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릴리를 위하여
릴리는 마당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오솔길을 내려다봅니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 쪼이는 봄날 오후입니다.
제임스가 학교에서 돌아 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릴리와 같이 놀아 줄 친구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제임스 뿐 입니다.
따스한 봄이 시작되었고, 제임스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으젓 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제임스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하루 종일 같이 산과 좁은 들길로 뛰어다녔고 수풀 속에 숨어 숨바꼭질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러나 제임스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릴리는 언제나 혼자 집을 지키며 제임스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릴리와 놀아 줄 친구는 아무도 없습니다.
앞집에 살면서 같이 놀던 릴리의 친구 또리는 얼마 전 새로운 주인을 만나 어디론가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더욱 제임스가 기다려집니다.
제임스 엄마와 아빠는, 봄이 시작되고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 밭으로 갔고, 새로 입학한 릴리는 학교로 갑니다. 그래서 릴리는 제임스가 오기 까지는 언제나 혼자 집을 지키며 제임스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산으로 삥 둘러싸인 조그마한 농촌 마을은 집집마다 농사 준비로 바쁩니다.
어른들은 모두 밭으로 나가고 텅 빈 집들은 조용히 낮잠을 잡니다.
들판에 있는 밭 보다 산비탈에 있는 밭들이 더 많은 농촌이라 어른들은 산비탈에서 밭일을 합니다.
마당에서도 비탈 산밭에서 일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르릉...-
통학버스 소리가 오솔길 끝 큰길에서 들려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들려오는 학교의 노란 통학버스입니다. 그 소리는 이제 제임스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릴리는 급히 일어납니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며 다시 큰 길로 사라지는 노란 통학버스를 바라봅니다.
릴리는 더욱 힘차게 꼬리를 흔듭니다. 가방을 메고 뛰어 오는 제임스가 보입니다. 버스에서 내린 제임스는 언제나 집을 향해 뛰어 옵니다.
이곳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제임스밖에 없습니다. 제임스의 친구는 언제나 릴리입니다.
릴리와 같이 놀며 지난 시간이 벌써 6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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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에서 살고 있던 이모가 놀러 왔다가 제임스에게 선물로 주고 간 예쁜 강아지였지만, 이젠 제법 커서 집도 잘 지키고 가족들과 많은 정이 들어 이모를 찾지 않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친구가 없던 제임스는 너무나 좋았습니다. 언제나 예쁜 릴리와 놀며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엄마 아빠도 제임스가 릴리와 같이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좋았습니다. 밭일을 나갈 때는 언제나 둘이 사이좋게 집에서 노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야! 릴리, 날 기다렸지?”
마다에 들어서자 제임스는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릴리를 번쩍 들어 안아 줍니다.
“야. 그만, 그만 해 간지러워!”
릴리는 사정없이 제임스의 얼굴을 핧다 줍니다. 언제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릴리는 껑충 뛰어 올라 반갑다는 인사를 합니다.
“엄마, 아빠는 또 밭에 가셨구나..... 릴리야 잠시 기다려.”
제임스는 잠시 방에 들어가 책가방을 던져두고 곧 밖으로 나옵니다.
릴리는 꼬리를 흔들며 제임스 앞에서 고개를 쳐들고 꼬리를 흔듭니다. 릴리는 제임스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다음 제임스가 무었을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알았어! 가자!”
제임스 말이 떨어지자 릴리는 어느 사이 앞장서 집을 나섭니다.
“짜아식! 그렇게 바쁘니? 좀 천천히 가.”
저만치 앞서 가는 릴리를 향해 소리를 지르지만, 릴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좁은 산길로 향합니다.
“또 그곳으로 가니?”
부지런히 릴리 뒤를 따르던 제임스가 우뚝 섰습니다. 앞 서 가던 릴리도 우뚝 서며 뒤를 돌아봅니다.
“엄마, 아빠한테 학교 다녀왔다고 알려야지.... 그래 야 걱정들을 하시지 않지... 매일 하는 것도 몰라?”
“알았어! 알았어....빨리 가기나 해.”
좁은 산길을 숨을 헐떡이며, 다시 릴리는 비탈길을 오릅니다.
엄마 아빠가 일하고 있는 비탈길 돌밭으로 간다는 것을 제임스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학교나 어디 집 밖에 나갔다 오면 꼭 돌아왔다는 인사를 드리는 것을 릴리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응, 학교 갔다 왔구나.... 집에서 놀지 뭣 하러 또 왔니?”
“으응, 왔어!”
릴리와 제임스를 본 아빠 엄마는 반갑다는 듯 잠시 일손을 멈추고 릴리와 제임스를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아빠, 좀 쉬었다 해요. 엄마도 좀 쉬고요.”
-2-
제임스는 어른스럽습니다. 땀을 흘리는 아빠 엄마가 퍽 힘들어 보입니다.
“괜찮다.... 그늘에 가서 놀아라. 한 참만 하면 밭 일이 끝나겠다.”
아빠 엄마는 다시 밭일을 시작합니다.
제임스는 엄마 아빠 일을 도와드리고 싶지만, 아직 밭일을 할 줄 모릅니다.
“아빠, 릴리하고 놀다 올 게요 다 끝나면 불러요.”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며 제임스는 산 비탈길을 따라 달려갑니다. 릴리가 놀란 듯 제임스의 뒤를 따라 뜁니다.
한참을 뛰어 비탈길로 올랐습니다. 밭에서 일하는 아빠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좁은 오솔길 양쪽으로 뾰족한 바위들이 마치 학교 아이들처럼 줄지어 서있고 하얀 눈들로 덮여 있던 곳에는 푸른 숲들이 우거져 있습니다.
“야! 여기가 좋다. 나무도 많고 앉아 놀기도 좋다.”
비탈길 바위 옆에 조금은 넓은 풀밭입니다. 그동안 찾지 못했던 새로운 곳입니다.
“야! 정말 쉬기 좋다. 왜 이런 곳을 몰랐을까?”
릴리도 헉헉거리며 풀밭에 넙죽 엎드리며 다리를 쭉 폅니다.
“릴리야! 그전에는 숨이 차서 이곳까지 올라오지 못했잖아. 봐라, 이렇게 숨이 차는데.....”
제임스가 풀밭에 벌렁 누워 하늘을 쳐다봅니다. 봄여름 가을 겨울 푸르게 자라온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이 깊은 우물 속 맑은 물이 되어 곧 제임스에게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갔습니다.
“이제 시원하지?.”
“으응, 멀리 오니 좋구나... 이런 곳이 있어서!”
“이제는 이곳으로 오자.”
“그렇게 좋니?”
“봐라, 이렇게 나처럼 누워서 저 조그마한 푸른 하늘을 쳐다봐. 얼마나 시원하니?”
“쳇.... 나는 너처럼 하늘을 쳐다보고 누울 수 없잖아.....”
“으응, 그렇구나.... 그럼 엎드려 고개만 쳐들고 봐.”
“싫다.... 고개 아픈 짓 왜 하니.... 너나 벌렁 누워 실 컨 하늘을 쳐다봐라.”
“하하하.... 그렇구나..그럼 너는 편안하게 넙죽 엎드려 시원한 풀냄새나 실 컨 마시며 푹 쉬어라.”
“할 수 없지. 그렇게 할 수 밖에..... ”
릴리는 쭉 뻗은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숨을 길게 내 쉬었다 다시 길게 빨아들이며 향긋한 풀 냄새를 맡습니다.
집 마당에서 늘 마시는 공기와는 아주 딴 판입니다. 너무나 시원하고 향기로운 풀 냄새입니다.그전에도 오솔길로 올라와 잠시 놀다갔지만, 오늘 같은 시원하고 향긋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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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없었습니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노래 소리도 오늘 따라 더욱 예쁘게 들려옵니다.
“저 새는 노래도 참 잘하지?”
“으응, 처음 들어 보는 노래 소리야.”
“무슨 새야?”
“나도 몰라.”
“그냥 눈 감고 듣기나 해.”
“그래 그래...... 알았어.”
제임스도 스르르. 릴리도 스르르 눈을 감습니다. 제임스는 벌렁 누워 하늘로 향하고, 릴리는 납작 엎드려 오솔길로 향합니다.
제임스와 릴리는 너무 좋아 눈을 감은 채 빙긋이 웃음을 띱니다.
“어어?”
릴리는 눈을 번쩍 뜹니다. 두 귀를 쫑긋쫑긋 합니다. 틀림없이 어디선가 가느다란 방울소리가 들려옵니다.
“아! 방울뱀이다!”
무척 큰 검은 방울뱀이 두 갈래 혀로 날름날름 춤을 추며 제임스 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긴 꼬리를 들어 올려 흔들며 방울소리를 내며 제임스가 누워있는 풀밭으로 미끄럼 타듯 사르르 다가옵니다.
뱀 중에서도 제일 크고 독이 많고 무서운 방울뱀입니다.
덤불 숲속에 숨어 있다가 제임스와 릴리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입속에서 두 줄기 긴 혀를 날름거리며 빠른 속도로 제임스에게로 다가옵니다.
“야! 안 돼! 제임스! 제임스!.”
릴리는 제임스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두 갈래 긴 혀를 날름거리며 미끄럼 타듯 스르르 제임스에게 달려드는 방울뱀을 향해 머리를 길게 빼며 앞을 막아섭니다.
“어서 도망가! 제임스!!.”
릴리는 앞다리로 방울뱀을 차내고 뒷다리로는 제임스 얼굴을 힘차게 차면서 방울뱀에게 달려듭니다.
“음..왜 이래 릴리야?”
“빨리 피해 방울뱀이야!”
“뭐, 방울뱀?”
“빨리 빨리 피해!”
소리를 지르며 릴리는 제임스에게 달려드는 방울뱀을 다리로 짓누릅니다.
“야! 릴리. 빨리 도망가!”
제임스는 방울뱀과 싸우고 있는 릴리를 힐끔 뒤돌아보며 오솔길 아래로 달려내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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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빨리 도망쳐 릴리야....”
계속 뒤 돌아 보며 소리를 질렀지만, 릴리는 제임스 뒤를 따라 오지 않습니다.
방울뱀은 아주 무서운 뱀입니다.
산과 들이나 산속 덤불숲에 숨어서 먹이를 발견하면 한 입으로 꿀꺽 넘기거나 이빨로 독을 쏘아 상대방을 기절시키는 아주 무서운 뱀입니다.
릴리의 앞쪽 발에 눌린 방울뱀은 그 굵은 몸을 획 들어 순식간에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 릴리의 다리를 꽉 물고 무서운 독을 쏘아 냅니다.
릴리와 방울뱀의 싸움은 계속됩니다.
“안 된다, 이 녀석!”
“너, 나한테 혼나 봐라!”
릴리는 있는 힘을 다해 두 앞발로 방울뱀의 몸을 꽉 누르고 꼼짝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독이 오를 때로 오른 방울뱀은 몸이 짓눌려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바싹 쳐들고 릴리의 다리 여기저기에 독을 쏘아 넣기 시작합니다.
“아이쿠! 아...아...”
릴리는 신음을 하면서도 방울뱀의 몸통을 발로 더욱 더 꽉 짓누릅니다.
얼마나 싸웠을까. 릴리의 다리에 힘이 빠지고 얼굴이 부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온 몸에 힘이 쪽 빠지며 스르르 몸을 휘청이며 쓰러집니다.
“으음.....”
갑자기 릴리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거진 숲도, 호수 같은 푸른 하늘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캄캄한 밤으로 변합니다.
방울뱀은 그 순간 꼬리를 높이 쳐들어 흔들며 방울 소리를 내면서 수풀 속으로 스르르 재빨리 사라집니다.
“릴리! 릴리야!.”
오솔길 아래로 뛰어갔던 제임스가 릴리를 부르며 숨을 헐떡이며 올라옵니다.
제임스의 뒤에 제임스의 아빠가 긴 막대기를 들고 빠르게 오솔길로 오릅니다. 방울뱀은 보이지 않습니다.
“야! 릴리야!”
쓰러진 릴리를 발견한 제임스는 소리를 지릅니다. 멍하니 눈을 뜨고 있는 릴리는 제임스의 목소리를 듣고 꼬리를 흔듭니다. 그러나 그전처럼 반갑다고 힘차게 꼬리를 흔들지 못하고 겨우겨우 꼬리를 흔듭니다.
“정신 차려! 빨리 일어나!”
제임스가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릴리는 겨우겨우 꼬리만 흔들며 일어나지 못합니다.
“아빠! 피가 나요!.”
릴리의 다리 여기저기뿐만 아니라 얼굴에서 핏자국이 보입니다.
“방울뱀한테 물렸구나! 안되겠다... 빨리 가축병원으로 데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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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릴리를 덜렁 들어 안고 오솔길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아빠! 빨리 가요!”
제임스의 가슴이 쿵쾅쿵쾅 뜁니다.
제임스의 아빠는 밭일을 하고 있는 제임스 엄마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일 그만하고 빨리 내려와요!”
집으로 돌아 온 제임스와 아버지는 마다에 세워둔 승용차에 릴리를 싣고 마을 가까운 동물 병원으로 갑니다.
“선생님! 빨리 좀 봐 주세요! 릴리가 방울뱀하고 싸워 피가 많이 나요. 어서요...”
수의사 선생님은 릴리를 침대에 눕히고 한참 진찰을 한 후 큰 릴리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습니다.
“어허... 이걸 어쩌나.... 아주 심하게 물렸어요. 우선 해독제를 주사했지만....방울뱀의 독이 워낙 독하고 많이 물려서.....오랫동안 치료해야 하고 또 이 주사약이 워낙 비비싸고...지금 여기에는 없어요... 서울에 주문해야지...”
“얼마나 들어요. 선생님?”
“주사 악 값만 해도 한 천 오백만원은 든단다... 어쩌나? 저대로 두면 온 몸에 약이 퍼져 며칠 못가서......”
“예? 천 오백 만원요!”
제임스 아빠와 제임스는 너무나 놀라 두 눈을 크게 뜹니다. 너무나 많은 돈입니다. 제임스는 아빠를 쳐다봅니다.
“.................”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제임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옆으로 흔듭니다.
“내일 다시 올게요....”
“속히 결정해 주셔야 해요.... 그래야 약을 빨리 주문하지요.”
“네.....”
힘없는 아빠의 목소리가 겨우 들립니다.
“아빠, 어떡해! 릴리를 살려야 해!”
“...................‘
아빠는 아무 말 없습니다. 엄마는 부엌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많은 돈이 제임스 집에는 없습니다. 어디 가서 갑자기 빌릴 수도 없습니다.
릴리가 마을에서 보이지 않자 소문은 곧 온 마을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릴리를 구하자는 마을 사람들이 한데 뭉쳐 릴리의 치료비를 거두기 시작합니다.
제임스를 지키려는 릴리의 착한 마음이 온 마을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퍼졌고 이틀 만에 릴리의 치료비가 모아집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제임스와 아버지는 동물 병원을 찾아 원장님께 약 값을 건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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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약은 곧 주문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 약만 있으면 회복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원장님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릴리가 완쾌되어 퇴원한 것은 일주일 뒤입니다.
푸른 하늘도 다시 보이고 언제나 뛰놀던 마을도 평화스럽게 눈앞에 보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너를 구했어!”
제임스의 애기를 듣고 난 릴리는 오늘따라 마을이 더 아늑하게 가슴에 안겨 옵니다. 마치 새로 엄마의 몸속에서 태어나 눈도 뜨지 못한 체 엄마 젖을 찾던 그 따사로운 품속처럼 마을이 다가 옵니다.
“릴리야! 내일은 우리 마을 집집마다 찾아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지!”
“응, 그래그래 너무 고마운 사람들이야! 나를 구해 준....”
제임스는 릴리를 꼭 안아 줍니다. 그리고 한 마디 합니다.
“이제, 우리 그 오솔길 숲속 덤불로 가지 말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