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자락하는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달래강다리에 올라섰다. “내가 멱 감다 오줌 쌌던 강이야” 일 년에 서너 번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듣는 말을 그는 대수롭게 넘기고는 차의 속도를 한껏 줄였다. 다리난간 저만치 유유한 강물에 그 추억이 여전할 리 만무하지만, 이 다리만 건너면 유년으로 돌아가는 아내를 위해 속도를 줄여 시간을 벌어주는 것으로 배려한다. 그런 그에게서 나는 타향살이를 시킨 미안함을 속도로 느낀다. 미간을 오므리고 강을 응시했다. 옛이야기를 막 품어낼 듯 강물에 잠겼던 유년의 추억이 자맥질하다 물 위로 솟구쳐 꿈틀댄다. 텀벙텀벙 물 치는 소리와 머슴애와 계집애의 웃음소리가 수면에 떠올라 자글댄다. 비릿한 여운이 감성에 가득 찰 즈음 얼추 다리를 지나 달래강이 뒤통수쯤 놓인다. 그러면 추억도 뒷그림자를 길게 놓고는 아예 누워버려 저만큼 자그맣고 소박한 도시가 소담 시리 확 트여 보인다. 공연히 달뜬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힐 리 없는 어린 추억이 그때의 나이로 나를 끌어당기는 지, 나는 도시 입구에서 거의 유아가 되어 혀 짧은소리를 해대곤 하는 것이다. 지천명의 낫살에 반비례한 유아기적 행위임에도 아이러니하게 마음에 평화를 몰아오는 어린 시절로의 회귀는 계산된 인연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 안성맞춤이지 않는가.
멀리 길을 시작해 달릴 때보다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괜스레 조바심이 일어 그를 재촉해 차의 속도를 올리고는 갈림길에서 좌회전 했다. 붉은 사과 알이 촘촘히 박힌 사과나무 가로수가 활개를 펴고 나를 맞았다. 지난봄 이곳을 찾았을 때 사과 꽃 진자리에 앙증맞은 열매가 조랑조랑 달렸었다. 저것들이 경계 없는 길가에서 상처 없이 성숙할 수 있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나 그 기억이 무색하게 알알이 붉은 성장을 한 채 매달려 있다. 더구나 말쑥한 테가 정성어린 손길을 수없이 받으며 성숙한 듯 가을빛에 반질거리질 않는가. 계절이 선사한 성스러움과 도시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의식에 길을 지나는 내내 탄성이 저절로 터졌다. 나는 타향에 의지하고자 그곳에 아부하던 마음을 싹둑 잘라낸 듯 그 앞에서 “여기가 내 고향 충주여.”하고 외치고는 기고만장했다. 양보의 미덕을 한껏 발휘하던 그가 과육이 탱탱해진 붉은 사과 알에 붙어 반짝이는 특수 필름을 가르쳤다. 모르긴 해도 그 필름엔 먹물 글씨가 써 있을 것이다. 빛이 달게 비치는 쪽으로 ‘희망’또는‘건강’이라고 쓰여 있지 않을까. 옛날 과수원집 생각이 난다.
내가 너 댓살이 될 무렵, 집 뒷산 나지막한 언덕을 개간해 부모님은 사과나무를 심으셨다. 한층, 한층 계단식으로 두럭을 다독여 묘목을 심었는데 내가 계단을 끝까지 올라갈 때쯤 땀이 속옷을 적실 정도로 넓었다. 산의 절반을 과수원으로 만드신 것이다. 대단한 공력을 들인 과수원 사과나무는 무려 오륙백 주나 되었다. 국광이나 홍옥, 데리셔스, 인도, 부사 등 여러 종류의 사과나무에서 봄엔 연분홍 꽃을 피워 향을 냈고 꽃잎 진자리에 작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곤 했다. 그때부터 나무마다 일꾼들이 매달려 접과를 하고 봉지를 씌우고 소독을 하고 풀을 맸다. 그렇게 한여름 땡볕이 이지러질 즈음 집 뒷마당 과수원으로 오르는 대나무 길은 사과 맛을 보려는 우리 남매의 발자국이 자주 찍히곤 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먹물을 갈아 종지에 담아 들고는 우리를 데리고 과수원을 오르셨다. 빛이 잘 들 듯한 나무의 양지쪽에 달린, 아직 붉은빛이 들지 않은 사과에 먹물 찍은 붓으로 자기가 쓰고 싶은 글자를 쓰게 하셨다. 놀이처럼 시작했으나 우리는 참으로 진지하게 ‘사랑’‘행복’'합격’‘우애’‘효도’등을 기원하며 쓰기도 하고 자신의 이름이나 친구의 이름 또는 선생님 이름을 정성껏 쓰기도 했다. 그런 후 뜨거운 여름과 달달한 가을빛을 받으며 글이 새겨진 사과와 함께 성장했다. 그 글은 특별했다. 그냥 글을 써넣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글자를 쓰며 마음에 새긴 어린 맹세도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건들마가 설핏 이 우는 어느 날, 빨갛게 익은 명함 받은 사과를 따서 먹물을 지워내면 신기하게 초록색 단어가 또렷이 새겨졌다. 우리는 그것을 반질반질하게 닦아 책상 위에 놓기도 하고 선물을 하기도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놀이를 통해 어머니는 진정한 가족 사랑과 행복을, 그리고 간절한 기원의 힘을 가르쳤던 것이다.
노란 가을 엽서가 하늘대는 은행나무가 보이는 곳이 더듬어 오던 길의 끝이다. 에움길을 돌자 집 앞 기둥 석에 비스듬히 기울듯 기대고는 흡사 깃발처럼 나풀대며 유년으로 가는 길의 종점에 어머니는 서 계셨다. 지난 번 보다 굽어진 등을 타고 내 그리움이 내리 앉는다. 가을 닭띠로 태어나 맨 날 바쁘다고 넋두리하더니 반쯤 허물어진 탑 모양으로 고향이 되어 계신다. 자식들의 등대가 되고자 허름해진 탑을 바치느라 뼈마디가 삐걱댈 터지만 사윈 듯 살아나는 불빛을 비추며 어버이란 고향을 지키신다. 그 힘은 너무나 강렬해서 여전히 내겐 반석처럼 든든한 한 자리이기도 하다. 다만, 저 자리가 빈터가 되었을 때 지금과 똑같은 심정으로 이곳을 찾을는지, 그런 생각에 목젖이 출렁인다. 얼른 다가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세월의 바람에 건조돼 바스락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손끝 감각을 주워 마음에 담았다. 하나하나 그리움이 포개진다. 철없이 멀리 날기만 고집했던 당신 씨앗이 타향에서 삶의 대궁을 밀어 올릴 때 힘이 된 건 고향에 둔 그리움, 그녀였었다는 것을 아실까. 높이 더 높이 올라 그늘을 만들고도 뿌리의 흔적을 느끼고자 유년의 그리움은 왜 그리도 애달프던지···.
내가 벗어둔 껍질의 빈 젖가슴에서 목쉰 소리가 가랑대더니 살 냄새가 뭉클 피어오른다. 오래도록 맡고 싶은 나의 향기, 아, 내 향기.
(이분남 님의 수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