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스스로 집짓기
이연진(홍동면 금평리·7년차)
집터 찾아 삼만 리
나는 지금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집을 짓고 있다. 지난 2월 말부터 시작해 현재 내부 바닥 미장까지 마무리했으니 이제 완공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시골 생활을 결심한 것이 2008년이었으니 귀농을 결심하고 4년 만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셈이다.
사실 지난 시간을 되돌려보면 이렇게 집까지 짓게 된 것이 정말 꿈만 같다. 공주에서 남원으로, 다시 공주로, 그리고 또 홍성으로 오게 되기까지 1년에 한두 번씩 이삿짐을 싸면서 우리 가족에게 맞는 땅을 찾아 다녔다. 내 마음에 꼭 드는 땅을 만나는 것을 흔히들 결혼에 비유하는데 몇 년 동안 땅을 찾아다녀본 결과,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실 요즘 시골은 '시골'이 아니다. 각종 개발로 성한 산이 없고 마을도 빈집, 축사, 비닐하우스 등으로 예전의 아름다운 경관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시골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각자 최소한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진 최소한의 기준이란 남향집을 지을 수 있는 땅으로 송전탑, 축사, 대형 비닐하우스, 큰 도로가 주변에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홍성은 축사가 많은 동네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지금의 집터에서 축사가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나머지 기준에는 부합했으니 그래도 이만하면 집터를 잘 골랐다는 생각을 한다.
왜 홍성이었나?
우리 가족이 홍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홍성이 유기농업의 메카로 농촌임에도 여러 문화시설들이 밀집해 있고 아이들이 친구를 사귈 만한 환경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홍성에 진입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홍동으로 이사하려는 귀농 대기 수요가 많은 실정이라 2009년 당시 공주에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오기 어려웠다. 홍동 지역에 살고 있는 분들에게 부탁도 하고 부동산에도 매물이 나오면 알려 달라고 해 여러 곳을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마땅한 곳이 나오지 않아 '역시 홍동으로 이사하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포기 아닌 포기의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의 정착지 탐사는 우연한 기회에 끝났다. 벼룩시장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홍성에 나온 매물을 검색하던 도중 홍동면에 나온 주택 임대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다. 전세가 가능하냐는 말에 주인도 흔쾌히 동의를 했고 그날 저녁 아내, 나무(첫째 딸)와 홍성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날 계약서까지 썼다. 드디어 우리 가족이 홍동에 정착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홍성이라는 곳은 풀무학교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으로 70년대 말부터 유기 농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90년대 후반 귀농운동본부 생태귀농학교 출신의 귀농자들이 홍성에 모여들면서 열심히 농사지어서 먹고 사는 귀농의 전통을 만들어낸 곳이 바로 홍성이기도 하다. 그런 귀농 선배들을 홍성에 와서 직접 만나고 함께 농사지으면서 정말 홍성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아내의 측면에서 보자면 홍성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흔히 귀농하는 남자들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남자의 고집대로 했다가는 대부분의 아내들이 시골 생활을 견뎌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고 집들 간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아내 혼자 (혹은 아이들과 함께) 집에 고립되기가 쉽다. 그렇지만 홍성의 경우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인 데다 여러 가지 문화 활동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은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스스로 집짓기 위한 준비
우리 가족이 구입한 집터는 전체 3,500평의 땅을 일곱 명이 나누어 산 곳의 일부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땅을 사서 필지를 분할하는 문제부터 서로 상의할 일이 많았다. 200평에서 1,000평까지 필요로 하는 땅도 달랐고 선호하는 위치도 각양각색이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필지 분할을 마무리하고 함께 땅을 샀던 사람 중 네 명이 모여 집짓기 준비 모임을 시작했다. 함께 땅을 샀기 때문에 집터가 비교적 붙어 있었고 그래서 서로의 조망권을 보장하면서 집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네 명이 함께 집을 지어보자는 의미도 강했다.
토목설계, 에너지, 난방, 하수도, 정원, 텃밭, 편의시설, 상수도, 가옥 배치 등을 주제로 몇 차례 모임을 가졌지만 정말로 집을 직접 짓고자 하는 의지에서는 그야말로 사인사색이었다. 그러다보니 모임은 지지부진해졌고 직접 집을 지으려는 생각이 점점 희박해져가고 있을 때 함께 땅을 샀던 귀농 선배 한 분이 함께 지어보자고 강하게 권유를 했고 그 힘을 받아 둘이서 다시 집짓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 때가 작년 여름이다.
우선,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사실 홍성에 오기 전에는 흙벽돌 집을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었고 원주의 ‘흙처럼 아쉬람’ 교육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짓는 것이 더 생태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향을 스트로베일하우스로 바꾸게 되었다. 현재 품앗이로 집을 함께 짓는 귀농 선배와 함께 서산, 연기, 산청, 화성, 진안, 금산, 당진, 아산 등지의 스트로베일하우스를 보러 다니면서 현장 감각을 익히고 먼저 집을 지은 분들로부터 소중한 경험도 들었다.
지난 가을에는 선배와 함께 각 공정별 세부 계획을 논의하기도 했다. 기초에서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공정에서 쓰일 자재와 공법을 상의했다. 선배는 직접 스트로베일하우스 워크샵에 참여해서 열심히 공부도 해왔다. 하지만 두 채를 달랑 둘이서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스트로베일하우스는 흙일이 많아 많은 인원이 필요했다. 선배와 나는 집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으니 아무리 스스로 짓는다고 하여도 전문 목수도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홍동에서 농사도 짓고 자전거 수리도 하던 선배의 동생이 작년부터 갑자기 팔도를 떠돌며 집짓기에 뛰어들어 목수 1년차를 보내더니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할 목수도 소개시켜 준 것이다. 4명의 드림팀을 완성시킨 우리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설계를 시작하다
집 설계를 한창 진행 중일 때 하루에도 몇 채씩 집을 지었다 부수었다를 반복했다. 이런 저런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우리 부부는 주방을 보통 집들과 달리 남쪽으로 놓기로 했고 그러다 보니 집이 동서로 길어지는 형태가 되었다. 외부의 보일러실을 포함해 총 25평 규모이며, 보일러실 내부에 생태 화장실을 함께 만들 예정이다.
<집 설계도>
그런데 설계는 건축 설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 내부 설계보다 오히려 전체적인 배치 및 조망을 다루는 토목 설계가 더 중요하다. 특히 전체 부지에 걸쳐 빗물 관리가 잘 되도록 경사나 도로를 배치해야 한다. 우리 집터의 경우 뒤쪽 소나무 숲이 북쪽이라 남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임야와 밭을 절개해서 집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진입로의 위치가 낮아 이 부분을 복토하고 돌로 석축을 쌓아 무너지지 않게 토목공사를 지난 12월 추운 날씨 속에 진행했다.
<소나무 앞쪽으로 수숫대가 남아 있는 부분이 현재의 집터다>
<진입로 석축 공사>
생석회 피우기
흙집을 짓는다면 기초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또 하나의 할 일이 있다. 바로 생석회를 피우는 일이다. 3개월 이상 수화시키면 독성이 많이 줄어든다고 해서 일치감치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집을 지을 곳은 아직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물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큰 물통을 빌려 집에서 직접 떠나르면서 석회를 피웠다.
석회는 보통 드럼통에 피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드럼통을 어디서 구하나 고민하다 집 근처 고물상에 들렀는데 마침 양질의 드럼통을 보관하고 있었다. 여기서 양질의 드럼통이란 내부에 페인트나 기름기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런 것들이 있으면 불로 태워 없애거나 그라인더로 갈아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드럼통에 피운 생석회>
이번 수화 작업은 이웃해서 집을 지을 세 집이 함께 작업을 했다. 그런데 구해온 드럼통으로는 3톤 정도밖에 작업을 하지 못했다. 아직 남은 석회는 5톤이나 되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포크레인 기사분의 조언을 따라 드럼통이 아닌 땅에 석회를 피우기로 했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고 거기에 석회 4톤을 먼저 붓고 난 후 물을 채웠다. 곳곳에서 격렬한 폭발음이 들렸으나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4톤이나 되는 양이다보니 골고루 저어줄 수가 없어서 며칠 후 포크레인의 도움을 다시 한 번 받았다.
<땅에 직접 피운 생석회>
홍동 스트로베일하우스 건축 개요
이번 집짓기는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어울려 4명이 함께 하고 있다. 아래 건축 개요는 나와 귀농 선배 둘(그러니까 시공팀의 비전문가 둘)이서 지난 가을 함께 논의했던 내용들이다. 실제 시공 과정에서 변화된 내용도 있지만 애초 계획 그대로를 일단 정리해 보았다.
1) 기초 :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많은 주변의 목수분들이 가정집은 콘크리트를 쓸 필요가 없다는 조언을 많이 해주어서 용기를 얻었다. 일단 기초 방식은 줄기초이다. 외벽이 들어설 자리를 깊이 30~40cm, 폭 60cm 정도로 파고 이 부분을 파쇄자갈로 지표 부근까지 채운다. 그리고 자갈 위에 폭 50cm짜리 양파망을 올린다. 양파망에는 흙(90%)과 소석회(10%)를 섞어 담는다. 기초의 높이는 58cm인데 아래서부터 살펴보면 맨땅(기초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10cm 정도 더 파낼 예정이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높이) 10cm, 양파망 40cm, 밑깔도리 8cm이다.
양파망의 수직 결합은 12mm 철근을 1미터 간격으로 박아 보강을 한다. 양파망이 완전히 굳은 다음 밑깔도리와의 결합은 앵커볼트로 한다. 줄기초이기 때문에 내부(양파망+밑깔도리의 높이 만큼인 48cm)를 별도의 재료들로 메워야 한다. 이것도 아래부터 보면 흙 되메우기 19cm, 자갈/강회다짐(자갈 위를 강회다짐으로 평탄화하는 방식) 10cm, 보온포/비닐/스티로폼 11cm, 열반사재/철망/콩자갈/난방배관 5cm, 마감 미장 3cm이다. 내벽은 자갈을 깔고 나서 그 위에 양파망을 두 줄 쌓고 밑깔도리를 돌릴 예정이다.
2) 골조 : 경량목구조 방식으로 밑깔도리를 따라 안팎으로 사각볏짚 폭인 80cm 간격으로 2*4를 세운다. 2*4 골조와 밑깔도리는 못으로 고정한다. 물론 이 때 창 가틀, 문 가틀 작업이 함께 이루어진다. 내벽은 2*4를 세우고 이 사이를 부직포와 대나무 쫄대로 막아 단열 및 흡음재인 왕겨훈탄을 채워 넣는다. 골조에 쓰이는 2*4의 길이가 2,440mm인데 난방 효율을 높이기 위해 2,100mm 정도로 짧게 잘라서 사용할 생각이다. 골조 위에 위깔도리가 올라가면 골조가 마무리된다.
3) 지붕 : 서까래(2*8)를 마룻대와 연결하여 60cm 간격으로 세운다. 서까래 아래에 부직포와 합판을 대고 그 위에 단열재(대팻밥+소석회)를 깐다. 단열재 위에 다시 합판을 덮으면서 합판 밑으로 벤트를 집어넣는다. 합판 위에 방수시트를 깔고 그 위에 다시 상을 건다. 상 위에 컬러강판을 얹으면 지붕 작업이 마무리된다. 천장은 위깔도리 위에 장선을 걸고 밑에 부직포와 루바로 마감한다. 부직포 위에는 왕겨훈탄을 깔아 단열과 흡음재로 사용한다. 다락은 만들지 않는다.
4) 벽체 : 사각볏짚을 쌓는다.
5) 미장 : 벽체를 쌓은 후 1차 미장을 하고 이후 철망과 대나무 쫄대를 대고 다시 2차, 3차 미장까지 진행한다.
6) 창문 : 창은 3중 유리 시스템 창호를 사용하고 문은 저렴한 것으로 한다.
7) 인테리어 : 붙박이장, 싱크대, 수납장 등을 나무로 짠다.
8) 화장실 : 물을 많이 쓰는 공간이라 벽체와 바닥 방수가 걱정이다. 시멘트 벽돌로 쌓아야 할지 또 다른 방법이 있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양파망 기초
기초는 집의 근간을 이루는 그야말로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 그런 이유로 요새 지어지는 대부분의 집이 콘크리트 타설 기초 방식을 채택한다. 콘크리트 기초가 다른 방식에 비해 튼튼하기는 하겠지만 1층 가정집 정도에 굳이 그런 비싼 방식의 기초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콘크리트가 아닌 다른 방식의 기초를 생각했던 이유가 경제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집짓기라면 가능한 공정을 자기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나를 콘크리트의 대체물을 찾게 만든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양파망 기초는 기다란 양파망에 소석회와 섞은 흙을 채우면서 나가는데 양파망 잡고 있는 사람이나 삽질하는 사람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흙을 다 채운 뒤에는 쇠로 만든 공이를 이용해 판판하게 다지고 조리개로 물을 흠뻑 뿌려준다. 줄기초에 필요한 높이인 50cm를 다 쌓은 후에 철근을 박아 넣어 고정시켜준다. 총 3일에 걸쳐 양파망 기초를 완성할 수 있었다.
<양파망 기초-1>
<양파망 기초-2>
<양파망 기초-3>
양파망 기초를 일주일 정도 양생시킨 후 골조 작업을 위해 방수시트 위에 방부목을 깔고 앵커볼트를 심어 양파망 기초와 연결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콘크리트가 아니라 양파망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수평을 잡기가 어려웠다. 다른 한 가지 문제는 양파망의 강도가 앵커볼트를 꽉 잡아줄 만큼 나오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평이야 어려워도 맞추면 되지만 기초의 강도는 집의 안정과 관련된 문제라 조금은 심각하게 여겨졌다. 날씨가 추워서였을까? 아니면 시멘트를 섞지 않고 흙과 석회만 넣어서일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고민을 했다.
급기야 국내에 흙부대 건축을 도입한 분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흙을 주재료로 하는 기초에서 빠른 시간 내에 콘크리트만큼의 강도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너무 염려할 것은 아니고 수평만 잘 잡아 진행하면 된다는 의견을 듣고서야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양파망 기초-4>
한편, 지하의 차가운 냉기가 양파망을 통해 방수시트에 결로 현상을 일으켜 방바닥 모서리나 사각 볏짚에 습기가 찰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따뜻한 열을 지니고 있는 볏짚과 지하의 냉기를 그래도 가져오는 양파망 사이에는 분명 결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 양파망과 볏짚 사이에 아래부터 비닐, 방수시트, 방부목을 시공했다. 하지만 습기는 바닥이 아닌 외벽에서도 침투가 가능한 만큼 외벽 미장에 석회 사용량을 늘리는 등의 방안도 고려되어야 한다.
골조
스트로베일하우스의 뼈대는 여러 가지 방식이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가장 보편적이고 저렴한 공법인 2*4 공법을 선택했다. 2*4는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약해 보였지만 골조 사이에 볏단이 들어가고 여기에 미장까지 하게 되면 튼튼한 구조물이 형성된다. 골조를 세울 때 소위 말하는 층고가 결정된다. 나는 8자(2,440mm) 짜리 나무를 자르지 않고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위, 아래로 2*4를 세우고 그 사이에 볏단과 창, 문 등의 크기를 고려해서 개구부를 만들어 가면서 골조를 짠다. 골조 윗부분은 OSB 합판과 2*4로 다시 한 번 윗깔도리 작업을 하는데, 이는 골조를 잡아줌과 동시에 서까래를 받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골조 1 - 2*4 공법으로 올린 골조>
벽체 골조가 완성되고 나면 장선과 마룻대를 설치한다. 장선은 위로는 서까래가 처지지 않게 고정하고 아래로는 루바 등의 천장 마감재를 댈 자리가 되어준다. 집의 남북 길이가 짧은 편이라 20자 (6.1M) 짜리 나무 하나를 자르지 않고 올렸다. 장선 사이에는 장선 폭만큼 나무를 보강해주는데 이를 보막이라 한다. 장선이 처지는 것을 막아주고 차음 역할을 한다. 양쪽에서 올라오는 서까래를 고정하는 마룻대는 집의 대들도 역할을 한다.
<골조 2 - 장선과 마룻대>
마룻대를 기준으로 서까래를 거는데 2*8 목재를 사용해서 약 60cm 간격으로 세웠다. 서까래를 마무리하고 서까래 위, 아래로 OSB합판을 붙이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좌우 합판을 마룻대와 밀착시키지 않고 약간의 틈을 두었다. 이것은 중천장으로 들어간 바람이 이 공간으로 빠져나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중천장에 바람길을 두지 않고 꽉 밀폐를 해버리면 단열이 비교적 잘되는 내부와 단열이 되지 않는 외부의 사이, 즉 벽체 윗부분으로 결로 현상이 심하게 나타날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다락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중천장으로 과감히 바람을 들이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방편으로 중천장의 단열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골조 3- 중천장 OSB 합판 작업>
서까래 밑으로 합판 작업이 끝나고 나면 지붕 단열재를 설치한다. 지붕 단열재로는 대팻밥을 넣고 벌레 방지 목적으로 약간의 소석회를 뿌려 주었다. 대팻밥 위에 은박매트를 고정한 이유는 대팻밥이 지붕 경사로 인해 흘러내리는 것을 막고 지붕의 환기구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다. 뭐든 밀폐되면 결로에 대처하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은박매트 위로는 다시 합판 마감을 하고 그 위로는 방수시트와 컬러강판 지붕이 올라간다. 지붕 단열재로 대팻밥을 선택한 이유는 돈을 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재료였다는 점과 생태적인 단열재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골조 4 - 지붕 단열재로 사용된 대팻밥>
지붕
스트로베일하우스는 뭐니뭐니 해도 방수가 우선이라 지붕재로 방수에 강한 컬러강판을 선택했다. 강판 지붕 작업을 위해 우선 방수시트 위에 합판과 각재를 엇갈려 대주었다. 합판은 방수시트와 지붕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주어 물기를 배출해주고 바람을 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컬러강판은 각재에 못을 박아 고정한다. 지붕재로서 컬러강판의 장점은 방수 기능이 좋다는 점이다. 하지만 단열, 방음에서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폼판넬을 주문했다. 폼판넬은 강판 아랫면에 얇은 폴리에틸렌(PE)으로 코팅을 추가한 것으로 단열과 방음 성능을 보완한 강판이다.
<지붕 1 - 컬러강판 지붕을 위한 상 설치>
또한 빗물이 미장 벽에 그대로 들이치지 못하게 하면서 햇빛을 집안으로 들이기 위해 컬러강판 끝부분을 유리로 마감했다. 인위적인 난방을 최소화하기 위해 햇빛을 최대한 실내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처마의 길이와 각도를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빗물까지 신경써야 하니 이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투명 재질의 처마가 필요하다.
<지붕 2 - 컬러강판 지붕과 유리 시공>
벽체
골조와 지붕 공사가 마무리되고 벽체 작업을 진행했다. 스트로베일하우스의 벽체는 2*4로 짜놓은 골조 사이에 사각 볏단을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볏단을 그냥 올려놓으면 안 되고 지붕의 하중을 충분히 받도록 위에서 꾹꾹 눌러가면서 빈틈없이 잘 쌓아야 한다. 볏단을 다 쌓고 나면 골조 안팎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예취기를 이용해 잘라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볏짚의 압축력이 강한 상태에서 원하는 폭으로 잘라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결국 골조보다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상태에서 벽체 작업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볏단으로 쌓아올린 벽체>
미장
흙미장은 스트로베일하우스 공정에서 가장 어렵고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다. 미장의 횟수도 여러 번이다. 쌓아놓은 볏짚 상태에 황토만을 가지고 1차 미장을 하고, 그 미장이 어느 정도 굳었을 때 대나무 쫄대를 대고 다시 한 번 황토 미장을 했다. 여기에 석회와 모래를 1:2의 비율로 섞고 여기에 황마를 약간 추가하여 본 미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석회에 물만 섞어 마감 미장을 했다. 모두 네 차례에 걸친 고된 여정이었다.
<미장 1 - 가족, 친지, 이웃들과 함께 한 1차 미장>
벽체 바깥 부분은 볏단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대나무 쫄대를 거의 대지 못했다. 대신 닭장 철망을 사용해 1차와 2차 미장의 결합도를 높였다. 철망은 외벽으로 쥐가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창틀 주변과 같이 움푹움푹 들어간 부분은 양파망에 볏짚을 넣어 미장 면을 맞추는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미장 2-철망을 사용한 외벽 2차 미장>
본 미장에 황토를 섞지 않고 석회만 사용한 이유는 석회의 발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흙집의 특성상 외벽에 물기가 최대한 적게 흡수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봄에는 내부처럼 석회페인트를 발라 발수 능력을 더 향상시킬 계획이다.
<미장 3 - 석회로 마감한 외벽 본 미장>
11. 내부 인테리어
기초를 하고 골조를 세우고 지붕을 얹었다고 집짓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내부 인테리어가 남아있는데 이제부터 돈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공정만 남은 셈이다. 실제 살면서 매일 보게 될 곳들이라 아무래도 돈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1) 내벽 벽체
내벽 벽체는 2*4 골조에 부직포를 대고 그 위에 대나무 쫄대를 고정했다. 대나무 쫄대는 부직포와 흙미장을 일체화하기 위한 장치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부직포와 쫄대를 밑에서부터 대가면서 왕겨숯을 부었다. 왕겨숯은 중천장 단열에도 사용했는데 내벽에 사용한 이유는 원적외선 방출과 차음성을 고려한 것이다.
<부직포와 대나무 쫄대가 대어진 내벽 벽체>
중천장
중천장 마감은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자금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원목 재질인 향목루바를 사용했다. 그나마 향목루바는 삼목루바와 함께 저렴한 편에 속하는 중천장 원목 마감재이다. 물을 많이 쓰는 화장실 중천장의 경우는 향목루바 대신 일본산 히노끼루바를 썼다. 참고로, 중천장을 만들지 않고 서까래(특히 원목 동근 서까래를 사용하는 경우)를 노출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이러한 집의 구조는 미적인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단열에서 많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LED 조명과 어우러진 향목루바 중천장>
3) 가구 만들기
흙집을 지어놓고 일반 가구를 들여놓기는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터라 내침 김에 가구까지 직접 짜기로 했다. 주방 싱크대는 아내가 많이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특히 아내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왼편의 아일랜드 식탁은 물푸레 집성목으로, 나머지 두 면은 스테인레스로 상판을 사용했다. 아래 뼈대는 스프러스 집성목이고 싱크대 문은 1*6/1*4 구조재를 겹쳐서 만들었다. 기타 붙박이장, 신발장, 다용도실 선반은 싱크대에 비해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작업들이었다. 가구에 사용하는 나무들이 원목이나 집성목이기 때문에 재료비가 만만치 않게 들었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환경호르몬이 덜 배출된다는 장점도 있다.
<주방 싱크대>
<갤러리문으로 멋을 낸 붙박이장>
아래 이층침대는 이사 온 이후 추가로 제작했다. 벽체가 볏단이라 단열은 잘 되는데 아무래도 바닥이 차가워서 생활하기 불편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딸 나무가 2층 침대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아이들 침대는 2층 형태로 만들었다. 2*6를 기둥으로 사용했고 1*12를 침대 상판으로 썼다.
<새로 만든 이층침대에서 포즈를 취한 큰 딸 아이>
바닥 미장
집을 다 짓고 새집으로 이사를 온 이후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바닥 미장을 꼽았다. 그만큼 흙을 가지고 갈라지지 않는 단단한 바닥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흙집을 지으면서도 바닥 미장만큼은 시멘트로 하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시멘트는 쓰지 말자는 뚝심 하나로 황토, 석회, 모래, 황마만을 배합(1:1:2:한 움큼)하여 바닥미장을 진행했다. 바닥미장 마감선 바로 밑에 화이버메쉬라는 자재를 깔아서 흙의 갈라지려는 성질을 완화시키기도 하는데 이 역시 유리섬유 재질이라 쓰지 않았다.
결과는 실패였다. 바닥이 말라가면서 조금씩 보이던 금들이 이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1차 위에 바닥미장을 한 차례 더 했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현재 갈라진 흙바닥에 아마인유를 수차례 바른 후 생활하고 있다.
<바닥미장이 갈라진 틈새에 황토와 모래를 섞어 채워 넣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바닥이 갈라진 원인은 애초에 시멘트를 쓰지 않았거나 메쉬를 보조자재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흙미장 아랫면에 깔려있는 콩자갈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엑셀 난방배관의 축열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 콩자갈을 깔고 다졌는데 이것이 흙미장을 하면서 들뜬 부분이 많이 생겼고 나중에 방바닥을 발로 디뎠을 때 갈라지는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난방배관 축열층에 콩자갈 대신 입자가 작은 석분을 깔면 문제가 해결될까? 분명 흙바닥 갈라지는 문제는 많이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석분은 엑셀의 이완수축 작용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줄 수가 없으니 또 다른 하자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이래저래 어려운 바닥 미장이다.
부속건물 짓기
집 뒤편에 보일러실을 붙여 지었는데 목재 사용을 줄이기 위해 흙부대 방식으로 진행했다. 우선 바닥에 비닐과 은박매트를 깔고 그 위로 양파망을 쌓아 올렸다. 양파망에는 흙과 석회를 섞어 넣었으며 양파망을 한 단 쌓고는 공이로 평평하게 다지기를 반복했다.
<흙부대 공법으로 지은 보일러실>
흙부대 보일러실에는 보일러만 있는 게 아니다. 생태 뒷간을 보일러실에 만들었다. 시중에서 구입한 변기 시트와 구조목으로 변기 의자를 만들고 타일본드 통과 냄비로 대소변을 받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오줌을 받는 냄비는 매번 볼일을 보고 별도의 오줌통으로 옮겨 놓고 똥을 받는 본드통은 어느 정도 차면 외부 거름간으로 보내면서 사용하고 있다.
<구조목과 재활용품으로 멋을 낸 뒷간 변기>
옆집과의 거리 때문에 서쪽은 박공 처마를 길게 내지를 못해 고민하다 구조목과 삼목사이딩으로 처마를 연장했다. 흙집은 아무래도 물이 제일 무섭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삼목 베벨사이딩으로 멋을 낸 서쪽 처마>
14. 태양열 난방
시골 단독주택의 최대 고민은 바로 겨울나기이다. 아파트처럼 상호 단열이 되지 않다보니 북풍한설을 혼자 오롯이 받아 안아야 하기 때문에 시골집의 단열은 무엇보다 중요한 항목이다. 건축 공법을 스트로베일하우스로 택한 이유도 바로 볏짚의 단열 성능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단열 성능이 좋다고 하더라고 난방 시설 없이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주택보다야 덜하겠지만 역시 화석 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스트로베일하우스와 태양열 난방을 결합해 보기로 했다. 태양열 난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태양열로 물을 데우는 집열부, 데워진 물을 축열하는 축열부, 집열부와 축열부를 연결하는 제어부가 그것이다. 현재 태양열 난방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축열부이다. 주로 온수탱크를 사용해서 축열을 하게 되는데 일단 그 용량이 충분하지 않고 충분한 용량으로 구비하더라도 열손실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사실 그런 이유로 태양열 난방이 효율이 높지 않고 그래서 고민을 하던 차에 이중코일이라는 새로운 축열 방법을 만났다. 이중코일 축열은 난방 배관을 두 번 까는 방식인데, 보통의 경우처럼 방바닥 바로 밑에 있는 엑셀관은 기름보일러와 연결되어 있고, 이 배관 밑 10cm 정도 밑에 엑셀을 한 번 더 깔아서 태양열로 데운 물을 방바닥에 축열시키는 방법이 바로 이중코일 방식이다. 전체적으로 방바닥에서 약 15cm의 축열층이 형성(아래부터 석분 10cm + 콩자갈 3cm + 미장 2cm)되는데 이를 바닥 면적 60㎡과 곱하면 9㎥이라는 부피값을 갖게 된다. 즉, 20평 정도의 집을 난방하려면 이에 준하는 축열탱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엑셀 배관과 콩자갈 단열층>
다음으로 집열부다. 온수용 1조와 난방용 7조를 설치했다. 집열부는 지붕에 하거나 아니면 구조물을 세워 설치할 수도 있지만 집터 앞 밭에 설치했다. 집열조 하나가 약 3평의 난방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해서 총 7개를 설치했다.
<태양열 진공관>
<태양열로 데운 물을 내부로 유입시키는 주름관>
마지막으로 제어부. 아래 사진에서 맨 위 3.9도는 현재 냉수 온도를 나타낸다. 온도 설정을 해놓아서 그 온도 이하로 내려가면 열선이 작동되어 동파를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그 아래는 차온계라는 것으로 11도는 태양열로 데워진 바깥 물의 온도이고 21도는 방 안 온도이다. 방 안 온도보다 어느 정도 높을 때 순환모터를 가동하여 밖의 데워진 물을 안으로 끌어 들이는 방식이다.
<태양열 난방 제어시스템>
결론적으로 스트로베일하우스와 태양열 난방의 결합은 대성공이었다. 해가 떠 있는 낮 동안 데워진 물이 축열층을 통해 저녁부터 실내 온도를 올려주고 이것이 스트로베일하우스의 단열 능력으로 아침까지 이어지는 방식이 가능했다. 기록적인 추위를 기록한 올 겨울이었지만 태양열 난방과 스트로베일하우스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지낼 수 있었다. 10월 중순에 이사 와서 지금까지 기름 한 드럼 정도를 사용했는데 이 중 많은 부분도 공기보다는 바닥이 차가워서 아침에 일어나 기름보일러를 가동시킨 때문이었다.
햇빛이 없는 날 사용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태양열 난방을 적극 채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단열이 잘 되는 집이라면 흐린 날이더라도 그 전날 데워진 공기로 충분히 난방이 가능하다. 우리집도 2월 8일 이후로 기름보일러를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이 밤 12시인데 거실 온도가 25.9도까지 올라 더위를 느낄 정도다. 요새 날씨가 따뜻하긴 하지만 우수한 단열 능력과 태양열 난방이 없이는 불가능한 수치일 것이다.
집짓기 결산
많은 분들이 집짓기에 들어간 비용을 궁금해 할 것이다. 나 역시 집짓기 전에는 그랬다. 그런데 짓고 나니 화장실 다녀온 사람마냥 생각이 달라진다. 남들이 얼마에 집지었다고 하는 것은 그냥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들어가는 자재와 인건비 지출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공개하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항목별로 적어놓은 비용 목록이 컴퓨터와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체 합계만 정확히 기억이 난다
집짓는 비용으로 총 6,500만 원을 썼다. 자료가 사라져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세부 비용도 기억을 더듬어보려고 한다.
• 설계(토목설계, 건축설계) 및 인허가 : 400만 원
• 토목공사 (포크레인, 상수도) : 600만 원
• 기초 (양파망기초) : 200만 원
• 목재 (골조용, 가구용, 부속건물용) : 1,350만 원
• 목수 (식비) : 1,200만 원
• 지붕 : 200만 원
• 전기 (LED전등) : 300만 원
• 창문 (3중유리 시스템창호) : 500만 원
• 태양열 설비 (기름보일러) : 800만 원
• 미장재료 (대나무쫄대, 석회, 황토, 모래, 황마, 콩자갈, 철망 등) : 300만 원
• 배관재료 (정화조, PVC배관) : 100만 원
• 타일/도기 : 100만 원
• 왕겨숯 : 150만 원
• 사각볏단 : 200만 원
• 유리처마 : 100만 원
* p.s
집짓는 일은 분명 돈과의 싸움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 간의 일이란 점이다. 흔히들 집을 짓고 나서 크고 작은 문제들로 집을 지어준 목수와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데 이번 집짓기는 따뜻한 집과 함께 사람도 남기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집짓기를 함께 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자그마한 집짓기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 8명으로 만들어진 ‘얼렁뚝딱 집짓기협동조합’은 3월부터 흙부대 공법으로 집짓기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집과 함께 사람도 남기는 협동조합의 의미 있는 집짓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