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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타입 89입니다.
저는 제가 국민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극을 매우
좋아한 사극 매니아인데요.
한국 사극뿐만이 아니라 중국,유럽 사극까지 여러
나라의 사극들을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사극이란 사극은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한국 사극의 경우. 확실히 제가 고등학교 시절까지의
한국 사극보다 고등학교 이후의 한국 사극은 확실히
많은 발전을 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사극은 제가 보기에는 문제점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극의 더 많은 발전을 위해서 제가
느끼는 한국사극의 문제점을 저 나름대로 많이
생각해서 올릴려고 합니다.
1: 지나친 중견연기자들에 대한 의존.
심리연기가 중요하다보니 노련하고 원숙한 중견연기자들을
많이 쓰게 되는데요. 그건 좋습니다만 그러다보니 극의
박력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특히 태조왕건이나 무인시대같은
대규모 전쟁씬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극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최근에 다모,해신,서동요,신돈과 앞으로 방영할 예정인
태왕사신기등에서 젊은연기자를 중용했거나 중용할 예정인데
이 추세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극은 극중인물의 내면과 심리연기에만
촛점을 기울이다보니 노쇠한 중견연기자들만 기용을 하는
사람에 극의 활력과 박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극에 있어 젊고 박력있고 대중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젊은 연기자들을 많이 끌어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의
추세가 그렇게 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라 거의 모든 한국 드라마가 다 여기에 해당이 되는
문제점인데요, 인기만 많으면 거의 무작정 무리한 늘리기로
사극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를 그동안 많이 보였는데요.
[예: 용의 눈물,허준,태조왕건,여인천하 등]이 부분은 정말로
확실히 고쳐져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첫번째에서 제가 지적했듯이
요즘에는 이런 부분들이 많이 고쳐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신이나 대장금등이 그 좋은 예이겠지요.
이것도 사극의 고질병중 하나이지만 특히 조연의 경우가 매우
심하지요.
물론 연기를 아주 잘하고 개성있는 조연을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
기용하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연기의
발전이나 변신이 보이지 않는 연기자를 계속해서 반복기용하는
것은 분명히 사극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된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허준에서 애드립 연기로 크게 모았지만 그 이후
mbc의 대장금,sbs의 서동요에서 나오는 어느 중견 연기자분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겠지요.
이 점은 꼭 좀 시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4: 지나친 현대어의 남용.
이것은 문제점이 아니라 오히려 현 추세를 반영하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냐고 말하실 님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sbs의 서동요의
경우 한 나라의 공주신분인 선화공주가 현재 미천한 신분인
서동에게 이랬습니다. 저랬습니다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서동을 이야기할 때 그 분이라고 지나치게 존댓말을 쓰는 것이
좋아 보이지가 않더군요. 굳이 서동에게 존칭을 한다면 이러세요.
저러세요 정도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네요. 너무 존칭을 하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장금의 이영애,지진희의 경우는 상당히 잘 어울렸지만 지진희의
경우 이영애에게는 깍듯히 존댓말을 쓰면서
다른 궁녀나 의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식으로 반말을 하는 것이
사람을 차별하는 것처럼 보여서 대장금을 보면서 편치가 않았습니다.
뭐....다른 궁녀나 의녀들에게까지 깍듯이 존댓말을 쓴다면 더
어색해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왠지 사람차별을 하는 것같아 보기가 그렇더군요.
개인적으로 말이죠.
5: 새로운 작가들과 pd들의 등장 부족.
작가들이 나와서 사극의 질을 발전시키고 있지만(아직 부족하다
해도 말이죠.) pd의 경우는 거의 철옹성처럼 몇 몇 나이든
pd들이 거의 모두 사극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요즘에는 옛날에 비해 많이 바뀌어지고 있지만 좀 더 혁신적으로
발전을 할려면 특히 pd들이 젊은 사람들로 많이 바뀌어야 좀 더
현대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사극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무조건 젊은 사람이 반드시 더 현대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사극을 만들 수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젊음의
패기를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무조건적으로 세대교채를 해야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극에서
젊은 pd들의 비중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가의 경우도 대장금의 김영현씨같은 유능한 사극 작가가
나왔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한국 제작에 있어 좀 더 젊고 유능한 사극작가가 참여하길
바랍니다. PD의 경우도 그렇고 말이죠. 그래서 한국 사극 드라마가
좀 더 참신하고 화려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6: 틀에 박힌 고문씬과 한국 사극 캐릭터들의 약한 맷집(?)
이것도 우리나라 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점인데요.
고문씬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게 문제점입니다.
예외도 있지만 말이죠.
주류가 이렇습니다. 먼저 주리든 단근질이든
압슬이든 곤장이든간에 고문을 하기 전에는
아무 공포감이나 두려움을 안 느끼는 인형처럼
무표정하다가 고문을 실제로 가하면 있는 대로
비명을 지르기에 바쁩니다.
사람이다보니 고문을 가하기 직전에도 깊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많은 경우 천편일률적으로
고문전에는 인형처럼 무표정하다가 고문만 가하면
있는대로 무조건 비명을 지르기에 바쁘니 너무나
단조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고문을 당하기도 전에 너무 무서워서 어떤
사실을 실토한다든지 하는 면도 보여야 되는데
그런 면이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솔직히
말이죠.
또 모든 사람들이 고문만 실제로 가하면
천편일률적으로 무조건 비명만 저지르는데
과연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까요?
즉 고문을 가해도 비명한 번 안 저지르고
의연히 태연자약하게 고문을 감당해내는
사람이 과연 한 사람도 없을까요?
고문씬은 아니지만 너무나 유명한 삼국지의
관운장의 팔치료 장면도 있고 이것도
고문씬은 아니지만 제가 어느 역사책의
사진에서본 내용이지만 베트남전때 월남의
어느 승려가 몸에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하는 데도 전혀 고통을 못 느끼는 듯
양반다리 자세로 태연자약하게 죽는 모습도
보았고 또 이건 실제 고문장면이었지만
일제 시대때 어느 독립운동가가 일제의 고문에
의해 한 쪽 팔을 잘린 직후의 장면을 보았는데
전혀 고통을 못 느끼는지 무표정한 표정이더군요.
역사자료에도 사육신의 성삼문,하위지,유응부의
경우도 단근질,주리를 비롯한 혹독한 고문을 가해도
비명 한 번 안 저지르고 태연자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요.
좀 더 극단적인 경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마천의
사기의 장이,진여열전에서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군국제를 실시해서[군국제- 진시황의
군현제와 주나라의 봉건제를 절충한 제도.
주나라는 수도 장안만 임금이 직접 통치하고
나머지 중국의 영토는 왕족들과 공신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그 땅을 하사받은 왕족과 공신들은 절대
중앙의 주나라 임금에게 반란을 하지 않고 충성을
할 것과 세금과 외적이 주나라 임금과 백성을
공격해 이를 지켜 주나라 임금과 백성을 지키는
병역의 의무와 기타 1년에 한 번씩 별도로 조공을
바치는 것과 주나라 임금,중전,세자의 생일과
연말,연초에 축하의 사신을 보내는 의무와 자신들이
하사받은 땅에서 자신을 위해 짓는 저택이나 기타
여러 의전절차등을 주나라 임금의 것보다
아래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예를 들어 주나라
임금의 궁전의 규모가 1000평대이면, 즉
주나라 임금의 궁전의 규모가 1000평~9999평
사이라는 뜻. 땅을 하사받은 왕족이나 공신의
저택은 반드시 100평~999평 사이이어야
한다는 식.)
그 이외에는 주나라 임금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하사받은 땅을 다스리며
통치하게 됨.
그 땅을 대대로 자손들에게 물려줘 가면서
통치하게 하는 제도.
이 제도가 봉건제인데 이러다 보니 후대로
내려갈수록 땅을 하사받은 왕족과 공신들의
자손들은 그들이 처음 땅을 하사받은 자신의
조상들처럼 충신이 아닌 관계로, 즉 예를 들어
삼국지의 유비가 관우,장비,제갈양,조자룡에게
땅을 나눠줘 하사했다고 가정하면, 관우,장비,
조자룡,제갈양은 충신들이니까 유비와 그 후의
임금들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지만 관우,장비,
조자룡,제갈양의 자손들은 무조건 충신일 수가
없고 당연히 세력을 키워 그들 후대에 유비와
그 후의 임금들을 배신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이야기임.
이 봉건제때문에 주나라 말기 땅을 하사받은
왕족들과 공신들의 자손이 주나라 임금을
배반하고 자신이 독자적으로 왕노릇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춘추전국시대임.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춘추전국시대의 원인이 되었던 봉건제를
폐지하고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군현제를 실시하게 됨.
진시황은 통일 중국을 36개의 군으로
나누는데 군은 오늘날의 우리나라로 치면
경상북도,경기도,전라북도식의 도(道)를
말함.
즉, 지방행정의 최대단위임.
36개의 군을 설치하고 군밑에 바로 아래의
지방단위인 현을 설치함.
이것이 군현제임.
군현제는 군을 다스리는 군수와 현을 다스리는
현령을 모두 중앙의 황제가 임명해서 보내는
임기제(오늘날의 한국의 서울시장이나 도지사가
임기가 있는 것처럼.)로 보내서 다스리게
하는 제도임. 즉 중앙에서 임명된 관리에게 임기를
정해 놓아서 봉건제의 경우처럼 평생 또는 자자손손
그 지역을 계속 다스리게 해서 그 지방에서 세력과
인심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을려는 의도임.
또 임기도중에라도 군수나 현령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반란을 일으킬 조짐이 보이면
언제라도 즉각 해임시킬 수 있는 제도임.
이 제도에서는 관리가 자신의 고향의 군수나
현령으로 부임하는 것을 금하고 있고- 고향은
인심을 얻고 세력을 얻기 쉬워 반란의 위험이
크기 때문.
또 고향사람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군현을 잘못 다스리는 일을
없게 하기 위해서임.
하지만 진시황은 황제가 된 이후 무자비한
폭정으로 민심을 잃었고 진시황 사망이후
등극한 진나라 2세 황제 호해가 진시황보다
더욱 폭정을 일삼아 진나라는 완전히 민심을
잃어 전국 각지에서 백성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전국 각지에 임명이 되어 있던 군수와 현령도
진나라를 등지고 반란에 가담하게 됨.
나중에 중국을 재통일한 한고조 유방은 전국을 36개 군과
그 아래 단위로 현을 임명하고 군수와 현령을
임명한 것이 진나라가 천하를 잃은 원인중 하나라고
분석을 해서-왜냐하면 중앙의 황제에게 임명을
받아 부임한 군수와 현령은 모두 황제와 성이 다른
남이기때문에 믿을 수 없다라고 판단한 것임.
비록 임기제라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는것임.
그렇다고 주나라의 봉건제를 다시 실시하자니
춘추전국시대로 되돌아 갈 우려가 있고해서-
진나라의 군현제와 주나라의 봉건제를 절충한
군국제를 실시하게 됨.
이것은 전체 중국 영토의 3분의 2는 황제가
임기제의 관리를 보내 다스리게 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한고조 유방과 성이 같은 유씨
황족들을 황제 다음의 지위인 왕으로 봉해
땅을 나눠주고 그 왕이 죽으면 그 왕의 세자가
다시 왕이 되어 그 땅을 다스리게 하는 제도임.
즉 근본은 군현제를 하되 군현제의 단점인 군수와
현령이 황제와 성이 다른 남이라는 것을 고려해서
군수와 현령이 반란을 일으켰을 경우, 황제와 같은
성인 유씨 황족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와 황제를
보호하게 할려는 의도임.]중국 영토 전체의
3분의 2는 황제인 한고조 유방이 임기제의 관리를 보내
직접 다스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처음에
한신,팽월,영포같은 한고조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공이
많은 공신들을 지방왕으로 봉했는데 그중에
하나인 조나라의 왕으로 임명이 되었던 초대
조나라 왕 장이가 죽고 장이의 아들인 장오가
조나라 왕이 되어 조나라를 통치했는데 한고조 7년에
한고조 유방이 전국 순행과 지방의 반란 토벌을 겸해
중간에 조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조나라 왕 장오에게 매우 무례하게 굴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당시 60여세의 조나라의 재상 관고,조오등의
조나라 왕 신하들은 조나라 왕인 장오가 모르게
한고조 유방을 암살할 계획을 짜게 되고
다음 해 한고조 8년에 고조는 한나라의 수도인
장안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조나라를 다시
거치게 되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게 되어
원래 조나라를 들르면서 묵을려던 숙소에
유숙하지 않고(그 숙소에 관고등의 조나라
신하들이 보낸 자객들이 숨어 있었음.)바로 장안으로
돌아가게 되어 암살위험을 모면하게 되고 다음해 한고조 9년에 관고에게
원한이 있던 한 사람이 한고조에게 그때의 음모를 밀고했고
한고조는 조나라 왕 장오와관고등의 조나라
신하를 모두 체포할려고 했고 관고를 제외한
다른 조나라 신하들은 모두 자결하게 되고
관고는 한고조 암살 미수 사건이 조나라 왕
장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한고조에게 밝히기 위해 자결하지 않고
체포되어 수도 장안으로 압송이 되어
한고조 시해 미수 사건에 대해서 심문을
받게 되는데 자신을 비롯해서 이미 자결한
다른 조나라 신하들만이 한고조 시해 미수
사건에 가담했을 뿐, 조나라 왕은 아무것도
모르신다고 답변을 하고 이를 믿지 않은
형리가 고문을 가해 관고에게 매를 수천대를
치고, 또 쇠침으로 찌르고 해서 전신이 상처
투성이여서 더 이상 칠 곳이 없었는데도
관고는 일관되게 조나라 왕은 이 한고조 시해
미수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라고 진술 했었다고
합니다.
이에 형리가 관고를 치죄(治罪)한 실정과 진술을
한고조에게 보고하자 한고조는 관고의 초인적인
맷집에 감탄해 장사(壯士)라고 칭찬하고 더이상의
고문을 중지하고 관고와 친한 설공에게 관고에게
가서 조나라 왕인 장오가 정말로 한고조 시해 미수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는지 묻게 하고 관고는 조나라
왕은 음모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을 하게
되고 설공이 다시 궁으로 돌아와 한고조에게 사실을
보고하니 한고조는 조나라 왕 장오를 사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고의 신의가 있는 면과 관고의 초인적인
맷집(?)을 높이 사 관고도 석방 시켰으나 관고는
자신의 할일을 다했고 한고조 유방이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을 다시 관리로 쓸려고 하는데 유방을 암살할려고
해놓고 다시 유방을 섬기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해
스스로 자결한 일화가 있습니다. 관우,장비 같은 힘센
무신도 아닌 문신이 그것도 나이 60여세에 매질을
수 천대를 맞고 또 쇠침으로 찔리기까지 했는데도
안 죽고 산 초인적인 맷집에(이 경우 보통 매우 힘세고
체격이 좋은 젊은 20대라도 수 천대의 10분의 1인
300~400대의 매를 맞아도 죽을 것이 아닙니까?)고문을
지시한 사람이 감동해 풀어주는 이런 경우도 사극에서
보일 수 있을텐데 허약한 맷집을 가진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는 한국 사극 캐릭터들의 경우에는 이런 일화는
도저히 작가와 pd가 지어낼 수 없겠지요.
또 사약신도 그렇습니다. 이거는 전부 다 천편일률적으로
사약을 먹자마자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배를 움켜지고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죽는데요. 실제로 제가 듣기로는 사약을 먹어도
그렇게 금방 죽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또 일부 아주 강인한
사람의 경우 사약 한 사발을 먹고도 안 죽어 2사발 이상을
먹고서야 겨우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여인천하에서
나왔던 조광조와 조선 숙종때의 우암 송시열이 그 예입니다.
조광조의 경우 사약을 2사발 반이나 먹고 나서야 죽음이
임박해 오자 자리에 단정히 누워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여인천하의 조광조의 사약씬은 실제 역사 기록을
전혀 따르지 않고 그저 예전부터 천편일률적으로 답습해온
사약먹은 직후의 장면들을 그대로 답습하더군요.
영화 동방불패에서 동방불패의 측근으로 나왔던 일본 무사가
관지림의 아버지 역을 맡은 흡성대법의 고수와 싸울 때
그 고수에게 팔을 잡혀서 팔이 말라 들어가자 자신이 과감히
재빨리 한 쪽 팔을 절단하는데 전혀 고통도 못 느끼는 듯이
다시 전열을 정비해서 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이런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형가의 경우가 그렇지요.
형가가 단검을 들고 진시황을 암살하려 하자 다급한 진시황은
허리에 칼을 차고 있었는데도 형가의 공격을 피하느라 바빠
허리에 찬 칼을 뽑을 여유도 없었고 또 워낙에 정신이 없어서
칼을 뽑을려고 해도 뽑아 지지도 않았지만 형가의 공격을
진시황의 어의(御醫)하무저가 형가에게 약봉지를 던지는 동안에
시간을 벌어 신하들의 조언을 듣고 검을 허리에서가 아닌 검을
등에 지고 뽑기를 시도해 칼이 뽑혀 나오고 장검으로
형가의 한 쪽 다리를 절단해 형가가 쓰러졌고 형가는
굴하지 않고 단검을 진시황에게 집어 던졌고
단검은 빗나가 구리 기둥에 명중했습니다. 이에 진시황은
안심하고 형가에게 달려들어 형가에게 칼로 8발을 찌릅니다.
형가는 일이 실패했음을 알고 기둥에 의지하여 웃으며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진시황을 꾸짖으며 일이 안 된것은
진왕(진시황을 가르킴. 이때는 아직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지 못했던 때임.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진시황은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자신은 시황제라고 호칭함.
천하통일을 하기 전까진 진시황은 진왕이었음.)을 산 채로
협박하여, 연나라한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얻어서, 연나라 태자에게 보고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진시황의 여러 신하들이 달려와 형가를 죽였습니다.
이상이 사마천의 사기의 자객열전에 나오는 형가편입니다.
만약 형가의 진시황 암살 미수 장면에서 진시황이 칼을
빼어 형가의 한쪽 다리를 끊었을 때 형가가 비명을
있는 대로 지르며 때굴때굴 구르다가 기절했거나 아니면
한동안 비명을 구르다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이를
악물고 진시황에게 단검을 던졌다고 한다면 진시황을
암살하는데 100% 실패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절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한동안 비명을 지르며
때굴때굴 구르다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해 이를 악물고
진시황에게 단검을 던진다면 비명을 지르고 때굴때굴
구르다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할 때까지 진시황이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그새 벌써 칼을 맞아도 몇 번은 더 맞았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나라의 최영의 경우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쓰여진 고려사 최영전에서 최영은 61살의 나이로 왜구를
토벌하러 충남 홍성에서 싸웠을 때 고려군이 두려워
아무도 진격을 하려하지 않자 최영이 선두에 서서 왜군을
무찔러 왜군은 바람앞의 풀잎처럼 쓰러져 갔고 정면으로는
최영을 당하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든 왜군은 한 병사를
숲에 숨게 한 다음 그 병사가 활을 쏘아 최영의 입술에
명중시켰고 화살이 입술에 맞아 유혈이 낭자했지만 최영은
전혀 표정변화가 없이 태연자약했고 자신을 쏜 적병을 찾아
그 적병에게 화살을 쏘아 죽이고 나서 입술에 박힌 화살을
뽑아 내고 더욱 용감히 밀어붙여 마침내 왜군을 완전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립니다.
또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삼국지의 관우의 팔치료 장면도
그렇고(소설 삼국지연의 말고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의
관우전에도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조선의 이순신 장군의
경우도 그렇고 말이죠.
어느 날 한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수군이 쏜 총탄에
어깨를 명중당했는데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내렸지만
이순신 장군은 총을 맞는 순간에도 전혀 표정변화가 없이
태연자약했고 자신이 부상 당했음을 주위에 알리지 않았고
싸움이 끝나고 나서야 상처를 치료했는데 총이 어깨에 6cm가
넘게 박혀서 칼로 살을 도려내고 뼈속에 박힌 총알을
뽑아 냈는데 이순신 장군은 조금도 아파하지 않고 태연하게
담소자약(태연하게 웃으며 이야기한다는 뜻.)하는 면모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이 일화는 조선시대 야사역사책을
총집대성한 이긍익의 연려실기술과 유성룡의 징비록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제가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극의 캐릭터들은 고통에 너무나도 약한 모습을
보이니 말이죠. 그리고 일제시대의 한용운도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한용운이 만주에 있을 때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친일파로
오인을 받아 우리 청년들이 쏜 총에 몸에 여러 군데를
맞고 피를 흘리며 도주를 해서 무사히 위기를 넘겼고
수술을 하러 온 의사가 마취를 할려고 하자 그깟 수술이
뭐가 아프다고 마취를 하느냐고 거절을 하고 그냥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가 다 끝날 때까지 전혀 아파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수술을 다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고
이 일화가 한용운의 일생을 쓴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지요.
지금은 안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개인적으로
삼국지의 관우의 경우보다 한용운의 일화가 더 낫다고
봅니다. 관우의 경우와 달리 여러 곳을 수술했으니
말이죠.
아니, 개인적으로 더 낫다고 본다가 아니라 더 낫지요.
이치가 이런데도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설
삼국지연의의 관우의 팔치료 장면만 알지 이순신 장군의
어깨 치료 일화와 한용운의 여러 군데의 총상 치료
일화는 잘 모르죠.
잘못된 사대주의의 경우이지요.
우리 나라 사람의 맷집을 논하는 데 있어 제가 알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제가 고등학교 때 배운 한문 교과서에
있었던 조선시대 중종 때 사람인 양연의 경우입니다.
대제학을 지낸 눌재(訥齊) 양성지(梁誠之)는 그의
할아버지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당시 제일 가는 문장가일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군사등에 막힐 것이 없을 만큼 박학다식하여
명성이 자자하였으나 그러나 손자인 양연은 나이 40이
되도록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비로소 같은 나이의 다른 사람들은 입신 양명하여
높은 벼슬도 하고 이름을 드날리는데 자기는 대제학의
손자로서 아무데도 쓸모 없는 무식꾼임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글을 읽으라는 할아버지 말씀을 어기고 엉뚱한 생각만
하고 허송 세월을 했던 그는 지난날이 한없이
후회스러워졌고 할아버지께도 크나큰 불효를
저질렀다고 깨달았을 때 그는 눈물을 흘리며
결심하기를
않으리라."
왼손을 꼭 쥐고 스스로 마음 속에 다짐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곧바로 북한산 중흥사(中興寺)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했고 몇 년이 지난 뒤 그는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그는 그때에서야 비로소 꼭 쥐웠던
왼손을 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손톱이 자라서 손바닥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맷집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합니다.
이치가 이런데 우리나라는 사극에서 사극 캐릭터들이
고통에 너무나 약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 한국 드라마나 영화보다 고통에 더욱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발달된 물질문명으로 옛날에 비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 한국인보다 살아가는 환경조건이
더 열악한 옛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가기 위한 정신력이
요즘 현대 한국인보다 약하다고 한국의
방송관계자들이나 사극작가,pd들은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게 과연 맞는 논리이겠습니까?
물론 옛날 사람이라고 무조건 강인한 것은 아니고 요즘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옛 사람에 비해 연약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현대인들보다 생활환경이 열악한
옛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정신력이 더 강할 것이라는
생각이 옳은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옛 사람들보다 오히려 현대 드라마와
영화의 캐릭터가 더 강인하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 이순신 장군의 어깨 치료 장면 일화와 한용운의
일화와 관우의 팔치료 장면일화를 다시 이야기를
하자면은요.
뭐, 하여튼간에 소설 삼국지연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이 사실이죠. 조선시대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말이죠.
관우의 팔치료 장면도 우리나라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순신 장군(이순신 장군은 조선중기의 사람이니
혹시나 소설 삼국지연의는 못 봤을 수도 있겠지요. 봤을
수도 있지만 말이죠. 봤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못 봤다
하더라도 최소한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는 보았겠지요.)과
한용운 같은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어린아이에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런 일화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느 한 선비가 길을 가다가 한 어린아이를 보았는데
그 어린아이는 한 쪽 손등을 베여서 피가 많이 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혀 아파하지 않고
울지도 않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상히 여긴 선비가
그 아이에게 안 아프냐고 묻자 그 아이는 정색을 하며
아저씨는 삼국지도 안 읽어 보았냐고 하면서 거기서
관운장이 독화살을 맞았는데 화타가 와서 생살을 자르고
뼈를 깎는데도 전혀 아파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웃으며
바둑을 두지 않았냐고 하면서 이만한 상처로 아파서
울면 체면이 떨어진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린아이도 이 정도의 인내심이 있는데 하물며 한국 사극의
캐릭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에 너무나 약한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mbc tv의 사극 신돈에서 노국공주가 출산을 하는 연기를 보고
매우 연기가 리얼하다고 칭찬이 쏟아 졌는데 신돈의
홈페이지에서 어느 네티즌님이 저게 정말로 연기를 잘 하는
것이냐고 말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은요. 한국의 사극에서 여자들이 출산하는 장면은
전부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얼굴이 시뻘개지고
땀을 비오듯 흘리며 비명만 지른다는 것입니다.
모든 임산부들의 출산장면이 다 저렇냐는 것입니다. 개성이
없는 천편일률적 연기라는 것입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일개 어린아이도 자신의 손등에 칼에
베여도 다른 영웅을 생각하며 참고 인내하는데 하물며
한나라의 국모라는 사람들이(노국공주,여인천하의
문정왕후등.)너무나 고통에 약한 모습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국모나 나라의 큰 위치에 있는
여성이라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억지로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서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려고
하지는 않을텐데 말이죠.
할리우드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출산장면이 나오는데 스칼렛의 첫사랑인 애슐리의
부인 멜라니도 출산을 할 때 억지로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말입니다. 그러자 스칼렛이 아프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라고 했습니다. 여기는 자신과
당신밖에 없으니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말이죠.
우리나라의 국모나 고위급 여성들이 미국의 일개 평범한
여자보다 더 고통을 못 견디니 솔직히 한심한 노릇이죠.
남자들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죠.
우리나라 사극의 고문씬,사약씬이나 기타 전쟁에서의 부상시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고통이 닥치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만
보이지 말고 좀 더 다양하고 리얼하고 또 고통에 강하게
인내하고 견디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이것도 우리나라 사극의 문제점중 하나인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우리나라 사극 연기자들의 승마기술이
어설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 헐리우드의 경우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최명길씨는 용의 눈물 전반에 걸쳐 매우 연기를 잘
하셨지요.
하지만 승마기술은 미성숙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1차 왕자의 난 때 남편 이방원의 거사 성공 여부를
알아볼려고 남장을 하고 말에 타서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 이방원 댁 하인이 말을 몰아주면서 너무나
천천히 가더군요. 자기 남편이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해서 죽었는지 알아볼려는 그 급한 마당에
그렇게 천천히 가는게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더군요.
그리고 솔직히 남자 연기자들의 경우도
승마기술이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대규모 전쟁씬을 보면 최고 속도로 말을 잘
못 모는 경우를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솔직히 용의 눈물때가 그랬지요. 과연
옛날 군사들과 장군들이 저렇게 말을
느리게밖에 못 탔을까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다만 태조왕건과 허준의 경우는 스턴트맨의
경우이겠지만 상당히 능숙히 잘 타더군요.
주,조연 연기자들이 좀 더 승마기술을 익혔으면
합니다. 미국의 경우 파엔드 어웨이에서
톰 크루즈가 보여준 승마솜씨는 정말 일품이었지요.
말이 최고속도로 달리는 데도 매우 능숙하게
말을 잘 모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마이클 잭슨의 black or white 뮤직비디오에
나오지만 인디언들이 말을 모는데 최고 속도로 달리는
말에 뛰어올라 정확히 말등에 올라타거나 반대로 최고속도로
말이 달리는 데도 능숙하게 뛰어내리는 등의 고난이도 기술을
선보이더군요.
솔직히 참 부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승마기술이 가장 좋은 연기자는
유동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명성황후에서 청나라에 납치되었다가 귀국한 장면에서 말을
타는데 말이 미쳤는지 두 발로 일어서면서 난동을 부리는데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의연히 잘 버티면서 능숙하게 말의
난동을 잘 제압하더군요. 그 장면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고로 여자 연기자중에서는 김혜리가 가장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조왕건에서 왕건을 비롯한 남자연기자들과
대등한 승마기술을 보이더군요. 솔직히 노국공주역의
서지혜씨는 못 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무튼 연기자들이 승마기술을 능숙하게 익혔으면
합니다.
이것도 우리나라 사극의 문제점중 하니인데 음악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음악들이
거의 대부분이 옛날 1960~1980년 대 식의 전형적인 옛날
음악들이 지배하고 있는 현상이 보기가 안 좋더군요.
시대가 시대인만큼 고전음악을 탈피해서 현대 젊은이들이
들어도 익숙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음악을
현대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극의 기본틀을 벗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사극의 맛을 살리면서도
현대의 젊은이들도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현대적인
감각의 사극 음악들을 원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자면은요.
영화 십계에서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은 모세가 홍해를
가른 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장면에서 나온
음악은 사극의 맛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이면서도 아주
웅장하고 장엄해서 모세의 카리스마를 극대화시켰습니다.
그 때 찰턴 헤스턴이 맡은 모세는 정말 모세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산이라도 움직일 듯한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어냈는데 그 중요한 비결중 하나가 사극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이고 웅장하고 장엄한 음악 덕분이었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십계를 리메이크 해서 에니메이션으로 만든
1998년 작인 이집트 왕자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
왕자의 최고의 장점중 하나로 웅장하고 심금을 울리는
배경음악과 주제곡을 꼽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시청자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삼국지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업체인
코에이 사의 삼국지 5편과 7편의 음악도 매우 유명하지요.
사극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이고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음악을 선보였지요. 우리나라의 사극
음악도 이런 식으로 발전이있었으면 합니다.
사극 주제곡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말이죠.
그러니까 사극 주제곡의 경우 본 사극과 어울리면서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주제곡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 사극 드라마 주제곡 제작에 있어 이 점이
매우 발달 했습니다.
예를 들어 1995년 중국 CCTV에서 방영했던 삼국지연의에서
주제곡은 아니었지만
삼국지연의 30회에서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 아두를 안고
단신으로 조조의 83만 대군을 돌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 후반부에 조자룡이 조조의 83만 대군을 뚫고
지나가는 도중에 함정에 빠졌다가 나오면서 청홍검을
뽑아들고 조조의 군사들를 닥치는 대로 죽이고 조조군의
포위망을 뚫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조자룡의
활약에 어울리게 작성된 가수의 노래가 나오면서
조자룡의 활약을 더욱 빛내주었습니다.
노래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결의는 안했어도 신의가 있다네.
나라에 대한 충정 비할 길 없어
혈혈단신 적진 뚫는 용맹성에 적이 놀란다.
갑옷은 피로 물들고 굳은 의지 표출된다.
자룡,자룡은 천하무쌍. 온누리에 이름 떨친다.
결의는 안했어도 신의가 있다네.
나라에 대한 충정 비할길 없어.
혈혈단신 적진 뚫는 용맹성에 적이 놀란다.
갑옷은 피로 물들고 굳은 의지 표출된다.
자룡,자룡은 천하무쌍. 온누리에 이름 떨친다.
자룡,자룡은 천하무쌍. 온누리에 이름 떨친다.
아니더라도 주인공이나 다른 주연급 조연이 크게
활약할 시에 이런 식의 노래를 만들어 주인공이나
주연급 조연을 띄워주는 경우가 없지요.
어쨌든 이 노래는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 아두를 안고
단신으로 조조의 83만 대군을 돌파하는 상황에 맞으면서
현대적인 음악풍으로 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마이걸에
출연했던 박시연씨가 주인공의 어머니 삼성모로 출연했던
보련등 2004에서도 여주인공 소옥이 주인공 침향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삼국지의 조자룡이
아두를 안고 조조의 83만대군을 단신으로 돌파할 때
노래가 나왔던 것처럼 현재 보련등의 여주인공인
소옥의 현상황에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어 방영했다는
것입니다.
주제곡은 아니지만 말이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지와 보련등 2004의
경우처럼 꼭 주제곡이 아니더라도 드라마의 중요한
부분에서 그 상황에 맞는 노래가 만들어져 같이
방영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사극 드라마의 주제곡도 그 사극의 내용에
걸맞으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주제곡을 만들어서
독립적인 음악으로 청취할 수 있게 하고 또 그 주제곡을
사극 드라마의 오프닝 동영상에 섞어서 방송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
중국사극인 2000년도 작인 강희왕조의 경우가 그 좋은
예입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중 한 명이었던 강희제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인데 강희제는 8살에 황제에 올라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청나라 초의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청나라의 태평성대를 연 황제인데 강희제의
그 삶에 걸맞게 주제곡이 만들어져 강희왕조 동영상과
섞여 방송이 되었습니다.
강희왕조의 주제곡 향천재차 오백년의 주제곡 전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강희왕조 주제곡: 향천재차오백년
우뚝 솟은 산맥과 드넓은 강산을 따라
사랑하는 중원 벌판을 거침없이 달린다.
내 길엔 혹독한 시련과 고초가 따르지만
하늘이 준 찬란한 청춘을 아낌없이 바치련다.
용기가 있다면 그 무엇이 두려울까.
웅대한 뜻은 변치 않으리.
인생의 고난과 행복. 그리고 선 악.
모두가 부질없는 꿈이련가.
말밥굽을 울리며 강산을 누빈다.
거센 파도 앞에 서서 천하를 호령하니
이 한 목숨 바쳐 태평성세 이루리.
천년 만년 살 수만 있다면.
이상입니다.
8살에 즉위해 황제로서의 권위와 자리를 도전받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청나라 초의 어지러운 현실을
바로잡고 청나라의 태평성대를 연 강희제의 일생을 잘
표현한 주제곡 입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사극주제곡 제작에 이 점을 잘
참조했으면 합니다.
뭐. 그렇다고 꼭 사극주제곡 제작에 있어 반드시
해당 사극의 상황만을 무조건 고려해서 주제곡을
만들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말이 딴데로 흘러가 죄송합니다. 양질의 사극
주제곡과 음악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앞으로
방영될 사극의 음악을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음악들을 짓고 작곡하는 작곡가,편곡가들에게 맞겼으면
합니다. 이게 대안일 것 같네요.
하지만 정말로 자신이 있다면 사극 음악에서도 사극의
기본틀을 깨는 음악을 하는 것도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겠죠.
예를 들어 1991년에 개봉되어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던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로빈후드의
주제곡이었던 브라이언 아담스의 everything i do
do it for you처럼 말이죠.
이 노래는 빌보드 챠트 7주 연속 1위를 한 곡으로
유명하지요.
우리나라 사극작가와 pd들은 사극 음악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최대의 문제점 중 하나이지요.
만약 한국 사극 드라마 음악 담당을 박진영,손무현,
주영훈,김형석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이
참여한다면 사극음악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겠지요.
우리나라 작곡가들로 부족하다면 명성황후의
하이라이트 뮤직비디오 주제곡인 나 가거든에
주제곡 제작에 미국 LA의 캐피털 스튜디오에서
오케스트라 녹음을 하고 미국의 유명 음악
프로듀서인 랜디 워먼을 공동 프로듀서로 영입해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 작곡가들만 쓸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의 유명한 음악 작곡가,프로듀서도 썼으면
합니다.
단순히 사극 드라마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배경음악만 잘 넣을 것이 아니라 위에서 제가 말한 것처럼
케빈 코스트너의 로빈후드 영화의 주제곡인
everything i do do it for you 같은 명곡을 만들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그러면 사극 드라마는
물론 그 해당 사극 드라마의 ost 음반까지 내서
히트쳐 2중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해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사극제작자들은
사극 제작에 있어 배경음악과 주제곡을 작곡하는 것의
비중을 너무 낮게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품의 메시지와 흥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사극제작에 있어
배경음악과 주제곡 작곡에 비중을 크게 두고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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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굉장히 섬세한 분이군요.고문부분에 관한 견해가 재미있었어요.^^*
사극에 집중적인 연구를 하신 분 같은데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 잘못된 부분만 지적을 해도 엄청나군요 물론 최우선으로 제작비의 국제화 수준이 이모든것을 해결해 나갈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