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로, 교사로 살아온 한 갑자
내가 아홉 살 무렵의 겨울밤이다. 어머니는 호롱불 심지를 돋우고 암자에서 보시받아온 부모은중경을 낭독하였다. 어머니는 은중경을 읽다가 나에게 읽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그 경전을 들고 소리높여 읽어나가다가 그만 눈물을 흘렸다.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사위성 밖의 길을 가시다가 해골 무더기에 합장하고 예배하자, 그 까닭을 묻는 아난에게 조목조목 설법하시는 어머니의 은혜가 고된 농사일을 하며 자식 걱정이 떠날 날이 없는 현실의 어머니 모습과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인도에 가서 부처님을 만나고 싶었다. 그때 이후로 학교에서 종교 조사를 할 때면 나는 늘 ‘불교’에 손들었다.
중학교 삼학년 때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영어 수업 시간에 기독교 성서가 인류 역사 제일의 베스트셀러라고 하면서 가끔 우리에게 성서 말씀을 들려주기도 하셨다. 국어책에 실린 석굴암 기행문의 ‘대각견성(大覺見性)’이란 한자가 마음에 들어 교탁에 낙서하였는데, 불자 선생님이 보고는 ‘이거 누가 썼느냐?’며 꾸지람 대신 오히려 ‘대단하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개신 기독교 재단의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학교 담장 너머에는 큰 성당이 있었다. 농촌에서 온 순박한 나를 데리고 극장에도 가고 친절을 베풀던 친구가 어느 날,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하였다. 그 부탁을 거절하자 친구는 나를 외면하고, 괴롭히기까지 하였다. 수업 시간에는 기독교인 교사들은 유교는 종교가 아니고, 천주교는 같은 기독교이지만, 불교는 우상 숭배 종교쯤으로 배척하고 미워하였다. 헌법이 보장한 종교 자유의 인권이 짓밟혔던 시절이었다.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유일신을 신앙하는 기독교는 비과학적이고 너무 배타적인 종교이다.
특정 종교가 설립한 사립학교가 싫은 나는 국립대로 진학하였다. 목탁 소리가 가끔 들려오는 불교학생회 동아리에 찾아가기도 하고, 법정 스님의 수필집, 헤르만 헤세, 앙리 베르그송을 읽었다. 카투사병으로 입대해서는 부대 안에 불교 군종 장교와 법당이 없다며 불만을 말하기도 하였다.
형님의 소개로 중등학교의 교직을 얻었지만, 학생과 교사가 매주 예배에 참석하고, 주변의 불자 교사들은 점차 교회에 나갔다. ‘스님’이란 말도 ‘스승님’에서 나왔지만, 교직은 호구지책이 되었다. 역사 수업에는 원효와 의상, 의천과 지눌, 불국사와 고려대장경을 설명하였다. 사회 수업에는 남의 종교를 존중하고, 차별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불자 교사로 자처하지만, 불교를 모르는 것이 부끄러워 책을 읽었다. 다카쿠스 준지로의 《불교철학의 정수》는 교과서에 나오는 불교 종파를 서양철학으로 정리하였다. 김성철 교수의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은 중관사상과 ‘언어도단’의 선(禪)에 눈뜨게 하였다. 그제야, 중고생 시절에 배운 만해 스님의 시, 〈알 수 없어요〉 · 〈님의 침묵〉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2003년 목련꽃이 핀 봄날, 틱낫한 스님이 대구에 오셨다. 낮에는 지하철 화재에 희생된 원혼들을 위하여 그 현장에서 걷기 명상을 하고, 밤에는 내가 다닌 대학의 강당에서 수천의 사람들에게 금강경의 ‘무상(無相)’을 주제로 설법을 하셨다. 설법 전에 세계 각국에서 출가한 제자 스님들이 관세음보살 이름을 합창하고, 손바닥 명상법을 지도해주었다. 성냥을 켜고 종이를 태우며 청중들에게 ‘불생불멸’의 이치를 설명해주시는 스님의 일거수일투족, 한마디 한마디의 설법에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치 눈앞에 어릴 적 부모은중경 속의 그 부처님과 제자들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불교가 삶과 사회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는 ‘참여불교’가 무엇인지 실감했다. 법문을 통역하는 온화한 모습의 미산 스님께도 감명했다.
그날 밤, 틱낫한 스님의 영문판 책,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 《사랑의 마음 가꾸기》를 샀다. 바른 마음챙김과 연기(緣起) 진리로 4성제부터 12연기까지의 부처님 가르침을 일관되게 풀어낸 전자는 교사불자회 법회에서 읽고, 영어 교사로 미국에서 온 불자들에게도 선물하였다. 진현종 번역본에 이어 《틱낫한 불교》로 재출판된 이 책의 ‘3해탈문’을 읽을 때는 가슴 속 응어리가 녹아내렸다. 스님의 책들을 읽으면 저절로 호흡과 마음이 평화로워지며 미소가 지어진다.
《미산 스님 초기경전 강의》는 부처님의 육성이 담긴 빨리어 성전의 세계로 안내하였다. 서귀포 법성사에서 열린 교사불자회 연수에서 스님께 〈최상의 행복경〉을 배울 수 있어서 기뻤다. 틱낫한 스님의 ‘마음챙김 명상’과 미산 스님의 ‘자애 미소 명상’은 학생들과도 함께 해볼 수 있었다.
교사불자회에 가입하여 전국의 명찰에서 열리는 여름 · 겨울 연수에 참여하였다. 법륜 스님의 지도로 인도의 부처님 8대 성지를 순례하고, 영축산에서 달라이 라마 성하를 만난 것은 꿈만 같다. 인도로 가기 전에 나까무라 하지메 등의 《불타의 세계》를 읽었다.
교사불자회의 인연으로 만난 임완숙 선생님의 발문을 얻어 수필집을 내고, 학술서 《내연산과 보경사》 · 《조선전기 불교사 연구》의 집필에도 참여했다. 올해엔, 현장법사와 신라 원측 스님의 탑이 있는 장안성 흥교사(興敎寺)에서 본 〈최상의 행복경[佛說吉祥經]〉 전문을 성덕대왕신종의 명문 첫 대목과 함께 서예 작품으로 써서 회원전과 학교 축제에 출품하였다. 새해 1월엔 틱낫한 스님이 출가하고, 열반한 베트남 후에의 절[Chua Tu Hieu, 慈孝寺]을 순례한다. 3보에 귀의하여 5계를 지키고 보시를 하며 불자로, 교사로 한 갑자를 살아왔다. 어린 제자들에게 못다 한 사랑을 베풀어야겠다. 행복경의 말씀이 가슴 밑바닥에서 샘솟는다. ‘세상의 온갖 일에 동요치 않고, 안온과 담담함이 충만하여서, 슬픔과 욕심에서 자유로우니,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불교평론(2024년 봄, 통권 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