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사는 국보며 보물, 문화재가 많은 도량이라
설명도 좀 장황하게 돼 있네요.
다 생략하시고 사진들 보며 추억에 젖어보심을 추천합니다. ^^
순례달은 2012년 3월 입니다.
=================================================
불법이 상주하는 곳은 이미 속(俗)이 아니다, 속리산 법주사/인드라망 제27차사찰순례기①
올 들어 다시 시작된 인드라망 사찰순례가 제대로 탄력을 받았다. 지날 달에 이어 이번 달도 대구에서만 46명이 출발했고, 순례지로 바로 오신 인천의 인라인님과 고향님, 구미의 터사랑님까지 모두 49명이 인드라망 27차 사찰순례를 다녀왔다. 순례지는 속리산 법주사와 문경 백화산의 보현정사, 운달산의 김용사 세 곳이다. 대구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라 한 번쯤은 다녀왔을 법 한데도 순례길이 이토록 달아오른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만도 하다. 그 답은 순례기 속에서 금방 찾을 수가 있다. ^^* 법주사 순례에 주어진 시간이 두 시간이라, 우리는 달리는 차 속에서 아침 예불을 올렸다. 법주사에선 법당 참배만 하고, 도량 구경(?)을 해야겠기에 그렇게 순서를 짰다. 대신, 오후에 참배할 보현정사에서 다함께 백팔배를 올리기로 했다. 속리산 휴게소에 내리자 산 봉우리들이 전날 내린 눈을 덮어쓴 채,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좀 차다싶던 날씨가 봄 속에서 이런 설경을 선물하니, 이 또한 덤으로 얻는 기쁨이려니, 제각각 카메라에, 폰에 설경을 담기 바빴다. 속리산 일대의 높은 산은 죄다 설산이다. 겨울에도 눈 구경하기 힘든 경상도 사람들, 오늘 복 터졌다. 드디어 도착한 법주사, 오랜 만에 순례에 동참한 재경 씨가 기분좋게 선두로 나섰다. 추울거라고, 미리 겨울옷들을 입고 가자고 했는데, 다들 잘 새겨들은 거 같다. 눈밭에 굴러도 끄덕 없을 폼들이다. 모두 목도리에 마스크에 모자까지 꺼내쓰고는 법이 머무는 도량을 향해 출발~~ 아무래도 대구보다는 북쪽이라서 그런지, 아님 산중이라 그런지 주변은 겨울풍경 그대로다. 바람결에 사르릉~ 지난 가을의 낙엽이 아직도 굴러 다닌다. "연보리님, 여기 좀 봐주소~" 어쨌거나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담아보려고 종종걸음을 치는데 뒤에서 누가 부른다. 같이 걷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한 장 담아달란 말씀, 일송님, 현몽님은 단짝이시다. 인드라망 순례는 이렇게 가족팀, 친구팀, 이웃팀이 모여 도반이 되곤 한다. 쌀쌀한 날씨 탓으로 걸음들이 빠르다싶더니 금세 나타나는 일주문, 그리고 차례로 나타나는 금강문, 그 앞에 속리산실기비가 서 있다. 실기비는 속리산의 내역을 기록한 비로,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썼다고 되어 있다.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본사로 70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다. 목탑인 팔상전과 더불어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용화전, 원통보전, 명부전, 능인전, 조사각 등 30여 동의 전각, 부속건물이 들어서 있다. 법주사는 553년 의신스님이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와 이곳 산세의 웅장함과 험준함을 보고 불도를 펼 곳이라 생각하고, 큰 절을 세워 법주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문화유산으로는 법주사 안의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팔상전(국보 제55호)·석련지(국보 제64호)·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이 있으며, 자연이 물려준 아름다운 경치와 바위들, 그리고 법주사 지역에 있는 역사 깊은 문화유산들이 어우러져 펼쳐져 있는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문화재청에서 옮김- ▲법주사 지정문화재 현황 국보3점, 보물12점, 지방유형문화재 22점이 가람 전체에 고루 산재해 있어 법주사는 그대로가 우리문화재 박물관과 다름 없다. 그리고 이 곳은 미륵신앙의 요람이라 불린다. ▲법주사 금강문, 소나무와 철당간지주 법주사의 금강문에는 금강역사 두 분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우람한 금강역사와 그에 비해 작고 고운 모습의 문수, 보현보살상은 묘하게 잘 어울렸다. 앞에는 보호용으로 보이는 그물망이 쳐져 있다. ▲금강역사와 사자를 탄 보현보살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금강문을 지나자 미륵회상에 잘 왔다며 금동미륵께서 반겨 주신다. 법주사 어디에서고 뵐 수 있는 커다란 모습의 미륵대불은 그동안 여러 번 옷을 갈아입으셨다고 한다.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을 처음 조성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됐다가,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고 한다. 1990년에는 붕괴 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다가 2000년 들어 원래 제 모습을 찾아주고자 금동미륵불 복원불사를 했으며, 이 때 3mm 두께로 황금을 입혔는데 모두 80kg의 금이 소요됐다고 한다. ▲법주사 천왕문 법주사의 금강문과 사천왕문 사이에는 또 하나의 문이 있다. 우뚝한 쌍둥이 설송 문에는 어떤 이름이 마땅할까? 미륵불 상주하시는 도솔천을 지키는 솔이니 '도솔문'이면 좋겠네. ^^* 와우~ 우리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는 법주사 사천왕이다. 이렇게 큰 천왕들이 계시다 보니 이곳의 천왕문은 다섯 칸 규모로 크게 지어졌다. 하늘은 높고 맑은데 가람을 둘러싼 산봉우리엔 눈이 희끗해 색다른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어느 전각부터 참배할까 하다가 천왕문 바로 가까운 팔상전에 올랐다. 국보제55호인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수리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벽면에 부처님의 일대기인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불린다. 건물 내부는 탑이다 보니 사리가 모셔져 있는 공간과 불상과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그리고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되어 있다. 요즘은 탑 내부에 법당을 지어 예배할 수 있는 곳이 더러 있지만, 그 옛날에도 이런 형식의 탑이 있었다니 놀랍다. 사리가 모셔져 있는 중앙을 한 바퀴를 돌았다. ▲법주사 팔상전-국보제55호 ▲법주사 팔상전 내부 팔상전 참배를 마치고 나오자 인천의 인라인님과 고향님이 보인다. 이름표를 달고 있고, 아직 아침9시 이른 시간대라 우리 식구들은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띈다. 한 달 만의 반가운 상봉으로 첫 기념사진을 남겼다. "하나, 둘, 서이~"가 없어도 모두 잘 웃는다. ^^* 봐야 할 것이 많아 눈에 띄는 곳마다 달려가 보고 싶지만, 입구쪽에서 시작해 뒷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미륵대불 대좌 아래의 공간은 법당과 작은 박물관으로 되어 있다. 통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동안 볼 것이 참 많다. 미륵대불 개금불사를 하신 분들의 원불이 모셔져 있고, 그 옛날 청동미륵불 복장에 넣었던 복장물도 전시되어 있다. 미륵대불께서 몇 번의 새 옷을 갈아 입는 동안 발견된 복장물이다. 외에도 법주사와 관련된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법주사 전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참배할 수 있는 법당이다. 참배를 마치고 보니, 언제부터 앉아 있었는지 일송님, 현몽님이 정에 들어 있다. 이 좋은 도량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잖아, 우리는 기와불사 대신 이 곳에서는 작은 정성이지만 금동미륵대불 개금불사에 동참했다. 다음은 팔상전과 대웅보전 사이의 마당에 있는 국보제5호인 쌍사자석등을 보러 갔다. 직접 본 것은 처음이지만, 워낙에 많이 알려져 있는 석등이라 친근하다. 높이 3.3m에 이르는 팔각의 석등인데 떡~하니 보호각까지 갖추고 있다. 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높이 치켜들어 상대석을 떠받치고 있다.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제5호 "와우~ 저 근육질 몸매 좀 봐~" 워낙에 고양이과 동물을 편애하지만, 이 사자들은 정말 멋있다. 신라 때부터 저러고 있었겠지만, 전혀 힘들어 보이질 않는다. ^^* 풍성한 갈기털이며, 떡 벌어진 가슴근육, 빵빵한 궁댕이(현몽님이 옆에서 '어디가 빵빵하냐'며 반론을 편다), 굳건히 딛고 선 종아리며 발바닥, 앞으로도 십만 년은 끄덕없겠다. 오, 저 귀여운 꼬리털~ 수많은 전각이며 부속 건물들이 자리했지만 마당 또한 넓어서 어디서든 인드라망 가족을 마주치게 돼 좋다. 멀리 보이는 님들, 하얀 이름표를 보니 전부 인드라망 식구들이다. 이곳에서는 혼자 뚝 떨어질 일이 없어 좋다. 마주칠 때마다 기념사진 한 장씩을 남겼다. ^^* 우리가 얼마나 일찍 도착했던지, 한참 도량을 구경하고 있는데 법주사에서는 사시예불을 시작하려나 보다. 부처님께 올릴 마지를 받쳐든 스님들이 전각을 향해 여법한 걸음을 하신다. 이 곳에서는 모든 전각에서 동시에 사시예불을 올리고 있었다. 예불에 동참하고 나면 나머지 문화재들은 볼 수가 없어 미리 버스법당에서 올린 아침예불로 대신하고, 우리는 계속 도량을 돌기로 했다. ▲법주사 사천왕석등 대웅전 앞으로 가니 사천왕석등이 서 있다. 이 석등 역시 쌍사자석등처럼 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전형적인 신라 석등의 모습이라는데, 빵빵한 사자를 보고온 탓인지, 어째 날씬해 보인다. 등을 지키는 분들은 당연히 사천왕 네 분이다. ▲법주사 대웅보전과 사천왕석등, 그리고 순례에 처음 동참한 두릅나무님 이 구역에선 제법 많은 분들을 마주쳤다. 어머님을 모시고 이번 순례에 동참한 두릅나무님, 인드라망 묵은 회원인 두릅나무님은 순례가 처음이지만, 어머님은 지난해 설악산 봉정암도 같이 가셨고, 2월엔 대흥사며 일지암, 미황사 참배까지 함께한 단골순례객이시다. 이렇고 서고 보니 대웅보전 지킴이들 같다. ^^* 대웅보전 왼쪽으로 명부전과 삼성각 등이 있고, 그곳에서도 예불이 올려지고 있었다. 대웅보전 뒤로 돌아가자 똑 같이 닮은 효련이 모녀가 눈밭을 걷고 있다. 올 겨울 대구에선 눈을 밟지 못했는데, 삼월말의 눈밭이라, 저기 발자국들, 모두 인드라망에서 낸 것은 아닌지?? 저기 앞산의 눈도 한 번 밟아 봤음 좋겠다. ^^* 지나온 곳은 그새 학습이 됐다. 저기 보이는 곳은 팔상전과 쌍사자석등이다. 이제 되돌아 나오는 길이다. 금강문 좌우에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고려 초에 조성됐다고 하며, 조성 당시에는 16m 높이였다고 한다. 그뒤 대원군이 당백전을 만들기 위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을 징발할 때 법주사 용화전의 미륵장륙상과 이 철당간 역시 징발 당해 사라진 것을, 1910년 께 22m 높이의 철당간으로 확대 복원했고 1972년에 보수해 지금에 이른다고 안내되어 있다. 당간은 절의 행사나 법회 등을 알리는 안내문을 세우는 깃대로서 찰주(刹柱)라고도 부르며, 지주는 그 당간을 세울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버팀돌 부분을 말한다. 흔히 보면 당간은 없고 지주만 남아 당간지주라 하는데 그 이유는 당간이 흔히 목재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수명이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앞에서-사진:범심회장님 당간만큼이나 키가 커 보이는 미륵대불 앞을 다시 지났다. 희견보살상을 보러가기 위해서다. 이때쯤, 팔상전 앞에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아, 늘 그렇듯이 모두는 아니다. 세어보니 49명 중 29명이 찍혔다. (아래 사진에 없는 분들은 법주사 가신 거 절대 인정 못해드림 ^.^) 법주사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은 우리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상이라고 한다. 이 보살상은 두툼한 판석과 커다란 그릇을 머리에 이고 있다. 이 상은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 등장하는 희견 보살을 조각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희견 보살은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 스스로 몸과 팔을 불태워 소신 공양을 올린 보살이다. 법주사 홈페이지의 설명문을 보면, 이 입상은 가섭존자가 미륵불께 전할 가사와 발우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 '가섭봉발가사탑'이라 불려야 한다는 이견이 있다고 한다. 가섭 존자는 석가모니불 입멸 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 말고 세상에 남아 가사와 발우를 미륵불께 전하라는 석가여래의 교지를 받은 분이다. 미륵도량인 법주사에 더욱 잘 어울리는 견해이기도 하다. 어쨌건 지금은 희견보살상으로 불리는 매혹적인 상으로 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이렇게 보니 더욱 가섭봉발가사탑처럼 보인다. 저기 미륵불께서 가사와 발우를 받아 드시는 날, 가섭존자는 편히 쉬게 되실테지. ▲법주사 적멸보궁과 석연지,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 아직 남은 곳이 많다. 능인전 앞에는 국보제64호인 석연지(石蓮池)가 있다. 높이 200㎝, 전체 둘레 665㎝에 이른다는 석연지는 어떠한 용도로 쓰였는지는 불확실하다고 적혀 있다. '연꽃 모양으로 조성된 돌로 된 연못'이라는 뜻에서 석연지로 불리고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연꽃문양과 구름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윗쪽 난간 모양에는 천인상이 새겨졌다. 조성연대는 신라시대로 추정된다고 안내문에는 적혀 있다. 다음은 법주사 석조이다. 이 역시 신라시대에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길이 446센티미터, 폭 240, 놀이 94센티미터의 대형 수조이다. 한때 3천 명의 스님들이 모여살던 곳이라고 하니, 큰 규모가 이해가 간다. 이 석조는 3천명 스님들이 사용할 물을 저장했던 장소라고 한다. ▲법주사 석조 ▲법주사 석조와 뒷편의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법주사 세존사리탑이 봉안된 곳이다. 사리탑은 고려 공민왕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문이며 담장이 참 예쁘다. 보궁 법당에 들러 뒷편 보탑을 향해 참배를 했다. 다른 적멸보궁과 마찬가지로 불상이 놓일 자리엔 보탑을 향한 유리문이 나 있고, 빈 좌대만 놓여있다. 탑돌이를 위해 보탑으로 갔더니 우리 순례단이 탑돌이 중이다. 오늘 동참한 새싹불자 네 명이 빠짐없이 다 있다. 그 앞뒤로 목정님과 초록빛님이 섰다. 사찰순례를 하다보면 이런 공간이 있는 사찰이 더러 있다.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 한없이 아늑한 곳, 다른 어느 공간보다도 오래 머물게 되는 그런 장소. 길상사의 극락전, 봉정사의 극락전 마당과 영산암, 청암사의 극락전 등이 그랬다. 적멸보궁 담장에 등나무 줄기가 담쟁이 덩굴처럼 붙어 있다. 담 쪽의 줄기는 용의 몸 같고, 담장 위의 뿌리는 꼭 용의 발톱 같다. 이건 아마 잎이 진 겨울에나 드러날 등나무의 진면목이 아닌가 싶다. 보궁을 지키는 든든한 지킴이, 등용이다. 참배를 마치고도 한참을 머물렀던 보궁 마당이다. 자잘한 에피소드들은 정모 사진방에 따로 올려야 할 것 같다. ^^* 다시 또 미륵대불 옆을 지나 철확을 보러 갔다. 금강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곳인데 우리는 왼쪽으로 진입하다 보니 못 보고 지나쳤던 곳이다. 철확의 규모도 엄청나다. ▲법주사 철확 이 쇠솥은 높이 120㎝, 지름 270㎝, 두께 10㎝의 규모이다. 본래는 강원 옆 공양간 주위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안내문은 적고 있다. 3000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장국을 한 번에 끓일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솥 중에서 제일 크다. 가끔, 자그마한 사찰이나 폐사지에 남아 있는 대형 유물들을 보고 있자면, 그 옛날의 영화와 비교돼 좀 쓸쓸해지곤 하는데 이곳은 지금도 예전 못지않은 대가람이다. 참 다행한 일이다. ▲법주사 철확과 경내 모습 이제 마애불만 친견하면 될듯 싶다. 예쁜이들 마주쳤으니 또 한 장! ^^* 와우~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이 이웃해 계시다.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은 능인전 옆의 암벽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불상으로서 보물 제216호이다. 의상(倚像)은 의자에 앉아 있는 상을 지칭하지만 이곳에선 활짝 핀 연꽃 속에 앉아 계시다. 부처님은 미륵불로 불린다. 마애불 왼쪽 아래에 작은 조각이 있었는데, 법주사 창건주인 의신조사께서 인도에서 경전을 말에다 싣고 오는 모습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시계를 보니 11시 20분 전이다. 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려면 십여분 걸릴테고, 시간을 어지간히 맞췄다. 자세히 보노라고 봤지만, 꼭 둘러봐야지 했던 곳 중에서 분명 빠진 곳이 있을 것 같다. 그래야 다음에 또 올 수 있을테니, 그런 건 걱정거리도 못 되네. 해는 중천에 떴지만 산의 눈은 아직 그대로이다. 맑고 차고 밝았던 날, 금동미륵불이 계셔 더욱 환했던 곳, 俗離山 法住寺, 속(俗)엔들 법이 머물지 않으랴만, 법주사는 그렇게 속을 여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법이 상주하는 곳에 속은 이미 없다는 표현이 더욱 합당할듯 싶다. 우리는 이제 현공스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문경의 보현정사로 간다. -인드라망 제27차 사찰순례-법주사편 |
뽕잎도 나물로 먹는군요.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맛이 어떤지 후기 올려보세요. ^^
@演菩提(연보리) 야들야들 맛이 기가차요.
어릴때 뜯어서 차로 만들어 마시는데 올핸 나무를 누가 많이 잘라버려서 ....
당뇨에 특효라니 예빙차원에서 매년 먹어요.
맛난 저녁해서 드셔요 진여화님
@지현향(知炫香) 아하~~
입력해둡니다.
초등동기들캉
지난 주 일욜
다녀왔어요
출석부로도
만나니
새롭네예 ㅋ~
무주님 친구분돌 멋 쟁이 들 이네요
무주님. 방가워요
오, 사진연출 좋습니다.
@송현
유부녀
유부남
공통점이라곤
초등동기들 ㅋㅋ
@가을소나타 뵌지가
오래네예 ㅜㅜ
@演菩提(연보리) 휙휙
지나가며
대충대충
엄벙덤벙
ㅋ~
오락 가락 하는 비 좀 많이 내려주지 먼지 잘만큼 왔네요 속리산 몇번은 같다온덴데 울님과의 순례길이 기억에 많이 남 네요
땅을 흠뻑 적시는줄 알앗는데
고구마 고랑만들연서보니 약간 젖어든군요
그래도 고마운 비 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속리산. 법주사를. 꼭 가보고싶었는데. 불참이었지요
많이. 아쉬웟어요
송현님. 편한밤요
모두 추억이 많은 법주사로군요.
늦은 댓글 답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딸내미 왔다가보내고
비빔국수 해먹고나니 이시각입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비빔국수 침 고입니다
연휴라고 부모님께 오셧군요
딸램보내고나니. 마음도. 허전하시겠습니다
편한밤요
울집 딸램도 와있습니다.
호요일 첫 직장 첫출근이라 저까지 긴장되네요.
내일 새벽 올라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풍경님.^^
저는. 지금. 달성구지서. 출석합니다
늦은. 출석이지만. ㅡ
사위랑. 이런. 예기 저런예기ㅡㅡㅡ
오랜만에. 소주. 한잔하면서. 내마음속. 깂숙히. 숨겨놓은 마음. 한자락 풀어놓고ㅡㅡㅡㅋ
눈물도 찔끔ㅡㅡㅡ
아이고~~~!!
이마음. 누구. 알리요
낙동강. 수련원. (교육청 주체로) 3대가 해야한다기에ㅡㅡㅋ
늦은. 출석입니다
교육청 프로그램 동참하셨군요.
사위와 속깊은 얘기 나누셨다니 뭔가 후련한 맘도 있으셨겠어요.
남은 시간도 잘 지내다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