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설픔"( 한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이라는 책을 처음 낸 것이 51세 였다.
책을 쓸 때는 몰랐는데 나에게 첫 책은 육신이 태어난 것은 1961년 이였는데 내 정신이 온전히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내가 나.로... 내가 이 세상속에서 분명한 자아(自我)로 서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조이숙 선생님이 첫 시집을 내시다고 추천사를 부탁받고 부끄럽지만 감히 세상의 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우주적인 잔치에 마음을 보태봅니다.
내 인생은 10대에는 마냥 삶에 대해서 무지갯빛 꿈을 꾸었고 20대에는 세상속에서 꿈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녔다. 30대,40에는 한의사라는 직업덕분에 많은 사람과 삶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속에서 보았다. 상처투성이의 영혼들의 모습을... 20대에 무엇도 모르고 좋아했던 랭보의 시처럼... 내면의 피를 철철 흘리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속에 빛나고 아름다운 영혼이 있음을 확인하고 경험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낸 것이 어설픔이였다.
조 이숙 선생님을 만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전쟁같은 현실에서 제대로 치료는 고사하고 쉴 수도 없는 전사처럼 정신없이 살아내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때 그녀는 계룡산 산속에 있는 '랑데브'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실은 랑데브라는 간판은 그녀가 운영하기전에 본래 건물에 붙어있는 간판을 무슨 이유인지 그냥 쓰셨다. 나는 그녀가 운영하기전에도 그 랑데브라는 식당을 애용했었다. 랑데브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만남이라는 뜻을 의미한다. 산속이라 저녁이면 쌀쌀함을 일찍 느끼는 곳이라 그녀는 두꺼운 외투같은 옷을 입고 계셨다. 그렇게 그녀를 만났다. 전투복같은 옷을 입고 전장의 한복판에 서있는 그녀를...
사람을 관찰하는 직업을 가진 한의사..다 보니 한때는 문학을 꿈꾸었고 인문학을 좋아하는 한의사.다 보니 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아니였지만 나름으로 많은 것이 느껴지고 이해하고 상상하는 또 다른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어쩌다 시골에 있는 저희 한의원에 와서 차를 마시며 침을 맞으며 황토방에 쉬었다 가시고 했다.
어릴때 보았던 만화중에 전차를 모는 독일병 병사가 길에 난 들꽃을 피해 운전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나에게 평생 기억되는 아름다운 한 컷이였다. 인간안에는 겉하고 다른 또 다른 속이 있음을...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있음을...
그때 보았던 조 이숙선생님은 세상의 전투복속에 아름다움을 꿈꾸고 더 깊은 것을 갈망하는 소녀의 여리고 선한 내면이 있었다. 봄이 오는 겨울에 살얼음 밑에 흐르는 맑은 물처럼...
그랬던 그녀가 60대 초에 시집을 들고 찾아 오셨다.
몸은 전쟁에서 많이 상하신 채로 그런데 눈빛과 얼굴은 해맑은 모습으로 아이처럼....
차마 그때는 말이 안나와 못했지만 지면을 통해 말씀드린다.
정말 축하한다고... 정말 애쓰셨다고... 선생님은 승리자라고...
시인은 이 세상에 고귀한 자다.
아름다움을 보고 삶속에서 의미를 보석처럼 채굴하여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별빛처럼 보여주는 시인은 정말 위대한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