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댄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라간 단편영화 [동화](A Nursery Tale) 한 편을 연출한 것이 경력의 전부인 신인감독 이지호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힘은, 그의 아내 김민 때문이었다.
[이 작품의 감독은, 솔직히 말해서, 김민이다. 촬영 마지막 단계에서 내가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김민이 나를 매일 휠체어에 태워 촬영현장으로 데리고 갔다. 아내의 내조가 없었다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멕시코 시티에서의 촬영 중 이지호 감독은 병에 걸려 얼굴을 덮은 물집과 종기로 후반 30%의 촬영을 거의 실명상태로 작업해야만 했다. 이틀 동안 촬영이 중단된 뒤, 제작자들은 이지호 감독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촬영이 중단되면서 하루에 3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하루만 더 촬영이 지연된다면 감독을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시스템은 철저하게 프로듀서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감독 교체의 권한도 갖고 있다.
[여기서 멈출 수 없느냐고 남편에게 물어봤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곧바로 휠체어를 주문했다. 나도 정말 독하게 굴었다. 그러나 이 감독의 작품에 내가 출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혼할 때 우리는 감독과 배우가 아주 이기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일하면 다른 사람은 무조건 쉬자고 합의를 보았다.]
김민은 직접 휠체어를 주문해 이지호 감독을 매일 촬영장까지 데려다줬고, 촬영 종료후 쓰러진 그를 들것에 실어 데리고 갔다. 캐스팅 단계에서 가장 까다롭게 굴었던 앤디 가르시아는 감독이 쓰러지자 [감독이 난관에 부딪쳤으니 우리 모두 함께 해서 영화를 완성시키자]고 스텝들을 격려하며 이지호 감독의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우리에게는 배우 김민의 남편으로만 알려진 재미교포 이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내가 숨쉬는 공기]에는 놀랍게도, 할리우드의 톱 스타들이 줄줄이 캐스팅되어 있다.
[라스트 킹]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포레스트 훠테이커, 성격파 배우 케빈 베이컨,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색 시리즈 중 [화이트]에서 주연을 맡았었고 [비포 선라이즈]로 많은 국내 팬들을 갖고 있는 줄리 델피, 한때 아이돌 스타였던 사라 미셀 겔러, [미이라] 시리즈의 주인공인 브랜든 프라이저, 그리고 앤디 가르시아까지 출연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캐스팅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지호 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배우들을 한 명씩 설득했다. 브랜든 프라이저는 [스토리가 매우 흥미롭다. 행복 기쁨 슬픔 사랑 등 사람의 감정을 그리고 있다. 이 4개의 감정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데, 이 이야기를 읽고 영화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또 [내가 숨쉬는 공기]에 참여한 다른 주연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지호 감독이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영화 현장에서도 매우 뛰어난 감각으로 연출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지호 감독은 내가 만난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다. 예지력과 순수함, 그리고 세상을 해석하는 독특한 눈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이 걸작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포레스트 훠태커)
[이지호는 배우들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고,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어떤 방향으로 디렉션할 것인지, 어떤 앵글을 쓸지 좀 더 열린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는 아주 훌륭하다.](앤디 가르시아)
이지호 감독과 함께 작업한 이 두 명의 배우들의 말은, 영화 홍보를 위한 단순한 립 서비스 차원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가장 까다로운 캐스팅은 앤디 가르시아였다. 그는 신인 감독과는 절대 함께 일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앤디 가르시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지호 감독은 영화의 모든 장면을 그린 스토리 보드와 사운드 트랙까지 준비해서 앤디 가르시아 저택을 방문해서 장장 4시간에 걸쳐 그를 설득했다.
캐스팅에만 총 2년이 걸린 [내가 숨쉬는 공기]는 원래 한국에서 촬영하려고 했었다. 이지호 감독은 처음에는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서울에서 촬영할 생각을 갖고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시나리오의 초고를 본 매니저와 에이전트는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면서 미국에서 제작할 것은 권유했고, 한국식 감성과 유머가 할리우드에 제대로 전달될지 걱정스러워 했지만 제작자 폴 쉬프는 시나리오를 보고 크게 만족해하며 영화 제작을 결정했다.
[한국에 나의 영화를 소개하고 나의 모국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대단한 영광이다. [내가 숨쉬는 공기]의 이야기는 나의 흥미를 끌었고 급소를 찔렀던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되는 것은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데, 왜냐하면 이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한국에서 나온 것이고 한국은 내 심장이 속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기본 아이디어는 한국에서 나왔다. [행복][기쁨][슬픔][사랑]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채 별도로 전개되는 4개의 독립된 이야기는 결말 부분에서 서로 서로 연결고리를 갖고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된다. 이야기의 핵심인 4 명의 캐릭터를 한국에서 찾은 이지호 감독은 그 캐릭터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그의 어머니는, 인간은 희,노,애,락이라는 감정에 빠져 있는 존재이며 인간은 이 4가지 감정에 얽혀 빠져나갈 수 없다고 말해 주었고, 어머니의 말에서 영감을 받은 이지호 감독은 슬플 애를, 사랑 애로 바꾸어 각 인물간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그리고 여기에다 [오즈의 마법사]의 4명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반영해서 [내가 숨쉬는 공기]의 독특한 이야기 구조가 완성되었다.
4가지 이야기 중 맨 마지막 4번째에 해당되는 [사랑]은 의사 케빈 베이컨이 희귀 혈액형을 가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뚫고 혈액을 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측면 중 사랑만큼 복합적인 것이 없다. 사실 그 속에 다른 모든 것들이 녹아 있다. 개인적인 것도 이유가 된다. 동양계로서 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한국과 미국에서 일한 여러 가지 경험들, 그리고 동양의 정서와 할리우드의 감성을 자연스럽게 녹이는 데는 [사랑]이라는 테마가 가장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숨쉬는 공기]에서 이지호 감독은 스스로 카메오로 출연한다. 록스타 역을 맡고 있는 사라 미셀 겔러가 TV에 출연하는 장면에서 스튜디오 FD 역할을 맡아서 얼굴을 선보이고 있다. 호남형의 둥근 얼굴인 그는 서울에서 열린 기자시사회에서도 아내 김민과 함께 등장해서 준비한 한국어로 인사를 한 뒤, 전문적인 내용은 영어로 말해 통역이 필요했다.
[영화는 모든 단계에 걸쳐서, 공동제작물이다. 관객은 이 공동제작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나는 한국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현재 이지호 감독은 유하 감독이 연출한 [비열한 거리]의 헐리우드 리메이크를 준비하고 있다. [원작이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원작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려보고 싶다.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시나리오는 [컨피던스]의 스트립터를 했던 교포 작가 더그 정이 맡아서 손질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에서 독립영화를 만든 교포 감독은 있었지만 할리우드에 입성한 한국계 감독으로서는 사실상 최초인 이지호 감독은, 지금보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훨씬 큰 감독이라는 것을 [내가 숨쉬는 공기]는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