통이 많습니다. 암병, AIDS 병 등등, 온갖 질병과 고통이 많습
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암병도 문둥병도 고혈압도 신경통도 없습니다.
(3) 죽음과 슬픔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죽음과 슬픔이 가득합니다. 암병으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지진으로 죽고 죽음이 많습니다. 따라서 슬픔도 많습니다. 거리에서
만나면 반갑게 웃어주며 인사하지만 웃음뒤에는 상처받은 마음의 슬픔
이 있습니다. 어려서 제 여동생이 죽어 슬퍼도 해보았고 제 부친이 병
고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셔서 슬퍼도 해보았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교
인이 세상을 떠나 슬퍼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죽음이 없고
슬픔이 없습니다. 장의사도 없고 공동묘지도 없고 병원도 없습니다.
(3) 염려와 근심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근심과 걱정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한 달만 근심거리가 없
어도 이상하게 생각할 만큼 근심과 걱정이 많습니다. 목사는 근심이
없는 것 같지만 교인들이 마귀의 시험거리 노릇할때 또 신앙생활을 바
로 하지 못할때 밤잠도 잊고 밥맛도 잃고 근심할때가 많습니다.
어떤 가정은 집도 크고 돈도 많고 온 가족이 건강하여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탁 털어놓고 말하는 것을 보면 역시 걱정거리가 있는 것을
봅니다."걱정과 근심이 어데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하는
찬송가의 가사와 같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에는 우리를 괴롭히는
근심과 염려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4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4) 유혹과 죄가 없습니다.
사탄이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고 범죄케하여 죄가 세상
에 들어 왔습니다. 아무리 문명하고 잘사는 나라도 죄가 없고 유혹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날때부터 죄악가운데 태어나서
죄악중에 방황한다고 했습니다. 죄악의 씨는 갓난 아기속에도 있어서
독있는 꽃처럼 점점 죄악이 함께 자랍니다. 모든 사람은 죄의 유혹을
순간 순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유혹을 받았으나 유혹에
넘어간 일은 없습니다.
세상과 육신과 마귀는 항상 우리를 대적하고 유혹합니다. 죄의 쾌락
을 즐기도록 유혹하지만 그후에는 엄청난 죄의 댓가를 지불하게 만듭
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더 이상 죄의 유혹이나 범죄함이 없습니다. 모
든 마귀는 불못에 던져지고 하나님의 자녀는 완전히 자유롭게 됩니다.
(5) 바다가 없습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왜 천국에 바다가 없을까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다가 없는 그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 바다가 없다는 것은 폭풍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받을때 밧모섬에 귀양을 가있었는데 섬을 둘러싼 바다가 무서울 정도
로 폭풍에 파도가 부서지며 천둥같은 무서운 소리를 냈을 것이며 으
르렁대는 바람소리 또한 무섭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열리
며 천국을 보았을때 무서운 바다가 없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던 것입니다.
* 바다는 고달프게 합니다.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고달프고
피곤하게 합니다. 세상에는 참 평안과 안식이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
에서 나간 비둘기가 쉴곳을 찾지 못할 것 같이 세상에는 참 평안과 참
안식이란 없습니다.
* 바다는 이별을 의미합니다. 옛날 비행기가 없을때 바다는 이별의
장소입니다. 사랑하는 식구를 멀리 이별할때 장소입니다. 사랑하는 식
구를 멀리 이별할때 어떻겠습니까? 또 사랑하는 식구가 죽을때 그 이
별의 슬픔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천국에는 그런 이별이 없는 곳입
니다.
(6) 천국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이아가라(NIAGARA)폭포도 해마다 조금씩 침식해 들어가며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 애굽도 바벧론 제국도 로마의 대도시들도 폐허만
남고 다 없어졌습니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언젠가
는 뉴욕도 모스크바도 동경도, 서울도 다 변하여 없어질때가 옵니다.
그러나 천국은 영원히 변하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습니다.
2) 천국에 있는 것들(적극적인 면)
천국에 있는 것들을 다 열겨할 수도 없고 인간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몇가지 열거한다면,
(1) 아름다운 도성이 있습니다.
이세상의 도시는 악함과 해함과 위험이 있지만 천국의 새 예루살렘에
서는 해함도 악함도 위험도 없습니다. 끔직한 교통사고도 없고 마약사
범도 잔인한 공산당이나 강도의 위험도 없는 아름다운 도성입니다. 그
곳에는 술집도 형무소도 없는 아름다운 성입니다. 거리는 순금으로 포
장되어 있으며 12진주문이 있고 아름다운 고급저택(mansion)이 있어서
모두 거룩하고 행복합니다. 신부가 신랑을 위해 곱게 단장한 것 같이
아름다운 도성입니다.
(2)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천국에는 슬픔과 근심이 없이 기쁨과 행복만이 있는 곳입니다. 아름
다운 노래가 들려오고 생명수 강이 흐르고 만가지 아름다운 꽃과 열매
가 시절을 좇아 피고 맺습니다. 굶주림과 헐벗음이 없고 질투와 증오
와 악독이 없습니다. 오직 기쁨과 행복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제일
즐거웠던 일에 천배를 더 한다해도 천국의 기쁨을 다 표현할 길이 없
습니다.
(3) 아름다운 집이 있습니다
내집, 내 가정이 제일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무리 좋은 나라를 다 혀
행해도 아무리 좋은 호텔에 묵어봐도 제일 좋은 곳은 내 집, 내 가정
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인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는 완전히 안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완전히 안식
할 수 있는 집이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거할 처
소"는 맨숀 (mansion)인데 이 세상의 100평 맨션 아파트 보다 천배 만
배 아름다운 곳입니다. 황금보석으로 아름답게 꾸민 집입니다.
(4) 천국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천국에는 순금의 거리가 있고 12진주문이 있고 아름다운 집이 있고
찬란한 면류관이 있는 등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안
계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국에서 가장 귀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게 됩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
에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로 함께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빌리 선디(Billy sunday)목사님은 말하기를
"나는 예수님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그분을 만나 보면 나는 그의
발앞에 엎드려 나를 구원해 주시고 사용해 주심에 대해 감사드리겠나
이다" 라고 했습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영원히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
하며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또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인 페퍼 마
틴(Pepper Martin) 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 가장 큰 야망이 무엇
이냐고 기자가 물으니까 '나의 가장 큰 야망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다"(My highest ambition is to get to heaven)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나 훌륭한 신앙입니까?
3. 천국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한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
지 못하리라"(요14:6) 고 했습니다.
우리의 선행이 많다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세례받고 집사됐다고 가
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이름만 등록됐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됩니다.
요한계시록 7장 14절에 보면 사도 요한이 천국에 흰옷입은 수많은 무
리들을 보고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물었더니 '이는 큰 환란에서 나
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했습
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씻음 받은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죄인도 예수믿고 죄사함 받으면 다 들어갈 수가 있지
만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지않는 사람은 천국
에 못들어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때에 강도나 창녀, 도둑놈이라
도 회개하면 구원해 달라고 한때 거절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호텔에 들어가려면 미리 예약해야 들어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쫓겨나
기 일쑤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천국에 예약이 되고 하늘나라 생명책
에 기록이 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들어갑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 중에 한 사람도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는 분
이 없이 다 천국에 들어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금 믿으면 여
러분의 구세주가 되시지만 안믿으면 죄를 심판하는 심판주가 되십니
다. 할렐루야.
에배소 교회의 칭찬
성경 본문: 계 2:1-7
현대인들은 날이 갈 수록자신의 건강에 깊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몸
에 조금만 이상증세가 있어도 혹시 암이 아닐까 하여 병원을 찾을 뿐 아니
라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정기점검을 받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영양
식품의 판매가 증가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육체를 건강하게 보존하는 것, 마땅한 일이요 아
주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육신의 건강뿐 아니라 세분화되어가고 기계화되
어가는 현대 조직 사회에서 사람들은 인격의 건강에도 깊은 관심을 쏟습니
다. 자칫 잘못하여 인간의 마음이 도시처럼 기계화 되어버릴까 두려워 많은
사람이 여가를 이용해서 레저 활동이나 취미활동을 영위하려고 합니다. 레
저 산업이 발달하는 이유, 취미생활을 위한 학원이 많이 생겨나는 까닭,
각종 전문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다 이러한 연유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육신
의 건강과 정신적 건강에 관심을 갖는 것만큼 과연 우리가 영적건강에도
관신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이것을 점검해 보자는 것입니다. 한 세기도
못사는 인간의 육신이 그렇게 중요하거늘 영원을 사는 영혼의 건강또한 얼
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육체보다도 정신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영적
건강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영적 건강에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인
정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들 드린
다고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교회를 수십년 다녔다고
해서 다 영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예배처소를 옮기는 문제때
문에 심이 피곤하고 헤이해지기 쉬운 이때에 우리 신앙을 점검해 보는 것
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또한 창립 2주년을 맞이하고 3주년을 향해 독수
리가 날개치는 것과 같은 새역사와 힘을 얻기를 원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교회의 영적건강상태를 점검해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7교회중 오늘은 에배소 교회를 택해서 우리교회와 우리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고자합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7교회는 모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교회들입니다. 또한
7교회에 나타났던 사건들 역시 역사적인 사실들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교회시대에 있었던 모든 교회의 형태를 그림자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모
든 교회들도 7교회와 같은 단점과 장점을 다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리고 7교회에 주신 말씀을 한교회 한교회 분류해보게 되면 7가지 내용이
있는데 먼저 주님은 그 교회에 상태에 따라 각기 나타나시는 모습이 다릅니
다. 어두운 교회는 빛으로 나타나시고 병든 교회는 의사의 모습으로 나타
나십니다. 그리고는 칭찬과 책망과 권면과 경고와 약속과 끝으로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는 말씀과 함께 종결지으십니다. 이 짧은 시간에 7가
지를 다 말씀드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두시간에 걸쳐 칭찬과 책망에 대해서
만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에배소 교회는 지금의 터키 서부 항구지역입니다. 1세기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가장 중심되는 도시로서 육로와 해로의 교통요지였습니다. 그래
서 상업이 발달했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죄악이 관영한 도
시였습니다. 특별히 아테네(다이아나) 여신을 섬기는 큰 신전이 있었기 때문
에 우상을 섬기는 대표적 도시였습니다. 또한 로마와 깊이 관련된 도시기에
황제숭배도 강요된 도시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세속도시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던 대표적인 도시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 3년동안 복음을 증거하며 교회를 세웠고 후임으로 디모데와 사도요
한이 목회했던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에배소 교회는 창립한
지 약 40년이 지난 이후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이교회에 7별을 붙
잡고 계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야 인간들아,
너희들 보기에 이 교회가 이런 저런 복잡한 문제로 한심스럽게 보일런지
는 모르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그래도 이 교회의 주인은 나다. 그러므로 이
교회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라" 이러한 격려와 위로를 하시기 위해 7촛
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6가지를 칭찬하셨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에배소 교회가 받은 칭찬을 더듬으면서 오늘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그물교회가 하나님께 과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교회인가? 나는 예수
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그물교회 성도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첫번째 칭찬은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2)
이 말씀의 의미는 "내가 네 행위를 보니 과연 칭찬할만 하구나"라는 뜻일
겁니다. 여기서 행위란 믿음이 생활화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믿는대로 행
함이 뒤따르는 너희들의 모습이 과연 칭찬할만 하다는 뜻입니다. 믿음 다르
고 생활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과 생활이 같다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의 믿음은 생활속에서 삶의 행위로 증명되어져야만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인격으로 설명되어져야만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얻는다고 해서 우
리는 너무나 쉽게 생각합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는다고 해서 너무
십게 생각합니다. 회개하면 다 용서한다니까 너무 가볍게 생가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는 그것이 생활로 증명되어져야 하며
십자가의 은혜는 인격으로 증명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님은
생명이 없는 몸은 죽은 몸이듯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날카롭
게 지적했던 것입니다. 이시간 주님이 이자리에 오셔서 우리를 감찰하실 때
우리나름대로 자랑할 것이 있겠죠. 성경지식이 있노라고, 신학지식이 있노라
고, 교회 직분을 가졌노라고, 신앙연륜이 얼마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 "그러나 네 믿음의 행함이 얼마뇨?"라고 물으실 때 머리를 들고 담대
히 말할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안믿는자와 구별
된 삶을 살지 못했던 우리라면 주님께 한마디의 칭찬도 기대할 수 없을 것
입니다. 여기 에배소 교회에 말씀하신 "네 행위를 안다"는 말씀은 믿음의
행위됨을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2."네 수고를 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믿음을 지키면서 그 믿음이 생활화하기 위해 했던 그 수고를
내가 안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생활화되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
다. 반드시 수고가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를 말하기를 이리떼
가운데 양과 같이 사는 것이라고, 울부짖는 사단의 소굴에 사는 것이라고,
어둠속에 빛과 같이, 부패된 곳에 소금과 같이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
라서 성도의 진정한 삶속에는 핍박과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주님께서
는 친히 말씀하시길 영생으로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만
큼 어려움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역사 2000년을 살펴보아도 오늘날의
놀라운 복음확장은 먼저 믿은 믿음의 선진들이 고생과 수고를 기꺼이 감당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 100년사도 먼저 믿은 선진들의 피와 땀의 수
고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가? 주님위해, 믿음지키기 위해, 주님 사랑하기
위해, 주님 섬기기에, 교회 부흥위해 과연 수고했습니까? 주님을 향한 신앙
에는 반드시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맹점은 수고없
이 편하게 예수믿으려는데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라면, 교회
를 위해서라면 수고를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에배소 교회와 같
이 칭찬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믿음을 위한 수고가 하루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고에는 반드
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에배소 교회에 이것이 있었고 주님은이것을 칭찬하
신 것입니다. 얼마나 참기 어려운 긴 세월이었습니까? 참고 참고 또참고
여가까지 왔으니 참으로 갸륵하구나. 이것을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언
젠가 명절때 TV에서 방영한 춘향전을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
니다.춘향이가 중상과 모략과 억울함과 옥에 갇히다가 마침내 변사또의 생
일날 죽는 자리에 까지 오게 됩니다. 그러나 춘향이는 역시 변함이 없습니
다. 지키는 절개, 참는 수고, 포기하지 않는 인내...비록 그 모습이 처절했지
만 얼마나 아름다왔는지 모릅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그토록 사모하던 이
도령이 암행어사로 출두합니다. 이도령이 모든 것을 밝히고 복수해 줍니다.
이제 고난을 끝났습니다. 위협도 끝났습니다. 죽음의 절망도 끝났습니다.
이제 춘향이에게 남은 것은 이 도령의 사랑과 절개지킨 영광뿐입니다. 저
는 춘향이가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위해 저렇게 절개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
니다. 주님위한 여러분의 절개, 과연 춘향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 위한
나의 수고, 저렇게 인내할 수 있겠습니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 위해 얼마나 절개를 지켰으
며, 얼마나 수고했으며 얼마나 인내해 왔습니까? 큰 교회 목사라해서 칭찬
받는 것 아니고, 사람많이 모았다고 해서 칭찬받는 것 아니고, 직분 가졌
다고 칭찬받는 것 아닙니다. 믿음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으며 그 수
고를 얼마나 인내했는가?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에배소 교회는 이것을
갖추었기에 주님으로 부터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4. 악을 용납하지 않은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양면이 있었는데 사회적인 악이 자꾸 교회안에 침투해 들
어오는 것이고 또한 내부적인 악이 자꾸 교회를 좀먹어가고 있었습니다. 사
회적인 악은 안일주의,향락주의,황금만능주의,과학만능주의,쾌락주의...등의
것들로서 자꾸 교회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니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 선이
희미해집니다. 신자와 불신자 사이가 희미해 집니다. 죄와 선 사이가 희미해
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것들을 용서하지 않는 날카로움이 필요했습니
다. 에배소 교회는 바로 이 선을 정확하게 그었던 것입니다. 또한 비 성경
적이고 비신앙적이고 비 복음적이며 비 신학적인 사이비적 요소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것을 용납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니골라당은
노스틱 사상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말해 육체의 죄는 죄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초대교회에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배소 교회
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로보고 바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
것을 용납하게 될 때 진리고 복음이고 뭐고 다 잠식당하고 맙니다. 선을 분
명히 긋지 않으면 교회인지 세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악을 반드
시 제거해야 합니다.
5. 거짓 사도와 거짓 진리를 밝혀냈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사회적인 악은 물론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만 영원문제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진리문제는 영이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서는 그 무엇보다도 날카로와야 합니다. 바울의 경우를 보면 방법적인 면에
서는 모든 것을 다 양보했지만(율법문제,우상제물 문제,이방인과의 문제...)복
음문제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늘의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시대는 과거와
다릅니다. 그렇기에 신앙의 선을 긋는데 그 어느때 보다 날카로와야 합니
다. 어느것이 진리이고 어느것이 비진리인지, 어느것이 성경적이고 어느 것
이 비 성경적인지 날카롭게 구분해야 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우리는 진리
의 지도와 복음의 나침판을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지옥이라는 골짜기에 빠져들게 되버리고 말기 대문입니다.
6. 주님이 미워하시는 니골라당을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니골라당은 이미 말씀드렸듯이 교회내에 잘못된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주님
이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안에 있는 합리주의,인본주의,쾌락주
의,세속주의...등입니다. 주님이 미워하셨던 이것을 미워할 때 주님의 칭찬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옹고집 같아도 좋습니다. 배타적인 것 같아도 좋습니다.
편협적이라고 비난해도 좋습니다. 이길이 주님 원하시는 길이기에, 이길을
안갈 수 없습니다. 이 길 가야만 주님게 칭찬받을 수 있고 마지막 오시는
주님 맞이할 때 칭찬받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아멘-
에배소 교회의 책망
성경 본문: 계 2:1-7
우리가 이 말씀을 읽고 먼저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이 땅위에 있는 교회
나 교역자나 신자는 하나님같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일면 칭찬받
을 만한 조건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면으로 책망받을 것이 있는 것이
지상의 교회요 교역자요 신자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모세같
은 신앙위인들도 그렇습니다. 흠모할 만한 부러운 면이 있는가 하면 우리에
게 경종을 주는 잘못된 면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 땅에 살면서
넘어지고 일어서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하는 반복을 통해서 성숙해 나가는
것입니다. 잘못했다는 것, 물론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
다. 잘못했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
는데도 거절하면 죽게 됩니다. 어느 사람이 병에 걸렸다고 합시다. 그런데
의사가 약을 처방해 주었는데도 약을 먹지 않고 죽었다면 그 사람은 병때문
에 죽은 것이 아니라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 죽은 겁니다. 회개하지 않
는 자가 바로 이러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잘못하며 삽니다. 그러나 하
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를 잘 받아들이면 살 수 있습니다. 에배소 교회
는 몇가지 칭찬을 받았는가 하면 또한 책망도 받았습니다. 오늘은 책망에
대해서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내가 안다."고 여러번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돌부처가 아닙니다. 보는 눈이 있고,듣는 귀가 있어 우리 한가운데
서 계셔서 우리의 범사를 다 아시고 보시고 듣고 계십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두가지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행동이
절제가 됩니다. 주님이 보고 듣고 알고 계신데 어떻게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보고 듣고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여전히 떳떳하게(?)죄를 범합니다. 둘째로 나를
알아주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사니 행복하고 기쁩니다. 어려운일을 당했을
때도 주님 내 형편 아시니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애매한 누명을 써도
주님 아시니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만나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이 알아주시니 기쁘고 즐겁습니다. 성도 여러분, 에배
소 교회에게 안다고 말씀하신 주님을 모시고 살기 바랍니다. 칭찬할 것도
아시고 책망할 것도 아시고 누가 잘한 것도 아시고 누가 잘못한 것도 아십
니다. 에배소 교회의 행위(수고, 인내, 악을 용납지 아니함)를 아신 주님이
바로 이 가운데 서 계십니다.
2. 또한 예수님은 책망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성경의 신앙위인들을 보면 비록 잘못했더라도 책망받았을 때 주저하지 아니
하고 회개함으로 버림받지 아니하고 계속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
리를 칭찬하시지만 때로는 책망도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책망의
이유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데 있지 않고 흥하게 하려는데 있다는 점입니
다.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칭찬하는 말씀도 들으려니와 책망의 말씀도 들
어야 합니다.
3. 그러면 책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와 용서는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도 죄를 반복해서 지으니까 "벼룩도 낮짝이 있지 더 이상은
회개 못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핏 보아서 꽤 양심있는 사
람같습니다만 실은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과연 하나님께 용서의 한
계가 있겠습니까? 일흔번을 일곱번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이십니다.
이는 490번만 용서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무제한적인 용서를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천만번 죄를 지어도 주님앞에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무제한의 용서
를 가지고 계신 주님께 용서 못받을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할것 없
는 천사보다 회개할 것 있는 우리를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회
개하는 영혼을 가장 긍휼하신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그럼 용서하시되 어디
까지 용서하십니까? 1/100, 1/10, 아니면 1/2인가요? 하나님의 용서는 100%
전부입니다. 뿐만아니라 사1:18 말씀을 보니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을 지라
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일순간의 용서가
아니요 근본적인 용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속
성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개합니가? 5절에 보니 어디서 떨어졌나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생각하고 현재
를 생각하고 그래서 비교하여 반성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
는데 내가 왜 이모양이 되었나!" "전에는 감격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감격
이 사라졌나!" "전에는 경건의 모양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없나!" 하고 생
각하는 것이 회개의 출발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원인이 발견되어집니다.
"아하. 내가 돈을 사랑하다가 이렇게 되었구나. 세상을 사랑하다가, 자식을
사랑하다가, 남편을 사랑하다가 이렇게 되었구나,"발견하게 됩니다. 발견하
면 이제 전처럼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탕자가 돼지 우리안에서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이라는 원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어나 아버지 집으로 가니
전처럼 다시 아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4. 그러면 무엇을 회개하라고 하셨습니까?
우리야 회개할 것 많이 있지만 에배소 교회는 처음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회
개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치명적
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모든 계명중에 첫째되는 것이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사랑은 모든 신앙
생활의 동기가 되는 것이요 사랑은 모든 신앙 생활의 완성이 된다는 말입니
다. 고전 13장의 말씀을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사랑의 중요성을 잘 아실 것
입니다. 사랑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랑에서부터 출발되어지지 아니하면
그 어떤 신앙생활도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사랑은 주님을 사랑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그 어떤 신앙생활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에배소 교회가 칭찬받았던 앞의 몇가지 일은
사랑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사랑이 없이
도 얼마든지 습관적으로 의무감으로 책임감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러한 신앙생활은 인정받는 신앙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동기에서 신앙생활하는 이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자기 만족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교회에 가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견뎌 합니다. 그래서 주일을 고박꼬박 지킵니다. 십일조를 안
하면 꼭 무슨일이 터질것만 같습니다. 얼마나 귀한 신앙입니까? 주일에 빠
지지 않고 십일조하는 신앙, 그러나 사랑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에 인정받
지 못하는 신앙일 뿐입니다. 둘째,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
습니다. 신앙생활하는 것이 요즘의 시간예약이 되는 가전제품처럼 자동입
니다. 교회가는 날,교회가는 시간, 주보 순서를 자동적으로 따라합니다. 과
연 이런 사람의 예배가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드리는 예배가 되겠습니
까? 셋째, 그런가 하면 책임감때문에 신앙생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직,
교사,성가대,각부임원들...책임때문에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세상 직장에서는 좋겠지만 주님은 한가지를
더 물어보십니다. "그래 너의 충성안에 사랑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사랑없
는 행위는 형식과 의식이라는 껍데기만 남깁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가 있을 리 없고 힘써 신앙생활을 하지만 우리에게 남
는 것은 피곤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인내는 짜증만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런 인내는 화목하게 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예배, 지루
할 뿐입니다. 설교도 찬송도 길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 지
겨울 뿐입니다. 예배니 인내니 봉사니 충성이니..얼마나 중요한 신앙행위들
입니까?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신앙행위가 될 뿐입니
다. 사랑이 없으면 겉보기에는 그럴듯 해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형식과
원망과 피곤과 짜증과 불평뿐이요 피차의 저주와 정죄와 아집과 교만만 남
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사랑이 있는가? 자신의 모습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큰 에배소 교회가 어떻게 하다가 그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까?
바울이 목회했었고 디모데, 아볼로, 사도요한을 목회자로 두었었기에 가장
복음적인 교육을 받으며 훈련된 이 교회가 왜 이렇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상실했을까요? 에배소 교회는 창립한지 40년이 지난 교회입니다. 이 40년이
라는 세월이 에배소 교회에 사랑을 빼앗아 버리고 타성만 남게 했던 것입
니다. 이 자랑스러운 전통때문에 처음 사랑은 상실한 채 습관과 형식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40년만 되면 다 이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역사와 전통을 주님 사랑하는 일보다 우선할 때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말
입니다. 또한 에배소 교회는 당시 소아시아의 많은 교회가 여기에서 개척
하여 나갔기에 소아시아의 모체와도 같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명성이 자자
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 명성만을 유자하다보니 주님게 대한 감사와
감격과 사랑은 사라진 채 무거운 책임감만 남게 된것입니다. 이것이 에배
소 교회에 사랑을 잃게한 이유들이요 형식과 껍데기만 남게 한 이유들입니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에배소 교회에게 지적하신 이 모습들이 나와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닌지 살펴봅시다. 이 가운데는 신앙생활 시작한지 얼
마 안된 분도 있을 것이고 수십년 된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된
신앙 연륜이 여러분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굳건
한 신앙 골격 위에 세워놓았습니까, 아니면 사랑은 빠져 버린채 형식과 습
관만 남게 했습니까?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신앙이 아니라 완전히 자동계약
된 기계처럼 습관적으로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신앙이 아닙니까? 여
러분들이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구원에 대한 감사 감격을 이기지 못해 주
님의 교회를 내몸처럼 사랑하는 충성을 보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책임감과
의무감과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충성하고 있습
니까?
우리 교회는 이제 만2년이 되었습니다. 물론 2년이란 세월은 대단히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을 형식적으로 만드는데는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우리안에 사랑을 뽑아내는데 충분한 기간입니다. 과연 우리교회가
에배소 교회와 같이 책망들을 교회는 아닌가 생각해 봅시다. 신앙 연륜이
오래지 않아도 그 속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주위를 보십시오. 예수 믿은지 1년도 안된 사람이 열심히 충
성합니다. 어떻게 신앙의 연수도 짧은 사람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들은
성경의 순서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단지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
과 내가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창립 2주년을 맞은 우리 그물교회
가 에배소 교회가 칭찬받은 것처럼 우리교회도 칭찬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
라며 한걸음 더 나가 에배소 교회에는 없었던 사랑의 칭찬이 여러분과 우리
교회에 더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아멘-
순교의 신앙을 지킨 교회(I)
성경 본문: 계 2:8-11
창립 2주년및 성전이전을 즈음하여 몇주전부터 교회를 주제로 한 말씀을
증거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두시간은 에베소교회가 받은 칭찬과
책망에 대하여 깊이 상고해 보며 과연 우리교회의 신앙 상태가 건강한지,
그리고 성도 한사람 한사람의 신앙상태가 양호한지를 진단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지난 1주일 동안 생활하실 때 여러분의 신앙 건강상태가 에베소교
회에 하신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양호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나의
영적 상태가 대단히 좋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는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더 심하게는 죽어거고 있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지난 한주간 동안
이 말씀가지고 점검해 본 줄 압니다. 오늘은 두번째 교회인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역시 두 시간에 걸쳐 상고해 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또다른 측
면에서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서머나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40Km 위
치한 소아시아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서머나도시는 무역의 중
심지였기에 부유하고 번창한 도시였으며 로마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했
기에 로마 중앙정부로부터 큰 배려를 받았던 도시였습니다. 특히 황제를 숭
배하는 데 그 어느도시보다 앞장섰던 대표적인 도시였습니다. 또한 이 도시
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는데 예수님이 이들을 사단의 무리라 하실 정도
로 그들은 정치와 결탁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섰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존건의 상황속에 있던 서머나 교회는 참으로 훌륭한 교회
였습니다. 왜냐하면 책망은 하나도 없었고 칭찬만 받은 교회이기 때문입니
다.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예수님께 위로받은 교회라
는 뜻이요, 예수님께 인정을 받은 교회라는 뜻이요, 예수님께 격려를 받은
교회라는 뜻입니다. 원하기는 이 세가지를 생각하는 동안에 여러분에게도
우리 예수님의 위로와 인정과 격려하심을 함께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
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1. 먼저 서머나교회가 받은 위로는 어떤 위로입니까? (9절)
9절에 보니까 "궁핍과 환란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어느교회를
막론하고 로마의 중앙정부로 부터, 혹은 유대의 율법주의자들로부터 심한
신앙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서머나 교회가 이 편지를 받은 시점은
그 환란이 극에 달해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로마의 황제는 기독교 핍박
에 있어서 네로와 쌍벽을 이루던 바로 도미티안 황제였습니다. 그는 선왕
네로가 세운 기독교 말살정책을 확대해서 조직적으로 진행시켰을 뿐만아니
라 한술 더떠서 자기를 신격화시켜 로마 식민지의 모든 나라 백성들이 자기
를 숭배하도록 강요했던 황제였습니다. 그리고 이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을
가혹한 형벌로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이 숭배정책에 제일 먼저 정면으로 부
딪친 자들이 바로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투옥당하
거나 화형당하거나 짐승에게 던져 지거나 톱으로 켜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특별히 서머나 교회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극한 환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신앙탄압이 그들의 경제생활에 막대
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사회적 진출이 막혔고
매매가 금지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관리들의 묵인하에 반대자들이 기독교인
의 재산을 공공연하게 약탈해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이러한 사정때문에 너무나 어렵고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속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신앙을 가졌던 교회라면, 책망은 없었고 칭찬만 있었던 교
회라면, 믿음의 절개를 굳게 지켰던 교회라면, 그렇게 진실한 교회와 성도
라면 왜 하나님께서 저들을 극한 환란과 궁핍 가운데 내버려 두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만사가 형통해야지 왜 어려움 옵니까?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볼 때 무어라 하겠습니까? 그렇게 의리없는 하나님
이라면 믿을 필요없다고 할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라고
손가락질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성경은 이러한 의문에 분명한 답
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극한 상황은 하나님께서 무관심하시거나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0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
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들이 환란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과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환란을 당 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
수님이 다 아신다는 말은 그들이 당하고 있는 환난과 가난의 삶을 허용하셨
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감사한 것은 "10일 동안" 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10일이란 그들이 넘어지지 아니하고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시험
을 허락하신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나 저나, 혹은
교회에,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어려운 문제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내맘
대로 죄짓고 살다가 어려움을 만난다면 그런대로 이해하겠는데 믿음대로 살
려고 하는대도 온갖 근심과 걱정스러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여러분, "누구 때문이라"고 원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내인생은 왜 이
모양인가?" 하며 신세 타령을 해서도 안됩니다. "복이 있니 없니" 복타령을
해서도 안되고, 팔자 타령을 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보니까 내가
당하는 크고 작은 모든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이요 또한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잠시 허락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공중의 참
새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라 말
씀하셨는데 하물며 예수님의 피값으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들인데 하나님
의 허락하심이 없이 환란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려움 있을 때마
다 이는 잠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음으로 인내할 때 하
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그 환란을 통해서 반드시 이루어 질것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우리가 위로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은 환란을 허락하
시는 것만으로 그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경만 하시지 아
니하십니다. 그 환란중에 함께 거하시며 환란을 당하고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로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 위로의 말씀이 서머나 교회 교인들
에게 극렬한 환란을 극복하고도 남을 수 있을 만한 충분한 힘이 되었던 것
입니다. 그 위로가 바로 9절 말씀입니다. 9절 말씀에서 목적어를 빼면 "내가
아노라" 는 뜻이 됩니다. "내가" 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예수님이 아신다는
말씀인데 그 예수님이 어떤 예수님입니까? 8절에 보니까 처음이요 나중되
신 예수님이라 하셨습니다."처음과 나중"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역사를 시
작하셨고,역사를 종결지으시며 뿐만아니라 그 역사를 섭리하는 "나 예수가
안다"는 뜻입니다.바로 "내가 안다"는 이 말씀한마디에 서머나교회 교인들은
믿음가운데 굳게 설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지금 형
편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사실 도미
티안 황제의 박해같은 외부적인 박해는 없지만, 유대인들이 율법을 강요하
는 것 같은 신앙노선을 변경하라는 압력은 없지만, 교회 이전문제로 큰 어
려움을 당했고 성도 개개인들이 당하는 싱앙의 갈등등...이러한 것들로 인해
사실 교회나 저나 성도들이 어려움속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확신합니다. 우리교회에게, 성도들에게 이러한 어려움을 허락하신 것은 이러한 어려움 통해서 우리가 껍질을 벗고 좀더 성숙하고 완성된 교회
와 성도의 모습을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게획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가 이 어려움을 조금만 참는다면 교회와 여러분을 통한 하나님
의 계획은 분명히 완성되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교회의 주인이십니다.
2년전 우리 교회가 창립될 때 이미 예수님은 그물교회를 당신의 교회로 접
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그분이 바로 우리교회의 처
음이 되셨으며 또한 나중이 되십니다. 뿐만아니라 우리교회의 모든 과정도
간섭하시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교회가 당하는 어려움도 아시
고 크고 좋은 교회 얼마든지 있지만 이렇게 작은 교회를 선택하셔서 섬기시
느라고 힘쓰고 애쓰시는 여러분의 수고도 주님이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
고는 본문을 통해 여러분을 향하여 이렇게 위로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래 그래, 내가 다 안다. 다 알고 있느니라. 아무도 안갈려고 하
는 그 개척교회에서 네가 성도로,혹은 집사로 수고 참 많이 했지.
보이지 않는데서 봉사하고 교회를 섬긴 것, 내가 다 안다. 부족하
고 형편 없지만 그래도 내 종인줄 알고 교역자를 공궤하고 부족한
점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준 네 수고를 내가 왜 모를까 보냐."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위로해 주십니다. "내가 안다"는 이 예수님
의 말씀에 서머나 교인들이 그 동안의 고생 다 잊어버리고 다시금 힘을 내
어 믿음에 굳게 설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 위로의 말씀을 들으셔서 이 교회를 위해 고생하셨던 그 모든것 다 잊어
버리시고 다시금 새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넉넉하지 못한 신혼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은 건축현장에서 하루종
일 노동하는 노동자입니다. 하루는 남편이 일에 밀려 야간 작업을 하게 되
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밤늦도록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생각하
니까 아내는 편히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따끈한 커피를
끓여 주전자에 담아 남편이 일하는 현장을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남편과 동
료들에게 한잔씩 차를 나누어 주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이렇게
격려합니다. "여보, 참 힘들지요? 몸조심하시면서 일하세요." 그러나 남자들
이 다 그렇듯이 속으로는 좋으면서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뭐하러 밤늦은
시간에 여기에 왔소? 밤이슬도 찬데 빨리 들어가시오" 라고 퉁명스럽게 말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속마음을 아는지라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
기를 "염려하지 말고 당신이나 조심하며 일하세요. 저는 일하시는 당신 뒷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 갈께요." 라고 말합니다. 우리 남자들 한번
생가해 봅시다. 그 때 이 남편의 마음이나 일하는 자세가 어떠하겠습니까?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한 지금, 사랑하는 아내가 가지고 온 차한잔 마시고
나면 새힘이 솔는 것 아닙니까? 괜히 아내가 자랑스러워질 것이고 이 세
상에서 자기가 가장행복한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겁니다. 일할 때도 콧노래
가 절로 나오고 흥이 날 것입니다. 낮에 그렇게 부러워 보이던 현장 소장
도 이제는 부럽지 아니할 것입니다. 어디서 이러한 새 힘이 북받쳐 오르겠
습니가?
여자들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느 참한 규수가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
데 시댁에서 살다보니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시집살이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일어나기전에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지어야합니다. 시조카들
의 도시락도 싸야합니다. 남편도 출근시켜야 합니다. 집안 빨래도 해야 합
니다. 시부모님을 섬기랴 손위동서 눈치보랴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때로는
시어머니에게 책망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손아래 시누이에게 자존심 상하
는 말도 들을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손위동서의 질투섞인 억지 훈계도 들어
야 하는 억울한 때도 있는가 하면 자신이 세운 공을 가로채일 때도 있습니
다. 그야말로 꼭두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잠시 쉴시간 없이 하루종일 시집
살이 한후에 이제는 밤늦게 방에 들어 섰을 때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부
드러운 목소리로 "여보, 오늘 수고 참 많았지? 우리집안을 위해서 희생하
는 당신이 참 고맙구려. 내가 당신 고생하는 것 다 아니까 조금난 참구
료." 하며 위로하고 다리를 주물러 주거나 안마를 해줄 때, 우리 여자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 때 이 아내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모르긴 몰라
도 하루의 수고를 다 잊어버리고 피곤이 확 풀리면서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는 내 남편을 위해서라면 이쯤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지..."하는 생각이
들겁니다. 그리고는 내일도 기꺼이 그런일을 감당할 수 있는 새힘이 솟아
날 것입니다. 어디서 이러한 새힘이 솟아 오를까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
라 내가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게 수고하고 있지만 내 사랑하는 아
내가 알아주니, 내 사랑하는 남편이 알아주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생기고 용기가 다시 솟아 오르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위로의 말씀도 똑같습니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온갖 환란
을 당하고 투옥당하고 순교당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극한 궁핍가운데 있지
만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 한 마디에
서머나 교인들은 이것들을 다 이기고 남음이 있는 큰 위로가 그들의 마음
에 넘쳤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다 보
면 지칠때도 있고 피곤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려다 보면 손해
보거나 어려움 당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처음이요 나중되는 나 예수가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지
켜보고 있느니라" 라고. 이 말씀에 서머나교인들처럼 큰 위로 받으시기 바
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통해 한가지 교훈을 더 생각해 볼것은 우리에게 주
님께서 알아주실만한 신앙적인 삶이 과연 있느냐는 것입니다. 서머나교인
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것 없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예수님께서 알
아주시는 신앙의 절개와 의지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
게도 이러한 신앙적 삶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쏟은 수고를 절대로 모르는체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 아십니다. 그리고는 여러분을 위로해 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예
수님의 이 음성을 듣고 서머나교인들 처럼 새힘을 얻으셔서 신앙생활과 교
회생활에 더욱 힘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이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생명의 면류관
성경 본문: 계 2:8-11
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경우를 놓
고 볼때 하는 일과 맡은 일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스니다. 그 가우데서
기억하기 쉬운 것들만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 아버지, 아들,
할아버지,삼촌,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 형부, 매제, 이모부 등이 저에게
따라 다니는 이름입니다.
사회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서울 시민이고 용산 구민에다 이촌동 동
민입니다. 교회적으로는 충신교회 담임 목사, 서울서노회 노회원, 예장총회
목사입니다. 그리고 연합사업이나 사회 단체, 교회단체 등에서 맡은 일이
수십가지 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 노릇을 잘 해야 되기 때문에 시민 노
릇을 소홀히 한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 노릇을 잘 하기 위해 남편 노릇을
가볍게 취급한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 노릇으로도 비거운데 할아버지 노릇까지 감당하기는 더 어렵다면서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다 못한다라고 거절한 일이 없습니다.
물론 맡은 일을 감당해내는 사람의 능력과 역량을 따라 개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중요한 것은 맡은 일에 최선을 하느냐 하지 않느
냐인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서머나 교회는 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있었던 일곱교회
가우데 가장 모범적이면서 최선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서머나교회의 장점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1.열악한 환경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머나교회가 처했던 상황을 9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라고 했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
도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과 훼방에 직면한 교회였습니다. 예수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박해와 환난과 생활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유대주의자들의방해
와 훼방이 교회를 괴롭혔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로마의 황제 숭배와 유대인의 율법주의가 서머나
교회를 위협했고 괴롭혔던 것입니다. 황제숭배를 거절하는 사람은 재산을
목수당했고 일터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드른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외부기온을 따라 변한다면 시낭지키기가 어렵게 되빈
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물이 얼게 됩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올라가면
얼었던 물이 녹게 됩니다.
외적 조건이 조금 어렵다고 움츠러들고 약간 편해졌다고 활개치는 그런 신
앙이라면 뭘 해낼 수 있겠습니까?
한국 초대 교회 순교자 가운데 한 분인 최태용 목사님이 1926년1월호 [영
과 진리가]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 속에서 "이제는 신앙혁명을 들으라.기독
교가 아니요, 그리스도 자신을 믿으라. 교회 생활이 아니요 영이 더가라.
진리가 되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교인이 아니라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아
니라 예수에게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길선주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등불이 방 가운데 들어가매 어둠이 밖으로
도망가고 물이 그릇 안에 들어가매 공기가 밖으로 나가고 믿음이 마음 가운
데 들어가매 의심이 밖으로 나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燈入房中夜逃外
하고 水入器內氣出外 하며 信入心中疑出外라).
빛이 들어가면 어둠이 쫓겨나고 물이 차면 공기가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
다.
세계교회 신앙 선배들의 신앙면모를 들여다 보면 오히려 열악한 환경과 조
건 속에서 더욱더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머나교회도 그랬습니다.
2. 영적인 문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회생활을 잘 한다든지 예수를 잘 믿는다든지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한다
는 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교회에 나와 하루 봉사를 했다고 해서 일당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경력으로 인정되어 회사에서 진급할 때 도움이 되는 것도 아
닙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사건인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당장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축복
을 받는다는 것도 당장 내 손에 수표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가 당
첨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쪽 분야를 소홀히 취급하는 것입
니다.
그러나 서머나교회는 영적인 문제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했습니
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영이 살고 영이 복을
받아야 육신이 살고 바로 되는 것입니다.
일본이 강요한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섰던 이기선 목사님이 일본 경찰에 체
포되어 고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목사님은 일경이 고문을 할때마
다 '주님은 저 위해 피흘러 돌아가셨는데 저도 고문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
니다"라며 고문을 견뎌내었습니다.
어느날 일경이 물었습니다. "영감, 천황 폐하가 기독교를 믿으면 죽이겠다
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이기선 목사님은 "천국법도 지키고 국법도 지키겠소"라고 대답
했습니다. "어떻게 둘 다 지킬 수 있단 말이요?"라는 물음에 이목사님은 "
하나님이 예수믿으라 했으니 예수 믿고, 천황이 죽으라 했으니 죽으면 됩니
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이라고 해서 생명이 아깝지 않다는지, 죽음
이 두렵지 않다든지 고문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도 십자가
를 면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나 서머나교회 교
인들이 환난과 궁핍과 핍박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켰던 것은 영적
인 문제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아무리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잘 산다고 해도 그 집에서 앞으로 80년
이상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80년 안에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육체와 그 육체를 에워싼 조건들은 모두가 제한적이고 한시적입니
다. 그러나 영원합니다. 그리고 영적 사건도 영원한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오늘의 쾌락이나 행복 때문에 영원한 나라를 포
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는 본문 10절 하반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
습니다. 서머나교회는 이미 충성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환난
과 궁핍과 고통을 감당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 교인들에게 주님은 말
씀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이 한마디 속에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하던 충성을 더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드린대로 이미 충성했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만 그것으로 만족
하거나 자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훈련의 의미나 가치는 지속성에 있습니다. 게임 끝나고 훈련을 쉬는 선수
는 다음 경기에 이길 수가 없습니다. 게임이 있든 없든 훈련을 계속해야 강
한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독창회나 연주회가 끝났다고 해서 연습을 중단
해 버리는 음악가나 전시회 끝났다고 해서 붓을 던져버리는 미술가는 훌륭
한 작품을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힘써 그일을 계
속해야 합니다.
둘째,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수지 댐이 터지는 것은 지극히 작은 구멍으로 물이 새기 시작하고 그것
이 점점 커져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성인병의 경우도 커져서 원인이 점던 커져서 큰 병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
적으로 사람의 위 용량은 200CC 의 음식물이 위 속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위가 10배로 불어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루가 매 끼니마다 터질 지경
이 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위 입장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짠 것, 매
운것, 질긴 것, 뜨거운 것, 오만가지 나쁜 것을 다 집어 넣습니다. 쉴 날도
쉴 시간도 없습니다. 피곤해서 잠깐 쉴까하면 커피 집어넣고, 과일 집어넣
고, 과자 집어넣고, 저녁 잠자는 시간에도 2000cc를 집어넣고 중노동을 시
킵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모든 위병의 원인이 바로 그러한 위장관리에서 비
롯된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 소홀히 취급하기 쉬운 일을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일에도 불어하
니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셋째, 드러나지 않는 일에 최서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일이란 성과가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드러나지 않는 일
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실적위주에 치우치다 보면 형식과 전시효과를 중요시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나 신령한 일은 오늘 당장 그 실적이 드러나
지 않습니다. 오늘 충성했다고 해서 오늘 상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은 그일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시간제가 있고, 일급이 있고 주급이 있고, 월급이 있고, 연봉이 있습니다.
한시간 일하고 받는 보수는 극히 작습니다. 대개 엄청난 보수일수록 연봉으
로 계산합니다.1년에 얼마를 주고받기로 계약하고 일을 하는 것이 연봉입니
다. 한 시간 일하고 그 자리에서 받아 챙기는 돈과 연봉입니다. 한 시간 일
하고 받아 챙기는 돈과 연봉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의 일은 연봉이 아니빈다. 최고봉이빈다.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되는
영원한 보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당장 오늘 일하고 칭찬이나
보상이 없다고 해서 그 일을 소홀히 하거나 과소평가 하면 안됩니다.
넷째, 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일을 나혼자 다 맡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맡은 일에는 관심이 없고 맡지 않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잘못입니다.A 회사에 입사를 했으면 그 회사일에 최
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A 회사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B회사 일에
군침을 삼킨다면 A 회사가 그를 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그일에 최선
을 다해야 합니다.
다섯째,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죽음을 각오하고, 죽을 힘을 다해, 순교정신으로 일하라는 것입니
다.
[예수천당]으로 유명한 최봉석목사님은 1939년 6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2차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 40일 금시기도에 들어갔습니다. 40일 금
식기도가 끝난후의 최목사님은 산송장이었습니다. 병보석으로 나와 기홀병
원에서 15일간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가지 못하고 1944년 4월 2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목사님은 세상을 떠나시기전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신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순교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뿌린 피와 흘린 땀 위에 한국교회는 세워졌습
니다. 오늘까지 한국교회가 역사의 격동과 격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피와 땀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도록 충성한 다음에 오는 상급이빈다. 본문을 보면 "그리하면 내가 생명
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면류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사람, 싸움에
서 이긴 개선장군,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퇴임하는 장관에게 면류관을 주었
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썩지않는 면류관, 사
랑의 면류관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유는 생명을
바쳐 얻은 면류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최선을 다한 뒤에는 반드시 상급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과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면 영원한 생명과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음을 받는 것이 됩니다.
금메달리스트는 금메달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금이 있고 연봉이 있고
명예가 있고 직장이 보장됩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최선을 다한 그리스도인
에게 주시는 최고의 상급입니다. 그 상급이 내것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남
의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최후의 대심판
성경 본문: 계 20:11-15
지난주 "검찰복음화"집회가 있어서 검사및 법관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
이 세상의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이 마지막 심판이 아니라 우주적인 최후의
대심판이 있습니다. 그때는 검사님,판사님들,아니 대통령들도 어김없이 심
판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고 담대히 전할 때, 물뿌린
듯이 조용한 가운데 은혜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봄에 파종하고 여름에 김매고 기름주고 땀흘려 수고하는
것은, 가을에 추수하는 때를 바라보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알곡은
모아 창고에 들이고,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웁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이 불
공평한 것같이도 보이고, 악인이 더 잘 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최후에 공평
무사하게 심판하는 날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내일 될 일 일년 후에 될일 다 분명치 않으나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재림이 더디다면),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성경은 엄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교묘
하게 법의 심판을 피할 수도 있고, 검사나 형사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있으
나, 우주적인 대심판의 날 천사들을 피해 숨을 사람이나, 숨을 장소는 결코
없는 법입니다.
사도행전 17장 31절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
할 날을 작정하셨다."고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관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2장 16절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검사나 판사는 나타난
결과만 보고 심판하지만, 최후의 대심판에서는 모든 은밀한 것과 숨은 동기
까지 다 파헤쳐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밀한 죄가 없이, 불꽃같으신 주님의 눈앞에서 생각도
하고 행동도 하며 매일매일 살아가야 합니다.
이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믿기를 거부한 모든 죄인들에게 행하
여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서 행하여 지는 것입니다. 심판
의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시대가 지나서, 영원무궁시대에 들어
가기 직전에 시행되는 것입니다.
예수믿고 좌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생명의 부활을 얻
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성도들은 죽은후에 그 영혼이 먼저 고통의 장소인 음부에서
고통을 받다가, 천년왕국시대 후에 부활하여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
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14절에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이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밧모섬에 귀양가서 외롭게
지낼 때에 깊이 기도하던 중,장차 될일에 대해서 계시를 받고 이 계시록을
쓴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천국의 아름다움과 즐거운
장면을 보여 주셨을 뿐 아니라, 무서운 지옥과 불쌍한 죄인들에게 나타날
최후의 대심판의 장면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1. 심판주는 누구입니까?
재판할 때에는 반드시 형벌을 결정짓는 판사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최
후심판은 너무 크고 엄숙하기 때문에 하늘과 땅도 그 앞에서 간데 없더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심판주는 한분이신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
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은 우리의 구주가 되시지만 그때에는 심판자가 되십
니다. 지금은 예수를 부르고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
시지만, 그때에는 예수님을 믿지않고 배척한 사람들을 평생에 지은 죄를 낱
낱이 엄하게 심판하시게 됩니다.
지금은 그분을 믿지 않을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지만, 최후의 심판 때
에는 당신의 심판자로 오시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게 됩니다. 지금은 예수
님이 죄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지만, 그때에는 오직 공의
로 심판을 단행하시게 됩니다.
그때에 예수를 배척하고 제멋대로 죄를 짓던 모든 사람들은 슬피울며 탄식
하여 그 소리가 하늘을 찌를듯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1절에 보면
"살아게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라고 말씀하셨습
니다.그러나 이것은 잃어버린 죄인들에게만 행해지는 심판입니다. 예수를
믿고 그 앞에 나오기를 거절한 사람들에게만 행해지는 심판입니다.
지금은 마음대로 죄지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를 방해하시지 않습니
다. 그러나 흰보좌 앞에서 권세와 능력으로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에는 예수를 배척한 죄가 얼머나 무섭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을 것입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에, 당신을
심판하시는 심판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2. 심판받을 사람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요한계시록 20장 12-13절에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퍼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
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엄히 기록되
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아 중생한 크리스챤들
은 그곳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죄는 사함받았으므로 믿음안에서 행한 선행
을 따라 보상을 받기 위해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선한자나 악한자나 불문하고 예수를 거절
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끔 출석도 하고 헌금도
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어도, 그 중심에 진심으로 예수를 그리스도
로 영접하지 않았으면 잃어버린 죄인이므로 틀림없이 심판을 받게 되는것입
니다.
최후의 심판대에는 큰자나 작은자나 선한자나 악한자나 다 심판을 받게 되
는것입니다. 혹시 나는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았으니 나 같은 사람은
그 심판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습니다. 바다도 죽은자들을 내어 주고 음부
도 죽은자들을 다 내어 놓아서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
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영혼이 낙원에 있다가 주님 재림시에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고,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의 영혼은 음부에서 고통
을 당하다가 천년왕국 끝에 부활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지워
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조롱할 수도 있고, 멸시할 수도 있고, 예수님을 배척할
수 있으나, 그날에는 백보좌 앞에서 떨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그날에는 그들이 어린양의 얼굴을 피하여 숨으려고
바위야 날 가려라, 산아 날 가려라 하고 부르짖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
나 아무곳에도 숨을곳이 없고 아무도 구해주는 이가 없습니다. 지금은 예수
님을 배척하고 제멋대로 살 수 있으나, 어느날엔가는 당신을 심판대 앞으로
끌고 갈때가 틀림없이 오고야 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빌라도도 거기 있을 것이며, 가롯 유다도 거기
있을 것이며, 히틀러도, 스탈린도 모택동도, 김일성도 죄의 값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누구라도 그리스도를 배척했다면 백보
좌 앞에서 예수님을 심판주로 만나도록 약속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약속은 어길 수 있으나 그 약속만은 어길 수 없습니다. 여
기서는 시간에 늦을 수도 있고 재판을 늦출 수도 있으나, 그 심판의 날에는
늦을 수도 없고 정한 시간에 어김없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세상에서는 범죄
하고 법관을 피해서 일생을 살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사자들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다 붙들어 옵니다.
지금은 교회 안나올 수도 있고 예수를 안 믿을 수도 있으나 그때에는 심판
대 앞에 안 나올 수가 없고 심판주를 대면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녔을지라도 예수님과 생명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은 그곳에 서게
됩니다. 흉악한 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이 다 회개치 않았으므로 다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특별히 믿지않는 자들은 집사든, 목사든, 신학박사든 다 서게 됩니다.
3. 심판받을 기록은 무엇이겠습니까?
죄인들이 그때에 가서 천국이냐 지옥이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
정된 사실을 판정받는 것입니다. 이 세사에서 예수 믿기를 거절한 사실이
지옥의 판결로 결정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
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님을 대속주로 보내사 십자
가에 못박혀 죽은 사실을 믿지않는 사실이 심판받을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자기가 행한 업적에 따라 되는 줄 압니다. 사람이
일생동안 행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대조해서 선행이 악보다 많으면 구원받
는 줄 아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구원받느냐, 멸망으로 떨어지느
냐 하는 것은,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었느냐 안믿었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그
런 사람들은 평생에 지은 죄를 기록한 책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
니다.
구원받은 자들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와 상관없이 구원을 받지만, 믿음
안에서 행한 선행에 따라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주님의 일을 즉 봉사, 전도,헌금,기도,구제 등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상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지옥에서도 그가 지은 죄에 따라
고통이 더할 수도 있고 덜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죄가 불의 뜨거움을 더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이냐 지옥이냐 결정짓는 것은, 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믿었느냐
안믿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책을 한권씩 기록하고
있으며, 요사이 말로 하면 하늘나라 컴퓨터에 말하는 것,생각하는 것,행동
하는 것, 하나 하나를 입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 모르게 행한 것, 남편 모르게 행한 것, 목사 모르게 행한 것, 부모
모르게 행한 것, 그 어느 것이나 다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일 매일 순간 순간 은밀한 조가 없이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최후심판 앞에서 "나는 그런 말 안했어요, 나는 그런 짓 안했어요"하고 변
명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때 책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컴퓨터
세 입력된 대로, 다 보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란 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제일 중요하고
엄숙한 생각은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을 이 다음에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 심판의 결과는 어떤 것인가?
본문 15절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고 했습니다. 심판이 끝나면 그 죄의 정도에 따라 지옥에서 고통이 가해집
니다. 그 고통은 가히 상상도 못합니다.
엠.알 리치 (M.R.Rich) 라는 사람은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불
붙는 난로위에 백만년 동안 누워있는 편이 훨씬 낫다"고 표현했습니다. 다
시는 기회도 없고,사랑하는 사람과도 영원히 분리되고, 하나님과도 영원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
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마귀와 더불어 영원히 받게
됩니다.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대신 마귀를 따라가는 죄짓는 생활을 했
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
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고 했습니다. 지옥은 고통의 장소일뿐만 아니라 가장 흉악자들과 함께 지내
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위에 기록된 죄를 범했을 지라도 예수를 믿고 죄사함 받으면 누구
든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는 씻지 못할 죄가 없고, 용서받
지 못할 죄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됩니다.
지옥에 가는 것은 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
지 않았기 때문에 가는 것이요, 예수님을 거절했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무서운 심판을 면하기 위해 왜 지금 예수께로 나오지 않습니
까? 크리스챤들은 그때에 주님과 함께 심판을 돕기 위해 그곳에 서게 됩니
다.
심판이 끝나면 어데로 갑니까? 크리스챤들은 즐거운 천국으로 올라가 영원
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우리는 거기서 영원히 즐겁게 살 수가 있습니
다.
그것은 우리가 선해서도 아니고, 세례받았기 때문도 아니고, 십일조 했기
때문도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 받았기 때문이며, 예수님이 받아 주
셨기 때문입니다.
홍수 심판 때 노아를 비웃던 사람들이 심판을 받은 것같이, 심판이나 지옥
은 비웃던 사람들이 다 그와 같이 됩니다.
여러분은 진정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잃어버린 영혼을 얼마나 생각하고
전도하십니까?
천국은 어떤 곳인가
성경 본문: 계 21:1-7
옛날 서대문교회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 이른 아침에
최자실목사님과 제가 걸어서 교회로 출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좁은 골목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분이 양지 바른 곳으로 뛰어가 서더
니 음지에서 장사하는 친구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이리로 오
게, 여기는 천국일세.'
목사님과 저는 그 말을 듣고 함께 웃었습니다. '천국치곤 너무 초라
하군'하는 생각에서 였지만 그 사람의 그말이 저의 뇌리에 남아서 지
금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이란 말을 '기쁜 것,평안한 것,행복한 것,풍부한 것,
진실된 것'등을 표현할 때 흔히 사용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함과 동시에 그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
습니다. 천국이란 하늘나라를 의미합니다. '나라'라는 것이 설립되기
위해서는 주권과 권세가 있어야만 합니다. 쉽게 말하면 통치권자인 대
통령, 국방과 치안을 유지하는 군대와 경찰이 있어야 하며, 이는 기초
적인 필요 요건인 것입니다.
천국도 이뤄지기 위해서는 절대주권자인 한님이 계셔야만 하고 그 하
나님의 뜻을 펼치는 권세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이란
신화적 단어에 불과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
씀은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시는 권세가 우리 인간 사회 속에 직접
들어와서 임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주권
과 권세가 어느 곳에 어떻게 나타날까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
씀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
장 13,14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
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람
을 얻었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반역 이후로 에덴에서 쫓겨나서 완전히 마귀
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의 포로가 되고 병들고 미움과 시기,질투,저
주, 가난,죽음 등 지옥의 세력이 우리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
키는 가운데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흑암
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
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벌써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가 우리
가운데, 우리 마음에 와 있고 우리는 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됩
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나라의 주권자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권세인 성령이 우리 심령에
임하셔서 우리의 심령을 주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르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바로 하늘나라요,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리는
이 교회가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
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이 임하여서 점령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용서받은 의가 가득하고 빼앗길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채워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도 못하리니, 하늘
나라는 바로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님들,우리 속
에 천국이 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먼 장래, 미래만 바라보지
말고 현재 내속에 주권자인 예수님이 계시고 그 권세인 성령님이 오셔
서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시오.
이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의와 평강과 희락과 우리 마음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심령천국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곳, 교회에 천국에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환경에 이 천국의 역사가 임하여 있습니다. 오늘
날 완전한 천국이 우리 환경에 임한 것은 아니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을 통해 우리의 환경 가운데도 천국의 역사가 임하여 계십
니다.
주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시고는 죄인의 죄를 사하시
고 병을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고 환경을 평안으로 채우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배고픈 자를 먹이시면서 천국의 증거를 보여주셨습니
다. 오늘날도 여러분, 믿음을 통하여 병든 자가 고침받고 귀신이 쫓겨
나가는 것은 바로 환경에 임한 천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주에서 해방을 받는 것, 이것 역시 환경에 나타난
천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이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
를 내던 곳에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해서 천국의 역사가 나타나 가시
와 엉겅퀴,저주가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축복이 임하는 것은 바로 천국
의 역사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귀의 억압에서 자유을 얻는 천국의 역사가 우리 가운
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악하고 더거
운 귀신을 쫓아냅니다. 점치는 귀신을, 거짓말하는 귀신을 내어쫓아냅
니다. 이 모든 귀신들에게서 해방을 얻고 우리의 마음속과 가정과 주
위에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채우는 천국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
니다.
그러나 이 천국의 역사가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
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만 역사하는 천국인
것입니다. 믿는 자의 심령 속과 생활과 가저아 이들이 모인 곳인 교회
에만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오늘 적은 부분의 천국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임하여 성령께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
되 넘치게 얻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종교나 의식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으로 오셔서 왕으로 계시고 성령의 권세
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위대한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 믿음.소망.사랑을 우리 심령에 채워주시고 우리
환경 가운데서 미움과 저주와 죄를 제하는 역사를 합니다. 그리고 질
병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귀신을 내어쫓고 평화를 가져오는 천
국의 역사를 우리의 주변에서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2. 육체의 사후에 들어가는 천국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분명한 해답을 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요한복
음 14장1절로 4절을 통해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
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
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은 지금 낙원에 계시며 '너희가 육체의 장막짐을 벗으면 나 있
는 곳에 함께 있기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덤 속에 있으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실체로서 사는 것일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
다. 여러분 우리의 실체가 없다면 처소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살
집이 있으면 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은 실체적인 인간이지, 안개
나 구름같은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성경은 우리는
이 육신의 장막집을 떠나도 분명한 실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천국에 들
어가서 우리 집에 거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될 것을 말하고 있
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바울 선
생이 루스드라에서 전도중 반대자들에게 잡혀서 돌로 맞아 죽었을 때
의 체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체험을 고린도후서
12장 1절에서 4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화샹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낙
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 선생은 자신이 확실하게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온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체험 후 그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강하게 증거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
이어서 그는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
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8,9)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천국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육
신의 장막집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그러나 천국을 체험한 바울
선생은 육신의 장막집을 떠나는 것이 더 좋다고 담대히 말합니다. 그
렇기 때문에 그는 육신의 장막집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우리는 주를 기
쁘시게 하면서 살자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1절로 23절에 그의 간절한 소원을 기록하고 있
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
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세상에 살고 있으면 더 많이 전도하고 교회도 세우니 좋지만 개인적
으로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좋다고 말
했습니다. 바울 선생에게는 죽음이란 하나의 이사를 하는 것이었습니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온갖 핍박 끝에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기 직전, 그의 믿
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겨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르로 주 곧 의로
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
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내가 죽지만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의 재판관 앞에 나가서 의
의 면류관을 받아 쓰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여러분 천국은 확실히
있는것입니다.
3.지상 천년왕국의 천국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실 때
에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살아남은 우리들이 다 들려 공중에
올라가서 7년 혼인잔치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공중 재림인 것입니
다.
천상에서 칠년 혼인잔치가 있을 때 지상은 칠년 환난을 당하게 됩니
다. 이 칠년 환난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는 신부인 모든 성도들을 거느
리고 백마를 타고 지상에 강림하십니다. 이것이 지상 강림인 것입니
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로 16절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
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다라 그 눈이 불꽃 같
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
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
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利한 검이 나오니 그
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
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 칠년 혼인잔치를 마치고 백마를 타고 강림하시면
그 신부들인 부활한 성도들도 모두 다 그 뒤에 백마를 타고 흰 세마포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 강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상 강림을 하자마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잡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버리고 마귀는 무저갱에 천년 동안 가두
어 놓습니다. 그후 야곱의 자손들과 이마에 666인 을 받지 않는자들과
7년 환난 동안의 순교자들이 모두 부활해서 천년왕국으로 들어가는 것
입니다.
바로 이 땅에 천년 동안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와 저주와
죽음이 없고 가난과 전쟁도 없스빈다. 주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것입
니다. 이것이 지상 천년왕국 천국인 것입니다. 그때 부활한 모든 성도
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지상에서 세상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4. 신천신지 영원무궁의 세계
천년이 차면 주님께서는 마귀를 무저갱에서 풀어내십니다. 이때 마귀
의 꾀임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그리스도와 하늘나라를 대적
하고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치려고 할 때에 그리스도는 그의 입에서 나
오는 利한 검으로 그들을 다 멸해 버립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께서는 흰 보좌를 배설, 그 위에 앉으시고 모든
부활한 성도들은 그 뒤에 선 후 역사 이래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은
모든 사람들이 부활해서 그 보좌 앞에 서서 심판을 받습니다. 주님께
서는 생명책을 가지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
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나중 심판 받은 사람들은 그때까지 지옥에 있었는데 그후에는 영원한
심판 장소인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마귀와 그 사자와 함께 던져 넣
어서 세세토록 불타며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께서는 신천지를 만드십니다. 이 새하늘과 새 땅 외에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새 예루살렘은 너무나 아름다워
서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해서 단장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리스도를 믿어 부활한 성도, 신부들이 살
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보좌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흐르고 그 강가에는 열두
실과를 맺는 나무들이 나 있고 길은 황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
스도와 신부들이 함께 거하며 지구를 다스립니다.
지구에는 천년왕국 후에 살아남은 주로 야곱의 후손인 유대인을 중심
으로 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 육의 선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지구가 가득차면 수성,화성,금성 등 우주로
무한히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온 우주를 통치하
는 왕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죽음이 없습니다. 앓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습니다.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
로 변화되어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최후의 천국인 것입니다.
에덴 동산을 잃은 후 인간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의 가장 큰 소망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좋아도 '천국이다.천국같
다'고 말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를
흘려 대속의 죽음을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먼저 마음 천국, 다음 교회 천국, 천년왕국, 신천신
지 영원무궁한 세계의 단계를 거쳐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주와 함께
세세무궁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
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육으로 한번 죽고난 다음에
영으로 또다시 죽여 영원히 버림받는 것이 불신자의 운명인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죽으면 그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천국 아니면 지옥, 영광 아니면 영원한
형벌, 두 길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선택해야 할
길은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
문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성경 본문: 계 21:1-7
옛날 서대문교회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 이른 아침에
최자실목사님과 제가 걸어서 교회로 출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좁은 골목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분이 양지 바른 곳으로 뛰어가 서더
니 음지에서 장사하는 친구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이리로 오
게, 여기는 천국일세.'
목사님과 저는 그 말을 듣고 함께 웃었습니다. '천국치곤 너무 초라
하군'하는 생각에서 였지만 그 사람의 그말이 저의 뇌리에 남아서 지
금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이란 말을 '기쁜 것,평안한 것,행복한 것,풍부한 것,
진실된 것'등을 표현할 때 흔히 사용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함과 동시에 그보다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
습니다. 천국이란 하늘나라를 의미합니다. '나라'라는 것이 설립되기
위해서는 주권과 권세가 있어야만 합니다. 쉽게 말하면 통치권자인 대
통령, 국방과 치안을 유지하는 군대와 경찰이 있어야 하며, 이는 기초
적인 필요 요건인 것입니다.
천국도 이뤄지기 위해서는 절대주권자인 한님이 계셔야만 하고 그 하
나님의 뜻을 펼치는 권세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이란
신화적 단어에 불과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
씀은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시는 권세가 우리 인간 사회 속에 직접
들어와서 임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주권
과 권세가 어느 곳에 어떻게 나타날까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
씀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
장 13,14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
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람
을 얻었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반역 이후로 에덴에서 쫓겨나서 완전히 마귀
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의 포로가 되고 병들고 미움과 시기,질투,저
주, 가난,죽음 등 지옥의 세력이 우리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
키는 가운데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흑암
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
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벌써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나라가 우리
가운데, 우리 마음에 와 있고 우리는 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됩
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나라의 주권자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권세인 성령이 우리 심령에
임하셔서 우리의 심령을 주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르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바로 하늘나라요,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리는
이 교회가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
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이 임하여서 점령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용서받은 의가 가득하고 빼앗길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채워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도 못하리니, 하늘
나라는 바로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님들,우리 속
에 천국이 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먼 장래, 미래만 바라보지
말고 현재 내속에 주권자인 예수님이 계시고 그 권세인 성령님이 오셔
서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시오.
이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의와 평강과 희락과 우리 마음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심령천국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곳, 교회에 천국에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환경에 이 천국의 역사가 임하여 있습니다. 오늘
날 완전한 천국이 우리 환경에 임한 것은 아니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을 통해 우리의 환경 가운데도 천국의 역사가 임하여 계십
니다.
주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시고는 죄인의 죄를 사하시
고 병을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고 환경을 평안으로 채우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배고픈 자를 먹이시면서 천국의 증거를 보여주셨습니
다. 오늘날도 여러분, 믿음을 통하여 병든 자가 고침받고 귀신이 쫓겨
나가는 것은 바로 환경에 임한 천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주에서 해방을 받는 것, 이것 역시 환경에 나타난
천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이후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
를 내던 곳에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해서 천국의 역사가 나타나 가시
와 엉겅퀴,저주가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축복이 임하는 것은 바로 천국
의 역사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귀의 억압에서 자유을 얻는 천국의 역사가 우리 가운
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악하고 더거
운 귀신을 쫓아냅니다. 점치는 귀신을, 거짓말하는 귀신을 내어쫓아냅
니다. 이 모든 귀신들에게서 해방을 얻고 우리의 마음속과 가정과 주
위에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채우는 천국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
니다.
그러나 이 천국의 역사가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
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만 역사하는 천국인
것입니다. 믿는 자의 심령 속과 생활과 가저아 이들이 모인 곳인 교회
에만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오늘 적은 부분의 천국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임하여 성령께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
되 넘치게 얻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종교나 의식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으로 오셔서 왕으로 계시고 성령의 권세
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위대한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 믿음.소망.사랑을 우리 심령에 채워주시고 우리
환경 가운데서 미움과 저주와 죄를 제하는 역사를 합니다. 그리고 질
병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귀신을 내어쫓고 평화를 가져오는 천
국의 역사를 우리의 주변에서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2. 육체의 사후에 들어가는 천국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분명한 해답을 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요한복
음 14장1절로 4절을 통해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
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
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은 지금 낙원에 계시며 '너희가 육체의 장막짐을 벗으면 나 있
는 곳에 함께 있기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덤 속에 있으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실체로서 사는 것일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
다. 여러분 우리의 실체가 없다면 처소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살
집이 있으면 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은 실체적인 인간이지, 안개
나 구름같은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성경은 우리는
이 육신의 장막집을 떠나도 분명한 실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천국에 들
어가서 우리 집에 거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될 것을 말하고 있
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바울 선
생이 루스드라에서 전도중 반대자들에게 잡혀서 돌로 맞아 죽었을 때
의 체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체험을 고린도후서
12장 1절에서 4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화샹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낙
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 선생은 자신이 확실하게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온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체험 후 그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강하게 증거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
이어서 그는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
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8,9)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천국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육
신의 장막집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그러나 천국을 체험한 바울
선생은 육신의 장막집을 떠나는 것이 더 좋다고 담대히 말합니다. 그
렇기 때문에 그는 육신의 장막집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우리는 주를 기
쁘시게 하면서 살자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1절로 23절에 그의 간절한 소원을 기록하고 있
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
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세상에 살고 있으면 더 많이 전도하고 교회도 세우니 좋지만 개인적
으로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좋다고 말
했습니다. 바울 선생에게는 죽음이란 하나의 이사를 하는 것이었습니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온갖 핍박 끝에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기 직전, 그의 믿
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겨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르로 주 곧 의로
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
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내가 죽지만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의 재판관 앞에 나가서 의
의 면류관을 받아 쓰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여러분 천국은 확실히
있는것입니다.
3.지상 천년왕국의 천국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실 때
에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살아남은 우리들이 다 들려 공중에
올라가서 7년 혼인잔치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공중 재림인 것입니
다.
천상에서 칠년 혼인잔치가 있을 때 지상은 칠년 환난을 당하게 됩니
다. 이 칠년 환난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는 신부인 모든 성도들을 거느
리고 백마를 타고 지상에 강림하십니다. 이것이 지상 강림인 것입니
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로 16절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
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다라 그 눈이 불꽃 같
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
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
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利한 검이 나오니 그
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
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 칠년 혼인잔치를 마치고 백마를 타고 강림하시면
그 신부들인 부활한 성도들도 모두 다 그 뒤에 백마를 타고 흰 세마포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 강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상 강림을 하자마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잡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버리고 마귀는 무저갱에 천년 동안 가두
어 놓습니다. 그후 야곱의 자손들과 이마에 666인 을 받지 않는자들과
7년 환난 동안의 순교자들이 모두 부활해서 천년왕국으로 들어가는 것
입니다.
바로 이 땅에 천년 동안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와 저주와
죽음이 없고 가난과 전쟁도 없스빈다. 주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것입
니다. 이것이 지상 천년왕국 천국인 것입니다. 그때 부활한 모든 성도
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지상에서 세상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4. 신천신지 영원무궁의 세계
천년이 차면 주님께서는 마귀를 무저갱에서 풀어내십니다. 이때 마귀
의 꾀임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그리스도와 하늘나라를 대적
하고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치려고 할 때에 그리스도는 그의 입에서 나
오는 利한 검으로 그들을 다 멸해 버립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께서는 흰 보좌를 배설, 그 위에 앉으시고 모든
부활한 성도들은 그 뒤에 선 후 역사 이래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은
모든 사람들이 부활해서 그 보좌 앞에 서서 심판을 받습니다. 주님께
서는 생명책을 가지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
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나중 심판 받은 사람들은 그때까지 지옥에 있었는데 그후에는 영원한
심판 장소인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마귀와 그 사자와 함께 던져 넣
어서 세세토록 불타며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께서는 신천지를 만드십니다. 이 새하늘과 새 땅 외에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새 예루살렘은 너무나 아름다워
서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해서 단장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리스도를 믿어 부활한 성도, 신부들이 살
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보좌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흐르고 그 강가에는 열두
실과를 맺는 나무들이 나 있고 길은 황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
스도와 신부들이 함께 거하며 지구를 다스립니다.
지구에는 천년왕국 후에 살아남은 주로 야곱의 후손인 유대인을 중심
으로 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 육의 선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지구가 가득차면 수성,화성,금성 등 우주로
무한히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온 우주를 통치하
는 왕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죽음이 없습니다. 앓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습니다.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
로 변화되어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최후의 천국인 것입니다.
에덴 동산을 잃은 후 인간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의 가장 큰 소망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좋아도 '천국이다.천국같
다'고 말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를
흘려 대속의 죽음을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먼저 마음 천국, 다음 교회 천국, 천년왕국, 신천신
지 영원무궁한 세계의 단계를 거쳐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주와 함께
세세무궁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
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육으로 한번 죽고난 다음에
영으로 또다시 죽여 영원히 버림받는 것이 불신자의 운명인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죽으면 그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천국 아니면 지옥, 영광 아니면 영원한
형벌, 두 길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선택해야 할
길은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
문입니다.
천국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성경 본문: 계 21:1-8
우리 크리스챤들의 궁극적인 소망은 천국이요, 신앙생활하는 최후의 목적
은 안개와 같은 짧은 세상에서 복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 무궁한 천국에 들
어가 영생부활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소망은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주실 날을 가까이 앞두고 슬퍼하는 제자들을 보
고 궁극적인 위로의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4장1절
부터 있는 말씀이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
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개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천지가 개벽해도 변함이 없는 위로의 말씀을 해 주
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100년 미만의 육신의 삶이 마지막인줄 알고 내세를
준비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에 불란서에서 2,000년 된 고분에
서 꽃씨를 발견하여 땅에 심었더니, 한 달이 훨씬 지나서 싹이 나고 잎이
나더니 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일년생 식물인 꽃씨나 옥수수나 콩을 땅에 심으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 수
십 배 수백배로 열매를 맺으며 다시 사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육신만
얼마 살다가 무덤에 들어가 끝나는 줄 아십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어 주시고 부활승천하신 목적도, 영원
한 고통의 지옥에 들어갈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복락의 천국이 들어가게 하
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가 사탄이 불못에 들어갈 때가 얼마나 못된 줄 알고, 크리스챤들과 신
학자들의 마음에 들어가 궁극적인 목적인 천국과 지옥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믿어도 천국이나 지옥같은 것은 믿지 말라고 합니다. 그
것은 현실도피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우리 크
리스챤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천국에 없는 것들이 있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먼저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을 대조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창세기에는 인류역사의 시작이라면 요한계시
록은 역사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는데 (1장1절) 요한계시록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셨고(21장1절),
창세기에는 태양을 창조하셨는데(1장 16절)요한계시록에는 햇빛이 쓸데없
더라(21장23절)했고,
창세기에는 밤을 만드셨는데(1장 5절) 요한 계시록에는 밤이 없더라(22장
5절) 했고,
창세기에는 바다를 창조하셨는데 (1장 10절) 요한계시록에는 바다가 다시
없더라(22장 5절) 했고 ,
창세기에는 저주가 선포되었는데 (3장 14-17절) 요한계시록에는 저주가 다
시 없더라(22장 3절).
창세기에는 죽음이 시작되었는데 (3장 19절)요한계시록에는 다시는 사망이
없더라(21장 4절),
창세기에는 생명나무에서 쫓겨났는데 (3장 24절) 요한계시록에는 낙원이
회복되었고 (22장 14절),
창세기에는 슬픔과 고통이 시작되었는데 (3장 17절) 요한계시록에는 눈물
과 슬픔이 다시는 없더라(21장 4절) 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처럼 옛 하늘과 옛 땅도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불로 새로워지고 깨끗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벧후 3:10-13절)
다시 천국에 없는 것들과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말씀드린다면
1. 천국에 없는 것들
(1) 밤이 없습니다.
밤은 어두운 것인데 흑암은 죄악의 상징입니다.뉴욕이나 시카고, 로스앤젤
레스등지에서는 해가지면 벌써 거리를 걸어다니지 못합니다. 서울도 그런
거리가 벌써 생겼습니다.대부분의 범죄가 밤에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잠
자는 일 외에 밤을 싫어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에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라고 말
씀했습니다.
천국에서는 지존파, 온보현씨같은 무서운 사람도 결코 없습니다.
(2) 질병과 고통이 없습니다.
고통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세상에는 고통을 제거하는 것도 고통이
많습니다. 무서운 질병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이 심해서 빨리 죽게
해 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질병이 없습니다. 암병도 콜레라도 페스트,관절염도 없습
니다.사람을 괴롭히는 질병이 다시는 없는 곳입니다.
(3) 죽음과 슬픔이 없습니다.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슬픔이 손못대는 집이란 이세상에서 아
무데도 없습니다. 거리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며 즐겁게 웃지만, 웃음
뒤에도 상처받은 마음과 슬픔이 있습니다.
엊그제도 외국 에스토니아(Estonia) 호 여객선이 침목되서 850여명이 떼죽
음을 당했습니다. 인도에는 페스트가 유행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의사도
병원문을 닫고 도망간다고 합니다. 중국에선 콜레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슬픔이나 눈물이나 죽음이 다시는 없는 곳입니다.
(4) 염려와 근심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걱정과 근심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목사도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바로하지 못하고, 마귀의 시험거리 노릇할 때는 밥맛
도 없고, 밤잠도 못자고 근심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도 많고, 집도 좋고, 건강도 있어 보이는데 탁 털어놓고 말
할 때 보면 걱정거리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그러나 천국에는 우리를 괴롭히는 근심과 염려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
(5) 유혹과 죄가 없는 곳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조상을 유혹하여 범죄케 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 왔습니
다. 아무리 분명하고 좋은 문화를 가진 나라에도 죄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마귀의 유혹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날 때부터 죄중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죄악의 씨는 갓난애기 속에도 있고 독이 있는 꽃어럼
점점 함께 자랍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의 유혹을 순간순간 받습니
다. 하나님의 아들도 유혹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유혹에 넘어간
일은 없습니다.
세상과 육신과 마귀는 항상 우리를 대적하고 유혹합니다. 죄의 쾌락을 즐
기도록 유혹하지만, 그후에는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죄의 유혹을 피해야 합니다.
(6) 바다가 없습니다.
바다가 없다는 말은 물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생명수 강은 흐른다고 했
습니다. 바다가 없다는 것은 폭풍이 없다는 뜻입니다. 폭풍과 파도가 얼마
나 무섭습니까? 엊그제 에스토니아(Estonia)호가 침몰하여 850여명이 죽지
않았습니까?
사도 요한이 이 계시를 받아 쓸 때 밧모섬에 있었는데, 무서운 폭풍과 파
도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을 것입니다.그는 폭풍과 같은 생
애를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연상했을 것입니다.
이제 요한에게 잠깐 동안 천국의 장면을 보여 주셨는데,그곳에는 무서운
파도나 폭풍이 없고 오직 평화와 기쁨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세상으리
살아갈 때, 폭풍과 싸우는 선원들과 같이 세상을 파도와 폭풍과 싸우게 됩
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폭풍과 파도가 없습니다.
@ 바다는 인간을 고달프게 합니다.
바다에 파도가 일고 바람이 불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무서운 파도가
뱃전을 때리기도 합니다. 고달프고 피곤합니다. 세상에는 참 평안과 안식이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에서 나간 비둘기가 쉴 곳을 찾지 못한 것 같이 세상
에는 참평안과 쉴곳이 없습니다.
@ 바다는 이별을 의미합니다.
옛날 비행기가 없을 때 사람이 멀리 떠나 갈때는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갑
니다. 사랑하는 식구가 죽을 때 그 이별의 슬픔이 얼마나 큽니까? 그러나
천국에는 이런 이별이 없습니다.
(7) 변함이 없습니다.
나이애가라 폭포도 해마다 조금씩 침식해 들어 갑니다. 캘리포니아 해안가
도 일본도 조금씩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대 애굽도 바벧론 제국
도 로마도 다 폐허로 남고 없어졌습니다. 뉴욕도 시카고도 도쿄도 서울도
다 변하여 없어지는 때가 옵니다.
그러나 천국은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파괴되는 것도 없습니다.
2. 천국에 있는 것들
천국에 있는 것들을 다 열거할 수도 없고, 인간의 말로 그 아름다움을 표
현할 수도 없습니다.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의 소문을 듣고 설마 그렇기
야 할까 하고 찾아왔는데,와서 보니 자기가 들은 소문은 사실의 절반도 못
된다고 한 것처럼, 천국의 아름다움은 이 세상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
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인 것이, 만일에 다 표현할 수 있다면 천국을 너무 사
모한 나머지 세상일에 등한히 하고 빨리 죽고만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몇가지만 세상말을 빌려 표현한다면,
(1) 아름다운 도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웅장하던 로마도시도 성경은 창녀와 같다고 했는데, 새 예루살렘
성은 곱게 단장한 신부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해함도 악함도 위험도
없습니다. 그곳에는 술집도 병원도 형무소도 없는 곳입니다.
그 성은 순금으로 포장된 길고, 열두 진주 문이 있고, 아름다운 집들이 있
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거룩하고 행복해 합니다.
(2)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천국에는 슬픔과 근심이 없고, 기쁨과 행복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래
가 들려 옵니다. 기쁨으로 뛰노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에디오피아와 같은
헐벗고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도 없고 질투,증오,악독이 없이 사랑과 기쁨
만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 제일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에 천 배를 더해도 천국의 기쁨을 표
현할 수는 없습니다.
(3) 아름다운 집이 있습니다.
내 집 내 가정은 제일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행할 때 일류 호텔에 머무는
것보다 내 집 내 가정이 더 좋고 행복합니다. 천국에는 완전히 안식할 수
있는 집이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Mansion) 고 했습니다. 천국에서 셋방살이 안해도 됩니다. 영원한 내 집
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4) 천국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천국에 황금거리가 있고, 아름다운 집이 있고, 면류관이 있고 별것이 다
있어도 예수님 안계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국에는 예수님이 게셔서 영
원히 그분과 함께 살게 됩니다.
"내가 다시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빌리 썬데이(Billy Sunday) 목사님은 "예수님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그분을 만나면 나는 그의 발 앞에 엎드려 나를 구원해 주시고 사용해 주심
에 대해 감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천국에는 우리는 영원히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분과 함께 살게 됩니다.
3. 천국에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
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공적이나 혹은 세례를 받았거나,집사,권사가 되었다고 천
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영접해야, 영
생을 얻었다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14절에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 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그의 보혈로
죄씻음 받으면, 어떤 죄인이라도, 지존파같은 놈도, 김일성같은 자도 구원
받을 수가 있습니다.
호텔에 들어가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쫓겨
나 되돌아 가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에 예약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쫓겨나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신 말씀대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고, 그후에는 영원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할렐루야 !
성전에 기둥되게 하리니
성경 본문: 계 3:7-13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
를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
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
리라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 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
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켯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
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
앗지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아니하리라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
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
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는글)
기둥은 건물의 기초로 한 건물이 지탱하는데 매우 중요 합니다.기둥
이 튼튼 하지 못하면 조그마한 비바람이 불어도 건물이 넘어가고 말것입니
다. 오늘날 심각하게 궁핍한것이 많이 있습니다.식량의 궁핍,자원의 고갈,
도덕의 빈곤등이 그렇습니다.그러나 이것보다도 더 궁핍한것은 인물의 빈
곤입니다.오늘날 교회생활도 기둥처럼 성도의 무거운 짐을 지는 인물이 필
요 합니다.이러한 기둥의 역활을 하는 성도는 어떤 고난과 풍파가 휘몰아
친다하더라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에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떠 받드는 기둥으로 항상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려면 무거운 짐을 지고도 말이 없어야 합
니다.
(골1:15-17)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주를 섬겨야 합니다(행20:19). 괴로
울 때에도 ,환난의 때에도,시험의 때에도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요지부
동의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삶의 근거 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위에 서야 합니다.
향과 기도
성경 본문: 계 8:1-5
요한계시록에는 3대 재앙이 예고되어 있는데 그것은 일곱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대접의 재앙입니다. 인을 뗄 때마다 사건이 터지고 나팔
을 불때마다 재앙이 임하고 대접을 쏟을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임
하는 모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계시록 8장은 일곱번째 인을 떼었을 때 일어난 사건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천사가 금향로에 많은 향을 담아 하나님께 드리는데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드리며 그 향과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 갔다는 것입니다. 향과 기도가
함께 하나님께 올라 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1. 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드는가?
1) 구약의 경우
구약의 경우 향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향으로 주
로 화장용이나 선물용으로 사용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향으로 그것은 제조방법이나 사용방법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0:22이하를 보면 향 만드는 법이 나와 있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
습니다.
첫째, 최고의 향재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여러 가지 향 소합, 나감, 풍자 등 최고급 향을 배합하되 동일한 양
으로 해야 합니다.
셋째, 소금을 넣어야 합니다(다른 것은 첨가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시간도,인생
도, 물질도 다 쓰고 남은 찌꺼기를 드리면 안됩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 해
거둔 첫 수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나랏님께 진상을 했습니다.
어느 농부는 매년 제일 빨리 거둔 쌀을 대통령께 바친다면 청와대로 가져
온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게 드리는 향을 최고의 것이어야 했던 것처럼 기
도의 시간도 제일 좋은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건축자재는 최고 최상품이었습니다. 금은 오빌
에서 수입한 정금이었고 나무는 그 향이 은은한 레바논의 백향목이었고 둘
은 석질이 가장좋은 예루살렘 근교의 것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언제나 최상품이어야 합니다. 최고의 향품을 일정량으로 배합하
겠다는 것은 조화와 균형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좋다면서 살립도 안하고 성경도 읽지 않고 교회도 안
나오고 사람도 안만나고 기도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은혜를 받고나면 평소 싫었던 사람이 좋아져야 합
니다. 멀리하던 사람이 가까와집니다. 지옥처럼 느껴졌던 가정이나 세상이
할 일 많은 일터가 됩니다. 귀찮던 일들이 즐거워지고 멀어졌떤 교회가 사
랑스러워지고 힘없던 신앙생활에 활력이 넘치게 됩니다.
세 가지 향을 동일한 중수로 배합했던 것처럼 기도생활은 조화와 균형을
잃으면 안됩니다. 예를 들면 가정주부의 경우 "하나님 아버지!"도 잘 불러
야 하지만 "여보!"고 잘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생활이란 외골수로 빠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소금을 쳤다는 것입니다.소금을 치면 세가지 현상이 벌어
집니다.
하나는, 순이 죽게 됩니다.
배추도 생선도 소금을 치면 순해집니다. 자칫 기도생활이나 영적체험에 깊
이 빠지다 보면 팔딱 거리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거기다 소금을 쳐야 합
니다.
둘은, 맛이 납니다.
제아무리 설렁탕,곰탕,삼계탕이 진국이라도 소금을 치지 않으면 맛이 없습
니다. 제아무리 열심이고 기도를 잘 하고 성경을 많이 알아도 그것 때문에
맛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맛없는 음식은 따돌림을 받습니다. 소금치지 않는 기도생활이나 신앙생활
은 이웃이나 교회공동체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됩니다. 소금치고 맛있는 사
람이 되어야 합니다.
셋은,고칩니다.
열왕기하 2:19-22을 보면 여리고의 물근원에 문제가 있어 그 물로 농사를
지으면 곡식이 익기도 전에 떨어졌습니다. 엘리사가 어느날 물 근원(수원
지)소금을 던져 그 물을 치료했습니다. 내가 소금처럼 녹아 희생하면 가정
도, 교회도, 역사도 치료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치 소금이 녹아내리듯 십자가에 자신을 던졌기 때문
에 모든 인간이 고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소금은 그대로 있으면 안됩니다. 녹아야 소금입니다. 소금은 맛을 잃으면
안됩니다. 맛 잃은 소금은 쓰레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향은 그 사용방법도 일반향의 용도와 달랐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하나님을 위해 만든 향은 거룩한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빈다.
예를 들어 자기몸에 바른다든지 화장실에 뿌리다든지 하면 안됩니다. 기도
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신령한 문
제를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이사문제, 집 사는 문
제, 어디가는 문제, 누구만나는 문제,따위가 기도의 전체를 차지한다면 그
것은 육체를 위한 기도로 끝나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 드리
는 신령한 기도를 수단이나 방법으로 사용해선 안됩니다. 개인의 운명이나
점쳐주고 대소사를 밝혀주는 것으로 기도를 전락시켜선 안됩니다.
둘째, 아침 저역으로 분향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0:7-8을 보면 아침마다 아론이 분향했고 저녁 등불켤 때 다시
분향했습니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고 저녁은 하루의 마감입니다. 그러니
까 분향으로 시작하고 분향으로 마치라는 것입니다. 분향은 기도입니다. 기
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끝내야 합니다. 만일 기도소리를 들으
며 태어나고 기도하며 살다가 기도로 숨을 거둘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행
복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기도는 곧 삶이어야 합니다.
셋째, 제사장 외엔 분향하지 못했습니다.
역대상 23:13을 보면 아론과 그 자손들만 분향하되 그들도 몸을 성결케하
고 분향한다고 했습니다. 레위기 10:1-2을 보면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
후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불에 타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 소멸되어
죽었습니다. 역대하 26:16-19을 보면 웃시야 왕이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영
역을 침범해 분향하려다가 나병에 걸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분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분향입니다. 헌신짝처럼 취급해도 안되고 그 필요성을 외면해도 안
됩니다.
2) 신약의 경우
크게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입니다. 본문에서 밝힌대로 향과 기도가 함께 금향로에 담겨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은 곧 향이 기도임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향과 기도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받으시고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
입니다. 그리고 금향로에 담는다는 것은 기도가 그만큼 귀한 것이기 때문입
니다.
둘은, 삶을 뜻합니다. 고린도후서 3:15을 보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
고 했고 3:14을 보면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탸내시는 하나님
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예수 향기를 날릴 수도 있고 악취가 날 수도
있습니다. 백합화는 바람이 불면 그 향이 널리 퍼집니다. 그리고 찢기면 더
향이 짙어집니다. 우리가 풍랑을 겪고 상처받고 찢길 때 그 사건이나 아픔
때문에 예수 향기가 널리 전파된다면 정말 좋은 향이 될 것입니다.
2. 향과 기도의 의미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향은 성도들의 기도이며 하나님께 올라가는 향연
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만든 향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고 다른 향은 섞어
만들어도 안됩니다. 그리고 그 향을 드리는 장소 다시 말하면 분향 장소는
성전이라야 합니다. 아무데서나 분향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정한 방법대
로 정한 사람이 정한 장소에서 해야 합니다. 왜 성전에서 분향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이 성전에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라고 했고 7:16을
보면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솔
로몬이 성전을 짓고 난 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때 주신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무소부내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을 처소로 삼으시고 그곳에 계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성전으로 나와야 합니다.
둘째, 성전에서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5을 보면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
니"라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면 비를 내리고 재앙을 거두시고 죄를
사하시고 그 땅을 고쳐주신다고 했습니다.
얼마전 농수산부 직원들이 산에 올라가 돼지 대가리를 상에 올려놓고 넙죽
히 엎드려 절하며 비를 달라고 기우제를 지냈스빈다. 우선 세계화를 표방하
고 최첨단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국가 관리들이 돼지 대가기를 놓고 절하며
기우제를 지냈다는 그 발상이 기가 막혔습니다.
돼지 대가리 놓고 절하는 것이 세계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
습니다. 만일 그때 바로 혹은 그 다음날 비가 내렸다면 농수산부는 기우제
때문이라고 떠벌렸을 것이빈다. 제때에 비내리고 바람이 순하게 부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고 바람의 방향을 돌리
시는 것입니다. 미국도 일본도 과학의 힘으로 비오게 하고 태풍을 막고 땅
갈라지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셋째, 성전에 영원히 계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6을 보면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고 했습니
다. 잠깐 머물다보면 떠나는 곳이 아닙니다. 영원히 거기 계시겠다는 것입
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집을 언젠가 그대로 두고 떠나야 할 곳이빈다. 그
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론으로 본문 8:5을 주목해야 합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상달된 성도들의 기도 속에는 순교자의 피의 호소도 있었습니다.
고난받고 핍박받은 성도들의 탄원도 있었습니다. 그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
게서 드디어 응답으로 심판의 불을 쏟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는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응답됩니다. 문제는 기도해
야 하는데 안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되는데 안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입니
다. 기도하긴 하는데 의심하는 것 이것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향
을 드리듯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향을 바로 만들어야 하듯 기도를 바르게
합시다. 성전에서 분향해서 하듯 성전에 나와서 기도합시다. 향이 하나님께
올라가듯 내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을 믿고 기도합시다. 향은 향기로
운 것처럼 내 기도와 삶이 향기나는 것이 되게 합시다.
주여 기도를 받으소서.
|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