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소계곡의 전설과 유래는 홍천의 자랑
(용소계곡 제2편)
루수/김상화
여름이 아무리 덥다 해도 힘차고 향기로운 소리를 들으면 이까짓 더위야 하며 힘이 솟아난다.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그러하고 매미의 노랫소리도 그러하다. 고요한 용소 계곡을 활기차게 흐르며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와 매미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그래서 이곳 청정지역에 끊임없이 사랑의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그로 인해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가 삶의 신바람이 넘쳐난다. 또한 자연의 향기로운 소리는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까지 한다. 그 가운데 회원들의 웃음소리까지 용소 계곡을 가득 메운다.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는 어찌 이리도 향기로울까? 한참을 신바람 나게 물장구치며 사진을 찍는다. 회원들의 행복해 보이는 그 모습을 어디에 비교해야 할까? 얼굴 그 자체가 백만 불짜리 웃음 덩어리다. 오늘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지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무르익은 여름의 한나절을 자연이 주는 숲의 향기와 소리를 들으며 서로에게 물세례를 주며 간드러지게 웃는 모습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이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천하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점심 식사 후 즐거움도 여기서 마무리해야 한다. 또 다른 즐거움을 향해 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했다. 평탄한 산에 올라갈지라도 더위가 밀려오면 누구나 힘이 들어 땀도 흘리고 숨을 허덕이게 된다. 이 현상은 산을 많이 다닌 사람이나 적게 다닌 사람이나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산을 많이 오른 사람은 초보자보다 훨씬 힘이 덜 들어 보인다. 아마도 요령과 힘이 저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산을 오르려면 평소에 힘을 많이 저축해야만 한다.
햇볕이 너무도 따갑게 쏟아진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것 또한 자연이 주는 현상이기 때문에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걷는 우리에게 태양은 괴로움을 주지만 우리가 먹고살아야 하는 곡식에는 기쁨을 준다. 태양이 내려준 뙤약볕에 익어가는 곡식들이 기쁨을 참지 못해 토해낸 함성을 들어 보았는가? 장마가 끝난 지금 태양은 가을에 먹거리를 제공할 곡식들을 익히고 있다. 태양이 주는 열과 에너지를 먹지 않으면 토실토실하게 곡식이 익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오늘 곡식처럼 즐거워하며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익혀 보자꾸나! 땀은 흘러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는다.
한참을 걷다 보니 용소(龍沼)란 웅덩이가 나온다. 이 유래(由來)에 대해 간 약하게 적어보자. 옛날에 이 냇물의 웅덩이에 용이 살고 있었다. 때가 되어 그 용이 승천하려는 순간, 그 동네 부인이 불을 때다 말고 부지깽이로 그 용을 가리키며 용이 올라간다고 외쳤다. 용은 그 말 한마디에 부정이 타서 어디론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용이 떨어진 자리에 움푹 팬 웅덩이가 생겼다. 이 소(沼)를 용소(龍沼)라 한다.
경수(鏡水) 마을의 유례가 있다. 재미가 있어 옮겨 적어본다. 경수(鏡水)는 거울같이 맑은 냇물이 흘러간다고 하여 경호(鏡湖)라고도 불린다. 경수 마을은 "샘재골"에서 "샛골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이 개가 길게 누워있는 형상 이라 하여 개동편 뜰을 중심으로 물살이 잔잔한 여울이라는 뜻의 "장여울"이다. 장여울 건너편에 품목골, 개동편 뒤쪽의 고개를 넘으면 우레이골, 건너편의 샘재골 백여 년 전 효자 박종호(朴種鎬)가 잘 피우던 담배를 끊고 모은 돈으로 밭을 샀다 하여 이름 붙여진 담배밭을 아우른다.
우리가 걷고 있는 용소(龍沼)계곡은 전설과 유래(由來)를 많이 알림판에 적어 놓았다. 아마도 걸으며 지루함을 달래주려고 홍천군에서 많은 신경을 쓴 것 같다. 바이킹이란 전설이 있다.
용소계곡 위의 군유동은 고도가 높은 첩첩산중이라 주변에 이웃이 많이 없어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계곡은 아이의 유일한 놀이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대차게 내렸다. 우산도 없이 밭에 가신 아버지가 생각난 아이는 자기 몸집만 한 커다란 우산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빗물에 용소계곡의 물은 너무 많이 불어서 좁은 숲길 또한 위험하였다. 아이는 어떻게 아랫동네로 내려갈까 생각하다 기지를 발휘했다. 얼마 전 서울 구경을 하러 가서 본 놀이공원에서 탄 물놀이 보트가 생각난 것이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계곡물이 흐르는 너래소 위에 우산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선 우산 안쪽에 몸을 싣고 계곡물에 몸을 맡겼다.
"우하하~~ 바이킹을 타는 것 같아!"
계곡물은 빠른 속도지만 아이를 싣고 계곡 하류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는 아이를 다그쳤다. 아이는 용소계곡이 수호신이 자기를 지켜준 것이라며 해맑게 웃으며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절대 따라 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모험이었지만 아버지를 향한 효심에 용소계곡 또한 도와준 것이 아니었을까.
수십 번을 홍천의 산과 강을 다녔지만 갈 때마다 그 아름다움이 새롭게 느껴진다. 홍천의 산과 강은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홍천에는 도처에 높고 아름다운 산들이 즐비하다. 이들 산 중에서 가리산과 팔봉산 그리고 금학산과 공작산은 홍천군에서 선정한 홍천 9경에 포함되어 있다. 가리산 휴양림을 품고 있는 가리산은 한국의 100대 명산의 한 곳으로 강원 제1의 전망대로 불릴 만큼 그 풍광이 빼어나다. 정상에 올라 보면 발아래로 펼쳐지는 소양호의 시원한 풍경과 세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 부위는 절경 중의 절경이다. 100대 명산으로 선정된 또 한 곳, 여덟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홍천 9경 중의 제1경인 팔봉산은 나지막한 산이다. 하지만 여덟 개의 봉우리마다 각각 지니고 있는 색다른 비경과 기암괴석들 그리고 산자락을 감싸고 흐르는 맑은 물과 어우러진 백사장은 잘 그려진 한 폭의 그림 같다. 이들 명산을 발원지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줄기는 홍천강으로 유입되어 큰 가람이 된다.
*산자수명(山紫水明)이란= 산은 자줏빛이며 물은 깨끗하다는 뜻으로, 경치가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이다.
언제 보아도 핸썸한 모습의 미남이신 성경화 회원과 한참을 걸었다. 모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전무이시다. 우리가 걸으며 정겹게 나누는 대화 소리를 물이 흐르다가 듣곤 질투를 하나 보다. 갑자기 투덜대며 흐르는 것 같다. 그러나 오솔길 양옆에서 바라본 초목들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경의를 표한다.
재미있는 대화를 하며 걷노라니 포수와 호랑이라는 알림판이 나타난다. 홍천은 용소계곡의 맑은 기운이 좋아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 그만큼 울음소리도 많이 들렸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1930년대쯤 인근 마을에 사는 포수가 홍천 마지막 호랑이를 잡았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에서 1930년대가 일제강점기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17년부터 일제는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해수 구제(害獸驅除) 명목으로 맹수를 사냥했다. 홍천에서 잡힌 마지막 호랑이는 용소계곡 일대의 산 왕이었다. 그런 산 왕을 노리는 것은 노련한 엽총 사냥꾼이다. 때는 겨울이다. 일본 순사가 큰돈을 줄 테니 마을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호랑이를 잡아 달라고 하였다. 용소계곡에서 사냥꾼과 호랑이가 물과 바위, 산을 넘나들며 쫓고 쫓기는 싸움이 펼쳐진다. 산 왕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싸웠고 여러 번 총을 맞고서야 숨을 거두었다. 사냥꾼이 산왕 호랑이를 잡아 오자, 일본 순사는 가죽은 벽 장식으로 뼈는 갈아서 보약으로 썼다. 사냥꾼은 그제야 자신이 일제의 욕심에 이용당해 죄 없는 호랑이를 죽인 것을 깨닫고 후회한다. 그 후, 홍천에는 호랑이 울음소리와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해수 구제(害獸驅除)란 = 해로운 동물을 해치워 준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일본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민족의 기상과 상징성을 소멸하기 위해서 한민족의 신성시하던 호랑이와 늑대를 소탕한 것을 말한다. 그러곤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군인들의 가죽옷으로 만들어 입었다.
홍천강은 홍천 땅 방방곡곡의 옥토를 적시며 홍천사람들의 삶을 살찌우는 동맥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의 지세는 전국 어디를 가나 인체의 혈관처럼 크고 작은 내(川)와 강(江)이 흐르고 있다. 홍천강은 한 지역, 홍천군의 땅만을 관통하지만 143km ‘350리’나 되는 기나긴 강이다. 홍천강의 발원지로 용천수가 샘솟는 미약골, 백암산 깊은 골짜기에서 우렁찬 굉음을 토하며, 50여m의 낭떠러지를 뒤흔들며 내리꽂는 가령폭포도 홍천강의 최상류로 홍천 9경을 장식한다.
한 편, 우거진 숲과 소(沼)와 너래 바위, 기암괴석과 맑은 물로 10km의 계곡을 비경으로 연출하는 용소계곡도 홍천 9경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또 한 자리, 계방천과 자운천의 합작품 살둔계곡도 홍천 9경의 반열에 올려졌는데 살둔 계곡의 맑은 물은 천연기념물인 어름치와 열목어가 서식하는 1급수다. 특히 봄날의 살둔계곡은 기암괴석과 철쭉꽃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 밖에도 수타사계곡과 서봉사계곡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홍천강에는 외지의 도시 사람들이 찾아와서 즐겁게 지내는 강변유원지도 여러 곳이 있다.
북방면 굴지강변로에는 홍천강 오토캠핑장도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청정자연을 휘돌아 흐르는 맑고 깨끗한 홍천강의 수변 경치를 눈과 피부로 동시에 느낄 수가 있고, 자연 친화적인 테크가 연결되는 곳에서 수상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홍천은 그 지명이 말해 주듯 큰(洪) 강(江.川), 홍천강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겠다. 원래 인류의 문화와 역사는 강 유역을 중심으로 생성되었다. 태초로 사람들이 모여서 살게 된 곳이 물가였고 물가에다 마을을 이루고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된 것이 사람의 삶이었다.
지금 홍천에서는 새해 벽두에 열리는 홍천강 꽁꽁 축제를 위시해 무궁화 축제, 강원 홍천 인삼 한우 명품축제, 고향의 맛 홍천찰옥수수축제, 홍천강 별빛 음악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들 축제도 모두 홍천강변에서 열리기나 홍천강과 연계가 되어 있다. 홍천은 산이 높고 아름다운데 물도 맑고 맛 또한 좋다. 인정마저 넉넉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싶다.
홍천의 9경은 소개한다
1) 팔봉산 2) 가리산 3) 미약골 4) 금학산 5) 가령폭포 6) 수타사
7) 용소계곡 8) 살둔계곡 9) 삼봉약수이다.
암벽조각가 도깨비와 소년이란 알림판을 보았다. 도깨비를 무서운 존재로 생각하여 부리나케 도망치는 사람들의 현실이 도깨비는 속상했지만, 늘 사람과 친해지고 싶었다. 사람들을 위해 용소계곡 주변에 기암절벽을 매일 밤 조각하였다. 날이 갈수록 멋지게 변하는 용소계곡을 보며 사람들은 "용이 드러누웠던 자리인데 승천하면서 멋진 절벽을 만들었다."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깨비는 시무룩했지만, 다시 꿋꿋하게 호랑이 바위, 거북바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때 도깨비 곁으로 소년이 다가와 "난 네가 한 거 다 알아! 넌 참 착한 도깨비야."라며 둘은 단짝이 되어 용소계곡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불치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거북바위가 완성될 즈음 숨을 거두었다. 소년이 돌을 좋아했던 걸 기억한 도깨비는 소년이 집 안마당에 아주 커다란 돌 바위를 옮겨 두었고 사람들은 도깨비가 소년을 추모하기 위해 커다란 돌 바위를 놓고 갔다며, 그때야 도깨비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용소계곡이 멋진 기암들로 가득해지자 도깨비는 더는 용소계곡에 나타나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 가면서 지금은 돌 바위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알림판에는 중공군과 천렵 놀이란 글도 있다. 한국전쟁 때 수많은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두촌면 주민들 대부분이 피난을 떠났지만, 떠나지 못했던 만덕은 급하게나마 깊은 계곡으로 숨어 들어가 동굴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계곡까지 쫓아온 중공군에게 발각되어, 생포된 몇몇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감금됐다. 중공군의 막사에 끌려간 만덕은 군인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옳다구나! 만덕은 대대로 마을에 전해 내려왔던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묘안이 떠올랐다. 몇 날 며칠이 지나, 때를 기다렸던 만덕은, "포로로 잡힌 이들은 무고한 민간인들이니 제발 풀어 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보답으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군인들의 승낙을 받아내고 포로들이 풀려나는 것을 확인한 만덕은 계곡에 큰 바위를 넣어 물이 흐르는 것을 막았고, 막힌 바위틈으로 길 잃은 물고기들이 모여들었다. 이 물고기들을 잡아 군인들의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래서 중공군이 마을을 떠날 때까지 만덕과 주민들은 군인들의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대로 복날이면 주민들이 계곡에 모여 천렵 놀이를 하고,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었던 선조들의 여름철 놀이가 만덕과 주민들이 살 수 있던 지혜로 발휘되었던 이야기가 용소계곡에 전해지고 있다.
용소계곡엔 마의태자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마의태자는 속세를 떠나기 위해 말과 함께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홍천에 잠시 멈췄다. 괘석리 가마봉에서 본 홍천 절경에 놀란 마의태자의 말이 날뛰었고, 낙마하는 사고를 당했다. 말은 발목이 부러지고, 그는 다리를 다쳤다. 그때 곁에 다가온 여인은 마의태자와 말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장뇌삼을 달여 만든 물과 풀을 빻아 다친 곳에 발라주자 신기하게도 말은 두 발로 서있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해졌다. 마의태자는 여인에게 삼베 한 벌을 만들어 달라 부탁했다. 지니고 있던 귀한 옷과 장신구들을 마을 주민에게 나눠줬고, 자신을 구해준 여인에 감사의 표시로 몸에 지니던 혁대를 선물했다.
"이는 신라의 천 년 역사가 담겨있는 용맹함의 상징이오. 하지만 나라를 잃고 백성을 지키지 못하였으니, 이 혁대를 지닐 자격이 없소. 부디 이걸 받아주시오."
그는 옷을 벗고 삼베를 걸치면서 태자로서의 삶을 끝마쳤다. 여인은 감동하여 혁대를 용소계곡 너래 바위 밑에 묻어두었다. 현재 홍천군에는 발굴하지 않은 마의태자 릉이 있으며, 1970년대 괘석리 가마봉 일대에서 마의태자가 타던 말의 후예인 야생마를 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용소계곡 트래킹을 모두 맞췄다. 삼복더위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12.5km란 긴 코스를 사고 없이 우리는 용감하게 해냈다. 이 과정을 함께한 이 산악회 수장이신 이상갑 회장께서 제일 기뻐한다. 날씨가 하도 더워 혹시나 하는 마음의 걱정을 한 눈치다. 차에 오른 회원들에게 여러분들께서 무사히 돌아와 기쁘다는 감사의 인사를 한다. 용소계곡은 길기도 하지만 그 계곡을 둘러싸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유례가 무수히 많다. 다 적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또 많은 것을 배워가는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이 계곡을 선정해준 박원태 산 대장께 글을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해피 가족 여러분 덕분에 2편의 글을 쓰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2019년 8월 3일
첫댓글 아 ~~~
참 대단한 글을 읽게되네요
"용소계곡 2편"을
이번에 있을 "기행문" 쓰기 제재로 써도 되겠는지요?
저의 강의 후
학생들과 토론회로 진행 할 예정입니다
결과를 말씀드릴께요
학생중에는 이미 등단작가도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달빛 지기님
지기님 강의 때
기행문 쓰기 자료로 쓰시기 바랍니다
학생이 몇명이나 되는지요
지기님 한국은 가을이 무르익었습니다
산은 오색 단풍으로 아름답게 덮었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총 학생수는 28명이구요
詩가 17명
隨筆이 11명
그중에
한국에 계신분이 4명
타주에 계신분이 3명입니다
한국과 타주에 계신분은
E.Mail로 공부합니다
L.A.에 계신분들은
詩,隨筆 구분 없이 강의에 참석합니다
강의는 시와 수필 격주로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학생 수가 28명이면 대학에서 많은 수짜입니다
훌륭한 문인이 배출되길 기도하겠습니다
달빛 지기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충남 홍성에 있는 오서산을 다녀왔습니다
무려 18km를 걸었지요
지기님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로서의 소임을
충실하게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달빛 지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