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칼럼(20240204) 강춘근 목사(한국교회) 영화 <PLAN 75>
최근 2년전 일본에서 방영된 영화 ‘플랜75’가 오는 2월 7일 국내 영화관에 개봉된다. 이 영화는 75세 이상이 스스로 생사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된 가까운 미래의 일본을 무대로 그 제도에 농락당하는 사람들의 앞날을 그린 우리 시대의 진정성 있는 문제작 영화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며 관람자들의 영화를 마주하는 방식에도 적잖이 논쟁을 던져줄 것이라 짐작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저출생 고령화가 한층 진행된 가까운 장래의 일본에서 75세부터 생사의 선택권을 주는 제도 ‘플랜75’가 국회를 통과한다. 후속적으로 공무원들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장하는 역할을 하고,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좋다’는 공익 광고도 흘러나온다. 죽음을 국가에 신청하면 국가가 이를 시행해 주는 ‘플랜75’라는 이름의 제도가 처음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차츰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나아가 정부는 ‘플랜75’가 호조를 보이면 ‘플랜65’도 검토할 예정이라며,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런 사회를 방치하면 다음 순번은 ‘당신’이 될 것이란 경고를 하며…”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오는 2월 7일 개봉영화 ‘플랜 75’를 앞두고 하야카와 치에(早川千絵) 감독이 지난 달 29일 직접 대한민국을 찾았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 수상,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선재상 심사위원 참여 등 그간 한국과 많은 인연을 맺어왔지만, 이번 내한은 첫 장편 영화인 ‘플랜75’ 개봉을 앞둔 것이기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서울 광화문 씨네 큐브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플랜 75’는 2016년 사가미하라 장애인 살인사건이 영화의 방아쇠가 됐다고 제작 배경을 말한다. 그리고 “자기책임론을 꺼리는 일본사회가 사회적으로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 강하고 점점 무관용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혐오와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언제든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영화 제작을 결심했으며, 인간의 존엄성보다 경제와 생산성을 앞세우는 참혹함을 담았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2018년에 공개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10년(Ten years Kapan)의 단편을 장편영화한 것으로 가까운 미래의 SF 드라마로 초고령사회 위기를 다큐보다도 더 다큐같은 가상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내용이 잔잔하고 차분한 연출을 반영한 이유에 대해 “일본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얼핏 봤을 때는 상냥하고 친절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냉랭하고 관용이 없는 부분이 있다”며 “감정을 감추는 것이 일정의 미덕처럼 여겨지는 일본 문화의 특성을 반영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흑백 논리가 아닌, 그레이존에서 왔다 갔다하는 그런 복잡한 인간의 섬세함을 다룬 영화로 관람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여도 상관이 없고 어떤게 정답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어 그런 마음이나 감정의 복잡한 감정선들을 만드는 측에서도, 또 보는 측에서도 하나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감독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이 영화 속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2025년을 떠올리게 된다. 2025년은 약 800만 명에 이르는 단카이세대(1947~1949년생)의 절반 이상이 75세가 되는데, 이는 일본 국민의 20%가 ‘후기 고령자(75세 이상)’가 된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이를 ‘2025년 문제’라고 부른다. 대한민국도 2025년이면 노인인구가 20%를 넘어가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한편, 우리나라 고령화율과 상황은 더 심각하고 만만치 않다. 2025년이 되면 고령화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되고, 2045년에는 37%가 되고, 2065년까지 계속 증가해 42.5%까지 증가함으로써 일본의 최단기간, 최대속도의 고령화 기록을 깰 것으로 전망되며 브레이크 없이 초고령사회로 달려가고 있는 심각한 현실을 맞게 될 것이다.
모든 일에는 전조와 축적의 세월이 있다. 현재 일본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인 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복사판처럼 재현되고 있으며 향후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플랜75’는 노인들의 삶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되지만, 실상은 노인들을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씁쓸하기 그지없는 영화이다. 초고령사회가 현실로 다가와버린 대한민국! 우리 모두의 인간답고 존엄한 마지막 삶을 논하기 위해 노년층에 대한 인식과 그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중요성을 성찰하게 하며, 노인들과 함께하는 지지와 관심이 필요한 시대에 진지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영화 속의 풍경을 따라가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 모두가 각자도생 사회가 아닌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이 영화를 꼭 볼 수 있기를 권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