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읍 평곡리는 읍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평곡리에는 농공단지가 있는데 그 북쪽에 석불좌상과 입상이 자리한다. 이 일대를 평곡리사지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현재는 절터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단지 석불입상이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음성답사 때 매우 어렵게 석불좌상까지는 만났는데 미리 석불입상 자료까지 준비했었음에도 현장에서 까맣게 잊고 그냥 돌아왔었다. 그런데 돌아온 뒤 위치를 다시 자세히 검색해보니 당시 입상을 찾아보겠다고 했더라도 아마 시간만 더 보냈을 뿐 만나지 못했었을 것 같다.
[평곡리석조보살입상]
음성평곡리사지(陰城平谷里寺址)의 주소는 한국사지총람에 ‘평곡리 480’으로 나오지만 포털지도들에서 이 번지를 검색하면 해당지번이 없다며 인접지번인 [480-2]가 나오는데 이는 농공단지보다도 더 남쪽인 음성역 부근이다. 즉 우리가 찾아가려고 하는 좌상이나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입상과는 꽤 떨어진 곳이다. 이 절터는 전국문화유적총람에는 ‘불교가 융성할 때 대사찰이 있었다고 전하며 사지 면적 약 6600㎡로 높이 1.1m, 폭 35㎝의 관음보살 입상과 5㎡의 보호각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다른 것은 모르겠고 석불입상은 아직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사지총람에는 ‘수정산 남쪽에 있다. 사찰의 명칭 및 연혁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1932년 평곡리에서 [咸通六年]이라는 명문 기와가 나와서 신라 경문왕 5년(865년) 당시 현존하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고 되어 있다. 1965년 철불 1구와 청동보살입상이 출토되어 단국대학교 옮겨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절터에 관련된 이야기는 입상을 보일 때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하고 먼저 만난 좌상 사진부터 보인다. 이미 전에 다녀온 바 있어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좌상은 좁기는 하지만 자동차가 빈번하게 다니는 길가에 자리한다.
음성평곡리석불좌상으로 불리는 이 불상은 불두가 없던 것을 1966년에 윤병준(尹秉俊)씨에 의해서 복원하였으며 넘어져 있던 판석을 세워 광배석으로 대용하였다고 한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모래가 많이 함유된 사질의 화강암으로 만들어 마멸이 심하다. 머리 부분은 결실되어 새로 만들었으며 결가부좌한 양쪽 무릎 부위도 파손되었고 두 손도 결실되었다.
2010년 방문 당시 머리 부분을 시멘트로 새로 만들어 역시 시멘트를 이용해 몸체와 결합시켰으며, 이 시멘트는 가슴 윗부분과 오른쪽 어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후 머리 부분은 화강암으로 다시 만들고 목과 어깨는 아마도 화강석을 이용해 보수를 한 것 같다. 2010년 당시의 것도 보기에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불두는 더욱 생경스러울 따름이다.
[2010년 당시 평곡리석불좌상]
음성군청에도 내가 2010년 다녀왔을 때 사진과 거의 비슷한 모습의 사진이 올라와 있는데 단지 네모난 판석이 불두 위에 올려져 있는 점만 다르다. 디지털문화대전에의 석불 역시 같은 모습이며, 판석이 있는 사진과 없는 사진이 함께 있다.
[음성군청 홈페이지의 평곡리석불좌상]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없어 현재 자연석을 깔고 그 위에 석불을 안치하였으며, 배 모양의 거신 광배처럼 생긴 자연석을 불상 뒤에 세워 광배석을 대신하였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양팔에 걸쳐 양쪽 무릎을 덮은 듯하나 무릎 부분의 결실로 옷 무늬는 볼 수 없다. 평곡리 석조여래좌상의 크기는 높이 145㎝, 어깨 폭 61.5㎝, 무릎 폭 80㎝이다.
석조보살입상은 좌상에서 마을 쪽으로 향하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과수원집 안에 자리하고 있다. 입상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오는 한 어르신을 만났다. 나를 지나쳐 내려가던 그분은 오토바이를 멈춘 뒤 어디로 가느냐고 여쭈신다. 석불입상을 보러 가는 길이라며 이 길이 맞느냐고 여쭙자 웃으면서 그 길로 계속 가면 된다고 일러 주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길로 가면 석조보살입상이 있는 집 외에 다른 길이 없으니 아마도 이 집 주인 어르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과수원과 고추밭을 통과하니 두세 마리의 강아지들이 요란하게 경보음을 날리는 막다른 집에 도착한다. 근처에서 일하시던 안주인 분이 나오시기에 방문 목적을 말씀드리니 직접 석불입상으로 안내해 주신다. 석조보살입상은 디지털문화대전이나 군청 홈페이지 사진에 비해 두어 가지 다른 모습이다.
[음성군청 홈페이지의 평곡리석조보살입상]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눈에 잘 띠는 부분은 둘레에 설치한 보호 울타리가 석재에서 철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석불 자체로는 그동안 허리 이하가 묻혀 있었는데 지금은 약식 대좌와 발을 포함한 석불입상 전체가 지상으로 올라왔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미세한 차이이지만 불두와 불신의 접합 부위가 달라졌다.
안주인의 말씀으로는 지난겨울에 석불상이 앞으로 넘어져 보호 철책에 부딪쳐 목이 다시 떨어져 나간 뒤 군청에서 주관하여 다시 접합한 것이라고 한다. 전 사진처럼 허리 이하가 묻혀 있었다면 쓰러지기가 어려웠을 것 같으니 불신 전체를 노출시킨 것을 그보다 이른 시기였던 것 같다. 전에는 학생들이 연구한다고 많이 오다 그동안 뜸했는데 올해는 내가 벌써 네 번째로 찾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말씀도 하시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보호철책 앞쪽에 심하게 휜 부분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 석불의 두부가 부딪쳤다는 것이다.
평곡리 석조보살입상은 사질이 많은 화강암의 석불로, 머리 부분이 절단된 것을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불상의 상호는 긴 편이며 눈과 코, 입 등이 마멸되어 선명하지 않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고,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으나 조각이 선명하지 않다. 관대에서 양귀 뒤쪽으로 내려진 2조의 띠무늬[帶紋]가 어깨 위까지 걸쳐져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이며 가슴 앞에 둥근 의대가 보이고, 그 이하는 다소 복잡한 문양을 그린 뒤 발 위에서 ‘∨’ 모양으로 마무리된다.
수인(手印)의 형태를 보면 오른손은 가슴 부분에서 손바닥이 바깥을 향했으며-전국문화유적총람에는 반대로 안쪽을 향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살펴봐도 잘 모르겠다-, 왼손은 배꼽의 위치에서 손바닥이 안쪽을 향하고 있다. 발굴 전 크기는 높이 115㎝, 어깨 폭 36㎝, 귀 길이 26㎝, 관대 폭 57㎝이다. 지금은 높이가 대략 2m 남짓 될 것 같다.
발은 신체 끝부분에 발가락 정도 부위까지만 앙증맞게 조각했다. 보살상과 하나의 돌에 조성된 대좌는 불신과 같은 폭으로 별다른 문양은 없으며 현재 드러난 높이는 30cm 미만인 것 같다.
조성 연대는 상호가 원만치 못한 점, 법의의 무늬 수법, 각부의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살상은 전국문화유적총람에는 ‘석조관세음보살입상’이라고 되어 있지만, 디지털문화대전에는 그냥 ‘석조보살입상’으로 바뀌어 있다. 관음보살이라고 특정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평곡리에 입상과 좌상이 있지만 원 평곡리사지에 남아 있는 것은 입상이며 좌상은 본래 수정산 서쪽 기슭에 있었는데 1966년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후 인근 절집과 분쟁을 겪기도 하다 이 자리로 되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좌상도 이 사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현재 음성읍 읍내리로 옮겨진 음성읍내리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129호) 역시 이 절터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다. 고려 중기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한다.
[음성읍내리삼층석탑]
[인용 설명문 출처: 디지털음성문화대전, 문화재청, 전국문화유적총람, 한국사지총람]
첫댓글 가까이 있으면서 하나도 못 보았으니...
가까운데 다녀가세요...^^
음성인데도 하나도 모르겠넹 !
아무래도 비지정이라 그러실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옆에 수정산성을 오른다 하면서 아직까지도....ㅎ....
석불입상이 비바람에 입원을 하셨군요...
많이 아팠을 텐데 치료는 잘 되였는지 한번 가봐야 할까 봅니다...청주...
저는 산성은 거의 가지 못하니...
지도를 보니 아마 절 쪽으로 가면 산성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10년에 블로그에 올리신 입상 사진을 보니 참 불안하게도 세워 놓았군요.
넘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문화대전은 도대체 언제 사진인데 땅 위로 올라오시기 전 모습이고...
그런저런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어딘들 추억이 없으시겠습니까^^
어찌 세워 놓았길래 넘어지다니...'하필 철책에걸려 목이,,,
에구에구 근년에 화가 겹쳤으나 더이상의 화가 오지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위로 올라오신 것이 화가 되었으니...
두 번째 불상은 불두가 그래서 그렇지 섬세한 게 무척 잘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뵙고 싶네요.
갈무리해 두세요.
나중에 기회가 올 겁니다~~
괴산송덕리석탑답사이후에 괴산 음성을 간다는것이 1년이 되었네요. 가을에는 음성, 진천까지 다녀올 예정입니다
잘보고 정보 감사합니다.지정문화재는 봤지만 비지정 보러 가야 할것 같습니다
즐거운 답사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