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그려지는 노랫소리. 카리용
길을 걷다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 호기심에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높은 종탑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이다. 악기의 정체는 2004년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78m 높이에 78개의 종을 가지고 있는 카리용. 지진이나 전쟁의 신호를 알리던 종으로 시작한 카리용은 1600년경에 종을 음계 순서대로 달아놓아 악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카리용을 배운 오민진 교수를 만나 카리용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어본다.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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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용은 모양과 크기가 다른 여러 종을 음계 순서대로 달아 놓고 치는 타악기다.
대전과기대 혜천타워 12층에 위치한 카리용은 지난 2001년 설치됐다.
카리용 종은 타악기 중 최대 규모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됐으며 78개의 청동으로 제작, 무게는 약 50톤이다.
또한 카리용 소리는 반경 2~3km까지 울려 퍼져 천상의 소리로 평가받는다.
[에듀스토리]국내 최초 카리오너 오민진 대전과기대 교수
오민진 대전과학기술대 음악계열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카리용(carillon) 전문 연주자(carillonneur)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네덜란드 카리용 학교(BCN)와 유트레트 음악학교(Utrecht conservatory)에서
관련 공부를 했다.
대전에서 유일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몇 안 되는 카리용 연주자인 오 교수는 한국 카리용의 '선구자'로 꼽힌다.
오 교수와 카리용과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서울예고와 연세대를 나온 오 교수는 결혼과 함께 대전에 내려와 음악 활동을 했다.
2005년 대전과기대 교수로 부임했다.
이 대학 상징탑인 '혜천타워'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카리용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카리용은 지난 2004년 7월5일 '기네스협회(Guinness World Records Limited)'에서 세계 최대 규모 인증서를
교부받고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적인 '명물'이다.
이처럼 귀한 '물건'을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오르간을 전공한 오 교수는 카리용 역시 건반악기인 점을 감안, 전문적인 연주 스킬을 배워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라는 옛말처럼 오 교수는 부임 첫해 겨울 세계 카리용의 메카인 네덜란드로 날아갔다.
오 교수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방학 때면 어김없이 한국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유트레트 음악학교에서 카리용 전문연주 교육을 받았고 관련 학위를 취득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카리오너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오 교수는 이후 네덜란드, 미국 등지에서 초청 연주를 하고 세계 카리용 대회(world carillon congress) 등에 참석하며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지금도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카리용 연주를 위해 세계 각지를 누비고 있다. 오 교수 명성을 들은 미국 등 세계 유수의 대학이 스카우트 제의를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오 교수는 아직 우리나라 국민이 카리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진단한다.
때문에 선진국에 비할 때 카리용 연주를 듣는 문화도 성숙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오 교수는 “지난 2007년 대전과기대에서 카리용 연주회를 열었는데 혜천타워 밑에서 참석자들이 모두 양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며 “이는 길을 걷거나 벤치에 걸터앉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카리용 연주를 듣는 선진국 문화와 비교해 봤을 때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오 교수가 현재 우리나라의 카리용 대중화가 필요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험난한 여정의 시작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대전과기대에 있는 카리용은 하루에 3차례 짧은 곡을 연주하는 것이 전부다.
카리용 연주 소리는 반경 3㎞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대학본부와 의견을 모아 지역 주민을 일일이 만나며 카리용 연주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식으로 카리용 대중화의 첫 걸음을 시작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또 광복절과 같은 국경일에 카리용 애국가 연주를 정례화하거나 신년 타종행사도 혜천타워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아이디어를 모아나가는 중이다.
또 우리나라 외에 카리용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필리핀 등과 연계 세계 카리용 대회를 한국에 유치한다는 장기적 포부도 갖고 있다.
오 교수는 지금도 카리용 앞에 서며 마음이 설렌다. 작은 손으로 10t이 넘는 종을 울린다는 생각을 하면 감개가 무량하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하늘에다 수채화를 그리는 느낌”이라고 카리용 연주를 하면서 자신이 받는 감흥을 전했다.
오 교수는 음악 교육에 대한 자신의 소신과 제자들에 대한 애착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음악 교육에 대해서는 클래식(순수)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요즘 실용음악이 대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데 기초가 다져져 있지 않으면 실용음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대학 음악계열이 완전히 실용음악과로 독립하지 않은 이유도 학생들에게 클래식 음악 기초를 확실하게 교육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이어 “학문 사이클로 볼 때 이제는 클래식 음악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제자들에 대해서는 “어느 분야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음악을 하고자 한다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전문 연주자, 교육자, 음악산업 경영자 등 여러 가지 진로에 대해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