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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11
최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훈련량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화가 경기 전 훈련을 취소한 것. 늘 다른 팀 선수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한화 선수들이 경기 개시 한 시간을 앞두고서야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김성근 감독의 지옥훈련조차 멈추게 만든 ‘폭염’ 때문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매년 7~8월이면 30℃를 훌쩍 뛰어 넘는 무더위와 전쟁을 치른다. 가만히 서 있기에도 힘든 날씨 속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승부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올 시즌에도 두산 오재원과 한화 이용규처럼 투지 넘치는 선수들조차 경기 도중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교체되기도 했다. 이 시기만큼은 상대팀 투수와 타자보다 더 무서운 적이 바로 더위다. 한화를 비롯한 많은 팀들이 훈련시간을 줄여 가면서 체력 비축에 힘을 쏟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7월 29일 삼성과 NC의 대구 경기에 앞서 삼성 이승엽과 구자욱이 무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을 하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
# ‘더위 지옥’ 대구구장
여름에는 모든 야구장이 다 덥지만, 삼성의 홈인 대구구장은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더위를 자랑(?)한다. 분지에 위치한 대구는 여름이면 35℃를 웃도는 폭염이 연일 계속된다. 오죽하면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심지어 대구구장에는 인조잔디가 깔려있다. 그라운드에서 올라오는 복사열까지 합해지면 그야말로 ‘습식 사우나’가 따로 없다.
많은 야구인들은 삼성이 여름에 강한 비결로 대구구장의 더위를 꼽곤 하는데, 단순히 농담만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홈구장의 더위에 익숙한 삼성 선수들에 비해 원정팀들은 대구 경기 적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고, 반대로 다른 원정 구장은 대구에 비해 덜 더우니 삼성 선수들에게 오히려 편하게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삼성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대구 토박이인 삼성 류중일 감독은 폭염으로 뒤덮인 잠실구장 더그아웃에 앉아 “대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선선한 편”이라고 웃어 보이기도 했다.
▲ 인조 잔디가 깔린 대구 시민야구장은 국내에서 가장 더운 구장으로 ‘악명’이 높다.
이 때문에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급기야 대구구장에 대나무로 만든 발까지 등장한 적이 있다.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가 바로 이 기발한 아이디어의 창시자였다. 더블헤더가 종종 열리던 1980년대 후반이었는데, 당시 빙그레는 안 그래도 무더운 대구구장에서 이틀 연속 더블헤더 일정이 잡혀 있었다. 게다가 원정팀 더그아웃에는 홈팀보다 두세 배 많은 햇빛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눈앞이 깜깜했던 빙그레 프런트는 고심 끝에 인근 시장에서 거대한 대나무 발을 구입해 경기 전 훈련이 한창인 더그아웃 앞에 늘어뜨렸다. 감독의 시야를 가리고 선수들의 동선이 불편해진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거둬들였지만, 경기력 향상을 위한 프런트의 노력은 모두 높이 샀다.
# 에어컨을 부탁해
▲ 한화 정근우가 7월 10일 LG와의 잠실 경기에서 더위를 쫓기 위해 얼음이 가득 담긴 비닐 주머니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 한화 이글스
많은 감독들과 선수들은 “여름에는 차라리 원정 경기를 많이 하는 게 낫다”고 입을 모은다. 이유가 있다. 1군 선수단은 대부분 시설 좋은 특급 호텔을 원정 숙소로 사용한다. 당연히 방마다 에어컨 시설이 잘 구비돼 있다. A 선수는 “집에 가면 방마다 에어컨이 달려 있지도 않고, 전력과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 웬만큼 덥지 않으면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다”며 “숙소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B 감독도 “선수들이 집에 가면 아이들부터 집안일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며 “원정경기에서는 아무래도 시원한 숙소에서 휴식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밤에 잠도 더 잘 온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물론 룸메이트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C 선수는 땀을 많이 흘리고 더위에 약해 잠자리에 들 때도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신인 시절 룸메이트였던 선배는 반대로 에어컨을 끄고 자야 마음이 편하고 잠이 잘 온다고 했다. C 선수는 “한여름 밤에 더워 죽겠는데 선배 몰래 에어컨을 켤 수가 없어서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잤다”며 “지금은 고참이 되어 원정 숙소를 혼자 쓸 수 있으니 정말 좋다”고 웃었다.
당연히 에어컨은 라커룸에서도 필수품이다. 선수들은 훈련 틈틈이 에어컨 바람에 몸을 식힌 뒤 다시 그라운드로 나가곤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뎌낼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지난 시즌에는 한 야구장에서 에어컨으로 인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D 팀의 홈구장에서 하필이면 가장 더운 시기에 원정팀 라커룸의 에어컨이 고장 난 것이다. 당시 원정을 왔던 E 팀 선수들은 당연히 아우성을 쳤다. E 팀 관계자들도 D 팀에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D 팀은 “야구장 에어컨은 구단이 아니라 야구장을 관리하는 시설관리소의 소관이다. 시청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아직 응답이 없다”고 말하면서 책임을 미뤘다. 분개한 E 팀 관계자들은 “다음에 D 팀이 우리 구장에 올 때는 원정팀 라커룸과 식당 에어컨을 모두 꺼버리겠다”고 남몰래 다짐하기도 했다. E 팀은 결국 인근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최대한 큰 사이즈의 선풍기를 공수해와 임시방편으로 사용했다. 다행히 D 팀이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구단 자비로 에어컨을 수리해주면서 ‘보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E 팀은 “이 선풍기는 우리 재산”이라며 운반하기도 힘든 대형 선풍기들을 깨끗하게 챙겨서 떠났다.
▲ 7월 14일 삼성 안지만이 반바지 차림으로 훈련에 나서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
# 태양을 피하는 방법
감독들이 꼽는 최고의 여름나기 비법은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이다. 이 가운데 사령탑이 배려해줄 수 있는 부분은 단연 ‘휴식’이다. 앞서 언급했던 한화처럼, 대부분의 구단은 더위가 극에 달할 때 경기 전 훈련을 아예 안 하거나 최소화시킨다. 평일 오후 6시 30분 경기를 기준으로 보통 홈팀은 3시, 원정팀은 4시 30분쯤 훈련을 시작하는데, 이때도 더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복사열이 많이 올라오는 인조잔디 구장에서 경기할 때나 이동거리가 길었을 때는 아무리 엄격한 감독들도 훈련시간을 많이 늦춘다. 훈련 때 유니폼이 아닌 반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KBO 역시 올 시즌부터 7월과 8월 주말 경기를 오후 6시로 한 시간 늦춰 현장의 환호(?)를 받았다. 이전처럼 오후 5시 경기를 치르려면 해가 중천에 뜬 오후 2시부터 훈련을 해야 하니, 선수들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는 까닭에서다.
무더운 여름을 잘 나려면 영양 보충도 중요하다. 예전 선수들은 온갖 기상천외한 보양식을 다 섭취했다. 몸에 좋다고 알려진 재료라면 입맛에 맞지 않아도 다 참고 먹었다. 빙그레는 한때 선수들에게 ‘뱀탕’을 돌린 적도 있다. 고원부 같은 재일교포 선수들은 차마 먹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요즘 선수들은 다르다. 좀 더 체계적으로 식단을 관리한다. F 코치는 “우리가 선수생활을 할 때는 다들 한약은 기본으로 먹고 부모님들이 희귀 음식들도 경쟁적으로 구해다 주곤 했다”며 “요즘 선수들은 이른바 ‘비타민 세대’다. 영양제들을 잘 챙겨 먹고, 도핑테스트 적발 위험이 있는 한약보다 부담이 덜한 홍삼 정도를 수시로 먹는다. 보양식도 한우나 삼계탕처럼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사실 더위 앞에 장사는 없다. 평소에는 냉장고 속에 들어 있던 물과 이온음료가 혹서기에는 큼지막한 아이스박스 속에 보관되는데, 이마저도 경기가 5회를 넘어가기 전에 이미 동난다. 30대 중반을 넘어선 베테랑 G 선수는 “심지어 같은 팀 선수가 좋은 플레이를 했을 때 박수를 치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소모되는 느낌”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다. 그렇다고 야구를 안 할 수도 없다. 더그아웃에서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때는 그저 얼음이 가득 든 비닐주머니를 머리 위에 올려놓는 ‘원시적인’ 수단으로 매 경기 버텨 나간다.
결국 최고의 비법은 단 하나다. 어차피 하루에 한 바가지는 쏟아야 할 땀. 이기고 난 뒤 기분 좋게 샤워 한번 하고 나면 기운이 다시 불끈 솟는다. 반대로 무더위 속에 쩔쩔 매다 패배의 쓴맛까지 맛보면 몸보다 마음이 더 더워진다. 그래서 더위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승리’다.
배영은 /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일요신문 [제1213호]
박명환 ‘양배추 사건’ 아시나요
헐,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더위를 이겨내는 비법이 화두에 오를 때마다 야구 관계자들이 늘 첫손에 꼽는 장면이 있다. 그 유명한 NC 박명환의 ‘양배추 사건’이다. 박명환이 두산 소속이던 2005년 6월, 잠실 한화전에서 ‘역대급’ 해프닝이 벌어졌다. 역투하던 선발투수 박명환의 모자가 벗겨지면서 난데없이 양배추 잎 한 장이 마운드로 떨어졌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물체의 출현에 경기를 지켜보던 야구 관계자들과 팬들은 물론 선수들까지 깜짝 놀랐다.
▲ 2005년 6월 19일 두산의 박명환이 한화와의 잠실 경기에서 공을 던지는 도중 모자가 벗겨지면서 난데없이 양배추가 떨어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 연합뉴스
알고 보니 박명환은 2004시즌 중반부터 미리 얼려 놓은 양배추 잎을 모자 속에 넣고 투구를 해왔다고 했다. 평소 갑상선항진증을 앓아온 탓에 남들보다 더위나 피로를 더 빨리 느껴서다. 실제로 그는 마운드에서 유독 다른 선수보다 땀을 많이 흘리기로 유명했다. 더운 여름날 전력투구하면서 괴로워하던 남편을 늘 안타까워했던 박명환의 아내는 어느 날 모자 속 열기를 식히기 위한 ‘양배추 민간요법’을 제안했다. 박명환은 이후 “솔직히 양배추를 머리에 얹고 던지면 정말 시원했다. 그때 모자가 벗겨져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이후에도 계속 양배추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양배추가 화제에 오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KBO는 규칙위원회를 열었다. 투수 모자 속의 양배추가 ‘투수가 이물질을 몸에 붙이거나 지니고 있을 때 퇴장시킬 수 있다’는 야구규칙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결국은 ‘양배추는 투수가 던지는 공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물체로 볼 수 없다. 다만 투구 도중 이물질이 떨어지는 것은 타자의 타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양배추 소지를 금지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박명환이 양배추를 계속 모자 속에 넣고 던지려면 의사의 처방전과 KBO의 사전승인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물론 당시 박명환의 양배추 사용에 대해 부정행위라고 손가락질한 이는 없었다. 상대팀인 한화조차 웃어 넘겼고, 오히려 야구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긴 해프닝으로 여겨졌다. 해외 토픽에서도 유머러스한 뉴스로 다뤄졌다. 그러나 투수의 투구에 대한 규정은 유독 엄격하게 해석되고 적용되는 게 사실이다. KIA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시절 근육통 때문에 목 뒤에 파스를 붙이고 등판했다가 퇴장당한 적도 있을 정도다. 결국 양배추는 이때부터 그라운드에서 공식적으로 퇴출(?)됐다. 박명환도 매 이닝을 마칠 때마다 새 언더셔츠로 갈아입거나 초콜릿을 먹어 무기력한 기분을 없애는 식으로 새로운 대안을 찾았다. [은]
월요경기 부활 앞과 뒤
심하면 일주일에 네 번 짐 싼다
무더위가 정점을 찍는 8월의 ‘지옥 레이스’에 또 하나의 변수가 추가됐다. 월요일 경기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KBO는 최근 10개 구단 단장이 모두 모인 실행위원회에서 월요일 경기 부활에 합의했다. 8월 8일부터 9월 6일까지 토·일요일 2연전 가운데 한 경기가 비로 열리지 못하게 되면, 바로 다음 월요일에 대체 편성하기로 결정했다. KBO는 “올 시즌 늘어난 우천 연기 경기와 포스트시즌, 그리고 국제대회인 프리미어12 참가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9월 15일 이후에 편성되는 우천 잔여경기 일정은 별도의 시행세칙을 정해 9월 초에 발표할 계획이다.
올해 KBO리그는 확실히 예년보다 시즌 초반에 우천 취소된 경기가 늘었다. 여전히 비로 더 많은 경기가 밀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게다가 올 시즌에는 팀당 144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SK, 두산, KIA처럼 우천 취소 경기를 포함한 미편성 경기가 가장 많은 팀들은 잔여경기 일정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위험이 있다. 이뿐만 아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프리미어12 대표팀이 당장 11월 6일에 출국해야 한다. 포스트시즌 일정까지 밀리게 되면 선수 소집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KBO와 각 구단 단장들은 누적된 잔여경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더블헤더보다는 월요일 경기가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앞으로 각 구단의 투수 운용과 체력 안배에 따라 후반기 판도에 변화가 생길 여지가 많아졌다. 선두권은 물론 5위 자리 전쟁까지 치열해서 더 그렇다. 그 와중에 본격적인 2연전 체제까지 시작됐으니, 선수들의 체력 소모는 더 커지게 생겼다. 아무리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장거리 이동이 피할 수 없는 숙제라 해도, 최악의 경우 일주일에 네 번이나 짐을 싸야 하는 2연전 릴레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결국 가면 갈수록 선수층이 얇은 팀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과연 지금까지보다 두 배로 힘겹고 숨 가쁜 8월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팀은 누가 될까.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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