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모래바람..6 - 연행기 속의 조선의 중국인.
이 할배가 경자연행잡지를 쓴 이의현 이라는 분이다. 1669(현종 10)~1745(영조 21).
경종 영조를 거치며 장관에 오르고 영조때 령의정 자리에서 파직됐다가 다시 령중추부사를 지냈다.
령중추부사는 정1품 관직으로 무인으로서는 최고의 관직이고 실권은 없는 명예직으로 원로들의 자리다.
이렇게 지체높은 량반이 경자연행잡지를 썼다.
령의정까지 오른 할배라 괜히 실없는 소리를 하진 않았을게다.
경자연행잡지에 중국인들의 인사방법이 나온다.
읍揖만 하고 절은 하지않는다.. 몸을 굽히고 머리를 조아린다..
글로만 봐서는 조선사람의 인사법과 차이점은 크게 모르겠다.
상견례할때 읍만하고 절은 하지않는다는 거만 빼고..
이건.. 지금 쭝궈들 습관을 말할려는 의도인듯 하다.
연중燕中은 북경성 안 즉 북경성시내를 말한다. 북경왕이 연왕燕王 태종이다.
충렬왕때 합단 즉 카디안이 쳐들어 온 연기燕岐는 충남 연기군이 아니라
북경燕 즉 경사燕와 평양岐이다.
합단은 고려의 경사와 평양을 공격하며 쿠영감에게 맻힌 한을 풀려 했던거다.
충렬왕에게 맻힌 한이래 봤자 권력다툼이지만..
연경은 고려 원때만 수도였던게 아니라 불과 2백년전까지도 북경을 연경이라 했다는 거다.
연경燕京=경사京師=북경北京=경사京師=빈邠 이다.
주나라도 빈에 있었고 조선도 빈에 있었으니 고려도 빈에 있었다는 말이다.
곧 북경성은 단군조선 즉 하나라 이래 쭉 조선의 경기 곧 중국이었다는 거다.
경자연행잡지
[잡지(雜識)]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하
연중(燕中)의 소위 상견례는 읍만 하고 절은 하지 않는다. 공경함을 나타내는 데는 몸을 굽히고 감사할 때에는 머리를 조아린다. 말을 하려면 반드시 손짓을 하고, 서로 친한 사람을 만나면 앞에 나가서 두 손을 잡고 흔들어 반가운 뜻을 표한다. 그러나 여자는 그렇지 않다.
燕中所謂相見之禮。有揖而無拜。致敬則鞠躬。致謝則叩頭。語必作手勢。若遇相親之人。就前執兩手而搖之。致其歡欣之意。女人則不然。
중국인은 읍揖은 하되 절拜은 없다..
공경함을 나타낼땐 허리를 굽히고 감사할땐 머리를 조아린다..
쭝궈런들 무협영화에서나 있는 읍과 절과 고두(조아림)이고 일상에는 없다.
또 감사해도 웃으면서 말로만 하지 고개를 숙이는 머리 조아리는 습관 자체가 없다.
자식이 부모를 만나도 악수하면 끝이지 목례는 없다. 아니 목례자체가 없다.
친하면 어깨도 치며 인사하고 친하지 않으면 악수로 끝나고 여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쭝궈런이 짝퉁이라는 건 례를 보면 알수있다. 쭝궈에는 우리들 상식적인 례는 전.혀.없.다.
아래사람이 웃사람에게 절하는 자체를 이해 못하는 쭝궈런이다.
또 문화혁명 10년에 없어졌다고 구라 틀라.. 그럴려면 창씨개명 정도는 알고 떠들어야지..
일제 36년 문화말살정책에도 없어지지 않은 한국문화에 쭝궈들은 큰 절을 해도 모라란다.
근데 큰 절을 할줄 알아야 하지? 문혁때 홍위병 했다는 할배들도 잘 모르더만..
쭝궈런은 돈많이 준다면 창씨개명 아니라 더 한거도 한다.
그래서 일제는 창씨개명을 시도 조차도 안했는지 모른다.
언어자체도 존칭이 없고 례의 기본인 인사도 양이식으로 손만 흔드는 쭝궈런이다.
한마디로 존경의 의미를 이해 자체를 못하고 조아리면 굴욕으로만 이해하는 쭝궈런이다.
일반 쭝궈런들 생활양식을 보면 착한데 싸가지는 없다는 표현이 딱 맞다.
아래 사진은 짜장사이트에서 건진 중국인의 인사법이라는 사진이다.
위 사진의 중국인들은 간단한 인사를 하는것 보니 친한사람인가 보다. 별 절차없이 앉아서 인사한다.
이런 중국인들이 이렇게 인사하는걸 보고 이의현이 자세히 기록 했을까?
아래사진과 연결해서 보면 완성되겠다..
1. 손을 얼굴까지 올리고..
요거이.. 읍揖을 제대로 하고있다.
두손을 모아 얼굴까지 올리고 허리를 구부려 인사하고 다시 펴면서 두손을 내리는것을 읍揖이라고 한다.
물론 태도가 공손해야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거다.
우리생활 속의 읍揖은 절할때 두 손을 가슴 또는 얼굴 높이까지 들어 올려 절하고
절이 끝나면 손을 제지리로 한다.
2. 고개와 허리를 숙이고..
왼쪽사람이 윗사람인것 같다. 오른쪽 사람이 더 공손히 더 꺽어진걸 보면.. 피
3. 허리를 숙이며 두손을 내리고..
처음 만난 어려운 사이인가.. 심하게 꺾었다., 피
여기는 실내같은데.. 이런곳에서는 큰 절하기는 어렵다..
4. 대문에서 인사를 한다. 마중이나 배웅이나 둘 중 하나겠다..
이런 인사는 아주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보인다. 위에 읍하는 사진처럼 공손한 태도다.
관료들이 직장에서 절을 할수가 없으니 약식으로 이렇게 한다. 우리가 목례하듯..
연경에서 길가다 직장동료 만났다고 길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진 않는다.
그런데 령의정을 지냈다는 이의현이 이 정도도 모르고 중국인들이 절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았을게다.
절은 엎드려 큰 절도 하고 서서 목례도 한다.
웃어른을 만나 방이 있고 큰절을 할 공간이 있으면 큰절을 하고 길거리에서는 목례를 정중히 한다.
진짜 부모나 큰 어른을 만나 꼭 큰 절을 해야 하면 약식 큰 절을 했다.
약식 길에서 큰 절은 신을 신은채 쪼그려 앉아 큰 절하듯 하는 인사다.
그러나 현재 쭝궈의 쭝궈런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숙이는 인사법은 없다.
언어와 례법은 양이와 크게 다르지 않는 아해들이 쭝궈런이다.
아마 1900년 8월 15일 이후 양이들이 급조한 쭝궈라서 그런게 많을게다.
동남아 같은 쭝궈들 문화가 양이 문화와 만난게 현재 쭝궈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위 사진의 중국인은 우리 인사법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근데 왜 이의현은 쭝궈런은 절을 하지 않는다며 우리와 다르게 표현하고 기록했을까?
중국에는 절을 하지않는다는건 현재 쭝궈런 습관에 맞춰 누군가가 첨삭해 그런거다.
그렇다면 사진속의 저 중국인이 누구인가?
저 사람들이 인사할때 고개와 허리에 깁스한 쭝궈런으로 보이면 대략 안습이다.
한국온 쭝궈런들이 착하게는 보여도 싸가지없음은 그들의 미개한 문화로 인한 거였다.
상견례
출처: 브리태니커관련태그
관리들 사이에 인사하는
예절.
품계의 차이가 나는 관리들이 만났을 때 품계가 낮은 관리가 높은
관리 앞에 나가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윗사람일 때는 그대로 인사를 받으나, 차이가 별로 없는 경우에는 답례로 인사한다. 말을 타고 가다가
길에서 마주쳤을 때 아랫사 람이 말에서 내려 공손히 인사했고, 비슷한 관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말 위에 그대로 앉아 인사했다. 지금은 서로
공식으로 처음 만나는 것 모두를 상견례라 한다.
여기서 상견례란 결혼할때 양가가 만나 인사하는게 아니라 직장동료 사이의 인사다.
서로 만나면 위의 사진처럼 인사하고 길바닥에 철퍼덕 엎드려 큰절을 하진 않는다.
공무원들이 직장에서 상사를 만난다고 엎드려 절하기 보다 위의 사진처럼 읍하며 목례로 간단히 했다.
요즘 우리 인사법에도 읍은 없고 절만 남아있다.
현재 쭝궈런은 인사법도 전혀 다르며 고개가 숙여지는 목례는 한번도 보지못했다.
싸가지없는 쭝궈초센주도 쭝궈는 고개숙여 인사하지않는다며 빳빳히 세우는 무싸가지들 많다.
물론 인사하기 싫은게 주목적이다. 쭝궈런과 생활하면 이렇게 포기해야 하는게 의외로 많다.
어리거나 젊을때 싸가지없이 살기는 좋아도 나이들면 어른대접은 포기해야 하는 곳이다.
쭝궈런은 인사하는 방법도 모르고 알지도 못해 하지도 못하는 아예 첨부터 깁스다.
이런 쭝궈식 인사가 마오쩌퉁이 집권하고 사회주의 하면서 생긴거라고?
하지만 똑같은 시기에 똑같이 사회주의를 한 북한은 전혀 그렇지않다.
어른을 보면 고개숙여 인사하며 부모 친구라면 알아서 인사도 하고 부모가 인사 시키기도 한다.
이건.. 쭝궈런은 애초부터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종족이란 말이다.
문화대혁명으로 쭝궈런들 인사법이 없어진게 아니라 본시 인사도 없던 야만인이다.
쭝궈런들이 인사법을 모르고 목에 깁스된거는 쭝궈런들의 태생적인 한계다.
버스를 타 봐도 임산부석은 있어도 노약자석은 없다.
한국보고 배워 임산부 표시된 버스도 간혹 있지만 약삭빠른 젊은 아해들 차지다.
그나마 쭝궈 대부분 도시에 임산부석이 표시된 차도 그리 많지않다.
한마디로 쭝궈에서 자리 양보는 아무도 몰라주는 멍청한 짓이다.
노인이 서 있어 자리 양보하면 왜 그런지 몰라 눈이 휘둥그레진다.
앉아있기 미안해 계속 자리를 권하면 무척 멋적게 미안해하며 고마워한다.
사업차 쭝궈가면 모르는 사람에게 꼭 해봐라. 큰 점수 딸 수도 있다.
쭝궈초센주가 고개처들고 싸가지 없이 굴듯 요즘 우리나라도 싸가지 출장간 아해들 의외로 많다.
현재 외노자나 불법체류자 중 대부분이 쭝궈런이고 쭝궈초센주다.
예절을 배워 몸에 익히기는 어려워도 막 살며 싸가지 없는건 배우기 쉽다.
한마디로 막살기는 편해도 예절갖추며 살기 어려운데 중궈런에게 우리 일상은 무척 어려운 예절이다.
글로벌화 되더니 못된 쭝궈런 습관과 양이들 못된 습관만 만연해졌다.
쭝궈런들 성개념은 양이 못지않다 못한게 아니라 오히려 더 앞서 나가고 있다.
딸년이 술집나가 돈 잘벌면 동네 자랑거리이고 또 그걸 부러워하는 쭝궈런들이다.
한국에 시집와서 술집나가고 다방나가는 건 쭝궈런들 상식으로는 당연하거다.
돈 잘버는 술집작부 직업을 못 갖게 하니 당연히 이혼당하지.. 쭝궈런을 넘 몰라 그런거다.
언론도 잘못이지만 쭝궈가 우리문화의 모체라는 허황된 망상이 빚어낸 결과다.
몇해전 쭝궈 후베이 우한(무한)에서 몸팔아 돈많이 번 여자가 고향가니 신부감 1위였다.
동네총각들 몸팔아 돈번거 다 안다. 돈많으면 최고다. 얼나이(첩)도 마다 않는다.
쭝궈런들 상가나 집에 달마 상 모셔놓고 매일 과일등을 올려놓는거도 돈 잘벌게 해 달라는거다.
중궈런은 돈이면 안되는게 없다. 조선에선 가장 천시하는 걸 쭝궈런들은 최고다.
이게 문화혁명 10년만에 생긴 일이고 자본주의가 불어 그런거라고?
그런데 자본주의 더 오래한 한국도 사회주의 더 오래한 북한은 왜 다른데?
우리는 쭝궈초센주를 넘 믿고 우리와 같은 환경이라는 착각에 오판을 했다.
더 심한건 쭝궈가 역사속의 중국이라 오판으로 생긴 시행착오다.
권력자는 돈만아는 부자는 잘못해도 곧장 죽여 버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권력에 도전하는 넘은 걸리면 그 즉시 9족을 멸했다.
우리 역사속의 반란한 인물들의 처참한 최후는 권력을 넘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 부터 공부잘하고 예의바르게 크는걸 최고로 친다.
공부잘하고 예의바르면 출세 즉 관료로 나가기 쉽고 단체생활에서 무난하기 때문이다.
쭝궈런이 돈을 최고로 아는건 출세(권력)는 너무 힘드니 돈이라도 많이 벌자는 거다.
단체와 미래에 투자하는 큰 스켈의 한국인과 당대만이라도 잘먹고 잘살자는
스켈이 작은 근시안 쭝궈런의 문화차이가 나은 결과라고 할수있다.
한국인의 교육은 권력지향이고 쭝궈런의 교육은 2류라도 감지덕지한 교육 문화다.
권력은 돈이 저절로 따라다니지만 재력가가 군대 거느려 권력가를 위협하진 못한다.
국민이 인정하는 폭력기관 경찰과 군대를 권력은 명령할 수 있어도 부자는 못한다.
쭝궈문화는 지역에서 쬐끄만 행세는 할지 몰라도 미국같은 권력은 행사 못한다.
권력자는 군경 폭력기관 명령권이 있어 다 뺏을 수도 있어도 부자는 이게 없다.
군대없는 경제는 5공때 그룹해체같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 뺏길 수 있다.
국가는 1권력 2경제지만 서민은 1경제 2권력이다..
국민없이 국가가 없으니 서민은 경제가 우선되는건 당연하다.
국가가 군경으로 안전을 담보해 주니까..
북미 두개의 핵우산 속에 있어 태풍의 눈속에 있는 형국에 군대로부터 경제침탈 위협은 없다.
북한과 미국 어느한쪽이 군사행동을 하면 어느 한쪽은 석기시대로 돌아간다.
물론 중간에 낑긴 우리도..
석기시대 각오하기 전에 둘이 붙지 못하니 역설적으로 안전한 태풍의 핵이다.
이건 뭐.. 이래도 핵핵대고 저래도 핵핵대니 원..
이틈이라도 기회는 기회니까 우리는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기술을 쌓아야 한다.
핵우산 두개 쓰고 있는거도 어찌보면 기회라고 할수도 있다.
금융거품 터지면 남는건 기술가진 인력밖에 없다. 국가재건할 큰 동력이다.
국가해체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부류가 힘없고 빽없는 서민이다.
공무원 경찰 군인을 경시하는 풍조는 지양해야 하고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다.
또 서민들이 군대교육을 받지 못한다는건 스스로 지킬 자위권을 차단당하는 거다.
누구라도 대통령 아들도 군대가서 평등하게 복무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또 북한이 쭝궈 속국이니 헛소리를 한다.
쭝궈는 북한이 필요없는데도 도와줄 정도로 여유가 있거나 맘이 넓진 못하다.
북한 지원을 미끼로 미국과 거래하며 미국과 유럽의 수입관세를 낮춰보려는 의도다.
아직도 쭝궈가 북한 상전으로 보인다면 공부 마이 해야한다.
현재 쭝궈 제품은 미국 유럽 남미 아프리카 어디든 문제 일으키지 않는곳이 없다.
미국과 유럽엔 인건비 상승으로 높아진 가격으로 남미와 아프리카는 일자리 훑어대는 적으로..
우리 환율인상은 제품 가격이 싸져 수출확대로 쭝궈 아해들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쭝궈가 북한과 경제거래를 하며 미국을 협박한다.
북중 뉴스가 매일 헤드라인에 걸리는거도 미국과 유럽의 패권과 상관있다.
북한 성장은 사회주의 실패를 부정하게 되어 미국패권에 금가는 소리다.
지금 쭝궈는 이러한 배경으로 미국과 거래 트기 위해 북한을 지원하는 거다.
북한 역시 어떤늠이든 갖다주고 지원해주는걸 거부할 이유없고..
덕분에 대북강경책 쓰던 우리만 새됐다.. 그렇다고 미국경제권을 벗어날 수 도 없고..
유럽과 미국의 거품붕괴로 재정이 악화되어 임오군란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고 쭝궈가 그 혜택을 입을 가능성은 제로다. 되려 국가해체나 되지..
쭝궈 신형핵잠 샤급(하나라급) 핵잠의 모항기지가 따렌(대련)이다.
요동반도 끄트머리 짝퉁 비사성이 있다는 거기다.
연평도 충돌로 봤듯 서해 평균수심은 40m다. 깊어야 100m 남짓일거다.
평균 40m면 샤급 핵잠은 서해에서 수상함이나 반잠수함이지 잠수함이 아니다.
여기에 쭝궈가 최신 핵잠 모항을 따렌으로 할수밖에 없는 아픔이 있다.
쭝궈는 군구가 5개로 나눠져 있고 각 군구가 육해공 모두 보유라고 있다.
이건 각 군구가 언제든 반란으로 정부전복를 시도할수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샤급 핵잠이 꽝뚱군구에 속해야 적다하지만 그랬다가 꽝뚱군구가 반란하면?
베이징 군구는 속수무책이다. 더군다나 말도 안통하는데..
그래서 샤급을 베이징 군구 소속이 됐고 수상함이 돼도 할수없이 따렌을 모항으로 쓰는거다.
이렇듯 걍 댑따 크게만 짓기만 하면 중국인줄만 아는 쭝궈들의 빈깡통 소리다.
예절도 모르고 존칭도 모르는 개뿔도 모르는 쭝궈런이나 고려 조선의
상전국이라 개폼잡지 좀 아는 쭝궈런은 찍소리 못한다.
알고보면 쭝궈는 동남아 문화를 가진 미개한 거뜰이 아닐까란 결론에 도달한다.
꼭 중간에서 삼천포로 빠져 한 참 빗나간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다시..
쭝궈런이 예전에는 우리같은 큰절을 했을까?
물론 사진으로는 남아 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중국인의 인사라며 소개된 큰절이다.
우리는 당연히 하는 인사를 쭝궈런은 없고 예전에는 했는데 지금은 한반도에서만 한다고 구라튼다.
더 골때리는건 전통문화가 우리가 더 많은데도 쭝궈가 원조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우리처럼 큰절도 습관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습관 안된 아해들은 무척 어렵고 멋적어 한다.
몸에 배인 예절이 귀족습관이듯 막살던 쭝궈런은 귀족습관이 낯설은건 당연한거다.
연행기를 보다보면 지금 중궈런의 베이징이 역사속의 북경성과 대체 뭐가 같다는지 알 수가 없다.
아래 큰절하는 중국인은 우리들 큰 절과 같고 쭝궈 옷만 낯설어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쭝궈에는 이런 인사없다. 아마 쭝궈초센주도 없을거다.
이 사람들이 조선의 서울 경기 즉 기내 관중사람들이며 바로 중국사람들이다.
이의현이 읍만하고 절을 하지않는다는 말은 누군가에 의해
현재 쭝궈런을 지칭하는 내용으로 바뀌어진거다.
위와 같이 큰절을 하던 사람들이 온돌에 살고 쌀을 주식으로 북경성 즉 빈에서 쌀을 경작했다.
북경성에서 7월에 농사짓는 걸 '빈풍7월'이라 하여 농업경제 시스템의 큰 자랑이었다.
연행록에도 북경성의 조선관에만 온돌이 있다고 하는데 온돌에 살아보면 좋은건 금방안다.
그런데 쭝궈런은 좋은걸 보고도 모르고 무식하게 신발신고 집안을 돌아다녔다는 말이된다.
북경성에서는 쌀농사를 짓는데 현재 베이징도 산뚱도 다른 지역도 주식은 밀과 강냉이다.
쌀이 그나마 많이 난다는 짱쑤(강소) 지장(절강) 후난(호남)도 중궈런의 주식은 어김없이 밀이나 강냉이다.
밀과 보리 강냉이는 가뭄에 강한 척박한 땅에서도 잘사는 곡식이다.
만주를 제외한 쭝궈 대부분 쭝궈런은 밀과 강냉이로 만든 앙꼬없는 찐빵이 주식이고 쌀밥은 잘먹지 않는다.
지금도 관광지 말고 다른 중소 도시를 가면 밥 먹는거 포기하고 국수로 만족해야 한다.
쭝궈땅은 물이 너무 귀하고 비마져도 귀하고 나무없는 평지라 그나마 저수도 안된다.
그렇다고 사막은 아니다. 사막화가 되고있지.. 그런데 역사속의 북경지방은 벼를 경작한다.
현재 베이징 주변도 하천 바로 옆에서나 벼를 조금 하지 하천과 떨어지면 영락없는 강냉이다.
여름에 보면 그 허허벌판같이 넓은 들에 산뚱에서 베이징까지 평야에 강냉이가 넘실대다 바람에 쓰러진다.
쭝궈 하천을 보며 보를 만들어 물을 일부 가두어 벼를 경작하면 어떨까 하다 이내 아니란걸 알게된다.
그 넓은 들판에 물줄기는 달랑 하나라 동네마다 마을마다 보를 설치하면
하류로 내려가는 물조차 없어지고 그나마 흐르던 하천마져 말라 고갈 된다.
그래서 쭝궈 하천엔 보가 거의없고 물 막고 보 설치하는 넘은 제명에 살기 어렵다.
하천 물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벌판에 쭝궈런들 물부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도 역사속 북경성 사람들은 벼를 주작물로 빈풍7월을 노래하며 쌀을 주식으로 했다.
현재 베이징에는 빈풍은 고사하고 쌀나무가 어디서 얼마나 자라는지도 모를게다.
밀과 강냉이는 어디서나 볼수있어도 쌀나무 보기는 거짓말 좀 보태 하늘의 별따기다.
이의현의 연행기 속에서 중국인들 가내풍속을 보자.
경자연행잡지 [잡지(雜識)]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하
모든 크고 작은 역사(役事)는 모두 남자가 맡아 한다. 수레를 끌고, 밭을 갈고, 나무를 지는 일 외에도 물을 긷고, 쌀을 찧고, 곡식을 심는 일로부터 옷감을 짜고, 옷을 짓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자가 한다. 여자는 문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여자가 하는 일이란 신 바닥을 꿰매는 일뿐이다. 촌 여자는 곡식을 까불고 밥 짓는 등의 일을 하기도 한다. 상점에는 절대로 여자가 왕래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여자는 대체로 사람을 피해, 우리들이 상점에 들어가면 갑자기 피해서 숨는 자가 많다. 그러나 역졸(驛卒)들은 피하지 않고 심지어 함께 섞여 앉아서 담배도 피우고 무릎을 마주 대고 손을 잡아도 꺼리지 않으니, 또한 우스운 일이다.
凡大小事役。男子悉任其勞。驅車耕田負薪之外。運水舂米種粟。以至織布裁衣等事。亦皆男子爲之。女子則罕出門外。其所爲不過縫鞋底而已。村女則簸穀炊飯等事。或自爲之。店房中。絶不見女人往來。女子大抵避人。余等入店。輒多避匿。而驛卒輩則不避之。至與之雜坐吸煙。接膝交手。而不以爲嫌。亦可笑也。
밭농사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과거 밭농사는 부부가 세 빠지게 일울 해도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았다.
지금같이 농작물 수확이 급증한건 비료생산 이후다. 곧 화학공장 가동한 이후다.
공업경제에 살면서도 농업경제에 안주하면 궁핍한 생활 계속해야 한다.
과거 온 가족이 밭 농사 지어 잘먹고 잘살았다면 화전민도 별탈없이 살았어야 했다.
이의현이 본 중국남자는 완전 슈퍼맨이다. 직업이 농업에다가 가사일까지 막힘없이 척척해 낸다.
이렇게 부지런한 중국인들인데 지금 쭝궈런은 게으르고 융통성 조차 없어 구박 당할까?
쭝궈런들은 한국인의 부지런함은 어딜가나 알아주는데 말이다.
하나씩 뜯어 보자.
이의현이 본 중국남자가 하는일은 수레끌고 밭갈고 나무하고.. 이건 집밖의 일로 직업이고
또 물긷고 쌀찧고 곡식심고 옷감짜고 옷만들고.. 집안 일까지 이게 다 중국남자의 몫이다.
그렇게 농사짓고 틈틈히 부엌에서 나락찧고 밥해서 처자식 먹이고 또 밭에나가 일하는 중국남자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버젼이다. 남자를 여자로만 바꾸면 딱 우리 70년대 아닌가?
그러나 지금같이 도시화로 식당에서 밥사먹고 출퇴근 하면 몰라도 농사가 생업인 그때는 다르다.
지금 쭝궈들이 도시서나 삼시세끼 사먹지 농촌엔 사먹으러 가느니 해먹는 농가많다.
그렇게 저녁밥까지 해 먹이고 밤에는 옷감짜서 처자식 옷 해입힌 중국남자다.
그런데 길쌈하는 쭝궈남자 그림도 한장 없고 길쌈하며 부르는 쭝궈남자 하나없고
길쌈하며 부르는 노래 하나 없는 중궈가 문화혁명 10년만에 다 없어졌고
밥해먹는 습관이 문화혁명 10년만에 다 없어졌다고 구라칠건가?
거기다가 식용수와 생활 허드렛물을 긷는거도 중국남자의 몫이다.
우렁각시도 아니고 콩쥐팥쥐도 아니고 중국남자는 슈퍼맨도 이런 슈퍼맨 없다.
그래도 미안한지 촌 여자는 곡식을 까불고 밥짓는 일을 하기도 한다고 기록됐다.
역졸들과 무릎을 마주대고 손을 잡아도 꺼리지않는 중국여자들이라고 이의현이 기록했다고 했다.
조선은 아랍같이 남녀칠세부동석이었고 역졸과 스스럼없다는건 지금 쭝궈런들 모습이다.
냄새 솔솔난다. 좀 더 보자..
기록속의 중국남자를 여자로 바꾸면 우리가 많이 봤던 억척스럽게 살던 우리들 그 버젼이다.
쭝궈런은 굶어 죽으면 굶어 죽었지 절대 이렇게 부지런떨며 살지 못한다.
무기력함을 나타내는 만만디가 괜히 있는 말인줄 아는가? 환경이 그 꼴인데..
쭝궈가 청때부터 여자를 떠받들고 거세된 사회에 살았다는데 마오쩌뚱이 집권하고
여자를 가사에서 끌어내 사회동력으로 쓸려고 남녀평등 떠들었다면서 청나라 때부터
쭝궈남자는 가사일을 다했다면 애시당초 쭝궈엔 유교철학도 없던 나라라는 말 아닌가?
일국의 수상을 한 사람이 이렇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면 쭝궈는 가만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쭝궈는 직장생활과 가사는 이의현의 기록과 같은 남자가 다한다.
그래서 우스게 소리도 있다.
베이징 남자는 통이커서 밥을 먹고 들어가고 상하이 남자는 식사시간 지나 집에가 쪼잔하단다.
베이징 남자와 상해남자를 비교하며 베이징 남자는 저녁하기 싫어 밥을 먹고 들어가고
상해남자는 밥하기 싫어 거리를 배회하다가 마누라 퇴근하고 한참 있다가 들어간다는 거다.
밥 안준다고 성질 부리는 한국남자는 외계인이고 쭝궈런은 이해 안되는 사람들이다.
우리와 쭝궈는 문화자체가 다르다. 중궈여자와 살면 모두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 시집 온 쭝궈녀를 술집에서 돈도 못벌게 하고 남자가 해야할 일을
낯설고 물설다고 온 가족이 작당해 쭝궈녀 보고 하라니 뚜껑 안열리고 생겼고
열안받을 쭝궈녀 어딨는가? 당연히 남자가 소박 맞을 일 아닌가?
이렇게 미개한 이 짓하다 쭝궈녀 특히 쭝궈초센주는 농촌에서 완전 퇴출당했다.
쭝궈남자가 부엌일까지 해서 그런가 쭝궈런들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앙꼬없는 찐빵 하나로 끼니를 때운다.
쭝궈에 이런 생활이 오래전부터 내려왔다면 마오쩌뚱이 여자를 부엌에서 빼내
사회동력으로 쓰려했다면 남녀평등만이 아닌 국가와 사회적 책임도 같이 부여했어야 한다.
부엌에서 빼내 남녀평등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런 습관자체가 없었다는 거다.
쭝궈사회 모순을 마오쩌뚱이 여성의 사회참여로 남녀평등을 실현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쭝궈사회가 마오쩌뚱 전에는 여자가 부엌살림도 했다는 말이다.
문화혁명 10년만에 없어졌다면 200년전 이의현이 본 쭝궈런은 누구게?
쭝궈들은 부인婦人 부婦자 뒤에 彐(고슴도치 계)가 여자가 부엌일을 한 증거란다.
그 홍위병하던 할배나 할매도 전혀 그런걸 알지 못한다고 하던데.. 치
그렇다면 일국의 재상을 지낸 이의현과 연경에 갔던 조선관료들이
세대를 넘어 대를이어 일제히 같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다.
한국인의 단결심은 이렇게 시대를 초월해 똘똘 뭉치고 있다는 거다. 오 필승 코리아~~
조선의 재상과 관료들이 조공가서 사실과 다른말로 책을 써냈는데도 일언반구도 없다.
세자책봉 보고를 안했다고 침략하고 걸핏하면 트집잡아 침략하던
오랑캐 쭝궈런들이 이렇게 아무말도 없다. 거 참.. 희한할세..
조선은 쭝궈침략을 오랑캐 침략이라고 했다. 오랑캐.. 비주류였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의현의 연행기의 중국남자는 누구이며 어디에 살던 사람들인가?
이의현의 경자연행기를 손대고 실수한 흔적을 또 찾아보자.
중국남자가 농사도 짓고 물을 긷고 쌀을 찧고.. 다. 용미舂米.. 쌀을 찧고..
위에서 말했지만 짜장들은 쌀밥이 아닌 밀가루 또는 강냉이로 만든 앙꼬없는 찐빵이 주식이다.
우리가 고기먹고 냉면이나 공기밥으로 마무리 하듯
쭝궈런들은 요리(밥+반찬)를 먹고 마무리로 꼭 앙꼬없는 찐빵을 먹는다.
쭝궈런들은 앙꼬없는 찐빵을 먹는데 이의현은 중국인은 나락 찧어 밥먹는다고 한다.
옛날에는 도정해서 쌀을 보관하지는 않았다. 껍질을 벗기면 수분이 날아가
쌀이 딱딱해지니 나락채로 보관해 매끼마다 나락을 찧어 밥을 해 먹었던거다.
이건 쭝궈런들 습관이 아닌 척박한 땅에 와서도 쌀을 고집하던 우리들 식습관이다.
청나라 때 부터 쭝궈남자는 부엌데기 였고 쭝궈의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니
그 전부터 쭝궈런들의 습관은 남자가 집안팎 일을 다 했고 쭈욱 그랬다는 말이다.
그런데 동방예의지국이며 남녀칠세 부동석의 조선은 암탉우는 쭝궈들에게
뭘 배울게 있다고 툭하면 쭝궈 사대하고 흠모하며 살았다는 말인가?
이건.. 누군가가 지금 쭝궈들 생활을 경자연행잡지에 슬쩍 끼워넣은 증거다.
조선이 쭝궈의 식민지였다고 현재 쭝궈런들 생활을 조선기록물에 삽입 삭제 했던거다.
이게 쭝궈 힘만으로 일본의 힘만으로 조작해서 유지된다고 생각치는 않을게다.
조선의 패권을 탈추한 지금 세계패권을 가진 그들이 북경성을 함락시키고
자신들 패권을 위해 조선역사에 손댔다는 의혹이 가장 적합하다 생각한다.
일제 총독부의 손을 타지않은 한단고기 화랑세기 천부경같이 손 못댄 사서가
나오면 일제히 위서라고 합창하는거도 그 이유와 다를거 없다.
위의 사진은 쭝궈 사이트에서 건진거다.
06년 3월 30일 인장이 찍혀있는 상해에서 보낸 엽서다.
저 쭝궈런은 상투를 했고 밥을 먹고 있다. 사진설명도 젓가락으로 쌀밥먹는 China man이다.
젓가락으로.. 치
쭝궈런은 밥을 안먹고 밀 또는 강냉이로 된 앙꼬없는 찐빵이 주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식당광고로 보이는 저 엽서는 망해 자빠져 이름조차도 없는 조선의 생활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아.. 1900년 북경성 함락되고1906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다음해이고
공식적으로는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 국치일 몇해전이다.
이미 군대와 경제 모든걸 해체하고 넘겨주고 이제 공식적인 양위.. 패권이양만 남은때다.
벌써 의병들은 만주로 전국각지로 항전 중이었는데..
상투는 유교철학에 의한 신체발모 수지부모라 자르지 못한거다.
쭝궈들은 청이 들어서면서 일찌기 변발을 하여 마빡의 머리카락을 다 날렸다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저 중국인은 어찌하여 조선의 상투를 저 때까지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조선이 아직 안망했으니 상투가 남아있다?? 이렇게까지 연출해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근데 저 상투 뒷머리 아래를 보면 드라마 사극에 머리 삐져 나오듯 짧은머리가 삐져나왔다.
옆머리도 지나치게 짧은걸 보면 뒷머리가 짧은건 거의 연출로 보인다.
쭝궈식으로 보면 밥은 요리(밥+반찬)먹고 난 후에 먹는 건데 주식으로 보인다.
광고는 쭝궈런들 일상적인 식습관 답게 국수광고인데..
중궈런 서민은 앙꼬없는 찐빵 만두로 형편이 좀 나으면 국수고 좀 살면 요리를 먹는다.
왼쪽위에 호정好頂 맥색랍면麥色拉麵은 최고의 보리국수란 말로 보인다.
밀이 아닌 보리다. 래麳는 밀'래' 또는 보리 '리'인데 보통 보리는 대맥 밀은 소맥이다.
랍면拉麵은 쭝궈말과 니뽕말같은 받침탈락이면 '라미엔' 즉 우리가 즐겨먹는 라면이다.
라면은 니뽕이 개량시킨거지 니뽕이 원산지는 아니다.
밥을 들고 먹는 건 쭝궈런들 습성이고 상에 놓고 점잖게 먹는건 우리 습관이다.
한국에서는 밥을 들고 먹거나 심하게 소리내며 먹는건 천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떠 먹을건 숟가락으로 먹어야지 쭝궈들 처럼 밥도 젓가락으로 후루룩 거리면 안좋다.
하긴 숟가락이 짧아 밥을 떠 먹을수도 없다.
오른쪽 위에 흘반吃飯은 쭝궈발음 '츠판'으로 '밥먹다'이다. 쭝궈말로 '먹었냐'는
'츠판러마' 인데 '츠팔러마'로 욕같이 들리며 꼭 우리말로 '처먹어라' 같기도 하다.
쭝궈말은 존칭이 없다. 존칭도 영어와 흡사한 예의없는 쭝궈런이다.
예의도 없고 문화전통도 이렇게 빈천한 쭝궈런에게 고품격 조선문화가 받아들일게 있었을까?
조선 영의정까지 지낸 량반이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하며 거짓말할 필요도 없다.
이의현은 연행기 내내 사사건건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모르고 보면 시원하고 주체도 꼿꼿한 관료로 보이겠지만 자신의 나라 정부로
조세납부하러 가며 조세종류와 일정을 꼼꼼히 기록한 이 문서의 훼손은 심각하다.
중국이 조선의 경기 관중땅인데 이의현이 연행기에서 시종일관 부정적일 이유는 없다.
경자연행잡지처럼 쭝궈남자의 생활이 2백년 전과 현재가 같다면 이의현은 사실대로
기록한거고 마오쩌뚱이 문화혁명때 바꿨다는 쭝궈들의 변명은 구라가 된다.
중궈런의 구라가 아니라면 이의현은 불평불만 가득한 소국의 하잘것없는 조선관료다.
이런 관료가 영의정으로 조선 전체를 관할했다면 조선은 별볼일 없는 은둔의 나라 맞다.
화랑세기가 세상에 나왔을때 뜬금없이 양이학자까지 나서 소설이라 광분한걸 기억해야 한다.
중궈가 과거 아시아의 맹주였고 잠재력도 있고 유럽과 미국을 넘어설수 있다면 모를까?
제몸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쭝궈와 카레(인도)가 미국을 넘는다는건 불가항력이다.
양이 8개국은 이런 구도를 바라는 건 아닐까?
미국과 유럽을 넘지 못하면 진정한 광복은 없거니와 재세이화 홍익인간은 없다.
수천년을 식민지로 아시아 변방의 은둔의 나라가 식민지 말고는 할 수 있는건 없다.
중국인을 쭝궈런으로 만들고 아시아의 맹주라고 만든 그 주체가 그들이기 때문이다.
왜독을 알았으면 쭝궈독을 제거해야 하고 쭝궈독을 봤으면 패권 양독을 극복해야 한다.
조선역사광복은 한민족이 세계선도국가가 되는 그날 광복을 하게 될거며
만주를 넘어 역사속의 만주를 교과서에 기술하고 조선 고려 고구려 단군조선의 년호를 되찾는날
진정한 조선역사 광복이 있을것이며 그땐
벌써 1등국가가 되어 있을거다. [출처] 북경의 모래바람..6 - 연행기 속의 조선의 중국인.|작성자 대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