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돈 ‘펑펑’, 닷컴 거품 되풀이되나?
샌프란시스코의 부동산 중개업자 제프리 뮐러는 IT 창업가들이 비용을 절감하기를 바라고 있다.
뮐러는 “직원이 4명인 스타트업이 앞으로 성장하기 위해 900평짜리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한다”면서, “그러면 나는 90평이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답한다”고 설명했다.
“보통 그런 고객들은 나에게 화를 낸다”고 그는 덧붙였다. 뮐러는 닷컴 거품이 붕괴되는 동안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 때문에 무너져 내린 고객들을 여럿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처럼 스타트업이 임대료에 돈을 쏟아부는 추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벤처 자금이 몰리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타트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대료가 ‘닷컴 붐’ 시절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들은 인재 영입, 마케팅, 오피스 디자인에 있어 경쟁사보다 더 거액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15년 전 닷컴 거품 시절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수익을 내지 못하던 기업들도 지나친 과욕을 부리며 사업을 확장했고, 시장 상황이 급변하자 붕괴됐었다.
최근 몇 주 사이에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이같은 상황에 대해 목청 높여 우려를 나타냈다.
‘벤치마크’의 파트너 빌 걸리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1999년 이후보다 더 빨리 자본을 소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앤더슨 호로위츠’의 마크 앤더슨은 ‘우려’라는 단어가 담긴 일련의 트윗을 날리며 창업가들의 과도한 지출을 경고했다.
그러나 스타트업에 거액을 투자하는 벤처캐피털도 이같은 문제에 한몫하고 있다. 저금리와 더불어 10년만에 나타난 ‘대박’ 투자 수익은 연기금과 대학 기부금 단체로 하여금 벤처캐피털에 자금을 투자하게끔 유인하고 있다.
한편, ‘엔젤리스트’와 같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는 창업가가 초기 자금을 보다 쉽게 유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뮤추얼펀드와 헤지펀드가 추후 투자 단계에서 물밀듯 밀려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다우존스 벤처소스에 따르면 올해 미국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은 IT 기업 84개는 개별 투자금 유치 활동을 통해 최소 5,000만 달러를 조달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금액이다. 3차 또는 그 이상의 자금 유치 활동에 나선 미국 기업들은 올해 상반기 동안 155억9,000만 달러를 모금해, 사상 최대 연간 투자금을 유치했던 지난 2000년의 기록을 무난히 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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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같은 투자금 유치 비율은 앞으로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올 상반기에 벤처 업체들이 전년에 비해 투자금을 53%나 더 조달했다고 벤처소스는 전했다. 그러나 금리가 인상되거나 급작스럽게 증시 한파가 닥치면 그러한 추세에 급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한편, 두둑한 자금을 손에 쥔 스타트업들은 임대료, 직원 급여, 마케팅비, 홍보비, 인테리어 디자인 등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인건비 등의 비용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IT 구인구직 사이트 ‘다이스’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약 12만6,000달러로, 2012년보다 20% 올랐다. 최상위 기술직의 연봉은 그의 두 배가 넘을 수도 있다.
드롭박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3건의 장기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저스틴 캔은 ‘이그젝’(Exec)이라는 개인 비서 서비스를 창업해 올해 약 1,000만 달러에 매각했다. 그는 첫 자금 유치 활동을 통해 340만 달러를 조달했었다. 캔은 스타트업이 높은 연봉을 주는 이유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2006년 창업한 ‘저스틴TV’는 첫 투자금 모금 활동을 통해 30만 달러를 유치하는데 그친 바 있다.
부동산 업체 ‘캐시디 털리’는 샌프란시스코의 트렌디한 ‘사우스 오브 마켓’(SoMa) 지역의 상업용 부동산 임대료가 올 3분기 기준으로 평방 피트당 약 56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뉴스용 모바일 앱 업체 ‘시르카 1605’를 공동 창업한 매트 걸리건 CEO는 사우스 오브 마켓에 소재한 자신의 사무실( 3,000평방 피트) 임대료가 2년 전 입주했을 때에 비해 약 두 배로 뛰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직원 12명이 “인생의 3분의 1 가까운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에 임대료와 개조 비용이 ‘불필요한 지출’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중개업자 뮐러는 소규모 팀으로 꾸려진 스타트업이 엄청나게 넓은 공간을 구하고 있으며,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고자 하는 점이 더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은 이제 5~7년 기한으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예전에는 임대 기한이 2년이었다. 또 새로운 건물의 경우, 10년 계약 기한을 밀어붙이는 임대주가 늘어나고 있다. 재정 상황이 악화될 경우, 그러한 장기 계약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웹 스토리지 업체 드롭박스는 올해 8억5,0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3건의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모두 10년이 넘는 장기 계약이었다. 올 여름 12억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한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 테크놀로지스’는 최근 미션베이 지역에 본사를 신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 본사의 규모는 50만 평방 피트(4만5,000m²)에 이르고, 임대 기간은 15년이다.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소재 벤처 인큐베이터 ‘Y 콤비네이터’의 샘 알트먼 사장은 ‘비대한 스타트업’이 초래하는 ‘문화적 위험’에 대해 더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창업가인 알트먼은 “나는 라면와 스타벅스 커피 아이스크림으로 끼니를 때웠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끔찍하기는 했지만, 그처럼 배고픈 시절을 통해 스타트업을 성공시키는데 필요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몇 개월 전 신형 포르쉐 SUV를 모는 한 창업가를 만났다고 전했다. 그 창업가가 세운 스타트업은 그보다 한 주 전 초기 투자금 유치 활동을 통해 1,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알트먼은 “자신이 회사 직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그에게 물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