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가부장제
세 가지 원칙 중 두 번째는 가부장제다. 두 번째인 이유는 두 번째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모든 나라는, 이름값을 할 만한 지위로 발전하는 초기 단계에서, 어떤 형태의 가부장적 정부 아래서 살아 왔을 것이다. 그러한 역할은 각자에게 전체적으로 똑같이 적용되었고,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소설에서나 현실에서, 아버지와 통치자는 동의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또한 문명이 발전하면서 가부장를 뛰어 넘었다. 극동의 나라들은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런 관습이 있어 왔다는 점이 아니라, 한 민족이 변곡점에 도달한 후에도 그 관습이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에 이르는데 두 가지 원인이 중요했는데, 그것은 일반 백성들의 성격과 공자의 출현이었다. 중국과 타타르족인 조선과 일본은 역사의 여명기부터 현상유지에 가장 두드러진 편향적이며 그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타타르족의 경우, 보수주의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타타르족은 자기 자신의 것에 대한 애착이 크지만, 항상 타인의 것에 대해 동등한 애정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변함없이 끈질기게 문물을 외부로부터 들여오고 싶어한 만큼 지키는데도 그러했다. 오늘날 일본에서 우리가 놀랄 정도로 해외 문물을 도매금으로 빠르게 채택하는데, 새로운 특징이 아니다.
일본은 1,000년 전에 중국 및 중국 문명과 정확히 같은 행동을 했고, 조선은 어떤 면에서 더 두드러지게 같은 길을 추구해왔다.
이 정신적 체질이 어떤지를 여기서 묻는 것은 주제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이제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원인은 공자의 존재였다. 이 위인은 종교의 창시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에도 그가 그랬던 것처럼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므로 그는 신앙을 창조한자들과 적절히 비교될 수 있다.
이 문제를 고려해보면, 우리는 부처, 조로아스터, 마호메트와 같이 후대에 걸쳐서 예배하게 될 이 사람들 모두 그를 낳은 민족들이 삶의 어떤 전환기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명백한 예외는 그리스도에게서 찾을 수 있지만, 그가 어떤 면에서 나머지 사람들과 다르다는 믿음과는 별개로, 그의 영향력은 유태인도 아닌, 그리스인도 아닌, 주로 추측에 별로 관심이 없는 로마인, 그리고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북부 종족들에게 미쳤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종교적인 사상가들은 바로 그 기회성 때문에 숭배 받았다. 물론 그들 자신의 위대함이 원인이었지만, 그 당시로서는 시대상황이 호의적이었다. 어느 한 사람의 말에 그렇게 헌신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이 살던 시대는 그들이 속해 있던 국가가 감정적인 사고에 눈을 뜨게 되는 때, 이 후 각 위인의 인격, 이러한 소망과 연관돼 보이는 것, 추상적인 선에 대한 생각을 강렬하게 갈망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위인들은 이러한 소망을 체계화했고, 신앙이 되었다. 중국 역사에서 같은 시대에 위대한 현인이 살았다. 그는 종교를 설법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그가 그랬던 것처럼 존경 받았다.
그후 공자의 가르침은 법이 되었고, 그 도덕법은 공표된 때부터 나머지 모든 중국인들만큼이나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그 견고함이란 중국인들을 뺀 세계인들에게 메디아와 페르시아인들의 법이 오늘날프랑스 정부의 섣불리 계승된 헌법처럼 단명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공자는 기존 가부장제의 유지나 발전이 아직 왕성한 시대를 살았고, 사회를 위한 새로운 제도를 고안하기보다는 이 미 존재하는 것의 향상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놀랍지 않다.
그는 확실히 그 관습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작동하는 것을 알고는, 그는 그것이 수 세기 동안 계승되도록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가장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인정했다는 이유로 가부장제는 제 갈 길을 가지 않았다. 그것의 존재는 인위적으로 자의적으로 장기화되었고, 그 후로 유용성이 떨어짐에도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따라서 나이에 대한 부당한 존경을 넘어서는 대신, 아시아 동쪽 해안에 사는 민족들은 변화기를 영구적인 상태로 만들었다. 존경이란 세월이 흘러 생기는 것보다 아들의 나이 대비 아버지의 나이 비율이 훨씬 클 때(마땅히 세습에 근거해 둘 다 인류의 탄생부터 계산한 바데 의하면) 조금이라도 더 자연스럽다. 어머니의 앞 치마끈에 묶이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의지에 단단하게 묶인 채, 그들은 사내아이로서 확실히 해야 하는 관습에 시달려왔다.
사실, 미개한 원시 가부장제도를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습의 외부적인 특성은 어느 정도 바뀌었다. 이는 사회가 점점 문명화된 상태로 접어들면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명화에 대한 이유가 사실상 줄어들면서 가부장제도는 사실상 더 커졌다. 그것은 필요에 의해서 도덕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그러므로 한 집안의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그의 후손들에게 법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 관습의 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들 쪽의 강렬한 효심이 고 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효심은 극동의 유일한 도덕적 원칙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말 그대로 유보된 채로 존재한다. 진실은 알 수 없고, 정 직은 대부분 실천되지 않으며, 사실이라면 어디서나 순결은 사치다.
이러한 원칙의 대부분은 말로 전해지고, 책 속에서 선은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숭배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그러한 원칙은 소멸되었다.
일본의 불륜행위가 특이하게 악화되는 사건이 있은 후, 어느 날 오후, 나는 도쿄에서 우연히 들른 친구와 그 사건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수년간 살았고 조선어를 공부했는데, 당시 조선어를 공부한 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에게 모든 일의 단초를 알려 주겠네. 나도 그랬지만 자네도 그랬을지 몰라. 예술을 위해서라도 사람은 중요하지 않아. 내가 조선어로 처음 배운 단어는 '의심’이라는 단어였네.”
아버지에 대한숭배는 거의 종교적이다. 수천 가지 일용품을 보살피는 것에서부터 함께 유배하는 것까지 아들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보태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을 노예로 만들수록 다른 사람들로부터 더 많이 존경 받는다. 젊은이나 노인을 위한 도덕 설화책에는 이런 종류의 자기희생의 예가 더 많이 등장한다. 우리의 사회 체계에서 우리는 흔히 먼저 이전 세대로부터 친절과 보살핌을 받고, 그 다음 세대에게 전달한다. 조선에서는 아버지가 먼저 지불하고, 자식에게 외상값을 갚으라고 한다.
극동 민족들은 미래의 삶과 개인적인 불멸을 믿는다. 불교에서는 이것이 마침내 열반으로 사라지지만, 토착 신앙에서는 한 개인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게 된다. 그런 믿음은 당연해서, 죽은 후에도 조상들의 기억에 대한 경건함을 이어가는 것은 일생 동안조상에게 바쳐진 경건함에서 단지 한 발짝 벗어난 것이다. 소위 조상숭배는 가부장제의 연장이고, 그 준수사항은 논리 적으로 그 생각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것을 숭배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단순히 존경을 표하는 형태다. 숭배는 다른 인간에게 보여 질 수 있는 의미에서, 그들의 영혼에게 바쳐지는 것이며,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오면서 높이 평가 받았던 자들에게 걸 맞는 것이다. 음식은 그들의 사당 앞에 놓이지만, 살아있을 때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보살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미신에 관한한 무엇이든 감내하고,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을 신용하는 하층민들만이 죽은 조상들도 물질적으로 필요하거나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 자신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말로 할 수 없고 글로 전할 수 없는 무엇과의 내적 소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의식을 언제 할지는 따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새해 첫날차례 때 친구들을 부르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조상숭배는 제대로 말하면 죽은 자와의 교감일 뿐이지,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인 것도, 그 일부도 아니다. 죽은 자는 신격화되지 않는다. 죽은 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질서를 가진 존재로 여겨진다. 개인의 불멸에 대한 믿음에 따라, 그 의식은 처음에는 그것이 종교적이어야 한다는 가정을 암시한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생각에서 비롯되지만, 그 생각은 비록의식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더라도 의식에서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다.
이러한 의식으로부터 처음에는 자연 질서를 뒤바꾸는 것으로 보이는 독특한 풍습이 나왔는데, 이는 후손이 아닌 조상을 그에게 부여된 계급으로 귀족화시키는 것이다. 조상과 후손 중, 조상을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엄격한 의미에서 논리적이다. 한사람의 자손이 훌륭한 자질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적어도 보장되는 일은 아니다. 모든 남자 자손이 그러리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장남의 장남이 틀림없이 그리 하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저 터무니없는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유전의 원리를 통해, 우리는 그의 조상들 사이에서, 그리고 아마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잘 유지된 혈통을 따라, 적어도 그 사람 자신이 보여준 재능의 일부는 있었을 것이라고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어딘가에는 있었지만, 그 지점을 지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땅한 사람을 놓칠까 두려워, 모든 사람을 똑같이 공경한다.
이 주제에 대해 말하자면, "그림으로 보는 훌륭한 사람들의 도덕 이야기”라는 어떤 책에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져 몇 세대를 이어온 독자들의 기억 속에서 몇 년을 살아온 꿈이기 때문에, 꿈이 아닌 꿈이다.
조선에는 복이라는 이름의 어떤 남자가 있었다. 공신시대 어느 해에, 그는 "한림학사”라고 불리는 문인회원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그가 영예를 안기 약한 달 전, 그는 어느 날 밤 매우 특이한 꿈을 꾸었다. 갑자기 그는 방 한가운데에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 중 한 명의 신장은 실체 크기였다. 그는 그것을 자기 아버지로 인식했다. 세 사람 중 두 번째는 모르는 남자였는데, 그의 크기는 사람의 절반 정도였다. 세 번째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매우 작은 키였다. 그가 꼿꼿이 앉아 그들을 응시하자, 세 인물은 한 마디로 그에게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승진해서 '한림학사’로 불리는 한림원 평의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지위에 오르려고 노력했는데도 우리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대신 네가 우리가 오랫동안 추구했던 명예와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선행을 베풀기 위해 노력하여 자손들에게 선한 행위의 수확을 남겨야 한다.” 그러자 복이 놀라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대답했다.
"보통 사람 키의 절반인 분은 네 할아버지다. 더 작아 보이는 저 분은 증조할아버지다.” 셋 다 사라졌다. 복이 자신의 특이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한말이었다.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귀신의 중요성은 그 크기로 측정된다. 그 세계는 육체의 크기를 비교해 정신의 크기를 추정하는 것을 극복한지 오래되었지만, 귀신은 순전히 비물질적임에도 불구하고, 귀신 세계를 적절히 풍자하기 위해 귀신이 실체를 가진다는 것은 귀신 세계에서 유지되어 왔다. 그 집안의 명성은 차츰차츰 커져 왔었다. 능력이란 세대에 거의 절반씩 증가하므로, 위대한 남성은 오직 모계로 자신의 자질을 물려받는다는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설화에서 보듯이 부계 쪽에서 계속 유래된 것이 아니라, 명석함이 모계 쪽에서 계속 유래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극동정신에 잠재된 것은 추상적이라기보다는 원칙의 구체성이다. 매년 한 번씩은 조상들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지내야한다. 이 방문에는 참배자의 지위에 걸맞은 화려함이 따른다. 이제,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배려해 신분이 높은 사람은 길고 힘든 여정을 지키기 어렵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을 방문하러 온 사람과 같은 신분이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의 지위에 버금가야한다. 사람은, 그들이 살아 있을 때 존경했던 사람들을 죽었을 때도 얕보지 말아야 한다.
조상을 기리는 것은 가부장제의 가장 중요한 결과물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재산과 그 분배의 문제다. 일반적인 원칙에서 추정컨대, 소유권은 절대적으로 아버지에게 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아들도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영혼을 자기 것이라 부를 수 없다. 아들은 자신의 가족과 살고, 농사를 짓고, 돈도 벌며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 아들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모두 그의 아버지의 것이다. 땅과 돈 둘 모두다. 그의 아버지는 마음이 내키면 그것을 팔 수 있다. 물론 부모의 지위는 그런 힘을 가지는 동시에 의무가 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4살이든 40 살이든 항상 그의 자식들을 부양해야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장남이 가장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두 권력은 더 이상 하나가 되지 않는다. 일족의 우두머리와 모든 재산의 소유권이 분리된다. 아버지가 유언장을 남기지 않고 죽으면, 장남은 재산을 마음대로 나눠 갖는다. 아버지가 유언장을 남기면 재산의 3분의 2가 장남에게 가고, 나머지 3분의 1은 다른 아들들에게 분배된다. 딸들은 물려받은 게 없어 사실, 일반적인 경우인 혼인했다면, 그들은 가족에 속하지 않게 된다. 장남에게 이런 식으로 남겨진 큰 비중은 어머니와 빈곤한 형제들을 부양해야할 의무로 어느 정도 설명된다. 이 법들은 우리의 원칙에 대한 기이한 반전을 보여 준다. 유언은 선택사항이 아니며, 유언 없는 재산의 분배는 선택사항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재산에 일종의 선취득권이 있다. 가장이 조상의 대표다. 고인을 위한 지출은 그의 책임이다. 이 목적, 그리고 오직 이 목적만을 위해, 그는 모든 재산에 대해 무제한의 권한을 가진다. 그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가족에게 요청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친척의 실제 또는 개인적 재산을 팔 수 있다. 그러나 제일 많이 상속받은 몫으로 그의 수단은 그 목적에 충분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흔하지 않다. 장남이 사망하면 그의 장남이 가장이 된다. 아직 철이 안 들면, 제일 나이 많은 작은 아버지가 그가 다 클 때까지 그를 대신한다.
그래서 그 자리는 밑으로 이어지고, 맏이 중 맏이가 항상 씨족의 우두머리다. 첨부된 표는 이런 상황을 분명히 해줄 것이다. 예를 들어, d는 장손이고, a, b, c는 죽은 것으로 추정하자. 이제, 조상 c의 일에만 있어서, 오직 e와 한이 영향을 받고, 그에게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b와 관련된 문제에는 h도 포함될 것이다. 더 위 세대에서는 g와 노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d는 공동의 조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만약의식이 a와 관련이 있다면, 나머지 x, y, w까지 모두 그의 명령에 따를 것이다.
씨족 관계에 따라 이름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조선인은 세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유길준이다. 이름인 '유씨'는 성씨로, 그가 다른 모든 유씨 일족과 공통되는 이름이다. 다음으로, 공통 조상 이름에서 그의 관계 정도를 따온 것이다. 이것은 독특하고 매우 편리한 호칭 이다. 공통 조상으로부터 같은 항렬의 모든 친척은 그의 세 이름 중 하나에 대해 동일한 돌림자를 부여 받으며, 각 항렬은 다른 모든 항렬과 다른 돌림자를 가진다. 무슨 뜻인지 예를 들어 분명히 하겠다. '유가 다시 공동의 조상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의 모든 아들들은 항렬 돌림자로 '진’을 가질 것이다. 하나는 유석진, 다른 하나는 유익진, 그리고 세 번째 유용진일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역시 유씨일 것이다, 유길준, 유석준, 유목준 등.
그러므로, 유석진과 유익진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여전히 그들은 동시에 그들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각각 몇 세대에 속하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유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곧 보게 될 적응의 문제에서 합법성의 쉬운 기준이 된다. 이 돌림자는 가장이 정한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발표하고, 그의 모든 친척들은 자녀들의 이름을 짓는데 따라야 한다. 세 개의 이름 중 그것의 위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중간이거나 마지막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구별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기 세대와 다른 세대에 걸쳐 돌림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친척들의 다양한 이름들 사이에서 쉽게 그것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 이름중 남은 이름이 각개인의 이름이다.
조선인은 보통 이름이 세 개라고 했는데, 이름이 두 개밖에 안 될 때도 있다. 마지막에 있는 것이 주어진 이름이고, 그의 성은 항상 처음에 온다.
주어진 이름은 한자 두 글자로 쓰이지만 한 단어로 발음된다. 두 글자 중 하나는 돌림자이므로, 이 경우 말로는 알 수 없지만 글자를 보면 단서가 주어진다.
위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는 입양문제인데, 여기서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것은 조선과 일본에서 매우 흔한 관습이다. 후자의 경우, 젊은 남성들과 관련된 외국인들, 예를 들어 도쿄 대학의 외국인 교수들에게 적지 않은 불편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한 학급에서, 약 2주에 한 번씩 누군가가 다가와 개명 했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 번 바꾸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바꾸고 또 바꾸어 나중에는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다. 선생이 일정 수의 학생으로 시작하지만, 한 해가 끝나기 전에, 그 중 반은 다른 성으로 바뀐다. 어떤 사람이 입양 자격이 있는지는 몰라도 외척에게 입양될 수 있고 자주 입양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그의 이름과 성 모두를 완전히 바꾸기에 충분하다.(우리의 "기독교적 이름”이라는 용어는 물론 여기서 의미가 없고, "불교적 이름”은 개명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조선은 상황이 그렇게 혼란스럽지 않다. 남자는 오직 그의 친척에 의해서만 입양될 수 있고, 그들 중 일부에 의해서만 입양될 수 있다. 물론 동시가 아니라, 연속적이다. 조선인에게 이름은 인격의 큰 부분처럼 보인다. 우리들 대부분은, 특히 남성들은, 고백하건대 그와 같은 생각을 신앙처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입양되더라도 조선인은 그의 이름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주어진 조건 중 첫 번째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두 번째 조건은 가능한 한 자연의 과정에 순응하기 위한 것, 즉 노인이 젊은이를 입양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나이 문제에서 잘 정리될 것 같지만, 그가 입양하고자 했던 사람보다 한 세대 어린 먼 사촌을 입양할 경우, 조상의 의무에 있어서 연장자와 연하자의 가족 내 위치에 관해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문란한 채택이 허용된다면, 곧 공동의 조상과의 비교 관계의 문제를 불가분의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이런 재앙을 막기 위해, 돌림자가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남자는 돌림자가 자기 항렬보다 적어도 한 항렬 낮은 사람만 입양할 수 있다. 이것은 법으로 정한 아니라 입양된 사람이 마치 아들로 태어났을 때와 같은 절차를 밟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지루할 것이다. 지극한 효심이 암시하는 모든 것은 그의 소관 안에 있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가장 중대한 관심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있어서,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것은 아들에게 기대되는 것의 십일조일 뿐이다. 그는 아버지가 원하는 바를 수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상도 해야 한다. 그런 애정이 항상, 아니 흔하게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인간본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순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확실히 그렇다. 정신은우리가 믿고 더 나은 순간에 우리 삶을 부합 시키려하는 모든 이상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