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기장 총회교육원 사순절 묵상집
3월 9일(목) 사순절 14일째
사랑의 위로
빌립보서 2:1
찬송 : 293장 / 주의 사랑 비칠 때에 말씀 :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자비가 있거든, (새번역, 1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개역개정, 1절) |
위로를 말할 때는 ‘사랑의’(아가패스) 라는 소유격이 붙습니다. 그냥 위로가 아니라 사랑의 위로입니다. 그것도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신적 사랑, 희생적 사랑,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 이전에 그 어떤 철학자도신의 사랑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신이 인간을 사랑하나 인간이 신을 사랑해야지!'라고 생각하던 시대였습니다. 지금이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말입니다. 그리스도교가 가르침을 전했을 당시 이러한 가르침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플라톤 철학의 사랑은 에로스와 필리아입니다. 에로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육체적 사랑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love of beauty)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순간입니다. 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좀 더 나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용맹, 신뢰, 의리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플라톤이 말한 영원한 아름다움은 '이데아'(이상적 세계 혹은 이상적 사고)인데 그는 상당히 추상적인 데까지 에로스를 이끕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필리아는 우정, 우애로 번역됩니다. 이것도 피조물을 넘어서는 사랑은 아닙니다. 에로스와 필리아의 사랑은 모두 인간으로부터 시작하고 인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사랑도 고귀합니다. 아름다움과 높은 가치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과 아가페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가페는 멸시당하고 보잘것없는 것까지 사랑합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아가페는 신적 사랑, 창조주의 사랑인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자기 부정의 사랑입니다. 에로스와 필리아가 '그러므로'의 합리적 사랑이라면 아가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역설적 사랑인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9~12) 이 사랑은 자기를 부정하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자기를 고수하는 자기중심의 그 어떤 사랑도 참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공급자 방식이 아니라 수급자 방식이어야 합니다. 폭력과 학대를 하면서도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독선이며, 폭력에 길들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바울은 위로를 말할 때 사랑의 위로를 말합니다. 사실 위로는 참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건네는 위로가 자칫 자기중심적인 위로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위로가 사랑의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조건 없이 내어주는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 아가페 사랑이 밑거름이 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 : 사랑마저 계산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조건 없이 주시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은 어리석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 어리석은 십자가의 사랑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 하옵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여 주시고, 조건 없이 구원해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오늘도 살아갑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 오직 십자가에 있음을 묵상하며, 십자가 구원의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의 사랑이 내안에새로운 마음으로 젓어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새벽 나의 마음에 새로운 마음과 새영으로 나를 만져주심에 하나님의 참사랑을 더욱 경험할수 있었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