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아궁이)
류수만
우리 전통가옥의 정지에는
속이 컴컴한 구멍 뻐굼한 아궁이와
크고 무거운 무쇠로 만든 까만 가마솥이 1~2개가
흙 부뚜막에 걸려 있다. 아궁이의 위는
둥그런 무쇠솥 둥근바닥이 아래로 쳐져 걸렸고...
안쪽으로는 구들얹힌 고래에 연결되어 있다.
아궁이 앞에 조자 앉아 불을 때면 불꽃과
연기가 이 고래쪽으로 빨려 들어가 돌구들과
방바닥을 데우고는 마지막 뒤안에 있는 굴뚝으로
메케한 연기와 함께 나간다. 무쇠 가마솥에
밥을 할때나 국을 끓일때는 나뭇가지를 아궁이 솥밑에
맞추어 넣고 불을 땟고 겨울철 군불일때는 나무를
아궁이 안쪽으로 깊숙히 밀어 넣곤 땟었지.
불이 시원찮을땐 풍무기를 갖다가
아궁이 쪽에 대고 돌리기도 했고.
그러면 연기 피우면서 잘 타지 않던 청솟갑 같은것도
금방 뻘건 불꽃이 살아서 탔었지.
그 아궁이 불탈때는 암 예방에 좋은
원적외선이 나온다고도 하던가?
또 밤엔 아궁이와 구들골 화기(火氣)가
빠져 나가지 않도록 무쇠로 된 아궁이 문를 닫았다.
날씨가 더운 여름철엔 방(房)이
더워지지 않도록 정지밖 마당에다가
돌과 진흙을 이겨서 또 어떤집은 못쓰는
도라무통 쪼개서 만든 간이 아궁이를 만들었지.
이건 화덕이라 고도 불렀고.
우린 어릴때 이 아궁이에서 타고 남은 숯불은
부삽으로 떠서 누런 놋쇠로 만든 갓화로나
삼발화로에 담았고..
또 그 아궁이 잿불엔 눈 움푹한 자주감자와
껍질 벗기지 않은 수염달린 강낭 몇개를 묻어
껍질이 까맣게 타도록 익혀 군것질도 했제.
이렇게 아궁이에 불때는 집 뒤안 높이 솟은
굴뚝엔 하얀 연기가 하늘 향해서 피어 올랐고...
다 탄 재는 퍼서 거름으로 썼었으니
역시 그냥 버리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이 아궁이도 또 지방에 따라서는
아주 다른 형태의 것도 있었다고 한다.
강원도 산간 오지에서는 불씨 갈무리용 화덕이
아궁이옆에 별도로 있었고 제주도에서는
아예 굴뚝이 없는 아궁이도 있었다 하니...
예전엔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넓었었던가?
아니면 우리가 뭘 너무 몰랐었던 걸까?
첫댓글 코스모스님 아주 예쁘게 단장했네요. 대단한 재주십니다. 거듭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옛날엔 정지에서 밥할때 보리쌀을 미리 끊여두었다가 다시 쌀을씻어얹어 또 불을 땝니다. 이때 불조절을 잘해야 하지요. 불이 과하면 밥이 타니까 .잠시 알불을 부엌밖으로 끌어내었다가 뜸들일때 다시넣고 불을 한소큼 잠깐 때주면 밥이 약간 눌고 밥이 부들부들하게 잘됍니다. 가을 선배님 아궁이에 대해 소상히 적어 주셨네요. 부모님께 어쩌다 야단 맞은날은 부지깽이로 애꿋은 불만 쑤시고 앉아 눈물을 글썽였지요..ㅎㅎ
그래요. 맞는것 같읍니다. 나 보다는 더 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안고 살아가시는것 같네요.
내 어렸을적 우리집 정지에도 무쇠솥이 대.중.소 세개가 걸려 있어 부억에서 군불때며 불쏘시개 장난도 치고 무쇠로된 풍무기 돌리며 불지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맞아요. 여름이면 하얀 알미늄으로된 솥을 밖에 걸어놓고 밥을 했지요. 부억에 불을 때면 더워서 잠을 잘 수 없으니까요. 밖에 걸린 밥솥에서 그냥 밥을 퍼서 마당 멍석이나 들마루에 앉아 별을 보고 밥먹던 유년의 그 시절이 그립네요.
우리가 어렸을땐 다들 그렇게 살았을거예요. 언제 부턴지 그 정겹던 무쇠솥이 그냥 사라져 버렸어요. 밖에 걸었던 솥을 동솥이라고도 했던가 그런것 같네요.
선배님 정말 기억력이 대단하십니다.잊혀진기억들이 새로새록나게하는 힘이있으세요 풍무기하시니가 생각나는게 풍구대도생각나고 와롱도 생각이 났어요.보통 부엌에는 3개의무솥이걸려 있는데 큰솥 중간솥 동솥으로 불렀던거 같아요
아니지요. 다들 기억하시고 우하련님도 저 보다 많은걸 추억하고 계시는것 같읍니다. 하잖은 글 늘 잘봐주셔셔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어릴때 어른들이 남자는 부엌에 발걸음을 하면 안된다는 말씀을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에 부엌은 자주 들어가지 않았지만 동네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 놀다가 배기 고파서 부엌으로 들어가서 저녘에 먹으려고 보리쌀 삶아 놓은것을 몰래 꺼내서 허겁지겁 먹었고 천장에서 뱀과 쥐들이 돌아 다녀서 컴컴한 저녘에는 들어 가는것이 두려웠지요.부엌 안에는 가마솥도 크기에 따라 3개나 있고 두멍 이라고 불리는 물을 저장하는 독이 있어서 버지기나 물지개로 물을 가득 채워 놓았던 모습이 생각 납니다.
그걸 두멍이라고 했나요. 난 그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보리는 아이삶아서 광주리에 담아 두었다가 다시 쌀과 함께 밥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