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정용철 (서강대교수,체육시민연대집행위원) | | 2018년 3월 8일 오전 10시. 상암 MBC 표준 FM라디오 녹음실을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스포츠심리학자 정용철입니다. 저는 평창동계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일부 국가대표 선수들의 멘탈코칭을 맡고 있습니다. 패럴림픽 선수들은 한 가지 이상의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는데요. 선수들과 함께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장애를 딛고’ 보다는 ‘장애를 품고’라고 말하는 걸 좋아합니다. 작은 차이 같지만 내 약점을 밀어내기 보단 인정하고 끌어안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딛고 보다는 품고, 배척보다는 인정 삶에 힘을 더하는 작은 시작입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 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 분량의 라디오 공익광고 녹음을 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개막하고 난 후 일주일 내내 방송될 내용이라고 해서 안 할 수가 없었다. 일곱 꼭지를 녹음하는데 딱 삼십 분 걸렸다. 녹음실을 나서는데 작가가 ‘교수님 방송체질이셔요!’란다. 살짝 우쭐한 기분이 들지만 애써 표정관리를 한다.
오후 10시. 대학원 저녁 수업을 마치자마자 운전대를 잡는다. 목적지는 패럴림픽선수단이 머무는 알펜시아. 지난 일 년 여 동안 이 길을 수도 없이 오갔다. 그동안 준비해온 패럴림픽이 내일 개막이라니 믿겨지지 않는다. 선수에게서 늦은 시간 전화가 온다. 막 끝난 평창올림픽에 참가했던 스키선수다. 올림픽이 끝나도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좀 심각한 사안이라서 길게 통화했다. 긴 통화를 마치니 어느새 평창이다. 12시가 넘었고 뒤늦게 어제가 결혼기념일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아차차! 이미 늦었다.
2018년 3월 9일 패럴림픽 개막식이 있는 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디데이다. 파라아이스하키 팀 주장 한민수 선수가 오후 내내 분주하다. 개막식 성화 봉송을 맡았는데 등에 성화를 꼽고 밧줄을 타고 올라간단다. 헬멧 앞에 두 딸의 이름을 써서 붙이면 혹시 방송에 나올지 싶어 라커룸에 앉아 싸인펜으로 정성스레 이름을 적고 있다. 속으로는 내일이 예선 첫 경기인데 너무 흥분하면 혹시 경기력에 영향을 줄까 신경이 쓰였지만 내색하지는 않는다.
선수촌 카페테리아에 앉아 개막식을 보고 있다. 조금 전 한국대표팀은 숙소인 101동 앞에 함께 모여 구호를 외치며 개막식장으로 떠났다. 내일 경기가 있어 개막식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나라 선수들이 드물게 보이지만 선수촌 전체가 텅 빈 것 같다. 선수촌 카페테리아에서 진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뽑아 앉았다. 한민수 선수의 성화봉송을 잘 보려고 스마트폰을 옆으로 눕힌다. 드디어 성화봉송, 개막식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아! 한민수 선수에게 성화를 전해 주는 선수가 재림이구나!’
시각장애인 알파인 스키 선수 양재림 선수를 처음 만난 건 2016년 초여름이었다. 20년 차 멘탈코치인 내게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시각장애를 가진 선수를 컨설팅 해 본 경험이 없어 첫 세션에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소치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려 했는데 아깝게 4위를 하는 바람에 평창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2016년 1월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해 평창을 향한 메달 가능성을 높였지만 바로 그 대회에서 넘어져 부상을 당했다. 지루한 재활을 하던 즈음에 장애인 스키협회를 돕고 있는 대학동창의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양재림 선수는 내가 만난 선수 중 주위에 대한 이해가 가장 뛰어났다. 눈이 안보여 불편한 대신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 뿐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들까지도 매우 세세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길러진 듯하다. 이번 대회 세 종목에 출전하고 그중에서도 마지막 날 출전하는 회전 경기에 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대기업의 공익광고에 ‘연결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가이드인 고운소리와 함께 출연해 많이 알려졌다.
양재림 선수와 고운소리 가이드에게 성화를 건네받은 한민수 선수가 등에 성화를 꼽고 상기된 표정으로 등정 준비를 한다. 눈발이 살짝 휘날려 밧줄에 의지해 가파른 성화대를 오르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아까 꾹꾹 눌러 쓴 딸 이름이 스크린에 언뜻 스친다. 마침내 꼭대기에 다다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관중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고 있다. 한민수선수로부터 성화를 건네받은 마지막 성화주자는 국가대표 휠체어컬링팀의 스킵 서순석 선수다. 2주 전 이천훈련원에서 그를 만났을 때 패럴림픽을 앞두고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올 초에 컬링의 본향이라 불리는 스코트랜드에서 열린 <브리티시 컵>에서 스코트랜드를 6-3 으로 꺾고 우승했다. 성화를 받아든 그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이 무표정이다.
비장애인 선수들은 한 가지 운동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장애인 선수들은 오히려 여러 스포츠를 섭렵하거나 운동 외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양재림 선수는 미대를 졸업해 동양화를 그린다. 이번 올림픽을 위해 자신의 그림을 담은 머그컵을 만들어 경기장에 찾아온 팬들에게 선물했다. 한민수 선수는 과거에 역도를 했고 지난 여름에는 전국장애인체전에 조정선수로 출전했다. 파라아이스하키의 장동신 선수도 국가대표 펜싱선수고 이주승 선수도 휠체어 럭비계에서 잘 알려진 스타플레이어다.
2018년 3월 10일 일본과 파라아이스하키 예선 첫 경기가 있는 날이다. 선수들의 표정이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년 12월에 열린 나가노 컵에서 일본에 크게 이긴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부담은 없다. 다만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세세하게 챙겨야 한다. 우선 오늘 최종 엔트리에서 빠지는 선수를 챙긴다. 최종 선발된 국가대표는 열일곱이지만 무장을 하고 아이스링크에 나서는 선수는 열다섯이다. 두 명은 정장을 하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매번 감독의 판단에 따라 최종 엔트리가 결정되는데 오늘은 탈북자 출신으로 최초 장애인국가대표 최광혁 선수가 빠진단다. 함경도 출신으로 13살 때 열차에서 떨어져 왼쪽 발목을 잃었다. 한일전만큼은 꼭 뛰고 싶어 하는 걸 알기에 마음이 쓰인다. 한 번 내려진 감독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따르지 않는 선수는 없다. 그러나 얼마나 흔쾌히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체 팀 분위기에 영향이 미친다. 이를 최소화하는 게 나의 일이다. 작은 체구에 운동을 시작한 지 4년밖에 안 되었지만 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만큼은 팀 내 최고다.
한일전 4-1 승. 산뜻한 출발이다.
대회 첫 금메달을 예상했던 7.5km 바이애슬론 좌식 종목의 신의현 선수가 5위로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종목 세계랭킹 1위로 지난 2월 핀란드에서 열린 세계장애인 노르딕스키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기에 모두들 기대가 컸다. 사격실력이 출중한 선수인데 두 발을 놓쳤다고 한다. 오후 늦게 휠체어컬링 협회 회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신의현 선수 이야기를 꺼내면서 혹시 저녁때라도 만나 줄 수 있냐는 부탁이다. 선수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했더니 잠시 후 신의현 선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좋겠다고 했단다. 올림픽 전에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선수를 올림픽 같이 큰 대회에서 갑자기 만나는 건 위험하다. 앞으로 남은 경기의 선전을 기원한다.
2018년 3월 11일 예선 두 번째 경기 체코전이 있는 날이다. 전력상 우리나라가 우세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기가 잘 풀려야 할 텐데.
우려했던 대로 답답한 경기 끝에 3피리어드 종료 직전 골을 허용, 2-2 동점으로 연장전에 돌입한다. 2피리어드가 끝나고 선수라커룸을 깜짝 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관중석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파라아이스하키선수들과 영부인은 이미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다. 며칠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 ‘우리는 썰매를 탄다’ 시사회에서만나 선수들과는 구면이다. 경기 전 서광석 감독이 혼잣말처럼 ‘이럴 때 영부인이 한 번 오시면 선수들 사기가오를 텐데...’라고 하기에 협회에 요청을 했더니 거짓말처럼 15분 만에 연락이 오고 방문이 성사되었다. 라커룸에서 선수들과 포옹하면서 선수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연장전은 서든데쓰 형식이다. 누구라도 먼저 골을 넣는 팀이 이긴다. 연장전 경기 시작 13초 만에 에이스 정승환 선수가 그림 같은 골을 넣는다. 빙판 위에 메시라고 불리는 최고의 선수다. 별명이 로켓맨으로 순간적으로 얼음을 치고 나가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로 알려져 있다. 정승환 선수를 비롯해 모든 선수들은 빙판 위를 뒹굴고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한다. 이제 4강 진출이 유력해졌다.
2018년 3월 12일 내일 있을 미국전을 대비해 프레스센터를 빌려 전체 팀 미팅을 한다. 제목은 ‘지지 않는 법.’ 세계최강 미국팀을 맞이하는 대표 팀의 마음가짐이다. 한골도 안 먹으면 지지 않을 것이고 어제 체코 전처럼 연장까지 가면승산이 있다는 거다. 마라톤을 하는 작가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이란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선수 한명씩 돌아가면서 내일 있을 미국전에 대한 결의를 다지는데 메인 골리 유만균 선수가 울컥했다. 어제 체코 전에서 마지막 골을 내준 게 미안하고 결국 이겨준 게 고맙고 그랬을 거다. 선수들도 그의 마음을 읽는다. 미팅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광혁이가 만균이를 툭 치면서 ‘얼레리 꼴레리’하고 도망간다. 휠체어로는 따라 갈 수 없는 속도다. 만균이가 이게 다 나 때문인 양 눈을 흘긴다.
2018년 3월 13일 미국전에서 크게 짐. 8-0. 지우고 싶은 날.
2018년 3월 15일 준결승전. 7-0. 캐나다와의 경기는 늘 힘들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정승환 선수가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답하다 눈물을 흘리는 영상을 봤다. 캐나다를 이기고 결승에 오르는 장면을 수 백 번, 수 천 번 상상하면서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그에게는 이 순간이 오래된 미래였던 거다. 아쉬움에 인터뷰를 중단하고 돌아서 눈물을 닦는다. 영상을 보면서 함께 울었다.
저녁 때 오랜만에 길게 양재림 선수를 만났다. 정선에서 경기를 치루기 때문에 새벽에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간단히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짧게 십분 정도 이야기 하지만 경기장까지 따라가지 못해 늘 미안하다. 아직까지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실망이 크다. 소치 때보다도 성적이 저조하다. 마지막 날 있을 주종목인 회전경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메달 욕심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2018년 3월 17일 이태리와의 동메달 결정전. 아침부터 선수촌에 긴장감이 맴돈다. 어제 밤늦게 까지 선수들을 만났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선수들이 여럿이다. 이태리는 까다로운 팀이다. 지난 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기고 있다 역전패 당한 적이 있어 더더욱 마음이 안 놓인다.
팽팽한 경기가 계속된다. 2피리어드까지 0-0. 한 점 싸움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3피리어드 3분 18초. 정승환 선수가 빠른 돌파에 이어 골문 앞으로 강하게 퍽을 때린다. 장동신 선수가 바로 그 순간 골 앞을 지나고 있었고 썰매 날에 맞은 퍽은 귀중한 한 골을 선사한다. 강릉하키센터를 메운 7500명의 관중이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흥분한 모습이 스크린에 비춰진다. 이제부터는 지켜야 한다. 메인골리인 유만균 선수 대신 들어간 이재웅 선수가 잘 막아주고 있다. 2017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투창과 원반 종목 2관왕출신이다. 어린 나이에도 침착하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경기를 치루고 있다. 오, 사, 삼,이, 일, 관중 모두가 한 목소리로카운트다운을 한다. 부저가 울리고 모두 빙판 위에 널브러져 승리의 기쁨을 나눈다.
경기 직후 경기장 한 가운데 둥글게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고 대형 태극기를 펼친다. 모두 목이 터져라 무반주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펑펑 울었다.
경기 후 이태리 선수들과 눈을 맞추면서 서로를 격려하는데 한 노장선수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그들도 정말 이기고 싶었구나. 승자의 환희는 늘 패자의 눈물을 가리고 이 순간 가장 뼈아픈 심정을 경험하고 있는그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그 날 저녁 코리아 하우스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마련한 패럴림픽 대표팀을 위한 만찬이 있었다. 거의모든 종목 선수들이 다 모였다. 오늘 신의현 선수가 그렇게 고대하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파라아이스하키도 값진 동메달을 땄다. 같은 날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해 4위를 한 휠체어컬링팀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고 같은 자리에 있다. 아픈 패배를 하고 동료 선수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는 서순석 선수가 보인다. 내 마음도 아프다.
2018년 3월 18일 평창 패럴림픽이 끝났다. 폐막식이 있던 마지막 날 아침 잠깐 망설였다. 파라아이스하키 결승전 후에 있을 동메달 수여식과 양재림 선수의 마지막 회전 경기시간이 겹치기 때문이다.
파라아이스하키 선수단에겐 미안하지만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빛나는 자리보다는 꼭 필요한 자리로 가는 게 맞겠지. 새벽에 선수촌에서 조용히 나와 정선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스하키팀 감독과 스태프 그리고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쪼그려 앉아 글을 쓰며 울다웃다 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로 문자를 마무리하고 버스에서 내린다. 바람이 문득 따스해졌다고 느낀다.
에필로그 양재림 선수는 그 날 마지막 회전경기를 7위로 마감했다. 이번 대회 출전 종목 중 가장 좋은 성적이고 마지막 이벤트에서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었기를. 양재림 선수의 화려한 재림을 기대한다.
* 이 글은 2018 [스포츠과학] 여름호 특집 // 평창올림픽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에 실린 글로 공유하고자 올립니다.
|
|
| |
| 스포츠한국, 2018,7,10. [산적한 제도개선,체육회는 무얼하나?] | |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한국 체육계가 좌표를 잃고 포류하는 모양새입니다. 든든한 재정 젖줄 역할을 자임했던 큰 기업들이 하나 둘 체육에서 손을 떼고 있고 각 종목마다 반목과 불화의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60개 회원종목단체를 아우르는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지만 정작 체육회는 얽힌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체육회가 헝클어진 체육계를 수습하기 위해선 산만한 조직을 추슬러 도처에 흩어진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게 시급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체육계의 혼란은 제도적 허점이 야기한 문제가 태반이라는 게 공통된 진단입니다. 전 정권이 무리하게 추진했던 ‘관치체육’의 그림자가 졸속으로 처리한 제도와 맞물리면서 큰 혼란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보장할 수 있어야 바람직한 제도입니다. 지금 체육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몇 가지 제도는 이미 출발부터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웠던 게 사실입니다. 체육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는커녕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졸속으로 만든 제도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도마 위에 오른 체육계의 제도개선 사안은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째는 임원의 임기 제한 문제입니다. 이는 체육단체의 사유화를 막기위한 제도로 한편으로는 체육 개혁에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반대하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체육회 정관에는 임원의 임기를 “1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 조항의 해석은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임원 임기를 두 차례로 제한한다는 게 체육회의 해석이지만 글자그대로 연임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면 다양한 해석도 가능해 이 기회에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임원의 임기제한 조항과 관련해 저변이 얇은 종목의 특성을 고려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종목은 임원 풀(Pool)이 한정돼 임원의 임기 제한 규정을 지키다보면 집행부 구성 자체가 힘들다는 게 체육계의 볼멘소리입니다.
두 번째는 불합리한 선거인단 제도입니다. 종전 대의원 선거방식은 재적의원 과반수 참석을 통해 성원(成員)을 충족시킨 뒤 출석대의원 과반수 이상의 득표로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뀐 선거인단 제도는 다양한 체육주체들의 선거 참여에만 신경쓰면서 당선 요건에서 투표참가율이라는 핵심사항을 빠트리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현행 제도에선 100명이상 300명이하의 선거인단만 구성되면 선거가 유효하며 유표투표 중 다득표자가 당선되도록 선거규정이 바뀌었습니다. 최악의 경우 100명이 넘는 선거인단 구성 후 단 3명이 투표에 참여해 2표를 얻더라도 당선되는 상식밖의 케이스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허점은 벌써 몇몇 단체 회장 선거에서 여지없이 드러나 체육계의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는 전임 집행부의 일괄사퇴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새 수장이 보궐선거로 당선된 뒤 전임 집행부가 사퇴를 하지 않고 발목을 잡는 ‘몽니 부리기’가 허다해졌습니다. 종전에는 전임 집행부의 일괄사퇴가 불문율처럼 통용됐지만 임원의 임기 제한 조항 탓인지 자리를 지키는 게 새 풍속도로 자리잡았습니다. 보궐선거에서 새 회장 선출과 함께 전임 집행부의 임기를 종료시키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은 귀담아둘 만합니다.
회장 탄핵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대의원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체육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 중 하나입니다. 종목별 마피아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회장을 툭하면 탄핵으로 몰아붙이는 통에 체육계가 어지럽습니다. 이번 기회에 협회의 행정 안정성을 고려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과거에 폐지됐던 중앙대의원의 부활도 한 번쯤 고려해볼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체육회는 그동안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똑같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선제적 대응을 펼치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는 게 따가운 비판의 한결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매번 되풀이되고 있는 체육회의 관행적 실수는 치열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탓이 큽니다. 적어도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 제도개선 사안은 슬쩍 눙치고 넘어가서는 안될 문제라는 걸 체육회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68&aid=0000403067
|
|
| |
| 경향신문, 2018,7,12. [엘리트스포츠의 ‘역사’ 태릉선수촌, 철거 위기 넘겼다] | | 태릉선수촌이 철거 위기를 벗어나 제자리를 지키며 한국스포츠의 역사를 이어가게 됐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의 완전 복원과 우리 시대 삶의 소중한 유산인 태릉선수촌 존치를 둘러싼 난제는 선수촌 건물 일부 보존의 ‘타협안’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입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1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근대문화재분과, 사적분과, 세계유산분과 합동 회의를 열고 체육사적으로 상징성, 장소성이 있는 승리관, 월계관, 챔피언하우스 등 건물 3동과 운동장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향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의 의견을 듣고 이를 토대로 후속 절차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태릉선수촌은 1966년 6월31일 국가대표 훈련시설로 출범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이 건립한 이곳은 엄연한 문화재터였습니다. 조선왕릉인 태릉, 강릉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고 국가대표선수촌이 진천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선수촌 철거는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한국 엘리트스포츠의 산실을 지키려는 노력은 체육회가 2015년 문화재청에 태릉선수촌을 근대문화재로 등록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태릉선수촌 존치를 위한 노력은 서바이벌 게임과도 같았습니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문화재 위원들의 엄정한 잣대는 체육계의 애간장을 녹였습니다. 수백년 문화유산을 체육시설이 짓밟았다는 ‘원죄’가 곱지 않았고 세계문화유산 복원이라는 명분도 분명했습니다. 문화재위원회 3개 분과 중 호의적인 곳은 근대문화재분과뿐이었습니다.
2016년 문화재위원회가 태릉선수촌 문화재 지정 결정을 일차 보류하면서 대한체육회는 ‘살아남기’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습니다. 문화재 분야 권위자를 중심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조언을 듣고, 문화재위원들의 태릉선수촌에 대한 인식제고를 위해 애썼습니다.
스포츠계에서 태릉선수촌 존치에 안도하는 것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한국스포츠사에 남을 굵직한 성과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증거할 현장을 보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서려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도전, 열정, 환희, 애환, 땀과 눈물 등 무형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국가대표다. 태릉선수촌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스포츠정신을 일깨우는 곳”(축구 차범근), “운동하는 여성, 독립된 여성으로 살아온 건 태릉선수촌이 있었기 때문”(농구 박찬숙), “유도는 제 종교이며, 태릉선수촌은 신성한 전당”(유도 하형주), “오로지 꿈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던 순간을 태릉선수촌은 기억하고 있을 것”(탁구 현정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양 1, 2 기술이 어떻게 나왔는지 개선관은 알고 있을 것”(체조 양학선).
영원한 마음의 고향 태릉선수촌에 남을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들의 목소리입니다.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32&aid=0002881521
|
|
| |
| 스포츠동아, 2018,7,13. [월드컵 결승전은 이민자 가정 vs 난민 출신들의 맞대결] | |
2018월드컵 결승전은 난민생활을 했거나 이민자가정 출신의 선수들이 만드는 무대입니다. 통산 2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프랑스 선수단은 23명 엔트리 가운데 21명이 이민자가정의 후손입니다. 15명은 아프리카 출신입니다.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의 아버지는 카메룬 국적, 어머니는 알제리 사람입니다. 벨기에와 4강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수비수 사뮈엘 움티티는 카메룬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프랑스로 건너왔습니다. 팀의 리더 앙투안 그리즈만은 아버지가 독일, 어머니가 포르투갈 사람입니다. 폴 포그바는 기니에서, 은골로 캉테는 말리에서 프랑스로 각각 이주해왔습니다.
지단~앙리~비에라로 상징되는 1998년 우승팀 ‘뢰블뢰’에는 12명의 선수가 이민자가정 출신이었습니다. 이들은 모국의 문화를 새로 정착한 프랑스의 축구문화에 결합시켜 아트사커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번 대표팀은 선배 이민자출신 선수들이 만들어놓은 예술의 토대에 스피드를 더했습니다. 초원을 달리는 맹수를 연상시키는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의 스피드에 상대팀은 허물어졌습니다.
크로아티아대표팀의 애칭은 ‘불덩어리’입니다. 16강전부터 시작해 3경기 연속 연장전까지 치르는 대혈투 속에서 선수들의 투지는 빛났습니다. 몇몇 선수들은 발을 절룩거리면서도 감독에게 교체사인을 내지 않았습니다. 3경기 모두 먼저 골을 허용하고도 따라붙은 투지와 열정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축구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국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 유럽의 화약고였던 유고에서 내전의 소용돌이를 경험했습니다. 팀의 리더 루카 모드리치는 6살 때 세르비아 민병대들에 쫓겨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를 아꼈던 할아버지는 당시 민병대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며 한때 힘든 생활도 겪었습니다. 좌절할 수도 있었지만 모드리치는 오직 축구만이 힘든 현실을 바꿔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공을 차며 그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당시의 쓰라린 기억을 공유했습니다. 프랑스의 다양성과 반대되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뭉쳤습니다. 위기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마침내 첫 월드컵 우승에 도전합니다. 비록 몸은 만신창이지만 이들은 몸을 지배하는 정신의 힘을 믿습니다.
https://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382&aid=0000660232
|
|
| |
| | 체육시민연대, 서울시 서초구 효령로230 (서초동) 승정빌딩 407호 Tel : 02-2279-8999, E-mail : sports-cm@hanmail.net |
| |
| | | | | |
| |
첫댓글 좋은 글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