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문(紫霞門) 밖/김관식
나는 아직도 청청이 어우러진 수풀이나 바라보며 병을 다스리고 살 수 밖엔 없다.
혼란한 꾀꼴새의 매끄러운 울음 끝에 구슬 목청을 메아리가 도로받아 얼른 또
넘겨 빽빽한 가지 틈을 요리조리 휘돌아 구을러 흐르듯 살아가면서 앞길은
열리기로 마련이다.
사람이 사는 길은 물이 흘러가는 길.
산(山)마을 어느 집 물항아리에 나는 물이 되어 고여 있다가 바람에 출렁거려
한 줄기 가느다란 시냇물처럼 여기에 흘러왔을 따름인 것이다.
여름 햇살이 얼름처럼 여물어 쏟아지는 과일밭,
새카맣게 그을은 구리쇠빛 팔다리로 땀을 적시고 일을 하다가 가을철로
접어들면 몸뚱아리에 살오른 실과들의 내음새를 풍기며 한번쯤 흐물어지게
익을 수는 없는가.
해질 무렵의 석양 하늘 언저리 수심가같이 서러운 노을이
떨어지고 밤 그늘이 덮이면 예저기 하나둘씩
초록별이 솟아나 새초롬한 눈초리로 은근히 속샐기며 어리석음을 흔들어
일깨워 준다.
수줍은 달빛일래 조촐하게 물들어 영롱히 자라나는 한 그루 향나무의
슬기로움을 그 곁에 깃들여서 배우는 것은 여간 크낙한 기쁨이 아니라서
스스로의 목숨을 곱게 불살라 밝음을 얘기하는 난낱 촛불이 열두 폭 병풍 두
른 조강한 신혼 초야 화촉동방에 시집 온 큰애기를 조용히 맞이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구름 속에 파묻혀 기러기 한백년을 이냥
살으리로다.
===[한국 대표 명시 2, 빛샘]===
김관식(金冠植, 1934년 5월 10일~1970년 8월 30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번역문학가이다.
호는 추수(秋水), 만오(晩悟), 우현(又玄), 현현자(玄玄子)이다. 본관은 사천(四川)이다.
충청남도 논산군 구자곡면 소룡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며 동양고전과 유학을 섭렵하였다.
충청남도 논산 강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립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와
사립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를 거쳐 사립 동국대학교 농과대학 농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서울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서울상고에 교사로 재직하던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연〉(蓮), 〈계곡에서〉, 〈자하문 밖〉을
내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미당 서정주가 김관식을 추천하였는데, 미당은 김관식의 동서이다.
이후 세계일보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60년 4.19 이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종로구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장면과 겨루었으나
낙마한 뒤 경제적인 궁핍에 시달리다 병을 얻어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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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옵니다.
비가 오는 날 창 밖을 보면
초록색으로 변한 산이 아름답습니다.
꽃과 풀잎과 나뭇잎에 매달린 수정처럼
맑은 빗방울이 반짝이는 모습은
사람의마음을 차분하게 합니다.
자하문 밖...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산마을이었던 고향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편한 휴일 되시고 건강하세요.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