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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탈이 남을 리 없었다. 그가 즉살시킨
송만치의 얼굴에다 덮었던 긴 저고리는
연전 전주부중으로 들어가는 서천교
도선머리에서 조성준과 이용익과 길소개가
서로 노정을 고쳐 잡을 때 환의(換衣)를
했었던 저고리니, 길소개가 그 저고리를
봉노에 남기고 온 것은 조성준에게 모살의
죄를 덮어 씌우려는 계략이 있었다.
그 옷은 섶 안쪽에 '조(趙)'라는 글자가
자수(刺繡)되어 있었고, 옷의 임자였던
조성준에게 오쟁이를 씌운 장본인은
송만치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조성준이
살아 있을 제 송파에 발을 디밀었다가
송만치를 만났다면 그를 요절내려 들 것은
빤한 이치였다. 광주관아에서는 그
저고리를 증물로 하여 조성준만을 추쇄하려
리는 만무였다. 조성준이가 포착되어
무고함을 발명한들 무슨 소용이며, 환의를
한 일이 있다고 토파한들 그 또한 관아에서
증거해줄 리 없을 것이었다. 조성준이가
외방 저자에서 음해를 입어 죽었다면
살범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요, 살아있다면
포졸에게 쫓기는 신세 될 것이니 이제
조성준의 망령에 시달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맹구범이 만치를 살해하란 제안을
했을 적에 당장 입낙(立諾)을 해버린 것도
골방 피롱 속에 숨겨둔 그 옷 한 벌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운천댁은 야기에
물걸레쪽이 되어 후줄근하니 방으로
들어서는 길가를 보고 기겁을 하였다.
"서방님은 어디를 쏘다니시다가 밤을
길가는 짐짓 심상한 얼굴로,
"발 달린 짐승이 어딜 못 갈까만 잿골
김대감의 방자 노릇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네."
운천댁은 그 대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참이나 길가를 노려보다가,
"집에 있는 저도 생각을 하셔야지요.
다방골 기루에 한번 가신 일이 있다더니
거기 가서 삭신이 노골노골하시도록
진기(津氣)를 죄다 빼고 오신 게로구려."
"임자, 내가 무슨 양기가 명치까지
차올랐다고 그 짓을 하겠나."
"삼팔주 수건 씻어놓고 활량들을
기다리는 기녀들이 어디 한둘이랍디까."
매섭게 쏘아붙이는 운천댁이 투기하는
거조가 볼 만한데 궐녀는 짧은 한숨 끝에,
환로에도 들기 전에 끈 떨어진 사류들과
어울려 축일로 수작(酬酌)하며
사랑(舍廊)놀음에 빠지시다간 파락호
신세에 뼈추림을 당하십니다."
"이끼, 그런 말 말게. 내가 왜 뼈추림을
당할까."
"기루의 계집들이란 궁가(宮家)의
청지기나 각전(各殿)의 별감배(別監輩)에다
눈치가 멀쩡한 포도군관(捕盜軍官)이며
정원사령(政院使令)들을 기둥서방으로 두고
있다는데, 기방의 아랫목 차지 길래
즐기시다간 툭하면 소동인 그놈들이 개개다
안 되면 목침으로 이마를 깨려 들 것이
아닙니까. 기방이라는 게 그래서 호굴이나
진배없다지 않습니까."
"임자는 반가의 출신이면서 어찌 기방
"방금이란 계집에게서 얻어들은
풍월입지요."
"그 계집은 이제 신기가 되돌아오던가?"
"상약을 달여 바치고 조석 공궤를 알뜰히
하였더니 측간 출입쯤이야 수월하게
되었습지요."
운천댁이 다소 누그러진 듯하여 길가는
아랫목으로 가서 벌렁 나자빠지면서,
"어서 자리나 펴게. 눈을 좀 붙여야
하겠네."
"이제 동이 트려는 참에 무슨 잠을 다시
청하신단 말씀입니까?"
"어찌 임잔 붙임새가 그 모양인가. 내
상화방(賞花坊)에서 진기는 조금 빼고
왔으나, 하되 임자와 나눌 진기까지야 다
빼고 왔을까. 단산이 봉황이 넘놀고 녹수에
나누어야 맛일세."
"식자가 쇠눈깔이구려."
비쭉거리는 운천댁을 길가가 반몸
일으키며 소매를 잡아당기니 벌써 심청이
난 운천댁은 방구들을 발뒤축으로 버티며
끌어오질 않았다.
"별미를 잡수신 위에 상찬(常饌)이
구미에 당길까요."
눈시울을 모질게 뜨고 버티긴 하였으나
사내의 완력엔 당할 재간이 없었던지
엉덩이밀이로 아랫목으로 끌려갔다.
"이런 양반을 보았습니까. 이부자리나
깔고 행실을 부리십시오."
"부부지간에 행요를 하는 판에 무슨 예가
중하며 제도가 가당한가. 잔말 말고 썩
당겨 앉게."
치마말기 안으로 손을 밀어넣어 샅으로
건너가더니 단속곳을 잡아당겼다. 궐녀는
겉으로는 시악을 부리며 버티다가 못
이기는 체 당겨 앉으면서 한다는 말씀이,
"에그, 서방님은 흡사
거릿귀신이라니까......"
"귀신 쫓는 데는 옥추경(玉樞經)이
제일이지."
길가가 단속곳을 손으로 까내리니 궐녀는
슬쩍 엉덩이를 들어주었다. 흐벅진
엉덩이에 명색뿐으로 걸려 있던 속곳이
뜨거운 물 뒤집어쓴 말불알같이 훌러덩
벗겨졌다. 속곳을 말코지에 걸고 치마 속에
알몸만을 남겨둔 길가는 허겁지겁 제
고의를 내리고 물고를 뺀 듯한 양물을 잡고
운천댁 몸뚱이 위를 덮치는 것이었다. 밤새
척살시키고 온 처지였건만 길가의 거조엔
어느 한구석 그런 낌새를 느낄 수가
없었다.
"서방님 그러시다 상투 빠지겠습니다. 좀
덧들이지 마십시오. 행요가 너구 다급하여
쇤네 기절하겠습니다."
"그깐 상투야 줌으로 뽑힌들 대순가,
잔소리나 말게."
"기생 수청을 못 들여서 성화가
나셨구려. 집에 드시자마자 이 행실을
부리시는 걸 보니."
"임자는 문벌로나 행세로나 나무랄 데가
없는 요조숙녀인데 딱 한 가지 고약한 것이
있다면 행요 중에 잔말 많은 것일세......"
송파장터 송만치의 수하에서 연명하던
왈자 설레군들은 송만치가 쇠전꾼들에게
그런 봉욕을 당한 뒤에 그가 몸져누워 있는
창가로 뻔질나게 드나들며 상약을 달여댄다
개를 잡는다 하여 병수발이 알뜰하였다.
그러나 밤에 잠깐 봉노를 비운 사이에
자객이 들어와서 만치의 목숨을 아예
물고를 내어버리자 송파 저잣거리가 왈칵
뒤집혀버렸다.
광주부에서 이방과 형방비장이 주왕사를
꼬나든 장교와 포졸들을 영송하고 송파에
나타났다. 검시관이 검시를 하고 발미를
작성하여 경기감영으로 엄중한 보장을
띄우고, 일변 도타한 살범의 행지를
없었다. 그러나 시신에 덮여 있는 긴
저고리가 만치의 것이 아니란 게 드러났다.
저고리 안섶에 자수된 '조'자를
수소문하였더니 전에 송파의 쇠살쭈였던
조성준이란 사람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계집 하나로 서로 오쟁이를 지고 씌운
원수지간에 있었으니, 수많은 조가가
있을망정 이 옷이 조성준의 것이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일단 조성준에게
혐의를 두고 가근방을 검색해볼 도리밖엔
없는데, 송파 어름 어느 나루이고간에
근간에 조성준을 보았다는 위인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튿날 한낮이 기운
판에 서강나루의 별장은 삼전나루 쪽에서
떠내려온 시체 한 구를 다시 발견한
것이었다.
나루질하던 사공으로 밝혀졌는데, 결국은
그 또한 송만치를 타살한 조성준에게
혐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검시관의
발미는 고사하고 감사(監司)의
제사(題辭)가 아무리 엄중하단들 대살시킬
살범을 찾지 못하는 바에야 겉만
번지르르한 허문(虛文)에 불과한 것이었다.
송만치가 참살을 당한 사흘째 되던
식전참에 그 수하에서 놀던 왈자 세 놈이
길소개를 찾아왔다. 전일에 길소개를
욕뵈러 왔을 때는 뒤통수가 세 뼘이나 되게
뻣뻣하던 놈들이 이젠 전혀 모양이
아니었다. 세 놈을 방으로 들이고 길소개가
물었다.
"또 무슨 봉욕들 하였길래 새벽같이
한다리로들 몰려왔는가?"
"만치성님께서 그만 식은방귀를 뀌고
말았습니다요."
심상하게 듣던 길가는 불각시에 그 무슨
까치 뱃바닥 같은 소린가 하는 뜨아한
낯짝으로,
"식은방귀를 하다니? 세상 하직하였단
소린가?"
"그렇숩니다 나으리. 어느 다구진 놈이
성님 가슴에다 비수를 꽂았습지요."
"저런, 꼴같잖은 소리. 내가 문병 갔을
때만 하여도 개 마리나 잡아먹으면 금방
차고 일어날 처지가 아니었나?"
"누군 아니랍니까. 그런데 전에
쇠살쭈였던 조성준이란 자가 만치성님에게
계집 빼앗긴 일이 있는지라, 설분(雪憤)할
것만 노리다가 송파에 잠입하여 마침
듯합니다요."
세 놈 전부가 입을 맞춘 듯 대답이
똑같았다. 끔찍이도 놀랑 시늉으로
까치다리하고 있던 무릎을 치며 길소개가
소리쳤다.
"어허 낭패로세. 저런 천좍을 할 놈이
있나? 그 살범은 어찌 되었는가?"
"마침 신포나루에서 임자 없는 주낙배 한
척이 떠다니는 것을 주상배(舟商輩)가
발견을 하였는데 형방의 말로는 십중팔구
성내로 잠주를 한 것이라 하더이다."
"그럼 자네들은 가만있단 말인가?"
"살범이 조성준이라면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위인이라, 아니래도 온 장안을 뒤져볼
요량입니다."
"그래 초종은 치렀는가?"
차린다 하였습니다만, 워낙
빈것들이라......"
세 놈이 한잎에 난 것같이 소매를 들어
찔끔하고 눈시울을 닦았다.
"그럼 방금이란 계집은 원래 조성준의
계집이렷다?"
알고 묻는 말에 세놈이 하나같이 고개를
주억거릴밖에 없었다.
"살범이야 기찰하여 포착이 될 노릇이요,
죽은 사람이야 저승사자의 칙사 대접을
받겠네만 고약한 건 그와는 반연(攀緣)이던
자네들 일이 아닌가?"
"만치성니이 그렇게 된 것도 애석한
일이지만 쇤네들 입장이 난가(亂家)나
진배없게 되었으니, 사실은 그 일로 하여
부랴부랴 나으리께로 달려온 것입니다요."
놀라면서,
"달려오다니? 자네들 수괴자레에 궐이
났다 하여 내게 수상이라도 되어달란
말인가?"
그때, 면판에 칼자국 있는 놈이 다급히
손사래를 치면서,
"아닙니다 나으리. 감히 뉘 앞이라고
그런 대중없는 소청을 올리겠습니까요.
다만 쇤네들은 이제 백사지에 코를 처박은
바가 되었으니, 쇤네들을 세곡선의
선인들로 그대로 박아주실 것인지 한번
여쭈어보는 것뿐입니다요."
한 놈은 손사래를 치고 어떤 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곁눈질하기 바쁘니,
저희들끼리는 적선을 빌자는 공론이 돌았던
게 분명하였다. 길소개가 낭패한 듯 혀를
"글쎄나......, 사실은 송만티가 없는
자네들이 유조(有助)할까? 또한
도행수(都行首) 되실 분께서 허락을 하실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은근히 퇴짜를 놓을 기색을 보이자,
둘러앉은 놈들의 낯짝은 그대로
외꽃이었다.
"만치성님 없다는 것이 크게 책잡힐
흠절이야 아니지 않습니까?"
"말이야 똑바로 해야지. 오합지졸이나
진배없는 자넨르을 휘어잡을 만한
장력(壯力) 있는 총대선인이 나서겠는가?"
"나으리, 이제 와서 말씀입니다만 뒈질
년이 사추리를 가리겠습니까. 쇤네들도
숙수단이시던 만치성님이 없으면
송파장터에서 부쩌지 못할 뿐 아니라
소소리패에 불과하옵니다. 어떤 분이
쇤네들 수상이 된다 하여도 규각(圭角)날
리 한푼 없으니 쇤네들을 선인으로
박아주십시오."
"가서 기다리게. 내 양일지간에 통기를
함세."
송파 왈자들은 더 이상 개갤 수는
없었던지 내일 꼭두새벽에 다시 오마
약조하고 물어났다. 길가는 궐놈들을
내쫓다시피 한 뒤에 해거름까지 기다렸다가
종루 입전 행랑으로 맹구범을 찾아갔다.
맹구범은 그를 데리고 다방골 기루로
찾아가는가 하였더니 조용한 안침술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맹구범 혼자가 아니었고
옆에 웬 낯선 사내가 따르고 있었다.
궐자는 키가 헌칠한 미장부였는데,
지체로도 보이지 않았다. 요사이 새로 갖다
박은 겸인일시 분명한데 사내가 도통 말이
없었다. 궐자의 정체가 궁금하였지만
깊숙한 골방에 세 사람이 안동하기까지
수작을 나누지 않았다. 주안상이
들어와서야 맹구범이 봉삼을 소개하였다.
"이번 선단에서 총대선인으로 행세하실
사람이오."
지체가 서로 다른 두 살미이 초인사를
나누는 처지에 봉삼은 고개만 꾸뻑하였을
뿐으로 상것 주제에 뻣뻣하기 그지없는데,
그렇다고 맹구범 앞에서 율기하고 나설
수도 없었다.
"시생은 천송도라 합니다."
수작하는 품이 상고배(商賈輩)의 범절이
틀림없으나 격난 체할 수가 없어서 길가는
어떻든 지금에 와서야 명색이 북촌 문객인
길소개의 지체로서는 이런 따위의 상고배와
주안을 함께한다는 일이 행세가 깎이는
터였지만, 맹구범의 말이 총대선인으로
행세할 위인이라니 대중없이 면박을 할
수가 없었다.
술이 몇순배가 돌자 맹구범이 은근히
묻기를,
"송파에 갔던 일은 잘 처결이
되었습니까?"
묻는 말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길소개가,
"잘 되었다뿐입니까. 제가 도모했던 일에
낭패당한 적이 없소이다."
"수하에 있던 세 놈이 아침에 처소를
다녀간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놈들도 이젠
이참에 다조짐을 해야 합니다. 내일
천동무님을 송파로 데리고 가서 그놈들과
초대면을 시키도록 하십시오."
"궐놈들이 내일 다시 저의 처소로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천동무님을 처소로
보내도록 하지요."
"제 앞에서야 그놈들이 굽실거리겠지만
행수 될 사람이 나섰다 하면 저들 풍속대로
행수의 담력을 떠보려 할 터이니 낭패가
아닙니까?"
길가는 은근히 봉삼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투로 말하였다.
"내가 합당한 인물 아닌 사람을
조발하였겠소? 그런 걱정 마시고 술이나
드십시오."
주고받는 수작이 가관이었다. 맨구범의
제안을 받아들여 선단의 총대선인 되는
것은 입낙하고 말았으나 저자에서 놀던
왈자들의 수괴 노릇을 하라는 판이라 자못
입맛이 씁쓰레하였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도 거절하고 나설 처지도 아니었다.
이튿날 봉삼은 나귀쇠질하는 짐방 한
놈을 앞세워 쇠경다리께의 길가의 처소로
찾아갔다. 아침 먹은 지가 고대였는데도
송파장터에서 왔다는 왈자 세 놈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 놈은 수상의
예를 차려 봉삼을 대접하는 것이었으나
나이로 따진다면 저희들이 연상이라
떨떠름한 낯짝들이었다. 게다가 험상궂고
거세었던 송만치에 비하면 미장부에다 언사
또한 고분고분하였으니 깔보는 눈치가
"자, 그럼 송파를 다녀와야겠습니다."
길가를 하직하고 세 놈을 동행하여
송파로 가는데, 살곶이 주막거리에서 참을
먹자 하여 숫막으로 봉삼을 이끄는
것이었다. 술상을 받고 나서 봉삼이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너희들이 수상으로 모시던 사람은
누구였더냐?"
한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결이 나서 자랑
겸 낭자히 지껄였다.
"송만치라 하였지요. 송파저자에서
만치성님이라 하면 표창 던지기나 담력에는
당적할 후레자식이 없었지요."
"송만치라?"
"예, 송만치 성님이었지요."
"그자가 어찌 되었다는 거냐?"
하직하였습지요. 새경다리 나으리께서
귀띔하지 않던가요?"
천봉삼이 태연한 체 꾸며댄 것이었으나
잠깐 동안은 혼백이 뜨는 것 같았다.
"행수님께선 우리 만치성님과는 전사에
연비라도 있었습니까요?"
"연비야 없었지만 길생원에게서 명성은
배부르게 들었네."
송만치를 들먹이는 뜻은 봉삼의 담력이나
여력이 저들의 수상자리에 합당한 것인가를
견주어보려는 심사에서였다. 봉삼은 그때
개숫물통을 들고 뜰을 가로질러 가는
주모를 불렀다.
"여보시오 주모, 놋대접은 없소?"
코대답도 없이 개숫물을 울바자 너머로
홱 뿌리고 돌아서던 주모가 물었다.
"입잔 순배로서야 어디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소. 우리가 갈 길도 멀고 하니 얼른
방구리를 비우고 술청을 비워드려야 하지
않겠소?"
아니래도 요기할 행객들이 울바자 너머로
고개를 삐쭘하니 디밀었다간 왈자들만
둘러앉은 술청을 보고는 시비 될 게 겁이
나서 발길을 돌려버리는지라, 심사가 꾀어
있던 주모는 득달같이 정주로 달려가서
방짜로 된 놋바리 하나를 들고 왔다.
놋바리를 소반에 놓는 길로 봉삼이 한
손으로 잡고 느긋하게 힘을 주었더니
맨드리가 곱던 바리가 헤벌쭉하니
쭈그러뜨려졌다. 대접을 옆에 앉은
놈에게로 권하면서,
"한순배씩들 하고 일어들 서세."
받았다. 그러나 대접이 한순배를 돌아서
그의 순에까지 돌아왔을 때, 봉삼은 내심
뜨끔하였다. 대접은 거의 술을 부을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이었다.
봉삼은 다시 주모를 불렀다.
"주모, 집에 방짜로 된 통주발은 없소?"
"왜 없겄시오."
"아주 실한 것으로 하나만 더 갖다
주구려."
영문 모르는 주모는 패거리들이 빨리
자리 뜰 것만 생각하여 기둥서방 조석
공궤하던 방짜주발을 들고 달려왔다.
봉삼이 이번엔 가녘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순배를 돌렸다. 한 됫박 밥은 능히
담을 만큼 확이 깊은 주발이 다시 그의
순으로 돌아왔을 땐, 번철처럼 넙치가 되어
옆엣놈에게 물었다.
"자넨 전사에 무엇으로 행세하였나?"
"풀뭇간에서 메꾼으로 행세하다
만치성님을 만났습지요."
"자넨?"
"저는 백정의 사위로 푸주질이 싫어
관동의 산협 저자를 쏘다니면서 풍각쟁이로
소일하였습죠."
"자넨?"
"적형(嫡兄)을 어육으로 만들고 끝간 데
없이 가다가 송파에 머물렀습죠."
"재간은 뭔가?"
"한 손만 써서 모가지 하나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돌려앉힐 수는 있지요."
"자넨?"
"저야 손가락 둘로 매부리코를 잡아뗄
"자넨?"
"전 쇠꼬리를 한 손으로 잡아뺍니다."
봉삼은 그때 술청의 지게문에서 돌쩌귀
두개를 빼내었다.
두 개 중에 하나는 들고 있고 나머지
하나를 옆에 앉은 놈에게로 건네었다.
어지간한 장력이 없고서야 돌쩌귀를 펼
재간은 없을 것이었다. 돌쩌귀를 건네받은
놈들은 저마다 기를 긁어 용력을 쓰는
것이었다. 돌쩌귀가 그에게로 되돌아왔을
때는 다 펴지진 않았지만 반쯤 펴지다 만
상태였다. 봉삼은 그때까지 들고 있던
돌쩌귀를 소반 위로 올렸다. 그리고
엄지만을 써서 반듯하니 펴놓는 것이었다.
좌중에 혀차는 소리가 들리고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맞은편 앉았던 놈이 뒤통수가
"행수님 여력이 그만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풍자가 그린 듯하신 분에게
그만한 여력이 있으니 용을 그린 위에 또한
구름을 앉힌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자 이제 그만들 일어서세."
봉삼이 자리 털고 일어나니 궐놈들은
소스라쳐 뒤를 따랐다. 그들은 곧장
도선목으로 나갔다. 송파저자 왈자들 행수
될 사람을 모시는 터라, 나루의 사공이나
상인배들의 대꾸가 고분고분하고 더러는
지레 겁을 먹고 꽁무니를 빼는 축도 없지
않았다.
송파저자에 당도하여 쇠전머리 객점에
안돈하고 앉았으려니 나루와 저자에 흩어져
있던 타짜군들이 기별을 듣고 하나둘씩
찾아와서 현신하였다.
상목자투리를 끼고 오는 놈, 걸구를 잡은
객점에서 도야지 편육을 얻어 오는 놈,
주효 될 만한 어포며 인절미를 해 갖고
오는 놈,공덕리(孔德里) 소주촌에서 나온
화주를 가져오는 놈, 닭 모가지를 비틀어
오는 놈이며, 부침이를 가져와서
폐백(幣帛)을 드리는데 저들의 제도와
풍속으로는 예를 갖추고 정성을 들임에
인색하지 않았다. 때로는 봉삼의 용력을
시험해보려는 축도 없지 않았으나 시전의
도행수(都行首)가 조발한 사람이라 하여
모두들 조심하였고, 또한 걸출한 풍자에다
행실에도 흠절(欠節)할 곳이 없는지라 움
안에서 떡을 받았다고 저희들끼리
수근거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30여 명이나 꾀어들어 객점의
명색하는 잡색들로 꽉 메워졌다. 면상들이
험상궂은 것은 고사하고 칼자국 있는 놈이
여럿이었고 물고 같은 상투들을 달고
있었다. 봉삼을 성님으로 호칭함에 서슴이
없었고, 마시고 먹는 데도 주저가 없었다.
개중에는 봉삼을 얼마 전 저자 모퉁이에서
본 듯도 하다는 위인도 있었지만, 저들에게
쫓기던 보부상 나부랭이가 며칠 상관에
저들의 수괴로 둔갑할 리 없다로
생각하였던지 고개만 갸우뚱하다가
그만두는 것이었다.
"이제 너희들이 내 수하에 들었으니 내
말 한마디에 죽고 사는 것을 같이해야
하며, 나 아닌 어떤 놈이 너희들을
사주한다 하여 간대로 놀아났다간 난장을
당하리라. 내 말이라면 칼날에 계란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알아야
한다. 오늘부터는 저자로 떠다니며 진대를
부리고 무고한 장사치들을 상해하는 버릇을
정습치 않는다면 별반거조를 차려 폐인이
되도록 다스릴 터이다. 하물며 동배간에
서로 하자하는 자도 무릿매로 다스리겠다."
말투가 추상 같고 사리에 어긋남이
없는지라, 네댓 칸을 헤아리는 술청 안이
금방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마시던 자는
술잔을 내리었고 씹던 자는 입놀림을
멈추었다. 술청이 호젓해지기를 기다려
봉삼은 목청을 가다듬었다.
"듣자 하니 여기 모인 우리 동패들
중에는 오직 기직자리 한 닢에 육신을 뉘며
동가식서가숙하는 홀애비가 태반이 넘고,
바자 두른 초옥에나마 가솔들을 거느리고
정도라고 들었다. 이는 본래부터 가계를
순리대로 이어갈 주변들이 못되고
상슬(床蝨: 빈대)처럼 여염에 기대어
취탈한 재물이나 투전질로 얻은 재물이
허망함을 뜻하는 것이다. 누대 위에 앉은
자들이 그들의 직책을 빌미삼아 결탁과
위계로 뇌물을 챙겨, 고래등 같은 저택에
호지집이며 마름과 종자(從者)를 거느리고
전곡과 포백(布帛)을 산처럼 쌓고 지낸다
한들 헐벗은 백성의 원성이 거기 있으니,
심기 편하기는 풍각쟁이보다 못하다. 또한
완력으로 취탈한 재물은 흐르는 물에 띄운
뜨물과 같아서 괴는 법이 없으니 이는
차라리 손바닥에 담은 한줌의 흙보다
못하다. 두 경우 모두가 백성의 포한이
뒤따랐으니, 일시의 호사는 알 수 없으나
너무나 졸렬하고 허망함이 많다. 한겨울에
찬물 소게 발을 담그면 생살을 저며내는
듯하고 단쇠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뒤따를게 마련이다. 가권을 거두어
연명하는 방도에는 반드시 그런 고통이
뒤따르지 않으면 창고을 날던 매가
오얏나무 가지에 걸린 것처럼 평생을 남의
입초에 올라 손가락질만 받고 살게 된다."
그때 술청 가녘에 안장서 그을음이
새까만 보꾹을 쳐다보고 앉았던 부대하게
생긴 잡배 한 놈이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생수님 말씀은 백번 들어 온당하나 우린
애당차 사람답게 살 수가 없었습니다요.
행상을 나가자니 고린전은 고사하고 지닌
것이라곤 짚신 한 짝도 변변치가 않았고,
하니 천불이 나서 견뎌낼 것 같지가
않았고, 농투성이로 살자 하니 똥눌
자리만한 따비밭도 없었습니다요.
나귀쇠라도 되려하면 가근방에 유명짜한
타짜꾼으로 조명이 난 터라 쫓겨나기
십상이요, 역정(驛丁)이라도 되려 하면
인정 쓸 돈이 없었고, 사공이라도 되려
하면 놋좆이 부러져도 고칠 재간이
없었습니다요. 천상 목숨 부지하려 하니
창가의 조방꾼을 용채를 얻고, 잠상하는
모리배나 상인배들을 등치고 배 문질러서
용채를 구처할 도리밖엔 없었습니다요."
사내의 대거리가 그럴사하였던지 술청에
앉았던 패거리들은 한잎에서 난 듯 저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행수님. 우리도 여염이나
목숨을 부지하자니 자연 남에 기댈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습니다요."
"그렇다면 우리가 왈자 노릇 하지 않고
살아갈 방도를 가르쳐주십시오."
이놈 저놈이 버섯 솟듯 한마디식
거드는데 잠시 술청 안이 번다해지는
것이었다.
"내게 생각이 없는 바가 아니다. 이번
삼남 뱃길 한 행보만 무사히 치르고 나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태가와 삯전이 수월찮을
것이다. 그것을 투전과 계집질로 날리지만
말고 서로 추렴하여 동계(洞契)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을 송파 쇠전에서 굴리면 장차
마방을 크게 짓고 인근의 농우소들을
사들일 수가 있다. 조금의 이문을 남기고
다락원이나 의주의 쇠전꾼들에게 소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장텃가에서 진대를 붙이며 살아가던 행실을
정습치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봉삼이 말버슴새가 다소 거세고 꾸짖음이
또한 낭자하였으나 감히 율기하고 기어드는
자가 없었다. 이놈 저놈 다투어 술잔을
갖다 바치고 수상으로 모심에 합당한 분을
만났다고 혀를 내두르고 야단을 벌이는데,
잠시 멈추었던 순배가 다시 돌기
시작하였다.
술청의 법석댐이 흡사 잔칫집을 방불케
하는지라 주막거리를 기웃거리던 풍각쟁이
한 놈이 마침 객점 앞을 지나다가 술잔이나
동냥하려는 배포로 삽짝 안으로 엉덩이를
궁싯거리고 들어오면서 타령을 쏟아놓았다.
"춘천이라 샘밭장 짚신 젖어 못 보소,
보고, 이귀저귀 양구장(楊口場) 나귀 많아
못 보고, 한자두자 삼척장(三陟場) 배가
많아 못 보고, 명주(明紬) 바꿔
원주장(原州場) 값이 비싸 못 보고,
횡설수설 횡성장(橫城場) 발통 많아 못
보고, 이통저통 통천장(通川場) 알것 많아
못 보고, 엉성드뭇 고성장(高城場)
심심해서 못 보고, 이천저천
이천장(伊川場) 개천 많아 못 보고,
철떡철떡 철원장(鐵原場) 길이 멀어 못
보고, 영 너머라 영월장(寧越場) 담배 많아
못 보고, 어지지화 김화장(金化場) 놀기
좋아 못 보고, 회회충충 회양장(淮陽場)
골목 많아 못 보고, 이강저강
평강장(平康場) 강물 없어 못 보고,
정들었다 정선장(旌善場) 울다 보니 못
떼꾼(筏夫) 많아 못 보고, 양식 팔아라
양양장(襄陽場) 곡식 많아 못 보고, 이제
와도 인제장(麟蹄場) 다리 아파 못 보고,
울퉁불퉁 울진장(蔚珍場) 울화 터져 못
보고, 안창곱창 평창장(平昌場) 술국 좋아
못 봤네. 어절씨구 잘한다, 푸짐하게도
잘한다......"
괴춤에 차고 있는 바가지를 두드려
장단을 맞추며 풍각쟁이가 흥을 돋우는
판에 자칫 파흥이 될 만큼 숙연햇던 술판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한 놈이 쭈르르
삽짝으로 달려나가서 짠짓국 냄새가 등천을
하는 풍각쟁이 소매를 끌어다가 술청의
가녘에 앉히고는 탁배기를 흔연
대접하였다.
밤이 이슥토록 취하여 마시고 더러는
시악을 쓰며 이를 바드득 가는 놈에,
도저해서 시비를 벌이는 놈에, 장타령을
흥얼거리는 놈에, 남색질 흉내를 하는 놈에
각양각색으로 주사들을 부리는 중에도 밤이
깊어 날이 새도록 술판이 끝나지 않았다.
봉삼은 이튿날 중화참이 되어서야 겨우
술판에서 풀려났다. 사흘 뒤 저자가 서는
날 다시 오기로 약조하고 성내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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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