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욕실 샤워와 호스를 연결하는 부위의 고무 패킹이 삭아서 물이 많이 새기 때문에 샤워가 불가능하다. 저녁 식사 후 고무 패킹을 사기 위하여 집으로부터 2km 반경 안의 철물점 다섯 곳을 다니다가 헛걸음을 치고 빈 손으로 귀가했다. 저녁 8시인데 모든 철물점이 이미 폐점, 불을 모두 꺼버린 점포의 문은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다. 마침 촉촉이 내리는 가랑비에 젖은 옷을 행거에 걸면서 툴툴대는 나를 보는 안사람의 시선이 곱지 않다. “웬 고려장 지내던 시대의 생각을 하느냐. 지금 세상에 밤 8시에 가게 문을 열고 있는 철물점이 어디 있느냐”는 핀잔이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나의 기억에 의하면, 대체로 철물점이라는 곳은 특히 서민 가정의 가장들이 직장으로부터 퇴근해서 주부들로부터 자잘한 살림 도구에 이상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저녁 식사 후 필요한 수리 자재를 구매하기 위하여 들르던 점포가 아닌가 싶다. 내가 어렸을 때는 철물점은 저녁에 가장 늦은 시간까지 가게를 열고 있었다. 밤 11시 또는 어떤 집은 밤 12시에도 열려 있었다. 그때는 특히 전구의 품질이 지금보다 훨씬 못 했기 때문에 갑자기 필라멘트가 나가 버린 가정에서 전구를 급하게 사려고 오는 손님이 적지 않았었다.
그런데, 밤 8시에, 아니 아마도 그 훨씬 이전인 7시도 안 되어서, 문을 닫는 철물점이라면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지금의 세태는, 서민 생활의 일부가 되는 상업의 영역에서도,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물건을 파는 행위는 ‘권리’의 문제이지 ‘봉사’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한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현 정부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적어도 ‘철물점’의 경우는 법률로 하든지, 명령으로 하든지, 조례로 하든지,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행정지도로 하든지, 저녁 폐점 시간을 최소한 밤 10시까지 늦추도록 해주는 것을 고려할 수는 없겠는가? 만약, 그렇게 하는 것을 이번에는 ‘철물점’ 소유주들이 ‘권리’의 차원에서 거부한다면, 최소한 5부제 정도로 밤 시간에 필요한 시민들이 긴급한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배려해 줄 수는 없겠는가? 혹시 저녁 6시 이후 가게를 여는 철물점에는 저녁 6시 이후 여는 시간에 대해서는 세제의 혜택을 고려해 줄 수는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