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9:23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저는 지난주부터 이스라엘의 생활풍습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시대에는 양털과 아마에서 실을 뽑아 베틀에서 옷을 짰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양털로 짠 옷을 입었고 부자들은 아마로 짠 베옷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석수)였기 때문에 살아계실 때는 양털로 짠 옷을 입으셨지만 돌아가셨을 때는 공회의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아마로 짠 세마포 베옷을 입혔고 시신을 석회암 바위를 파서 만든 아무도 묻히지 않은 새 무덤에 안장했습니다.(마27:57~61) 예수님은 마지막에 호사를 누리셨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힘들고 짜증난다 하더라도 하나님 안에 있으면 나중에는 웃으며 즐거워할 날이 옵니다. 이번 청소년 캠프 때 강사로 오신 크리스티 김 선교사님은 할머니 품에서 자랐고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김무열 집사님도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고 가정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임우현 목사님은 할머니가 무당이었고 어머니가 술집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거의 상처를 거름으로 삼아 지금은 크게 사용하고 계시고 있습니다. 우리도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생활풍속 중에 속옷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몸에 5가지를 걸쳤습니다. 속옷, 겉옷, 허리띠, 터번(모자), 샌들(신발). 속옷은 두 개의 천을 맞대고 꿰맨 옷이었습니다. 요즘은 기능성 속옷이 유행입니다. 기능성 속옷은 쿨론 소재로 만들어 시원하고, 신축성이 뛰어나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고. 땀을 잘 흡수하고, 열을 금방 방출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윗도리와 아랫도리가 붙어있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속옷을 입었습니다.(쿠토네트) 우리나라 무슨 옷처럼 생겼죠? 민소매 원피스처럼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매가 짧은 속옷을 입고 밭에서 일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을 통해 종말과 재림을 말씀하시면서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속옷을 입고 밭에서 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속옷 중에서 일반인은 소매가 짧은 속옷을 입었고 왕족이나 귀족은 소매가 긴 속옷을 입었습니다. 성경에는 요셉이 채색 옷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창37:3~4) 우리는 채색 옷이 알록달록한 색동저고리라고 짐작하는데, 크리스티 김 선교사는 ‘노스페이스’ 라고 비유했는데, 채색 옷은 브랜드 옷이 아니라 소매가 긴 속옷이었습니다.(쿠토네트 파씸)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왕족이나 귀족이 입는 소매가 긴 속옷을 동생인 요셉에게 입혔기 때문에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자신들은 머슴처럼 부려먹고 요셉은 왕자처럼 대우했기 때문에 요셉을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성경시대에는 양털과 아마에서 실을 뽑아 실을 염색했습니다. 요즘에는 천을 염색하는데 그 당시는 실을 염색했습니다. 염색할 때 가장 비싼 색깔은 자주색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루디아가 두아디라 출신으로 자색 옷감 장사라고 말씀합니다.(행16:14) 두아디라는 오늘날의 터키인데 터키 출신인 루디아가 이웃나라인 빌립보 오늘날의 그리스에서 사도 바울을 만난 걸로 보아 루디아는 국제무역상이었던 모양입니다. 루디아가 판매한 자색 옷감은 ‘뿔고둥’이라고 불리는 달팽이에서 자색 염료를 채취해 실을 염색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색은 한번 염색하면 색이 바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색으로 염색한 겉옷은 오늘날로 환산하면 1억 원 가량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루디아를 사도 바울과 만나게 하셔서 선교의 후원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혼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돈을 벌지 말고 선교하고 구제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돈을 주십니다./ 성경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잔치했습니다.(눅16:19) 부자는 비싼 베옷도 입고 1억 원짜리 자색 옷도 입었습니다.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거지 나사로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나누어주지 않았습니다. 나사로는 부자가 먹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개콘의 정여사처럼 있는 사람들이 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자는 죽어서 지옥의 관문인 음부에 떨어졌고 나사로는 천국의 관문인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우리도 물질을 내가 벌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어야 하나님께도 드릴 수 있고 이웃에게도 베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옷감을 염색하는 것을 죄를 용서하는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옷감을 염색하면 염색한 색깔이 물들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면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1장 18절을 통해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홍 같고 진홍 같은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의 피로 눈과 같고 양털 같이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보혈의 지우개로 우리의 죄를 보이지 않도록 지워주십니다.
다시 속옷으로 돌아갑니다. 속옷은 원피스처럼 생겼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림을 보면 팬티를 입고 계십니다. 이 그림은 맞는 그림일까요? 틀린 그림일까요? 틀린 그림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도 틀린 그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지 않고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총독은 시리아에 있는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다가 이스라엘의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있는 수비대에 병력을 증파했습니다. 총독은 명절이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병력을 증강 배치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서해5도에 해병대 병력을 늘렸잖아요? 총독도 이때 왔습니다. 명절은 로마 입장에서는 불운한 기운이 감도는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못 소란을 일으킨다면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형을 당할지도 몰랐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4명이 한 조가 되어 죄수를 사형시켰습니다. 사형시키면서 옷을 가져갔습니다. 옷이 워낙 비쌌기 때문에 부수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몸에 다섯 가지를 걸쳤다고 했습니다. 로마 군인 한 사람은 샌들을, 한 사람은 터번을, 한 사람은 허리띠를, 한 사람은 겉옷을 가져갔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속옷이 남았습니다. 군인들은 죄수의 속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았을까요? 벗기고 십자가에 못 박았을까요? 벗기고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사형수에게 무슨 자비를 베풀었겠습니까? 죽는 사람이 무슨 창피를 느꼈겠습니까? 예수님도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성경에서 벌거벗음은 수치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시면서 고통도 느끼셨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거숭이가 되는 수치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을 예수님의 발아래 무릎 꿇게 하셨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속옷을 벗겼더니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옷이었습니다(요19:23). 옷은 씨실(수직실)과 날실(수평실)이 엮어져 천이 되는데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옷은 날실(수평실)로만 짠 옷이었습니다. 이런 옷은 쌀 포대처럼 실을 잡아당기면 한 올로 풀렸습니다.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대제사장은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옷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대제사장이 한 올로 짠 옷을 입은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겠다는 표시였습니다.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옷은 거룩한 옷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입으신 옷도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옷이었습니다.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겠다는 거룩한 옷이었습니다. 아무리 포악한 로마 군인들일지라도 예수님이 입으신 속옷이 거룩한 옷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차마 찢어져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이 가져갔습니다. 우리가 입은 옷은 씨실과 날실이 엮인 옷입니다. 그렇다고 한 발은 하나님께 한 발은 세상에 두라는 걸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입은 옷은 비록 씨실과 날실이 엮인 옷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호지 않고 통으로 짜야 합니다. 우리는 속마음부터 하나님 한분만을 섬겨야 합니다. 두 마음이 아니라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호지 않고 통으로 짠 옷을 입었듯이 다시 말해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겠다고 다짐하셨듯이 그리고 개콘 용감한 녀석들의 박성광이 몸에 글자를 새겼듯이 우리 속마음에 나는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결단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와~캠프갔다와서 들으니깐 더 은혜로왔어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