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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역사공부합시다 스크랩 인도 불교사-특강
일 행 추천 0 조회 128 11.11.27 05: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인도 불교사

2008.10.23-24

장소: 수덕사 강원

1강-23일 오전

 

 

1.언어의 중요성

현대 포스트모던 여성학자인 루스 이리가리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게 된다면, 같은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불교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언어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면서 제대로 된 대화와 토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바른 이해를 이 책이 불교를 이해하려는 사람을 미로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이유가 있다면 경전에서 나타나는 용어를 원래의 뜻과는 다른 의미로 정의하고 해석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불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붓다가 사용한 언어의 특징과 용어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불교이해의 기본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빠알리, 산스크릿, 한문, 한글에서 나타나는 언어와 시대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불교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붓다가 사용한 단어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붓다는 어떠한 입장에서 언어를 사용하였는가?

상윳따니까야의 [아라한 경]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천신]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마지막 몸을 가진 아라한인 비구가'나는 말한다'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세존]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마지막 몸을 가진 아라한인 비구가 '나는 말한다'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 라고 하여도 세상에서 불리는 명칭을 잘 알아서 오로지 관례에 따라 말하는 것이다"

이 경전은 무아를 깨달은 아라한이 ‘나’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냐는 천신의 물음에 당연히 사용 할 수 있다는 붓다의 대답이다. 즉, 깨달은 자도 세상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말이다. 경전을 읽어보면 세상의 평범한 언어를 기가 막히게 의미를 만들어 내는 붓다의 언어사용에 탄복하게 된다. 대승불교권에서는 이러한 붓다의 언어가 어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소위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언어와 붓다의 언어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불교 언어의 변천과 사상사를 바르게 이해하게 될 때 붓다의 세상을 따르는 언어와 '불립문자'가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수행을 위하여, 소통을 위하여 그리고 회통을 위하여, 우리는 역사와 문자를 잘 알 필요가 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는 문자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라. 문자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말없이 전해지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도리는 언어를 사용하여 이해하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도 문자가 아니던가?

 

2. 불교언어

빠알리어 .산스크리트어

빠알리어 경전은 현존하는 여러 불교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며 원초적인 형태와 내용을 정직하게 담고 있어서 원시불교 연구에 있어서는 더 없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빠알리는 처음에는 마가디어에서 비롯되었다. 마가디어로 암송되던 붓다의 가르침을 빠알리(성전)라고 불렀는데 후대에는 빠알 리가 언어의 이름이 된 것이다. 보통 빠알리어는 남방으로 전래된 경전의 언어이며 북방으로 전래된 불교(부파불교와 대승불교)언어는 산스크리트로 되어있다. 범어(梵語)는 고대 인도에 있어서 바라문교의 거룩한 성전어(聖典語)이었으므로 인도의 다양한 언어 중 표준어인데 카니슈카왕 때에 카슈밀에서 개최되었던 제 4결집시에 범어를 불교의 성전어로 한다는 결의가 있었다 한다.

 

한문

범어의 원전은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대에 서역지방 즉 중앙아세아의 여러 나라에 전하여졌는데, 이것은 다시 점차로 중국 본토로 전하여져서 한역되게 되었다.

이 경전의 한역은 서기2세기로부터 10세기에 이르는 동안 각 왕조를 통하여 주로 국가적인 뒷 받침에 의해 행하여져서 인도에서 성립된 대부분의 경전이 번역되었는바, 이것은 대부분이 중국, 대만, 한국, 베트남, 일본등에 남아 있다. 그런데 이 한문은 뜻글자이기 때문에 단어와 문장의 선명한 이해가 어렵다. 그리하여 한문으로 경전을 이해 하려는 사람들은 직관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 한문을 가지고 불교를 공부하게 될 때 직관을 강조하는 선불교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붓다의 일생(팔상성도)

첫번째는 도솔내의상(도率來儀相) : 석가모니불은 본래 도솔천에서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적당한 때가 되자 이 세상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디가니까야의 14번째 대전기경은 91겁 전의 위빠시 붓다를 시작으로 하는 과거 7불을 이야기하고 이른바 부처들이 이 세상에 출현하는 법칙들을 열거하고 있다. 도솔천에 있다가 청정한 여인의 자궁에 하강한다.

두번째는 비람강생상(비藍降生相) : 룸비니(비람)동산에서 마야부인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높다.

온 세상이 고통 속에 있으니 내 이를 평안케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吾堂安之)

-보살의 어머니는 10달 동안 임신해 있다가 서서 출산하고, 보살의 어머니는 7일 만에 죽어서 도솔천에 태어난다. 아기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두 개의 물줄기가 ?아져서 아기를 목욕시키고, 아기는 북쪽으로 일곱 발자국 걸어가서는

“나는 세상에서 최상이요, 나는 세상에서 으뜸이다.

이것이 마지막 생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

라는 선언을 한다. 빠알리 대전기경에는 ‘옆구리’ 이야기는 없다. 다만 자궁에서 나올 때 아주 깨긋한 상태로 나온다고 설명한다. 해와 달보다 찬란한 빛에 휩싸인다고 하고 거룩한 32상을 갖춘다고도 한다. 그런데 ‘옆구리’ 이야기만 없다. 왜일까?

세번째는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 태자 시절에 성문 밖으로 유람 나갔다가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을 깨닫고 출가를 결심하게 되신 것을 말합니다.

네번째는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한밤중에 카필라밧투성을 떠나 출가수행자가

되신 것을 이야기합니다.

-출가는 어디로 가는 것이 출가인가? 산에 은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 사람을 찾아 나섬이 출가란 것을 경전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다섯번째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 출가수행자가 되신 석가모니부처님이 히말라야

산 속에서 6년간 수도하신 것을 일컫습니다.

-부처님은 흰눈을 머리에 이고 히말라야 산 속에서 6년간 수도하셨을까?

여섯번째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 아래에서 깊은 명상 끝에 드디어 우주와

인생의 최고진리를 깨닫고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무엇을 깨달으셨나?(마하왁가를 중심으로...)

 

 

2강 -23일 오후

일곱번째는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상대로 최초의 설법을

한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설법하셨나? 사성제 , 8정도, 5온, 12처, 12연기등의 가르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처님의 첫 설법 <Dhammacakkappavattana suttaṃ 초전법륜경>

《상윳따-니까야Samyutta-nikaya》(相應部) LVI, 11

〈담마짝까빠밧따나-경Dhammacakkappavattana-sutta〉

한역아함 대응경전: {轉法輪}(雜阿含15.17),

{轉法輪經}(安世高옮김 大正藏2.503),

{三轉法輪經}(義淨옮김 大正藏2.504)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 근교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공원"(鹿野院)에 계셨다. 거기서 세존은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셨다.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bārāṇasiyaṃ viharati isipatane migadāye tatra kho bhagavā pañcavaggiye bhikkhū āmantesi:

비구들이여, 출가자는 두 가지 극단을 따라서는 안 된다. 감각적인 쾌락의 탐닉에 전념하는 것은 저열하고 비속하고 속물이고 고귀하지 못하고 유익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스스로 고행에 전념하는 것은 괴롭고 고귀하지 못하고 유익하지 못한 것이다.

"dve me bhikkhave, antā pabbajitena na sevitabbā. Yocayāṃ kāmesu kāmasukhallikānuyogo hīno gammo pothujjaniko anariyo anatthasaṃhito, yo cāyaṃ attakilamathānuyogo dukkho anariyo anatthasaṃhito,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피해 눈을 생기게 하고 지혜를 주고 적정, 탁월한 지혜,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majjhimā patipadā)를 깨달았다."

ete te bhikkhave, 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비구들이여, 눈을 생기게 하고 지혜를 주고 적정, 탁월한 지혜, 완전한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여래에 의해서 깨달아진 중도(majjhimā patipadā)란 무엇인가? 그것은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도닦음이다. 말하자면 바른 견해(正見), 바른 생각(正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올바른 삼매(正定)이다.”

Katamā ca sā bhikkhave,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īdaṃ: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중도라고 번역되는 마지마 빠띠빠다(majjhimā patipadā)는 majjhimā+ patipadā로 나누어집니다. 마지마(majjhimā)는 중간,가운데 라는 형용사이고 빠띠빠다(patipadā)는 도닦음 이라는 여성명사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이다. 태어남은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며, 질병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다. 미운 자와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며,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것도 괴로움이며, 요약해 말하자면 오온을 (나와 나의 것과 나의 자아라고) 취착하는 것이 괴로움(오취온,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이다.”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ṃ ariyasaccaṃ: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v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aṃ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다시 태어나는 원인이 되고, 기쁨과 탐욕을 따르며, 여기 저기서 즐거움을 찾는 갈애를 말한다. 그것은 욕망의 갈애와 생존하려는 갈애와 비존재의 갈애이다.”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samudayo ariyasaccaṃ: "yāyaṃ taṇhā ponobhavikā nandirāgasahagatā tatra tatrābhinandinī, seyyathīdaṃ: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비구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이다. 그것은 갈애를 남김없이 없애고 단념하고 버리고 벗어나 집착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nirodho ariyasaccaṃ: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것은 바른 견해(正見), 바른 생각(正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올바른 삼매(正定)라는 여덟 가지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이다.

Idaṃ kho pana bhikkhave,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īdaṃ: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비구들이여, “이것은 성스러운 괴로움의 진리이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Idaṃ dukkhaṃ ariyasacc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 성스러운 괴로움의 진리는 잘 알아야 한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ṃ ariyasaccaṃ pariññeyy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 성스러운 괴로움의 진리는 잘 알았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ṃ ariyasaccaṃ pariññāt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것은 성스러운 괴로움이 발생하는 진리이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Idaṃ dukkhasamudayo ariyasacc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 성스러운 괴로움이 발생하는 진리는 잘 제거해야 한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samudayo ariyasaccaṃ pahātabb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 성스러운 괴로움이 발생하는 진리를 잘 제거했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samudayo ariyasaccaṃ pahīn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것은 성스러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이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Idaṃ dukkhanirodho ariyasacc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 성스러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를 증득해야 한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nirodho ariyasaccaṃ sacchikātabb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 성스러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를 증득했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nirodho ariyasaccaṃ sacchikat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성스러운 진리이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Id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성스러운 진리를 닦아야 한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bhāvetabb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성스러운 진리를 닦았다.” 라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법에서 눈이 생기게 하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빛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bhāvit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성제를 공부 할 때에도 위 시처럼 제대로 이름을 불러준다면 많은 혼란이 사라질 것이다.

여덟번째는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 쿠시나라의 두 그루 사라나무 아래에서

입멸 즉, 열반(니르바나)에 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아난다여, 알아야 한다. 여래도 오래지 않아 지나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아아난다여, 마땅히 스스로 피난처가 되어 스스로 의지하고, 법을 피난처로 삼아 법을 의지하고, 다른 것을 피난처로 삼지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3강 -24일 오전

1. 붓다의 가르침의 구분

오시팔교 [五時八敎]

중국 불교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인 수(隋)나라의 지의(538∼597)가 설한 천태종의 교판(敎判).

인도에서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개된 불교가 그 역사적 순서와는 상관없이 중국에 전래되었기 때문에, 그 차이 ·모순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경전 및 교리의 분석 ·판단, 석가 일대(一代)의 설법의 순서를 시간적으로 분류하여 ‘오시’로 나누고, 가르침으로 이끄는 형식 ·방법을 4종으로 나눈 화의사교(化儀四敎), 사람들의 성질 ·능력에 대응하여 가르치는 교리 내용을 4종으로 나눈 화법사교(化法四敎) 등 여러 경론의 설을 세 측면에서 비판 ·정리한 것을 가리킨다. ‘오시’란 석가가 ① 성도(成道) 후 《화엄경》을 설한 21일간의 화엄시(華嚴時), ② 그 후 녹야원(鹿野苑) 등에서 소승의 《아함경(阿含經)》을 설한 12년간의 녹원시(鹿苑時), ③ 그 후 《유마경(維摩經)》 《승만경(勝鬘經)》 등의 대승경전을 설한 8년간의 방등시(方等時), ④ 《반야경》을 설한 22년간의 반야시(般若時), ⑤ 마지막 8년에 《법화경(法華經)》을 설하고, 하루 밤낮에 걸쳐 《열반경(涅槃經)》을 설했다는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를 말한다.

화의 사교란 ① 직접 석가의 깨달음을 가르치는 돈교(頓敎), ② 돈교가 난해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얕은 것에서 점차 깊은 것으로 나아가며 교화하는 점교(漸敎), ③ 상호간에 비밀로 하여 각자에 적당한 설법형식을 취하는 비밀교(秘密敎), ④ 설법 형식은 일정하지 않으나 듣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체득시키는 부정교(不定敎)를 말한다. 법화열반시는 이상의 어떤 4교도 아니라고 한다.

화법사교는 ① 그 내용이 소승의 가르침인 삼장교(三藏敎), ② 방등 ·반야 ·법화열반시와 통하며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의 삼승(三乘)과도 통하는 대승의 가르침인 통교(通敎), ③ 성문 ·연각과는 다른 보살만을 위한 가르침으로서, 다른 3교와는 다른 모든 것을 차별의 측면에 조망하는 별교(別敎), ④ 모든 차별을 넘어 깨달음도 미혹도 본질적으로는 구별이 없고, 석가의 깨달음 그대로를 설한 가르침으로서, 일체가 서로 융합하여 완전하다는 원교(圓敎) 등 4교를 말한다. 원교는 화엄 ·방등 ·반야시에서도 설했지만 《법화경》의 것이 가장 뛰어나다. 이같이 화의 ·화법의 4교를 합하여 8교라고 하는데, 이 교판은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또한 원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경론이 각각 의의를 지니는데, 원교가 바로 천태종의 입장이라 하여 《법화경》을 가장 중시하면서도 포용적인 자세를 취한다.

-역사상에 나타났던 근본불교-부파불교-소승불교-중관-반야(대승)-유식-화엄-선등의 불교와 오시팔교의 교판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2. 삼특상과 삼법인

삼특상은 빠알리어 ti-lakkhan*a의 역어입니다. 초기경의 도처에서 부처님께서는 무상(anicca), 고(dukkha), 무아(anatta)를 설하셨는데 특히 이는 대부분 "오온"의 무상고무아의 문맥에서 나타납니다. 이를 아비담마와 주석서에서는 ti-lakkhan*a라 부르고 있습니다.(경에서도 이렇게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띠락카나는 세가지 특징이란 의미고 이를 전문술어로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삼특상이라 한글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특상은 바로 무상고무아입니다. 한편 이것은 법구경 등에서 제행무상(sabbe san#khaaraa aniccaa), 제행개고(sabbe san#khaaraa dukkhaa), 제법무아(sabbe dhammaa anattaa)라고 나타나며 그래서 우리에게도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삼법인이라는 용어는 초기경이나 상좌부 아비담마나 상좌부 주석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법인이라는 말은 아마 산스끄리뜨 dharma-mudraa의 번역어 인듯한데 설일체유부에서 제일먼저 사용한 단어입니다.

그러면 이 둘의 차이는 무었인가 하는 점입니다.

먼저 삼특상은 위에서도 밝혔지만 오온으로 대표되는 유위법의 특징을 밝힌 것입니다. 모든 유위법은 그것이 선법이든 불선법이든 모두 무상이요 고요 무아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위법이란 아비담마에서 분석해서 드러내는 81가지 법입니다. 열반은 제외됩니다. 이렇게 삼특상은 유위법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개념적 존재를 분석하고 분해하고 해체해서 드러나는 유위법이 무상고무아임을 철견할 때 해탈열반은 실현된다고 설합니다. 그래서 유위법(제행)의 무상을 꿰뚫은 해탈을 무상(無相)해탈이라 하고 고를 꿰뚫어 실현한 해탈을 무원해탈이라하고 무아를 꿰뚫어서 실현한 해탈을 공해탈이라 부릅니다. 이런 무상해탈, 무원해탈, 공해탈은 화엄경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유위법(제행)의 세가지 특징을 말하는 삼특상에서는 당연히 무위법인 열반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제행은 유위법이기 때문에 제행에는 열반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행무상 제행개고를 말합니다. 그러나 무아는 제행무아라하지 않고 제법무아라고 표현합니다. 왜나하면 제법에는 유위법과 무위법(열반)이 다 포함되기 때문이며 그래서 제법무아라하여 열반도 실재론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 제법무아라고 표현한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정리하면 삼특상은 유위법의 세가지 특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편 북방의 설일체유부에서는 삼법인이라하여 열반을 포함시키는데 여기서 법은 유위무위를 포함한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제행개고 보다는 열반을 포함시켜 법의 도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에 기대하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측면이 분명히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고를 포함시킨 삼특상은 유위법의 측면을 강조하여 무상고무아를 꿰뚫어 볼것을 설 한 것이고 열반을 포함시킨 삼법인은 열반까지 포함한 제법을 다 포함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방과 북방의 입장이 이렇게 다르다 보니 일본학자들 가운데서는 무상 고 무아 열반을 다 포함하여 4법인이라 부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불교 사전에서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삼특상과 삼법인은 정확히 구분해서 사용해야합니다. 수행의 입장에서 보자면 삼특상은 강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여기에서 확인할 수있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꿰뚫어 봄으로서 우리는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법인은 수행에 관한 강한 메시지 보다는 불교 전반의 가장 큰 특징을 밝힌 것이라 보입니다. 불교는 무상을 가르친다. 불교는 무아를 가르친다. 불교는 열반을 가르친다는 의미로 법의 도장이라 이름 지었고 이런 무상 무아 열반을 설하는 것은 불교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불교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도장이란 직인인데 관공서에서 직인이 찍히지 않은 문서는 효능이 없지요. 그처럼 무상무아열반의 도장이 없는 것은 불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삼법인이 강조되는 대승불교 권에서는 열반이 깨달음으로 강조되고 돈오돈수니 돈오점수니 하는 깨달음에 대한 논쟁의 발단의 원인이 제공되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사성제의 가르침 중에서도 유독 증득의 차원만이 강조되는 것과 일맥 상통합니다.

이런 인연과 이런 상황에서 요즘우리는 삼법인하면 무상고무아로 이해하기도하고 무상무아열반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무상고무아열반으로 사법인이라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제 삼법인보다 수행을 강조하는 삼특상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빠알리 경전의 성립

부처님 말씀을 진리 법(Dhamma. 산,Dharma)이라 하며, 그 가르침을 모아 놓은 경전이 삼장(띠삐따까:Tipitaka, 산스크리트Tripitaka)이다. 띠삐따까는 세 개의 바구니라는 뜻으로 즉 율장(律藏:vinaypitaka), 경장(經藏:Suttapitaka), 논장(論藏:Abbidammapitaka)이고, 빠알리 어로는 vinaya, Sutta, Abhidhamma라 하며 이 삼장을 다 합치면 기독교 <성경>의 11배 정도의 분량이 된다. 경전의 편집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3달후 왕사성(Rajagaha)의 칠엽굴 결집에서, 그리고 백년 뒤의 베살리(Vesali) 제2차 결집에서 더욱 보완하였다. 그 후 아쇼까왕(Asoka, BC, 264-227)때 제 3차 결집에서 주요한 경전이 완료되었다.

1. 율장(Vinaya Pitaka) 비구,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 수행 규칙, 부처님의 일대기 및 계율의 변천사 등에 관한 것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 경분별(經分別: Suttavibhanga) 이것의 기초는 계본(戒本: patimokkha)이다. 상가에서 포살일(Uposatha: 14~15일마다)에 참회를 위한 계율에 주석을 단 것이 경분별이다. 여기에는 비구계 227계가 죄질의 무거움에 따라 6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2) 건도부(度部: Khandhaka) 대품(Mahavagga) 과 소품(Cullvagga)으로 나뉘며 상가에서의 삶을 규정하는 원칙이 내포되어 있다. 대품의 앞부분에는 붓다의 성도에서부터 녹야원에서 처음 교단을 건설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뒷 부분에는 수계 및 계본에 의한 포살의식, 의식주에 관한 여러 규정, 승단의 행정절차 및 승단분열시 조정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소품에는 승단에서 규율을 어긴 사람에게 주어지는 벌칙. 목욕, 의복, 주거, 가구, 음식과 약의 종류, 스승(은사)과 제자의 권리와 의무 등을 담고 있다.

소품의 마지막 부분에는 제1차 제2차 결집에 대한 설명이 설명되고 있다.

3) 부수(Parivara)는 19장으로 되어있으며 일종의 교리문답으로서 율장에서의 계율을 요약, 보완, 분류하고 있다.

2. 경장(經藏: Sutta-Pitaka)   부처님의 말씀과 대화,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경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주요한 원천으로서 북전의 아함과 유사함이 많다. 형태는 詩가 들어 있는 산문형식을 취하고 있다. 디가니까야(장부),맛지마니까야(중부), 쌍윳따니까야(상응부), 앙굿따라니까야(증일부) 모두 5부 니까야로 되어 있다.

1) 디가니까야(長部: Digha-Nikaya) 매우 긴경을 모아놓은 34개의 경전의 모음집이다. 장아함에 포함된 경의 숫자는 52이다. 장아함은 세 개의 품 즉, 계온품(계온품: silakkh-andhavagga1-13), 대품(大品: Mahavagga14-23), 열여섯번째에 부처님의 마지막 생애를 묘사한 대반열반경: Mahaparinibbanasutta) 파리품( 波梨品:Patikavagga 24~52)으로 나뉘어져 있다.

2) 맛지마니까야(中部: Majjhima-Nikaya) 중간 길이의 경들을 모아놓은 모음집으로 경의 숫자는 152개이다. 근본오십품(根本五拾品:Mulapannasa1~50),중분외십품(中分五拾品:Majjhimapannasa51~100)상분오십품(上分五拾品: Uparipann-asa101~152)

3) 쌍윳따니까야(相應: Samyutta-Nikaya) 부처님의 직설에 가까운 특징의 모음집이다. 쌍윳따(상응부)는 원래 뜻은 주제에 따라 잘 편집된 모음집이란 뜻인데 한역에서 잡아함으로 번역된 것은 산스크리트 경전이 중국으로 옮겨질 때 착각하였기 때문이다. 제석상응(제석천이 등장하는 짤막한 경들을 모은 것). 각지상응(칠각지분에 대한 설명) 전법륜경(부처님의 첫 설법이 들어있다.) 5품56상응(Samyutta)으로 분류되며 총 숫자는 2,889개이다.

4) 앙굿따라니까야(增一: Anguttara-Nikaya) 상응아함과 유사하며 짤막한 경전들로 이루어져 있다. 11개의 장(障: Nipata)으로 분류되며 각 장은 해당되는 숫자와 어떤 관련에 대한 경의 이야기이다. 경전의 숫자는 2,308개이며 각장의 각품(Vagga)은 열 개의 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5) 소부(小部: Khuddaka-Nikaya) 짧은 교과서의 모음집이란 뜻이고 북전의 아함경에는 없는 부분이다.

① 소송경(小誦經: Kunddakapatha)일상적인 의례에 사용하는 기도서의 형태를 띠고 있다.

② 법구경(法句經: Dhammapada)423개의 격언을 모아놓은 모음집이다. 인도의 격언에 내포된 교훈의 모음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26개의 품(品: Vagga)으로 나뉘어 있다.

③ 자설경(自說經: Udana)부처님의 감흥어린 말씀을 시의 형태로 모아놓은 모음집이다. 82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으며 이가운데 여덟 번째장, 1-4는 중관철학의 팔불사상(八不)의 시원으로 유명한 열반시를 포함하고 있다.

- 여시어경(如是語經: Hivuttaka): 자설경과 유사하며 부처님의 윤리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산문과 시가 섞여있는 경의 숫자는 112에 이른다.

④ 경집(經集: Suttanipata)바바리(Bavari)의 16제자들이 붓다에게 질문한 것과 거기에 대한 부처님의 응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54개의 경으로 이루어졌다.

⑤ 천궁사(天宮事: Vimanavatthu)신들이 이세상에서 실천한 선행의 과보로 천궁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묘사했다. 일곱 개 품으로 83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⑥ 아귀사(餓鬼事: Petavatthu)유령의 슬픈 운명과 아귀들이 지은 죄를 속죄하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으며 네 개의 품으로 51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⑦ 장로게(長老偈: Theragatha)장로니게(長老尼偈: Therigatha)모두 시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 진정한 불교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많은 시들은 편집자가 단편적인 추억이나 회상으로부터 재편집한 것으로 보여진다. 장로게는 1279개이고 장로니게는 552개이다. 각시들에는 해당하는 저자가 명시되어 있다.

⑧ 본생경(本生經: Jataka)부처님의 전생이야기이다. 산문이야기가 섞여있는 시의 모음집으로 경으로 인정되는 것은 시뿐이다. 산문이야기는 편집자의 다소간의 추측으로 꾸며진 것이다. 역사를 포함하는 격언이 있는가 하면 등장인물의 발언과 응답이 있고 또한 대화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전생담 가운데 늦게 만들어진 것일수록 대화나 이야기체의 시를 포함하고 있다.

⑨ 무애해도(無碍解道: Patisambhidama- gga) 아라한의 성취를 위한 지혜에 관한 것을 설명한 경이다.

⑩ 비유경(譬喩經: Apadana)불교의 성자들이나 보살들의 전생담으로, 위대한 행위를 기리는 시로 이루어진 전설적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⑪ 불종성경(佛種姓經: Buddhavamsa)24 과거불의 이야기를 고따마붓다가 직접 설하는 방식을 취한 경이다.

⑫ 소행장(所行藏: Cariyapitaka)25개의 모범적인 전생담을 담은 경이다. 부처님은 이 소행장에서 어떠한 공덕으로 전생에 십바라밀[보시(dana), 도덕(sila), 출리(nekkhamma), 지혜(panna), 정진(viriya), 인욕(khanti), 진실(sacca), 확고함(adhitthana), 자비(metta), 평온(upekkha)]을 성취했으며, 어떤 것이 부처님을 성취시키는 조건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3. 논장(論藏: Abhidhamma Pitaka)  경장에 대한 보충, 해설서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거하고 있는데 인식론적이고 심리학적이고 윤리적인 내용들이 분석적으로 불교의 철학을 담고 있다. 마음(citta), 마음 부수(cetasikas), 물질(rupa), 열반(nibbana)에 관한 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분석적인 용어로 이루어져 있다. 경장이 여러 사람에게 환경과 근기에 맞추어 설명한 일종의 처방전 같은 것이라면 논장은 정확한 법의 원리를 상대의 근기를 살피지 않고 체계적으로 설명있다. 논장에는 일곱 개의 논(論: Pakarana)으로 되어있다.

1) 법집론(法集論: Dhammasanhani)- 법을 열거한 것으로 마음(citta), 마음 부수(cetasikas), 물질(rupa), 열반(nibbana)의 순서로 평면적, 사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2) 분별론(分別論: vibhanh)- 법집론의 보충판. 온처계제(蘊, 處, 界, 諦) 등의 18항목에 관해서 입체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3) 논사(論事: Kathavatthu)- 개인의 형태 아쇼까왕 시대의 불교는 18부로 분열되어 불교의 혼란을 초래했으므로 장로 띠싸 목갈리뿌따(Tissa moggaliputta)가 252가지의 이단邪說을 공격한 파사론(破邪論)으로 논장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4) 인시설론(人施設論: Puggalapannatti)- 法의 관계 여러 인격과 개인의 성격 그리고 성자의 지위에 대한 물음과 답변으로 이루어졌다.

5) 계론(界論: Phatakatha)- 형이상학적인 현상과 그 범주에 관한 논서이다.

6) 쌍론(雙論: Yamaka)- 응용논리에 관한 논. 모든 형상은 특수한 전제와 그 변화의 관점에서 관찰되어야 하므로 논리적인 고찰을 취급한 논서이다. 전체가 근(根), 온(蘊), 처(處), 계(界), 제(諦) 등의 십쌍대의 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발취론 다음으로 방대하다.

7) 발취론(發趣論: Pattanappakarana) 총6권으로 칠론에서부터 관계에 대한 불교철학에 이르기까지 다루고 있다. 24연기의 분별과 시설에 관한 인과론을 다루고 있다.

이외에 밀란다왕문경(Milindapanha)이 미얀마에서는 소부에 포함되어 있다. 5세기에는 붓다고싸(Buddhaghosa)에 의해 삼장에 대한 주석과 청정도론(Visuddhimagg)이 만들어졌다.

 

 

결집의 역사(분파의 역사)

 

제 1차 결집

불멸후 3달 후에 가섭존자의 주도로 칠엽굴에서 500아라한이 결집을 하였다.

 

 

제 2차 결집(근본분열)

빠알리 율장, <도사>와 <대사>에는 10사의 논쟁 후에 700명의 장로가 레와따 장로를 상수로 하여 ‘법결집 Dhamma-Samgaha’을 행하여 8개월에 걸쳐 완성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을 ‘제2결집 Dutiya Samgaha’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도사>에 의하면 장로들에 의해 추방된 비구들도 1만 명의 지지세력을 얻어 ‘법결집’을 행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것은 ‘大결집 Maha-Samgiti’이라고 불렸다. 이 대결집을 행한 비구들(Mahasamgitika 大結集派)이 ‘大衆部 Mahasamghika’라고 불린다. ‘대중’이란 사람의 수가 많다는 뜻이다.

북전의 <이부종륜론>에서는 결집이 있었다는 것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불멸 100년 경인 아쇼카왕의 치세에 “四衆이 함께 大天의 5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나뉘어 두 부파가 생겼는데, 대중부와 상좌부가 그것이다”라고 함으로써 ‘대천의 5사’에 관해 4개의 부파가 의견이 달랐기 때문에 두 부파로 분열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대천의 5사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지만, <‘대천의 5사’란 大天 Mahadeva이라는 고승이 제창한 다섯 가지 주장이라는 뜻이다. 즉 ⑴아라한이라도 다른 것, 예컨대 天魔 등의 유혹에 빠지면 不淨이 흘러 나옴을 면치 못함(余所誘). ⑵아라한이라도 무지, 즉 不染汚無知는 아직 존재함(無知). ⑶아라한에게도 의문이나 의혹은 남아 있음(猶予유여). ⑷남으로 하여금 悟入게 함(他令入). ⑸道는 소리에 의해 생겨남(道因聲故起) 등을 말한다. 아라한의 깨달음을 낮게 보는 설이다. 이것은 북전 有部의 <이부종륜론>이나 <대비바사론> 등에 전해지고 있는데, 남전상좌부의 <논사>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부파불교시대의 논쟁제목의 일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제 3차 결집

제3결집은 세일론傳의 디빠왐사(도사), 마하왐사(대사) 사만따빠사디까(선견율비바사) 등의 설로서, 세일론 상좌부만의 전승이다. 세일론傳에서는 불멸 100년 경의 제2결집은 칼라아소카 Kalasoka왕의 시대에 있었으며, 다음으로 불멸 218년에 즉위한 아쇼카왕의 시대에 목갈리뿌따 팃사장로를 중심으로 하여 ‘제3결집 Tatiya-samgaha’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성립한 것이 <論事 Kathavatthu>였다고 한다. 이처럼 칼라아소카와 아쇼카를 구분하기 때문에 제2와 제3이라는 두 가지 결집이 설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북전의 <이부종륜론>에서는 아쇼카왕을 불멸 100여 년 경에 출세했다고 보기 때문에 제3결집을 인정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세일론傳에서 제3결집 때 성립되었다고 하는 <논사>는 세일론 상좌부만이 전하는 논서이다. 다른 부파에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제3결집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좌부라는 1부파내에서의 결집이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도사> 등에 의하면 아쇼카왕이 불교교단을 지원해 줌으로써 교단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다.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출가하는 자’가 많아지고 상가의 계율이나 수행이 어지러워졌다. 그 때문에 상가에 싸움이 일어나 월례행사인 포살도 행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가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목갈리뿌따 팃사가 아쇼카왕의 지지를 받아 이단자를 몰아내고 상가를 바로 세웠다. 목갈리뿌따는 1,000명의 아라한을 선발하여 ‘결집’을 9개월에 걸쳐 수료했다고 하며, 이것이 제3결집이라고 한다.

 

지말분열

상좌부와 대중부의 분열을 ‘근본분열’이라고 하는 데, 상좌부와 대중부에서 다시 분열을 되풀이한 것을 ‘지말분열’이라고 한다.

상좌부의 지말분열에 대해서 <이부종륜론>은 이것이 200년 이후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상좌부는 분파 후 100년간은 일미화합하고 있었지만, 200년이 지나서부터, 분열이 일어났다. 상좌부는 7회의 분열에 의해 11부로 나뉘었다. 대중부는 본말을 합해 9부이기 때문에 상좌부와 합해서 20부가 된다. 그래서 근본의 2부를 제하고 ‘18부의 분열’이라고 한다.

인도부파불교의 동향을 밝히고 있는 자료는 드물다. 중국에서 인도로 여행한 구법승의 기록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선 法顯은 A.D. 399년(隆安 3년)에 중국을 출발하여 인도에 갔는데, 그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무렵의 인도에는 소승을 학습하는 절과 대승을 학습하는 절, 그리고 대승과 소승을 함께 학습하는 절 등 3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예컨대 북인도의 羅夷國에는 3000명의 승려가 있어서 대승과 소승을 겸학하고 있었으며, 또한 跋那國에는 3,000명 가량의 승려가 모두 소승을 학습하고 있었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법현전>은 1권의 작은 책이기 때문에 그 기술은 상세하지 않지만, 그 중에는 소승불교가 유행하고 있던 나라가 9개국, 대승불교가 유행하고 있던 나라가 3개국, 그리고 대승과 소승을 겸학하고 있던 나라가 3개국이라고 적혀 있다. 그 외에 대소승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불교가 유행하고 있던 나라가 20여 개국이나 열거되어 있다. 이것이 5세기 초의 인도불교의 상황이다. 그러나 부파명을 완전히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다음으로 629년에 인도를 여행한 현장(602-664)의 <대당서역기>에는 7세기의 인도불교의 상황이 상세하게 보고되어 있다. <서역기>에는 불교의 학파명을 밝히고 있는 곳이 99개소 가량 된다. 그 중에서 소승을 배우는 곳이 60개소, 대승을 배우는 곳이 24개소, 그리고 대승과 소승을 겸학하는 곳이 15개소이다. 비율로 보면 소승불교 쪽이 훨씬 많다. 소승불교 60개소 중에서 설일체유부가 14개소, 정량부가 19개소, 상좌부가 2개소, 대중부가 3개소, 설출세부가 1개소, 대승상좌부가 5개소, 그리고 단지 소승불교라고 적혀 있는 것이 16개소이다. 7세기 전반에는 소승교단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음이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정량부와 유부가 강력했다. 대중부계는 대중부 3개소, 설출세부 1개소가 있을 뿐이다. 당시의 세일론 불교는 마힌다 이래의 전통적인 상좌부의 불교를 신봉하는 大寺派 Mahavihara와 대승계인 方廣派 Vetulyaka의 교의를 수용하여 자유연구를 표방한 無畏山寺派 Abhayagirivihara의 대립시기였다. 410년 경에 세일론을 여행한 법현은 무외산사에 5천 명, 支提山寺에 2천 명, 大寺에 3천 명의 승려가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무외산사의 우세를 밝히고 있다. 법현은 여기서 화지부의 율장이나 장아함, 잡아함, 雜藏 등을 입수했다. 현장의 시대에는 세일론에 전란이 있었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大寺는 대승을 배척하고 소승을 익히며, 무외산사는 2승을 겸학하고 三藏을 弘演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때문에 무외산사와 같이 기본적으로는 상좌부의 교학에 의거하면서도 대승을 수용하고 있는 불교를 ‘대승상좌부’라고 불렀을 것이다.

현장의 시대에는 인도불교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간다라의 불교를 가리켜 “가람은 1천여 개소 있지만 모두 손상을 입어 황폐해져 있고 넓은 대지에 잡초만 무성하고 쓸쓸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天祀가 많고 異道가 매우 많다”라고도 말하고 있다. 이것은 힌두교의 세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부파불교의 초기에는 설일체유부의 세력이 강했지만, 점차 정량부의 세력이 강해지게 되었다. 정량부가 점차 강대해진 것은 정량부가 아트만(pudgala 補特伽羅, 人我)을 인정하며 인도의 전통설과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671년에 인도에 간 의정(635-713)은 주로 날란다 Nalanda寺에 체류하면서 연구를 했는데, 그는 <남해기귀내법전> 권1에서 대승과 소승의 구별은 분명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양자 모두 똑같이 250계를 지키며 四諦를 학습하고 있다. 그 중에서 보살을 예배하고 대승경전을 읽는 자는 대승으로 불리고 이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소승으로 불린다”고 그는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이라고 하더라도 중관과 유가의 2파뿐이며, ‘大小雜行’이 강조되고 있었다. 그는 소승불교의 입장에 서서 인도의 불교상황을 밝히고 있다. 당시는 대중부, 상좌부, 근본유부, 정량부의 근본4부가 주였다고 하는데, 마가다는 4부를 通習하지만 유부의 세력이 강했다. “서인도에는 정량부가 가장 많지만 나머지 3부도 약간은 있다. 남인도는 상좌부가 압도적이지만 나머지 부도 약간은 있다. 동인도는 4부가 섞여 있다. 세일론은 모두 상좌로서 대중은 배척되고 있다. 南海諸州의 10여 개국은 한결같이 근본유부지만 정량부도 약간은 있다. 末羅遊(말레이반도)에만 약간의 대승이 있다.” 의정은 이상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印度佛敎의 歷史> 平川彰 著(민족사,1989)-

 

마지막 나가는 말 --불교를 공부 하는 이유와 인도생활에 대한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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