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함께, 스메타나, '몰다우江' 쏟아지는 學林다방, 木계단에 오줌을 갈기거나,
지나가는 버스 세워놓고 욕지거리, 감자먹이기 등 發狂을 한다.
發精期, 그 긴 여름이 가다. 어디선가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나고, 어디선가 바람이 다가오는 듯,
예감이 공기를 인 마로니에, 은행나무 숲 위로 새들이 먼저 아우성치며 파닥거리다.
그때 생을 어떤 사건, 어떤 우연, 어떤 소음에 떠맡기다."
황지우 시 <활렵수림에서> 중에서 일부 옮겼다.
1956년 서울 동숭동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너편에 학림다방이 문을 열었다.
학림다방은 지금도 대학로 혜화역 부근에 자리한 55년 전통을 자랑하는 커피전문점이다.
학림다방은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 '제25강의실'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문리대의 축제가 '학림제(學林祭)'로 불리웠을 정도로 서울대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4.19 학생 혁명, 5.16 그리고 그 후 수많은 학생 운동 등 고난과 희열로 점철된 대학로의 역사를
지키는 지킴이었다. 많은 시인·문학가·음악가들의 아지트였다.
시인 김정환, 소설가 김승옥, 시인 김지하, 가수 김민기, 민중시인 황지우, 철학자 김용옥,
가수 조영남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인과 음악가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지금도 오래된 곳이니만큼 손님 층도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대학생들의 토론 장소이자,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등 예술계 인사들의 아지트로 사랑받았던 학림다방이었다.
70년대 커피전문점 난다랑이 서울 동숭동에 등장한다.
70년대의 대표적인 다방이면서 최초의 전문커피점이라면 '난다랑'을 들 수 있다.
난다랑이란 상호는 다방의 원래 이름 '다랑'에 '난'자를 붙인 것으로,
이곳은 원두커피를 판매하여 전문 커피숍의 바람을 일으켰던 곳이다.
난다랑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테이블마다 커피 설명서를 붙여 놓고
손님들에게 원두커피에 대한 지식을 알렸던 점이다.
고객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판다는 경영방침에 따라 군고구마까지 구비해 놓은 점이 크게 어필했던 것이다.
지금도 '난다랑'이라고 하면 통유리로 밝고 확 트인 객장에 소품 하나까지
고급을 지향했던 업소로 고객들은 기억되고 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좀더 대중적인 커피전문점이 속속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다방문화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게 있다.
다방에서 일하는 여성의 역할이다.
원래 다방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다방의 얼굴마담 차지였다.
이를 속칭 ‘가오마담’이라고 불렀다.
명동의 봉선화 다방과 모나리자 다방의 가오마담들은 지성적이고 신비한 매력으로
많은 문화인들 기억 속에 잔존하는 명동시대의 전설적인 꽃들이었다.
다방 제비의 금홍이가 가오마담의 효시였다.
엘리뜨의 선두에 있었던 전숙희(수필가), 손숙희(소설가), 유부용(당시 이화여대 음대 교수) 세 사람이
잡지 의 적자폭을 좁히고자 「마돈나」라는 다방을 열고
교대로 가오마담의 역할을 맡아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명동의 문화인들이 다방의 주요 손님의 역할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다방이 고등 룸펜들의 아지트로 전락된다.
이때 가오마담들은 테이블 손님맞이를 꺼려했다.
이들 가오마담을 대신해 다방의 홀 서비스 여성인「레지」의 등장이다.
단지 계산원이었던 ‘레지’들이 홀 서비스의 최 일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레지의 어원을 레이디(lady)에서 왔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레지스터(register; 카운터에서 요금을 계산하는 사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레지들이 새로운 다방문화를 이끌어간다.
‘식사 하셨습니까?’라는 인사가 다반사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침을 못 먹은 사람들을 위해 달걀 노른자만 따로 그릇에 담아 커피와 함께 제공되던 ‘모닝 커피’가 있었다.
실제로 달걀 반숙이 메뉴에 따로 있기까지 했다.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면서 다방은 커피숍으로 고급화 되었다.
88년 압구정에 1호점을 낸 ‘쟈뎅’의 성공은 ‘도토루’, ‘미스터커피’ 등을 탄생시켰다.
이는 개별 점포들로 구성된 다방과는 달리 하나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시작한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의 다방이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로 쾌적한 느낌을 주지 못했던 것에 비해
커피숍은 새로운 분위기로 학생들을 유혹했다.
밝고 깨끗한 실내는 과거와는 달리 멋을 중시하는 신세대들의 욕구를 충족시켰고,
LP판을 통해 음악을 들려주던 DJ는 아르바이트 하는 여대생들이 대체 하였다.
93년에 신촌에 ‘나이스데이’가 생기면서 ‘쟈뎅’, ‘도토루’ 과는 달리 커피계의 프랜차이즈 시장이 생겨난다.
그들은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음료를 판매 하면서 젊은 층의 발걸음을 유도하였다.
당시 커피 가격이 1500원이였으니까 지금의 7000원 정도,
이처럼 결코 싸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커피숍들은 매일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들어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공간이 생겨나면서
커피숍은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난다.
1999년 이화여대 앞, 미국계 프랜차이즈 ‘스타벅스’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커피 문화는 큰 변화를 맞이한다.
국내에는 없던 에스프레소 형식의 커피는 대중문화에 익숙해진 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8~90년대 커피 전문점들이 실내 분위기에 신경을 쓴 것과는 달리 이런 프랜차이즈들은
커피의 품질 향상과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자기들의 영역을 확대시켜 나갔다.
또 기존의 가게들이 단순히 커피를 파는 것에만 그쳤다면
스타벅스 에서는 하나의 커피에서도 손님들에게 다양한 메뉴를 앞세워 선택의 고민을 요구 했다.
가게 내의 분위기보다는 커피 자체를 중요시 하는 변화가 생긴 탓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 문화가 과거 다방이나 커피숍처럼
사람을 만나고 잠깐 앉아 쉬기 위한 모습에서 커피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터디를 하거나 혼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무실 기능을 하면서
기존과는 다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음악을 들으며 단순히 친분 있는 사람들과 만남의 장소쯤으로 여겨지던 것이 다방이었다.
지금의 다방은 사무의 장소로까지 확대 된 것이다.
어떤 점포에서는 테이블 마다 노트북을 연결 할 수 있는 케이블까지 구비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