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역사 독후감
대학 시절, 유인선 교수의 『베트남사』를 학과 도서실에서 빌려 왔지만, 첫 부분만 읽고 끝까지 독파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40년의 세월이 지나서 내년 1월에 베트남[越南] 중부의 다낭, 호이안, 후에 지방을 여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두 번 개정되어 10년 전에 나온 『베트남의 역사』를 사서 요즈음 읽었다.
베트남사 연구의 성과들을 소화하고 역사의 흐름과 사건들의 의미를 고려하여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처럼 생동감 넘치게 서술된 책이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정치권력의 쟁패와 대외 관계 위주의 정치사이지만 인간의 심리, 건강, 외교와 무역, 문화와 얽혀있고, 전후 관계를 고려한 무르익은 역사 서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역사와 유사한 대목에서는 베트남사가 우리 역사를 비춰볼 수 있는 훌륭한 거울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베트남과 한국이 중국 대륙에 붙은 반도 국가라는 지리, 한 무제의 침공과 군현의 설치, 화이론(華夷論)적 세계관과 조공과 책봉 관계, 한자문화권의 유교와 대승불교, 삼국사기와 월남사기, 삼국유사와 영남척괴열전(嶺南摭怪列傳), 금오신화와 전기만록(傳奇漫錄), 쯔놈(國語)과 한글, 몽골과의 치열한 항쟁,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 지배, 길고 치열한 독립운동, 남북 분단과 전쟁, 이승만과 응오 딘 지엠 등 베트남과 한국이 비슷하지만, 베트남의 역사가 우리 역사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변화가 많다. 이것은 같은 반도 국가이지만 동남아시아 속의 베트남의 지리가 동북아시아 속의 한국보다 더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치원의 보안남록이도기(補安南錄異圖記), 이수광의 안남사신창화문답록(安南使臣唱和問答錄), 지난해 여름 설악산 백담사(百潭寺) 만해기념관에서 본 영환지략(瀛環志略)과 판 보이 쩌우[潘佩珠]의 베트남 최초의 혁명적 역사서인 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 베트남의 평화와 불교 수호를 위해 소신공양(燒身供養)하여 세계인들의 반전 평화 의식을 깨어나게 한 틱 꽝 득[釋廣德] 스님, 미얀마 여행 중에 양곤의 쉐다곤 사원에서 만난 까오다이[高臺]교 성직자, 틱낫한 스님의 동화에 등장하는 참파 왕국, 리 왕조와 우리나라 화산 이씨와 정선 이씨, 다낭 지역에서 있었던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을 취재한 지난주의 신문 기사 ….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그 맥락과 역사적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들이었다. 베트남사의 중심지가 호치민시가 있는 메콩강 델타 지역이 아니라 하노이시를 중심으로 하는 홍강 델타 지역이라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어릴 때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돌아온 옆집 형이 트렁크 속에서 쏟아낸 온갖 물건들과 누나가 얻어온 흑백사진 속 궁궐 앞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양산을 들고 있는 베트남 아가씨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학교 도서관에서 본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에는 베트남에 파병된 청룡부대와 맹호부대의 활약상, 다낭 같은 지명이 등장하였다. 1975년 흑백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된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미국인들이 헬기로 탈출하는 장면, ‘보트 피플’ 소식을 끝으로 잊혀져 갔던 베트남이 미국 영화 ‘람보’, ‘라이언 일병 구하기’, ‘포레스트 검프’, 한국 영화 ‘님은 먼 곳에’,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쏭바강』, 시골 마을 길가에 붙은 베트남 신부 소개 현수막 광고로 되살아났다.
‘불 속에서 피어난 연꽃[火中生蓮]’이라는 유마경의 구절처럼 베트남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피어난 깨달음과 평화의 백련(白蓮), 세계적 스승으로 작년에 96세의 연세로 입적한 틱낫한[釋一行] 스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베트남의 현대사가 궁금하였다. 그래서 미국인 역사학자가 쓴 방대한 분량의 호치민[胡志明] 평전을 읽었다. 호치민은 유교 집안에서 성장하여 헌신적인 공산주의자, 민족의 독립을 열망한 민족주의자, 국제 정치를 읽을 줄 아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호치민은 베트남 사람들이 ‘호 아저씨’라고 부를 정도로 민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 중부 지방의 야전 병원에서 어린 전사들을 누나처럼 품고 치료해주다 매복한 미군에게 사살당한 당 투이 쩜의 참전일기를 또 읽었다. ‘간밤의 꿈속에서 고향집 마당에 피어난 아침 이슬 머금은 장미를 꺾어 꽃병에 꽂고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에는 미군의 폭격과 고엽제로 숲속에는 새가 울지 않고, 적막한 공기 속으로 라디오에서 알지 못할 음악만 흘러나올 뿐이었다’고 하는 대목은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을 사무치게 느끼게 하였다.
오늘 아침 신문을 펼쳐보다가 나는 경악했다. 왼쪽 면에는 보도연맹 희생자 위령제 르뽀 기사가 실려 있고, 오른쪽 면에는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의 참상을 알게 된 끔찍한 기억을 통하여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애통한 목소리를 듣는 글이 실려 있다.
내가 태어나기 10년 전에 포성이 멈춘 한국전쟁이 나자, 전라남도 장흥경찰서에 수감 되어 있던 보도연맹 회원 45명이 1950년 7월 22일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트럭에 실려 바닷가로 끌려가다 한 명은 탈출했고, 9명은 도망치다 총에 맞아 숨졌으며, 나머지 35명은 몸에 돌이 매달리고 산 채로 득량만 바다 가운데서 수장당했다. 70여 년을 ‘빨갱이’로 몰려 숨죽여 살아오던 유족들이 2021년 12월 22일 선착장에서 원혼(冤魂)들에게 위령제를 올렸다.
장흥은 양반 지주 세력의 수탈과 일제와 외세의 침략에 맞서서 일어났던 동학 농민 혁명 최후의 전투와 활동이 있었던 지방이다. 해방 전후에는 장흥 사람들도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통일 국가 수립을 지향하였다. 내 고향 영천에서도 해방 후 10월 항쟁부터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적어도 1,200여 명의 민간인이 군경에 의하여 학살당하였다.
일제의 전쟁에 강제 징용되고, 식량을 공출당하여 삶의 기반이 무너진 민중들은 해방 뒤에 일제의 경찰과 관리를 그대로 등용하고 일제와 다름없는 수탈을 하며 남한 단독의 반공 국가를 수립하려는 미군정과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친일 지주 출신의 권력자들에게 강력히 저항했다. 미군정은 각 지역의 주민 자치 조직인 인민위원회를 해체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10월 항쟁과 제주 4·3 및 여순 민중 항쟁, 육이오전쟁이 연이어 일어나고 무려 100만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내가 사는 포항에서도 영일만에 있던 미국 군함의 함포사격으로 갯가 모래밭에서 순식간에 몇십 명의 피난민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희생되었다.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에 있는 밀라이박물관은 1968년 3월 16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마을에 세워져 있다. 미군이 헬기를 타고 도착하는 순간부터 주민들을 집에서 끌어내는 장면, 학살하는 장면, 집에 불을 지르는 장면, 한곳에 모아놓고 사살하기 직전의 장면, 우물에 빠뜨린 노인에게 총을 쏘기 직전 장면, 학살 작전을 끝내고 담배를 피우며 웃는 미군, 통역을 하는 남베트남 군인의 복잡미묘한 표정까지 어린아이부터 노인과 여성까지 504명의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현장을 기록한 미국 종군 기자의 사진들이 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박정희 정부의 베트남전 파병으로 우리나라는 경제 개발의 밑천을 벌 수가 있었지만, 희생도 컸다. 5천여 명의 전사자에 수많은 고엽제 환자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베트남 민간인 약 1만 명을 전쟁의 이름으로 학살하는 씻을 수 없는 죄업을 지었다. 베트남 마을의 ‘한국군 증오비’가 그날의 참상을 말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은 없다. 내가 다섯 살 무렵, 1968년 2월 12일 퐁니·퐁녓 마을에서 한국군에게 총을 맞고 가족을 잃은 지 55년이 지난 2023년 2월 7일에야 응우옌티탄(63)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하지만, 유가족의 피맺힌 절규가 오늘도 베트남의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을 말할 수조차도 없는 우리나라 한국의 군인들이 저질렀던 전쟁 범죄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뒤에 일제가 저지른 간도 참변,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이 죽창과 몽둥이를 들고 무고한 6,661명의 한국인을 학살한 천인공노할 범죄, 수백만의 청년들을 강제로 징용한 일, 숱한 소녀들을 끌고 가 성노예로 만든 일본군의 만행… 우리는 어떻게 제국주의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너무 모른다.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지 정말 모른다. 제국주의 시대와 냉전체제의 시기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대학살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근대의 찬란한 서양 문명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 사람과 아시아 민중의 고혈(膏血)을 먹고 피어난 것이다. 지구상에 같은 종을 학살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이성과 영성과 감성과 자의식을 가진 ‘신령한’ 동물, 인간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악한 동물이다. 성선설도 성악설도 잘못되었다. 인간 내면의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여실지견(如實知見)을 이루고서야 탐욕과 분노와 공포에서 벗어나 연민과 사랑과 평화의 마음이 일어나고, 세상은 지옥에서 정토(淨土)로 변할 것이다.
내년 정초에 베트남 다낭 공항에 내리면 나는 엎드려 사죄와 참회의 절을 올려야겠다. 그리고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 병사와 우애를 나누었던 뚜 히에 우[慈孝寺] 절을 찾아 한 심지 향을 사르리라. 스님은 베트남 전쟁의 불구덩이 속에서 1만 명의 사회봉사청년학교 학생들과 남쪽 정부도 북쪽 정부도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불교도 기독교도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어떤 이념도 내세우지 않으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베트남 민중들의 삶을 돕는 보살행을 하고, 미국도 프랑스도 한국도 원망하지 않고 오직 인류의 가슴을 정념(正念) 수행과 연기(緣起) 진리와 평화의 설법으로 적셨다. 또 틱 꽝 득 노스님이 탔던 파란색 자동차가 있는 티엔 무사[天姥寺]에서 타지 않고 남아 있는 스님의 심장 진신사리를 배견(拜見)할 것이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고도 후에[順化]를 적시며 억만년을 말없이 굽이쳐 흐르는 흐엉강[香江]을 자인탑(慈仁塔)이 높이 솟아 있는 석양의 언덕에 서서 오래도록 굽어보고 싶다.
*《포항문학》(1997)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수필시대》(2014) 신인상을 받았으며, 수필집 『눈 내리던 밤』(2017)이 있다. sunya91@hanmail.net
-작가정신 제45집(대구경북작가회의,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