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중입니다
주인인 듯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음식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푼더분한 얼굴에 넌지시 배어있는 미소가 푼푼하다. 저희 집은 제주도에서 낚시로 잡은 갈치만을 취급합니다, 캘리그래피로 벽에 걸어 놓은 액자만큼이나 정갈하다. 갈치 전문점답게 밑반찬은 김치와 콩잎 장아찌가 전부다. 농약을 치지 않은 콩잎은 벌레가 갉아 먹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삭은 콩잎내와 짓이겨져 붙어 있는 된장의 쿰쿰한 향은 어릴 적 고향에서 맡던 그 냄새다.
길쭉하니 사각진 질그릇엔 노릇노릇 구워진 손바닥만 한 두툼한 갈치 두 토막이 올려졌다. 갈치의 얇은 껍질은 방금까지 끓어 넘친 분화구같이 군데군데 퐁퐁 터져 기름이 지글지글한다. 양은 냄비에는 뭉툭 뭉툭 삐진 무와 송송 썰어 넣은 양파를 깔고 길쭉길쭉 찢은 새파란 대파를 얹어 땡고추에 바특하게 지진 갈치 조림이 담겨 있다. 비리척지근하면서 알싸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혀 밑에는 벌써부터 솟기 시작한 침이 그득하다.
“먹자.”
최 사장이 말을 던지듯 내뱉으며 갈치 한 토막을 젓가락으로 집어 앞 접시로 옮긴다. 말없이 남아 있는 한 토막을 내 앞으로 접시째 끌어당긴다. 고인 침이 저절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치잣빛과 황톳빛으로 대중없이 물든 껍질 안에는 새하얀 속살이 차지게 붙어 있다. 길게 한 점을 떼어내 입안에 넣는다. 씹히는 살점이 쫀득쫀득하다. 갈치 특유의 비린내가 혀끝에 달라붙는다. 그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다.
최 사장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내 말없이 밥만 꾸역거린다. 딴에는 내게 적잖이 섭섭했을 것이다. 내 맘도 편치 않다. 아는 사람이, 더군다나 친구 사이라는 게 한없이 편할 때도 있지만 못지않게 힘들고 어렵다. 다른 일로 의견 맞지 않으면 흔한 욕지거리라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투덕거리기라도 할 것이다. 욱하는 성질로 개새끼 소새끼를 찾아가며 멱살잡이를 하더라도 다음에 만나면 애써 술김을 핑계 삼아 어물쩍 넘어가는 게 친구 사이다. 일 관계로 부딪히는 것은 정말 못 해먹을 짓이다. 혀끝 미각을 담당하는 세포는 감정에 따라 맛을 달리 느끼나 보다. 칼칼하게 입맛 당기던 갈치조림에 쓴맛이 받친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물맛조차 밍밍하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여자 둘이 자꾸 이쪽을 곁눈질로 힐끔거린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 최 사장과 아는 사람인가. 최 사장은 아랑곳없이 얼굴을 테이블에 박고 젓가락질 중이다. 여자가 가운뎃손가락을 곧게 뽑아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밀어붙이더니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입을 벙싯거린다. 앞에 앉은 여자가 구부정하게 몸을 기울인다. 움켜쥔 채 테이블을 짚은 손에 들려 있는 젓가락이 하늘을 향해 V자를 그리고 있다. 둘은 범죄 모의하듯 테이블 위에서 머리를 맞대고 으밀아밀 속살거린다. 엇뜬 눈으로 이쪽을 할긋 보고 스마트폰으로 되돌아간다. 자세히 보니 목표물이 최 사장이 아니고 나다. 그나마 있던 입맛마저 가신다.
텔레비전의 위력이 이토록 대단한 줄 몰랐다.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이 일제히 알은체하며 나를 에워쌌다.
“부장님 텔레비전에서 보니 훨씬 더 미남이시던데요.”
“저는 부장님 우승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승한 사람은 벌써 세 번째 출연이라고 하잖아요.”
“어머, 처음 출연에 한 문제 차이로 아깝게 떨어진 건 아주 잘한 거예요. 다음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세요, 부장님.”
이미 몇 차례 전화를 받은 터라 대수롭지 않았다. 치렛말이지만 분명 그들이 건넨 말은 덕담이었음에도 내게는 곤욕스럽게 들렸다.
한 달 전 우리말 겨루기라는 퀴즈 프로에 나갔다. 내가 방송국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한 달 전에 녹화한 것을 어제 방송했다. 이미 내가 우승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방송을 보고 대단한 일인 양 한마디씩 해왔다. 처음부터 사려 깊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예심을 통과하고 의기양양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말 겨루기라고 KBS에서 하는 프로 알지? 내가 말이야, 거기 한번 나가보려고.”
“그거 생각보다 어렵던데…….”
“아냐, 내가 예심을 봤거든. 문제가 생각보다 쉽더라고.”
사실이었다. 예심은 그야말로 형식에 불과했다. 예심 통과에 나도 모르게 가슴 한편에서 만용이 스멀거렸다. 매주 방송을 보며 문제를 같이 풀어봤다. 우리말 달인은 못되더라도 한 회차의 방송에서는 우승할 자신이 있었다.
“가자.”
수정과로 볼가심을 마친 최 사장이 흰 사기잔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수정과에 둥둥 떠 있는 잣같이 채 가라앉히지 못한 앙금이 말투에 남아 있다. 딱히 바쁜 일도 없을 것인데 서둘러 일어나려 한다. 내게 남은 서운함을 한시라도 빨리 떨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너도 알다시피 내 사정도 좀 있잖아…”
“아냐 됐어.”
여전히 최 사장의 말끝은 나뭇가지 분지르는 듯 뭉툭하다. 내가 한 일이 미안한 일이 아님에도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건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에둘러 남은 수정과를 마저 마시려고 잔을 거머쥔 손이 의수처럼 부자연스럽다. 싸한 계피 향과 생강 향이 이에 눌어붙어있는 비린내를 가시게 한다. 끙, 한숨 같은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기요.”
“네…”
뼘걸음으로 종달음질 쳐 오며 대답하는 푼더분한 주인아주머니 모습이 애초롬하다.
“우리 얼마예요?”
다른 때 같았으면 최 사장은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한사코 나를 막아섰을 것이다. 계산을 치르고 나가자 최 사장은 건물 앞에서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담배 연기가 뭉쳐져 구름이라도 만들어지는지 창포빛 하늘에 떠 있는 희멀쑥한 구름은 최 사장이 내뱉는 담배 연기와 같은 색깔이다. 몽개몽개 흐트러지는 연기만큼이나 최 사장의 마음은 복잡한 듯하다.
최 사장과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졸업 후 역마살이라도 끼인 것처럼 현장을 따라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자 장돌뱅이 같이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인근 광역시에 있는 건설 회사로 옮겼다. 내로라하는 규모의 회사는 아니었으나 지역 내에서는 알짜배기라고 평이 자자했다. 과장으로 입사하여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지금은 공무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최 사장은 내가 일하는 회사에 협력 업체로 등록된 전문 건설 회사의 사장이다. 오륙 년 전 협력 업체 등록을 할 때 특혜를 베푼 건 아니어도 다소간 신경 쓴 것은 사실이다. 막 사업을 시작하는 최 사장으로서는 맨땅에 부딪히는 것보다는 비빌 언덕이 아무래도 조금은 수월했을 것이다. 그 후 가끔 우리 회사의 일을 하면서 조금씩 성장했다. 오늘 최 사장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는 것은 복합건물 짓는 데 참여한 견적에서 탈락해서다. 최 사장은 건설 경기의 둔화와 함께 일거리가 없어 이번 일에 목을 매다시피 했다.
“사무실로 들어갈 거면 가자, 내가 태워 줄게.”
꽁지까지 다 피운 담배를 항아리에 집어 던지며 최 사장이 말한다. 항아리 안에는 던져 넣은 담배꽁초가 겹겹이 쌓여 오글오글 대는 구더기같이 보여 역겹다.
“아냐, 몇 발 안 되는데 뭐. 걸어갈게.”
“…그럼 나 간다.”
우물우물 차마 뱉어내지 못한 말을 삼킨 최 사장은 힘없이 부스러기 말을 떨어뜨리고 등을 보인다.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착공하는 오피스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주차장으로 향하는 최 사장의 어깨가 축 처졌다. 같은 값이면 친구가 잘 되는 게 좋다. 하지만 공과 사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내가 칼로 무 자르듯 공·사를 구분한 것은 아닐지라도 일을 핑계로 최소한 양심에 꺼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최 사장의 검은색 승용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번쩍 햇볕을 튕기며 내게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다. 착잡한 마음만큼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뒤돌아선다. 식당 유리문이 두 시 방향에서 자동으로 열리며 옆에서 식사하던 여자 둘이 나온다. 보이는 행색으로는 전업주부같이 보인다. 문화센터인지 아니면 어디서 운동이라도 하고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온 듯하다. 얼굴에 나른한 권태감이 잔뜩 배었다. 여자 둘은 나를 발견하고 발걸음이 무르춤해지는가 싶더니 한 명이 잰걸음으로 달려와 앞에 바투 선다.
“어제 나오신 분 맞죠? 맞죠?”
턱밑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동그랗게 뜬 눈을 깜박인다. 스마트폰을 밀어젖히며 숙덕거리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묻고자 하는 말뜻은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앞뒤 말 다 자르고 연이은 맞죠? 맞죠? 라는 물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뭐…가 말이에요?”
“우리말 퀴즈에 나온 소설가 선생님… 맞잖아요?”
갑자기 심장판막이 열린 채로 작동을 멈춘 듯 가슴이 먹먹해진다. 먹은 갈치가 꿈틀거리며 다시 입으로 나올 것만 같다.
“첫소리 문젭니다. 세로로 삼 음절 이응 미음 치읓입니다. 도움말 드립니다. 어린아이.”
분명 아나운서의 말은 또렷했으나 귀로 들어오는 소리는 모깃소리만큼이나 가늘게 윙윙거렸다. 머릿속은 어린아이와 연관된 ㅇ ㅁ ㅊ으로 시작되는 단어를 떠올리려고 빠르게 돌리고 돌렸다. 하지만 빠르게 돌리고자 하는 것은 내 의지일 뿐이었다. 정작 머릿속이 하얗게 멈춰져 있었다. 어린아이 어린아이라는 단어만 바람에 나부끼는 티끌같이 붕붕 날아다녔다. 나도 모르게 입안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양손으로 탁자라도 꽉 움켜쥐지 않았다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일 뻔했다. 문득 촬영을 하고 있던 카메라 렌즈가 깜박이는 붉은 점이 나를 저격하고자 겨누는 총구처럼 느껴졌다. 총구는 한두 개도 아니었다. 네 대인지 다섯 대인지도 모르겠다. 내 눈에는 8 7 6 5… 빠르게 변해가는 정면의 시계만 보였다. 아내와 딸아이가 한껏 기대에 찬 눈망울을 말똥거리며 시계 밑 방청석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삐,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는 버저음과 동시에 다른 출연자가 누르는 삐루루룽, 벨 소리가 환청같이 울렸다.
“네, 김유빈 씨.”
“유모차입니다.”
“네, 정답입니다.”
방청석에서는 작가의 손짓 신호에 따라 일제히 손뼉을 쳤다.
“이동국 씨, 많이 긴장하셨나 봐요? 긴장 풀어지게 노래 한 곡 하고 할까요?”
줄곧 방송을 진행해 온 베테랑 아나운서답게 살가운 미소로 오른손을 올려 촬영을 중지시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방청객이 터뜨리는 실소와 애처롭게 바라보는 눈빛이 동시에 어른거렸다.
“자, 아까 보니 부인과 딸이 같이 오셨던데… 딸, 일어나서 아빠 힘내라고 응원 한마디 하세요.”
“아빠, 파이팅.”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위로 종주먹질을 하며 크게 소리쳤다.
“어허, 딸. 여기가 어디예요? 우리말 겨루기 방송이잖아요. 그러면 파이팅이란 외래어보다 우리말로 응원해야죠.”
딸아이는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음 짓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파이팅이란 뜻을 지닌 우리말이 아리아리란 말이 있어요. 자, 딸. 그럼 아리아리로 다시 한번 외쳐보세요.”
“아리아리!”
“아니, 좀 더 힘차게요. 이거 전국에 다 방송 나갈 건데 웃으면서 힘차게.”
딸아이는 거푸 세 번이나 아리아리를 외쳤다. 그동안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럴 거라고 미루어 짐작만 했었다. 방송에 나가는 시간은 50분이었으나 녹화에는 세 시간이나 걸렸다. 녹화를 시작하기 전에 아나운서는 출연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잘것없는 신변잡기부터 체조나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로마에는 로마의 법이 따로 있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출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유치원생마냥 아나운서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렇게 했음에도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야생에서 막 포획되어 철창에 갇혀 안절부절못하는 원숭이 꼴이 되어버렸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그러는 내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을 들이켜며 마음을 다잡았다. 입안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혀 밑으로 스몄다.
“점심 드셨어요?”
“어 어… 김 주임.”
“뭘 그리 놀라세요?”
여직원의 말에 깜짝 놀라는 내가 우습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인 듯하다.
“복합건물 실행 예산서는 언제까지 출력하면 됩니까?”
“어 그거 말이야, 오늘 화요일이니까 금요일까지 천천히 해.”
우리말 겨루기를 우리말 퀴즈라고 부르는 아줌마와 헤어져 어떻게 사무실까지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겨루기든 퀴즈든 전혀 중요하지도 않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방송국에서는 이미 지난주 어제 방송에 내보낼 것을 파일로 보내왔다. 하지만 난 파일은 열어 보지도 않았다. 굳이 컴퓨터의 화면을 통해서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저 방송하면 그때 보지, 그런 생각이었다.
정작 내가 나온 어제 방송은 채 십 분을 보지 못했다. 텔레비전에 비친 내 모습이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쉬이 적응되지 않았다. 틈만 나면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아내는 새삼스러운지 매일 보던 연속극도 마다하고 눈을 반짝였다. 버벅대는 첫 번째 문제가 지나갔음에도 낯간지러운 것은 여전했다. 늘 텔레비전에 자신의 모습을 보는 연예인들이 새삼 다르게 생각되었다. 의아해하는 아내의 눈빛을 뒤통수로 느끼며 집을 나섰다.
고비였던 첫 번째 문제를 넘기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서는 무난했다.
“이번 문제는 고유어 문제입니다. 가로 시작되는 삼 음절입니다. 맞서서 옳고 그름을…”
서슴없이 벨을 눌렀다.
“네, 이동국 씨.”
“정답은 가래다입니다.”
“네, 정답입니다.”
이후로도 허위단심 되술래잡다 마침몰라 등의 고유어를 연달아 맞추며 선두로 올라섰다. 세 번째 출연했다는 출연자는 일흔하나의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했다. 마지막 칠팔 년을 교감 선생님으로 근무하기 전에는 국어 선생님으로 삼십여 년을 교단을 섰다는 저력은 실로 대단했다. 젊은이들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순발력만 아니라면 전체 문제를 다 맞힐 기세였다. 나와 둘이서 엎치락뒤치락했다.
역시 술은 같이 마실 상대가 있어야 맛이 났다. 어벌쩡 집을 나서서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더군다나 혼자서는 선뜻 들어갈 만한 술집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다고 같이 술 마시자고 누구를 불러낼 개재도 못 되었다. 나는 무리에서 쫓겨난 짐승같이 동네를 주춤거렸다. 그때 가끔 아이들이 시켜 먹는 치킨집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가게 안은 테이블 네 개가 정물같이 자리만 차지하고 손님은 전혀 없었다. 그나마 테이블 하나는 홍보용 전단지가 차지하고 있었다. 프라이드치킨과 소주를 시켰다. 배달원은 교대로 화들짝 들어와서는 텔레비전을 멀뚱히 바라보다 비닐봉지를 들고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새빨간색의 안전모를 쓴 남자는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여 회색으로 보이는 턱수염이 삐죽빼죽 돋아나 늙수그레했고 하얀색의 안전모를 남자는 갓 스물을 넘었을까 싶게 애동대동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엘지와 넥센의 야구 중계 중이었다. 머릿속은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한 것부터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아니 다소간 쉽게 보고 허투루 보낸 시간을 자책하는 마음들이 뒤섞였다. 그때 전화가 왔다.
“지금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 이 부장님 맞죠?”
“아… 아… 예.”
“이 부장님을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대단하시네요.”
협력 업체 사장의 전화였다. 대충 허허거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고등학교와 대학교 친구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후로 전화를 받지 않고 전원을 껐다. 아침에 출근할 때 휴대전화기를 켜자 여섯 통의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문제를 절반쯤 풀었을 때였다.
“이동국 씨는 알고 봤더니 소설가라고요?”
여자 아나운서는 미리 짜인 시나리오대로 내게 질문했다. 작지 않은 눈을 크게 떠 질문하는 표정과 억양은 아나운서가 아니라 베테랑 연기자 못잖았다. 마치 전혀 알지 못하는 숨겨진 비밀을 우연히 금방 알은 듯한 낯빛이었다.
“아 예. 제가 4년 전에 신춘문예를 통하여 소설로 등단했습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직장에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럼 직장 생활하시면서 소설 쓰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예… 짬짬이 쓰고 있습니다.”
“네… 그러면 쓰신 소설이 책으로 출판도 했습니까? 있으면 소개도 좀 해 주세요.”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소설가로 등단한 사항에 대해서만 질문한다고 미리 통보를 받았었다. 급하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 출판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동국 씨는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세요? 본인이 쓰고 싶은 소설이 있을 거 아녜요?”
“학자들은 전 세계 언어 중에서 한글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그토록 부러워하는 한글은 외래어에 물들고 국적 불명의 말들로 구박받고 있습니다. 저는 한글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아 네… 시청자 여러분, 이동국 소설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한글의 아름다운 향이 물씬 풍기는 소설로 찾아뵐 겁니다. 저도 책이 나오면 꼭 사보겠습니다.”
내가 내 이름을 걸고 책을 출판했어도 아나운서가 그렇게 질문을 했을까.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변변찮게 마시는 술에 시켜놓은 치킨은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남은 치킨을 포장하여 들고 걸을 때마다 핫팬츠를 입은 새침한 걸 그룹 아가씨는 잘 튀겨진 닭 다리를 들고 내 손목에서 그네를 뛰었다.
“부장님, 사장님이 찾으십니다.”
언제 다가왔지? 사리살짝 괴발디딤도 아닌데 김 주임의 발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무슨 일일까. 다이어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돌아서 걷는 김 주임 짤짤이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장실 문을 똑 똑 두 번 노크한다. 숨을 두 번 들이쉬고 내쉴 만큼 기다렸다 문을 연다.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서류를 들척이고 있는 사장의 모습이 자신이 사냥한 짐승을 뜯어먹는 포식자 같다. 언뜻 보니 오전에 내가 올린 하도급 품의서다.
“부르셨습니까?”
조심스럽게 고개를 꾸벅인다.
“앉지.”
사장은 나를 보지도 않고 턱으로 소파를 가리킨다.
“예.”
대답만 하고 그대로 서서 사장의 다른 말을 기다린다. 사인하는 손길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다. 사인을 끝낸 사장이 서류를 책상 앞으로 밀치며 일어난다. 사냥감을 마음껏 포식한 고양잇과 동물처럼 어기뚱어기뚱 걸음을 옮겨 소파에 앉는다. 그제야 나는 길게 놓인 삼 인용 소파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별일 없지?”
“네.”
밑도 끝도 없이 별일을 물으면 그저 네라는 답 말고는 할 대답이 없다. 그렇다고 회사의 경영부터 현장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까지 미주알고주알 주절거릴 수는 없는 일이다.
“자네 인사말 좀 하나 쓰게.”
뜬금없이 인사말이라니. 의문 가득한 마음을 여민 채 사장의 얼굴을 쳐다본다.
“무슨…….”
“고등학교 동문회 체육대회가 있거든. 팸플릿에 인쇄할 거 말이야.”
“아… 네…….”
“이전에 썼던 것처럼 그냥 쓰면 되.”
사장은 업무 지시를 내릴 때처럼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말한다.
“특별히 하실 말씀이라도…”
“아 참. 올해가 개교 100주년이라니까 참조하고. 누가 팸플릿에 인쇄된 인사말을 읽어보기나 하겠어, 그냥 형식이지.”
“…….”
사장은 제 할 말을 다했는지 한쪽 다리를 다른 편의 다리 위로 포개 걸치고 탁자 위에 놓인 신문을 잡아 탁 소리 내어 까불려 펼친다.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사장의 정수리를 향해 묵례한 후 문을 열고 나온다.
이제는 이런 일이 대수롭지도 않다. 일상이 되어 버린 미세먼지나 황사같이 출근길 멈춰 선 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차량같이 무덤덤하다. 처음 사장의 부탁을 빙자한 지시를 받았을 땐 짓밟힌 자존심에 당장이라도 사표를 낼 듯 안절부절못했다.
소설가는 아주 오래전 꿈이었다. 대학 진학을 하면서 잠깐 고민했었다. 그때는 문예창작학과도 없었다. 내가 공대를 선택한 것은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배고픈 예술가의 삶이 자신도 없었을뿐더러 내가 가진 것이 재능인지 아닌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어쩌면 막연한 희망을 과하게 포장했을 수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며 그냥저냥 먹고 사는데 매몰됐었다. 문학에로의 꿈은 인적 드문 곳에 키우던 반려견을 내다 버리는 파렴치한처럼 잊고 살았다. 영원히 뇌사 상태로 깨어날 줄 몰랐던 꿈이 마흔의 문턱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애써 아니라고 도리질 쳐도 꿈은 꿈틀거리며 갈라진 콘크리트 틈 사이로 뿌리내리는 넝쿨같이 자리 잡아갔다. 나는 소녀에게 마음 뺏긴 소년처럼 열병에 걸려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며 쓰고 또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우연이었다. 아니면 운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소설을 쓴 지 3년 만에 4년 전 지방의 모 신문사에 신춘문예로 당선되었다. 나는 당선만 되면 소설가로서의 새로운 삶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한갓 신기루였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딱 한 번 이름도 알지 못했던 무슨 계간지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원고료는 있으나 마나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이후 어디에서도 내게 원고를 청탁하지 않았다. 그동안 써 놓았던 소설을 출판해 볼까 하고 출판사에 문의해 봤다. 출판사에서는 거절의 말을 에둘러 자비 출판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회사에서의 내 위치였다. 딱히 순환 근무를 한다고 사규로 정해놓은 것은 아니어도 현장과 사무실 내근을 왔다 갔다 했다. 자재과장으로 근무하던 나를 공무부 차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하도급 계약을 맺는 일은 공무부의 일이었다. 견적을 받아 업체가 정해지면 표준도급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일임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사장의 지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번은 12층 높이에서 비계 작업을 하던 인부가 추락사하는 산재 사고가 발생했다. 노동부에 사고 신고를 하는 건 내 업무가 아니었다. 주어진 양식에 육하원칙대로 기술만 하면 되는 일임에도 문장력이 좋은 사람이 써야 한다는 논리를 펴 기어코 내게 쓰게 했다. 이후 나는 회사에서 약방 감초 같은 존재가 되었다. 정치에 뜻이 있는 사장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동문회 감투는 물론이고 여러 사회단체에 가입해 있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나는 사장의 각종 동문회나 행사의 인사말을 전담하고 있다.
할 일은 밀려있는데 딱히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내일까지는 현장에서 올라온 기성 청구 자료를 검토해야 하고 사장에게 품의한 서류가 내려오면 업체를 불러 일일이 계약 체결도 해야 한다. 커피나 한잔해야겠다.
“김 주임, 나 커피 한 잔만 줄래요.”
식사 후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에 나도 모르게 중독되었나 보다. 수정과의 담백함으로는 커피의 자극적인 맛을 지우기에는 농도가 약하다. 내려놓은 종이컵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커피 특유의 향을 풍긴다.
“고마워.”
김 주임의 엷은 미소 고인 얼굴이 살갑다. 갓 전문대학을 졸업해 입사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서른을 넘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혀끝의 미각은 커피 맛보다 커피믹스의 달콤한 설탕 맛을 먼저 눈치챈다. 아마도 뇌세포는 커피 맛을 핑계로 설탕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신춘에 응모하여 당선된 작품은 현대인들의 중독된 문명을 다룬 것이었다. 가족은 점점 핵분열을 거듭해 작아져만 가고 고뇌를 이야기할 상대를 못 찾은 현대인들은 어느 한 곳에 집착한다. 반복된 집착은 중독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은 게임 중독에, 성인이 되어서는 인터넷 채팅 중독 섹스 중독 알코올 중독 쇼핑 중독 도박 중독에 물들어가는 세태를 그린 작품이었다.
사회를 바라보는 예리한 시각을 가졌다는 평과 함께 당선된 그 소설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막상 등단하고 나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거듭되는 탈락에 낙담해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그때 갈피 잡지 못하는 내 마음을 잡아준 게 우리말이었다. 동사나 형용사의 우리말 표현은 내 눈에는 아름답다 못해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었다. 진작 우리말 공부를 좀 했더라면 그동안 내가 썼던 소설이 조금은 더 감칠맛 나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사장의 고등학교 동문회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정작 당사자인 사장은 동문회에서 각종 감투를 쓰고 있지만 한 번도 홈페이지에 접속하지 않는다.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내가 회원 가입을 했다. 사장이 이야기한 인사말을 쓰려면 그 학교에 대하여 뭐라도 알아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20세기 초에 지어졌다는 교사가 홈페이지 대문을 장식하고 있다. 2층으로 지어진 붉은 벽돌 위로 깎아지르게 솟은 삼각형의 박공지붕이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사장의 인사말을 쓰면서 알았다. 학교마다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하나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교가는 무슨무슨 산의 정기를 받은 것이 마치 법칙처럼 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큰 강이거나. 행사 때마다 부르는 교가에서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샤머니즘에 물드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부장님 퇴근 안 하세요?”
고개를 드니 김 주임이 제 엉덩이만 한 숄더백을 옆구리에 끼고 서 있다. 벌써 퇴근 시간이 되었나 보다. 김 주임 어깨 너머 창문 밖 창포빛 하늘은 어느새 잿개비로 뒤덮여 있다. 곧 어둠이 소낙비처럼 내릴 것이다.
“어 그래. 먼저 들어가.”
“또 혼자 계실 거죠?”
“……왜?”
“아니에요. 저녁은 챙겨 드세요.”
매번 듣는 소리다. 오늘따라 김 주임의 목소리가 다 큰 자식에게 하는 노부모의 기우같이 들린다. 김 주임을 시작으로 하나둘 직원들이 퇴근한다.
그럭저럭 인사말도 써 놨다. 현장에서 올라온 기성 청구서는 내일 오전 중으로 검토해 보면 될 것이다. 언뜻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본다. 7시가 넘었다. 갑자기 출출하다. 분명 시각은 눈으로 확인했는데 그 시각을 느끼는 건 눈이 아니고 배다. 저녁을 사 먹으로 나가는 것도 귀찮다. 컵라면이나 하나 먹어야겠다. 탕비실에 들어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냉·온수 정수기의 온수는 물이 뜨겁지 않다.
탕비실에서 바라보니 사무실은 내가 앉는 자리만 환하게 불이 켜졌다. 마치 무대를 비추는 조명 같다. 언제쯤이면 내가 쓴 소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을까. 텅 빈 사무실을 혼자 남아 지킨 지도 몇 년째다. 한동안 코맹맹이 소리로 앙앙불락하던 아내도 지쳤는지 그러려니 한다.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게 소설인 듯하다. 마음은 뻔한데 그 뻔한 마음을 글로 나타내는 것일 뿐인데. 커피포트가 우글부글 요란스럽게 아우성친다. 끓는 물을 사발면에 조심스럽게 붓는다.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어댄다. 액정에 표시되는 발신인이 최 사장이다.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누른다.
“나다.”
최 사장의 목소리에 주변의 왁자한 소리가 함께 묻어온다. 아마도 술집인 듯하다.
“어… 그래.”
“퇴근 했니?”
“아직…”
“이리 와라. 술이나 한잔하자.”
“아냐 됐어. 아직 일이 좀 남았어.”
“올빼미도 아니고 넌 매일 사무실에 혼자 남아 뭐하니? 회사 일은 너 혼자 다 하는 것도 아니고…”
후르륵, 라면발이 조금 불었다. 적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칭기즈 칸의 말이 떠오른다. 소설은 철저하게 자신과의 싸움이다. 반짝이는 순간의 영감을 글로 나타내는 게 시라면 소설은 진흙 덩이를 빚는 옹기장이가 아닐까. 이개고 빚고 굽는 과정마다 어느 하나라도 땀과 혼이 섞이지 않으면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져 짓밟히는 사금파리가 되고 만다. 아는 만큼만 보이고 느끼는 만큼 쓸 수 있는 게 소설이라더니 맞는 말인 듯하다. 그동안 썼던 소설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내쉰 한숨만큼이나 소설다워졌을까. 내가 쓰는 소설이 언제쯤이면 조금 전 끓는 물처럼 비등점을 지나게 될까. 지금이 고빗사위였으면 좋겠다. 이 고비만 넘기면 기화되는 물같이 소설은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