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몰고 있는가?
현대의 위기를 인간성 상실의 시대라 한다. 물론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돈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인간성이 부족한 것이다.
평생을 쓰고도 남는 자가 있는가 하면, 달랑 몇 푼이 없어서 범죄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는 자도 있다.
또, 현대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 상대적인 불평등이 문제다.
그래서 식량이 남아서 썩혀 버리거나 바다에 버리는 자도 있고, 굶어 죽는 자도 있다.
그런데, 그 인간성은 누구의 잘못이고, 무엇의 실패인가?
우리는 종종, 학교의 문제나 혹은 군에서 벌어지는 사고, 그리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있어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거나, 그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성의 상실은 한마디로 교육의 실패이다.
그리고 그 교육의 실패는 가정의 실패가 아니라 그 사회시스템, 제도의 실패이다.
죽음의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양극화 사회에서 교육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실패한 학교교육 등 제도권은 그저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하부조직에 불과하다.
또한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처참한 환경은 단지 생계를 위해, 맞벌이를 하거나 자식과 함께할 시간도 허락치 않는다.
또, 이 삭막한 사회에서, 인간성 상실, 그것을 어떻게 개인이나 가정, 나아가 학교교육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겠는가?
인간성을 찾으려면 넋 나간 사람취급을 받거나 바보소리를 듣거나 루저가 되는 것이 뻔한 상황인데,
그러니 교육도 암기식 입시교육으로 얼룩져 있지 않는가? 그런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회든 도덕이나 윤리의 최후의 보루는 종교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모습은 또 어떤가?
돈의 양이나 권력 유무에 따라 신도의 위상이나 신앙의 급이 정해지고 있지는 않는가?
공무원, 관료조직의 문제도 그렇다.
어린시절부터 교육과 훈련으로 탄탄한 철학적 마인드를 쌓으며 민주주의에 대해 이해를 하고있다면,
관료조직이나 정치인도 현재와 같지 않을 것이다.
관료가 자신의 입신양명의 욕심을 채우거나 철밥통을 꿰차는 자리가 아니며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임과 동시에, 그 자리들을 철저한 직무분석과 직무설계를 통하여 구축한다면,
부정부패도 미연에 방지될 뿐 아니라, 단지 오래 근무했다거나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놀고 먹는 관료도 없을 것이다.
또, 정부를 구성하는 공무원들의 인식이 바뀌면 당연히 승자독식, 재벌독식과 부패한 사회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렇듯 전체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한 우리의 인간성 회복은 요원한 일이며,
경제나 정치의 진보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며, 엄청난 저항과 산고의 진통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도, 비열하고 음흉스럽게, 혹은 부화뇌동의 어리석음으로,
그나마 과거에는 학교교육 등의 제도권 교육의 실패로 언급되더니,
최근에는 아예 인간성의 상실을 개인이나 가정교육의 문제로 몰고 있는 경향이 있다.
글쓴이: 호루스의눈
출처: 부동산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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