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농촌체험을 통해 도시민을 유혹하는 마을이 생겨나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구둔마을은 ‘영화’라는 새로운 테마로 톡톡 튀는 농촌체험을 일궈낸다.
우리네 땅을 좀 돌아봤다는 일명 ‘여행 선수(?)’들은 눈치를 챘다. 소위 ‘농촌체험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서로 비슷하게 닮아있다는 것을 말이다. 원인은 아마도 ‘벤치마킹’ 때문일 것이다. 경제학 용어인 ‘벤치마킹’은 경쟁 업체의 경영 방식을 면밀히 분석하여 경쟁 업체를 따라잡는 경영 전략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제 ‘벤치마킹’은 기업에서만 통용되는 전략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가 각 지역의 성공 사례를 연구하고 서로 배우는 과정 속에 농촌마을의 체험거리는 비슷한 색을 띄는 것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기 새로운 체험을 찾아 특색 있는 마을을 가꾸는 곳이 있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2리 구둔마을은 ‘영화’를 재료로 맛깔 나는 체험밥상을 펼쳐놓는다.
‘나도 영화배우, 영화감독’ 영화제작이 테마인 마을
영화체험마을답게 구둔마을 표지판은 영화 슬레이트와 카메라로 꾸며져 있다. (이다일기자)
구둔마을의 첫인상은 ‘카메라’였다. 이장님의 인사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동영상 카메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민의 손에 들린 카메라 장비는 가정용 캠코더가 아닌 6mm 디지털카메라 장비다. 구둔마을은 강원도 홍천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시골마을이다. 이런 산촌에 전문가용 카메라가 등장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주민들이 영화촬영을 배우게 된 계기는 몇 해 전 독립영화를 찍는 청년들이 찾아오면서부터다. 독립영화사 문화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04년부터 구둔마을 주민이 영화제작을 배우게 된 것. 그 뒤로 마을에서는 ‘구둔영화축제’가 열렸다. ‘영화제’라고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영화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카메라를 잡는다. 즉석에서 배운 촬영편집 기술은 ‘나도 영화배우, 영화감독’을 가능케 했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청년들은 인근 마을에 살면서 3년 동안 구둔영화축제를 도왔다. 4년째부터는 구둔마을 주민이 직접 외부의 도움 없이 영화제를 이끌었다. 이제 비단 영화축제 기간이 아니어도 마을 주민들은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영화제작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할 만큼 영화인이 다 됐다.
9개의 진을 치고 왜군을 물리치던 곳, 구둔리
구둔마을에 오면 누구나 ‘영화감독, 영화배우’가 된다. (구둔마을 제공)
구둔마을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2리’에 속해있다. 본래 지평군 하동면의 지역이었는데 1908년에 양평군으로 편입, 1914년 지방 행정구역 통폐합 조치에 따라 금동리, 지산리, 구둔리, 신촌리, 노일리가 합쳐졌다. ‘아홉 구(九), 진칠 둔(屯)’의 마을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마을 산에 진 아홉 개를 설치했던 것이 유래가 됐다. 현재 마을에는 100가구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몇 십 년 전만해도 구둔리는 꽤 큰 마을에 속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구둔역은 번화했던 구둔마을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중앙선 철도역으로 1940년 영업을 시작한 구둔역은 지금도 강원도 강릉과 부산 부전, 두 방향으로 열차를 떠나보낸다. 구둔역 이성재역무과장은 “비단 10년 전만해도 양평장날이면 많은 사람이 이용하던 역이었는데, 자동차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다보니 1996년부터 상하행 합쳐 6번만 기차가 서는 간이역이 됐다”고 설명한다. 70여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구둔리를 지켜온 역은 운치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지난 2006년에는 보존가치가 인정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2010년 덕소-원주간 중앙선 복선화공사가 완료되면 구둔역 궤도는 폐선 돼 통과열차도 사라지게 된다.
영화 찍고, 별 보고, 자연 체험하는 1석 3조 체험마을
구둔리에서는 영화체험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 마을은 오히려 더욱 활기차다. 마을보건소 건물 2층에 들어선 천문대에는 고가의 천문장비가 설치돼 있다. 천문대장이 직접 우주에 떠 있는 별을 설명하고, 아이들은 숨죽여 청명한 밤하늘을 관찰한다.
겨울에는 마을 옆 미리내캠프에서 눈썰매를 타고, 논에서 바로 장작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풍등을 하늘에 날리며 소원을 기원하는 것도 꼭 구둔마을의 필수 체험 코스다. 날이 따뜻해지면 주민이 농사짓는 딸기, 메론 하우스에서 농촌체험을 즐긴다. 마을에서 준비한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즐기며 구둔리를 둘러싼 수리봉(해발 400m)과 고래산(542m)의 풍취를 즐기는 것도 좋다. 영화 찍고, 별 보고, 자연을 느끼는 즐거움은 체험 마지막 날 직접 만든 영화를 감상하는 시사회로 마무리된다. 추억을 담은 영화는 마을을 떠날 때 고스란히 CD에 담아 가져갈 수 있다. 마을 임온규이장은 “지금은 구둔마을영화축제가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칸영화제처럼 될지도 모르잖아요. 가족의 추억을 영화에 담아가세요. 허허”하며 넉넉한 웃음을 보인다.
가는길 마을 구둔역에는 상하행 총 6번만 여객열차가 선다. (청량리발 07:00, 12:00, 19:00 구둔발 06:45, 12:15, 16:55 )30명 이상 단체 체험객일 경우 구둔역에서 열차를 정차하도록 신청하면 된다. 자동차로 갈 경우 서울에서 구리, 덕소, 양수리를 지나 양평으로 가는 6번 국도를 이용한다. 용문에서 우회전해 331번 지방도를 타고 지제 방향 일신교를 넘어 좌회전하면 구둔역이다.
관련정보 영화체험, 천문체험, 농촌체험 중 원하는 체험을 선택해서 따로 신청할 수 있다. 영화체험을 신청할 경우 마을에서 카메라 및 편집 장비를 대여해준다. 천문체험도 꽤 알차기 때문에 하룻밤을 묵으면서 농촌체험을 즐기는 것도 좋다.
구둔영화천문체험마을 http://www.gudun.co.kr/
구둔역 구둔마을 중심에 구둔역이 들어서있다. 1940년 영업을 시작한 구둔역에는 현재 하루 90여대의 기차가 지나쳐갈 뿐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열차는 3번만 정차한다. 그나마 2010년 덕소-원주간 중앙선 복선화공사가 완료되면 더 이상 기차가 지나지 않는 역이 된다. 구둔역은 2006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이다일기자)
눈 덮인 구둔마을 수리봉(해발 400m)과 고래산(542m) 자락에 둘러싸인 구둔(九屯)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9개의 진지가 구축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양평에 장이 서면 장을 보러 가는 주민과 통학생들로 구둔역은 북새통을 이뤘다. 이제 젊은이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나고 구둔마을은 한가로운 농촌마을이 됐다. 현재 100가구 200여명의 주민이 산다. (이다일기자)
별보기 체험 구둔리에서는 영화체험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 마을은 오히려 더욱 활기차다. 마을보건소 건물 2층에 들어선 천문대에는 고가의 천문장비가 설치됐다. 천문대장이 직접 우주에 떠 있는 별을 설명하고, 아이들은 숨죽여 청명한 밤하늘을 관찰한다. (구둔마을 제공)
마을 전체가 세트장 ‘영화체험’을 슬로건으로 내건 구둔마을답게 마을 구석구석에 영화와 관련된 조형물이 들어서있다. 마을길 한가운데에 들어선 영화 슬레이트는 마을 전체를 마치 하나의 세트장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다일기자)
딸기 체험 구둔마을에서는 영화체험, 천문체험 이외에도 농촌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거리가 많다. 그중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딸기, 메론 하우스를 찾아 직접 농산물을 따는 체험도 참여해볼만하다. (구둔마을 제공)
축구장이 된 눈밭 취재를 간 날 때마침 도시에서 체험객들이 1박 2일 코스로 마을을 찾았다. 도시 어린이는 마치 자신의 세계가 펼쳐진 것처럼 눈밭을 뛰놀며 전원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눈밭이 된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다일기자)
구둔영화축제 구둔영화축제는 2박 3일 동안 영화를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체험객은 시나리오를 직접 작성해 마을에서 대여해주는 카메라 장비를 들고 직접 촬영에 나선다. 가족영화, UCC영상 등 다양하게 제작되는 영상은 마지막 날 마을회관 극장에서 시사회를 통해 다함께 감상한다. (이다일기자)
자전거 산책 구둔마을에는 체험거리가 넘쳐난다. 다른 농촌체험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 ‘영화제작’ ‘별 보기’ 등 다양한 테마를 구상해냈다. 하지만 구둔마을에 색다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부, 떡 만들기부터 자전거 타기, 물고기 잡기 등 농촌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거리도 가득하다. (이다일기자)
영화제 준비구둔영화축제를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젊은 청년들과 주민 할아버지가 함께 장비를 점검한다. 마을에서는 ‘영화제작’을 위해 6mm 카메라 20여 대와 영상 편집 장비도 갖춰놓았다. 마을 주민들은 이제 ‘영화인’이 다 됐다. (구둔마을 제공
첫댓글 우리 주변의 생황속에 젖어있는 전통문화와 멋진 환경들을 때로는 잊고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봅니다. 시간을 내서 한번씩 둘러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