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목화솜 이불/백후자 수필가의 평론:배경 속에 깔린 문학적 심상

[엄옥례]

작품의 배경 속에 깔린 문학적 심상

-엄옥례의 「목화솜 이불」

백후자

문학작품에서 배경은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수필에서 공간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은 사건이 진행될 인물의 행위와 직결된다. 화자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 일을 겪은 시기가 언제였는지의 체험이 수필에서의 배경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도덕적이며 정서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삼기도 한다.

수필은 자연주의적이며 사실주의 문학이다. 그런 만큼 주변 환경이나 인물의 체험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보여주고 들려준다. 화자의 동선에 따라 필름이 돌아가듯 현실감 있게 펼쳐낸다. 작품의 배경은 사물이나 인간의 물리적 및 지리적 위치, 또는 인물의 하는 일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리고 일이 행해지는 시기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된다. 삶을 있는 그대로 그리되 예술적으로 재창조해내는 일, 그것이 문학이며 작가의 몫이다.

문학에서 심상은 독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감각적인 재생이다. 독자가 재생한 심상은 인간의 감각기능을 통해 전달된다. 모양이나 색채 등 눈으로 보는듯한 감각 현상으로 형성되는 시각적 심상, 소리나 음성을 통해 형성되는 청각적인 심상, 냄새나 향기를 통해 형성되는 후각적 심상, 맛으로 표현되는 미각적 심상, 차가움이나 따뜻함 등 피부를 통해 형성되는 촉각적 심상, 둘 이상의 감각이 결합하여 나타나는 공감각적 심상이 그것이다.

심상의 형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감각적인 수식어를 사용하여 대상의 모습을 직접 서사하거나 묘사함으로써 이미지를 제시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직유, 은유, 의인 등의 수사법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제시하는 비유에 의한 방법이 있고, 추상적 관념을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사물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제시하는 상징에 의한 방법이 있다.

엄옥례 작가의 「목화솜 이불」은 오래된 목화솜 이불을 바라보면서 이불만큼이나 두툼한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떠올리는 글이다. 이 글의 배경은 현재 필자가 사는 집에서 어릴 적 어머니가 가꾸었던 구릉 꼭대기에 있는 목화밭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위치로 돌아오는 공간적 구조를 띤다. 공간적 배경의 이동에 따라 시간적 배경도 함께 움직인다.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했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시간적 구조다. 필자의 이 작품에서는 계절적 배경 역시 유동적이다. 담장에 덩굴장미가 피는 계절에서 조롱조롱 참외가 익어가는 한여름 뙤약볕을 그린다.

필자의 이 작품은 열네 단락으로 이루어진다. 서두 두 단락에서는 현재 시점으로 삼십여 년 전 어머니가 혼수로 해 준 목화솜 이불을 버릴까 말까 망설인다. 막상 버리자니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라 손이 오그라든다. 전개 부분인 아홉 단락은 과거 시점으로 어릴 적 목화를 길렀던 어머니를 회상한다. 여름이 가고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목화를 키우고 솜을 장만하여 혼수를 마련해 주었던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을 느낀다. 결미 세 단락은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온다. 이불을 짓는 동안 딸의 행복을 기원했을 어머니를 떠올리며 솜을 새로 타고 솜을 쌌던 광목을 뽀얗게 삶아서 말린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엄옥례 작가의 <목화솜 이불>에서 돋보이는 것은 대상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이다. 대상 하나하나를 허투루 넘기지 않고 사실적이고 회화적으로 그려낸다. 논두렁길을 걷지 않아도 함께 걷는 듯 온갖 풀꽃을 보고, 산비둘기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시각적 심상과 청각적 심상을 불러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 한층 정겹게 다가온다.

논두렁길을 한 삼사십 분쯤 걸어가면 어머니가 일하는 밭에 닿을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온갖 풀꽃도 보고 날 것들과도 눈 맞춤을 했다. 때로는 뱀을 마주치기도 해서 부지깽이를 들고 풀섶을 헤치면서 다녔다.

적막한 골짜기에는 산비둘기 울음소리도 선명하게 들렸다. 내 발자국 소리에 산 꿩이 놀라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랐다. 꺽.꺽.꺽… 스타카토로 울어대는 소리가 구릉에 울려 퍼지면 목화밭에서 밭을 매던 어머니는 땀을 닦으면서 내가 가고 있는 길 쪽을 바라보았다. 『수필세계』2022. 봄. 63

상추에 보리밥 한 숟가락과 풋고추도 뚝 잘라서 올린 뒤, 날된장을 얹어 연신 입이 불룩하게 쌈을 싸 드신 어머니에 대한 회상은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 어머니의 자화상을 그대로 재현한 듯 생생하게 와 닿는다. 이 작품은 흔한 어머니에 대한 소재이다. 하지만 필자의 어릴 적 목화밭으로의 서사를 리듬감 있는 언어로 묘사해 냄으로써 서정이 감칠맛 나게 살아난다.

풋풋한 참외향이 난다. 필자는 그때 그 참외 향과 맛을 잊지 못했음이다. 야생의 밭고랑에서 이리저리 넝쿨을 따라 열린 참외가 태양 빛을 그대로 받고 익은 맛이다.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까마득하지만, 어머니와의 추억과 함께 필자의 내면에 잠재된 심상이 지면 위에서 후각과 미각적 심상으로 여지없이 발휘된다.

샘물을 떠서 입을 헹군 뒤 어머니는 숨겨 둔 보물이라도 있는 듯 내 손을 이끌었다. 참외 넝쿨이 있는 곳이었다. 거름에서 싹이 난 참외 넝쿨이 한여름 뙤약볕에 제법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이파리 속에는 주먹만 한 참외가 조롱조롱 열려서 익어가고 있었다. 침을 삼키는 나에게 어머니는 초록색이 다 가시지 않은 참외를 따 주었다.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씨근하면서도 풋풋한 향이 풍기는 참외를 달게 먹었다. 『수필세계』2022. 봄. 63

엄옥례 작가가 이 작품에서 그려낸 심상은 무엇인가. 추상적 관념을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사물을 이용한 상징화다. 그리고 작품 구석구석 감각적인 수식어를 사용하여 대상의 모습을 직접 서술하거나 묘사하는 방법의 이미지화다. 필자는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과 사랑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목화솜 이불이라는 구체적 사물을 이용하여 작품을 형상화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다래 꼬투리는 갈색으로 딱딱하게 여물어져 터지고, 솜꽃이 벙글어졌다. 어머니는 자루에 따온 솜을 광주리에 펼쳐놓고 겨우내 씨앗을 뽑았다.

솜을 많이 넣으면 이불을 펴고 갤 때 무겁고 바느질이 힘들다고 하는 숙모들의 성화에도 어머니는 솜을 자꾸만 더 펼쳐 넣었다. 『수필세계』2022. 봄. 64

작가에게 목화솜 이불은 어머니의 사랑이며 염원이다. “이불을 짓는 동안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딸의 행복을 수없이 기원했으리라. 결혼생활이 어렵지 않기를, 자식 낳아 별 탈 없이 키우기를, 낮 동안의 삶이 곤궁했을지라도 밤에는 넉넉하고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다시 힘을 얻어 각다분한 삶을 견뎌내라고 빌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지어준 목화솜 이불이 쓰기에 아까울 만큼 소중했지만, 수명이 백 년이라는 걸 필자는 이제야 깨닫는다. 인간의 수명 또한 백 년이라 했던가. 목화솜 이불에 깃든 어머니의 사랑과 염원이 백 년은 거뜬히 이어가리라 본다.

목화솜 이불/엄옥례

담장에 덩굴장미가 피는 계절이다. 찬바람 일기 시작하면서 펼쳤던 솜이불을 걷는다. 솜이불은 삼십여 년 전, 친정어머니가 혼수로 장만해 준 목화솜 이불이다. 오래된 이불이라 이참에 버릴까, 손에 들고 딸막거린다.

어머니가 손수 지어 준 이불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솜을 차곡차곡 넣어서 두툼하다. 딸, 사위가 덮으면서 이불의 두께만큼 정이 쌓이라고 지어 준 것이다. 그런 이불을 신혼 시절에 기분 낸다고 몇 번 덮다가는 아끼느라 장롱에 모셔두었다. 때로는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큰마음 먹고 내어주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커서 각자의 방으로 간 뒤로는 입동 무렵부터 봄까지 부부 침대에서 어김없이 목화솜 이불을 덮었다. 막상 버리자니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라 손이 오므라든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는 목화를 가꾸었다. 집에서 덮는 이불을 만들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딸들의 혼수 이불을 지으려고 목화를 길렀다. 목화밭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골짜기에 있었다. 고추나 콩같이 수확을 많이 해야 하는 곡식은 구릉 아래쪽 넓은 밭에 심었고, 당장 먹거리에 소용되지 않는 목화는 구릉 꼭대기에 있는 비탈밭에서 키웠다. 더구나 물이 잘 빠지는 밭이 목화 생육 조건에 맞기 때문이기도 했다.

목화밭에서 일하는 어머니께 점심을 갖다 드리는 일은 내 몫이었다. 논두렁길을 한 삼사십 분쯤 걸어가면 어머니가 일하는 밭에 닿을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온갖 풀꽃도 보고 날 것들과도 눈 맞춤을 했다. 때로는 뱀을 마주치기도 해서 부지깽이를 들고 풀섶을 헤치면서 다녔다.

적막한 골짜기에는 산비둘기 울음소리도 선명하게 들렸다. 내 발자국 소리에 산 꿩이 놀라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랐다. 꺽.꺽.꺽… 스타카토로 울어대는 소리가 구릉에 울려 퍼지면 목화밭에서 밭을 매던 어머니는 땀을 닦으면서 내가 가고 있는 길 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가져온 나를 반기며 밭 귀퉁이에 있는 너럭바위에 가 있으라고 손짓을 보냈다. 너럭바위에는 그늘이 들고 산바람도 불어와서 비탈길을 오르면서 흘렸던 땀을 씻어주었다.

내가 도시락 보따리를 푸는 동안 어머니는 밭 옆에 있는 옹달샘에서 손을 씻고 바위에 걸터앉았다. 어머니는 상추에 보리밥 한숟가락과 풋고추도 뚝 잘라서 올린 뒤, 날된장을 얹어 입이 불룩하게 쌈을 싸 드셨다.

샘물을 떠서 입을 헹군 뒤 어머니는 숨겨 둔 보물이라도 있는 듯 내 손을 이끌었다. 참외 넝쿨이 있는 곳이었다. 거름에서 싹이 난 참외 넝쿨이 한여름 뙤약볕에 제법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이파리 속에는 주먹만 한 참외가 조롱조롱 열려서 익어가고 있었다. 침을 삼키는 나에게 어머니는 초록색이 다 가시지 않은 참외를 따 주었다.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씨근하면서도 풋풋한 향이 풍기는 참외를 달게 먹었다.

어머니는 다시 목화밭에 풀을 뽑고 지주대를 꽂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 일을 잠시 거들다가 이내 싫증이 나서 딴짓을 했다. 갓 피어난 연노랑 목화꽃이 시간이 흐르면서 분홍으로 물드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일찍 꽃 피워 열매가 된 어린 다래를 깨물어 싱싱하고 달짝지근한 즙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지루해지면 친구들과 놀기 위해 어머니를 남겨두고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다래 꼬투리는 갈색으로 딱딱하게 여물어서 터지고, 솜꽃이 벙글어졌다. 어머니는 자루에 따온 솜을 광주리에 펼쳐놓고 겨우내 씨앗을 뽑았다. 나도 오며 가며 씨앗을 빼기는 했는데 어머니처럼 진득하게 앉아서 거들지는 못했다. 빼낸 씨앗을 씨오쟁이에 보관해 두었다가 이듬해 봄이 오면 또 씨를 뿌렸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부터는 점심도 나르지 않았고 목화를 가꾸는지도 잊고 지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오랜 시간 묵묵히 목화를 키우고 솜을 장만해 두고 있었다.

마침내 내가 결혼을 할 때 어머니는 숙모들을 불러 같이 이불을 지었다. 우선 하얗게 삶아서 말린 광목천에 솜을 평평하게 깔고 속통을 만들었다. 솜을 많이 넣으면 이불을 펴고 갤 때 무겁고 바느질이 힘들다고 하는 숙모들의 성화에도 어머니는 솜을 자꾸만 더 펼쳐 넣었다. 그리고는 청홍 배색의 양단 호청을 입혀서 딸의 혼수 이불로 마련해 준 것이다.

이불을 짓는 동안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딸의 행복을 수없이 기원했으리라. 결혼생활이 어렵지 않기를, 자식 낳아 별 탈 없이 키우기를. 낮 동안의 삶이 곤궁했을지라도 밤에는 넉넉하고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다시 힘을 얻어 각다분한 삶을 견뎌내라고 빌었을 것이다.

잠시 갈등했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깃든 이불을 어찌 버리겠는가. 목화솜 수명은 백 년이라고 하는데 이제 삼십 년 조금 넘었으니 내가 살아있는 동안 충분히 쓸 수 있겠다.

이불집에 가서 솜을 새로 타고 솜을 쌌던 광목을 뽀얗게 삶아서 말린다. 겉 호청도 깨끗이 빨아서 뭉게구름 같은 속통을 넣으니 새 이불 같다. 고이 접어 이불장에 넣어 둔다. 어머니의 정성과 가없는 사랑, 그리고 추억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