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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트렌치코트-가을을 부르는 클래식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느새 가로수 잎사귀는 노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의 가을은 자연의 움직임으로만 찾아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을남자'가 거리를 걷고 있어야 한다. '트렌치코트'는 단 하나의 아이템으로 '가을남자' '가을여자'로 변화시키는 마술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이다. 트렌치코트에도 종의 다양성은 있다. 대체로 색깔이 다양성을 만드는데, '버버리코트'의 대명사가 된 베이지톤부터 블랙과 네이비 등이 기본이며, 여자는 빨강이나 노랑 같은 컬러감 있는 것들도 있다. 버튼 크기나 개수나 길이감 등으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트렌치코트는 다른 종류의 옷에 비해 상대적으로 '폼(form)'의 통일성이 강조되는 옷이다. 어떻게 변주를 하든지, 우리는 거리에서 이 옷의 주인공이 지나가면 '가을 옷'을 입었음을 '인식'한다.
'트렌치(trench)'가 전쟁터의 '참호'를 뜻하는 단어라는 것은, 이 사물의 기본 형태가 방수ㆍ방한용 군복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사물을 걸친 사람에게서 언뜻 영화 속 영국군이나 독일군 장교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다양한 트렌치코트들이 불러일으키는 일관된 '가을' 환기력이다. 하지만 이 사물의 '우수(憂愁)'에는 처량함이나 자유분방한 낭만성과는 구별되는 프로페셔널 이미지와 도시적 절제력이 전제되어 있다.
이것은 트렌치코트가 도시적 클래식(classic)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클래식'은 '원형' 또는 '완성형 폼'이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삼각형 모양 사물이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삼각형 공리에 기초해 있듯이, 클래식 아이템은 변주에도 불구하고 본래 폼에서 흐트러지지 않는다. 차이와 변주는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의 또 다른 자식들이다.
잘 알려진 고대 서양의 한 현자는 경험 세계 속 삼각형이 아니라 삼각형을 삼각형답게 만드는 근거로서 '원형(idea)'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원형은 육체의 눈이 아니라 지성의 눈으로만 찾을 수 있다.
[함돈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