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국이 나비인 줄 알고 따라갔어요 (외 1편)
이원하
반딧불의 출현이 간절한 한밤중의 산속
나비 한 마리의 출현이 반가운 한낮의 숲 속
항상 낮이 먼저였으니
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할게요
울면, 구두가 망가져요
구두가 망가지면서 낸 소리가
별을 처지게 만들었어요
별이 많아 밝아졌으니 지금이 어찌 밤인가요
항상 산이 컸으니 숲을 키워볼게요
숲에서 크게 웃다가
흰 종이에 묻어 나온 먹물을 보고
웃음도 말의 한 종류라고 정했어요
우린 말을 많이 했어요
말이 선명한 검은색으로 보이는 낮에
말을 많이 했어요
자주 지름길로 가려 했어요
그때마다 길들여지지 않은 나비들이
파랗게
여기는 아직 가을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때를 잘못 맞춰 왔지만
괜찮아요
우린 그냥 산수국이 나비인 줄 알고
따라왔을 뿐이니까요
계간 《모든시》 2018년 가을호
달을 찌는 소리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니
술집에 유일한 사자성어인
해물파전을 먹으며
빛이 드는 창문은 창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나는 말했어요
하수구가 입맛 다시는 소리를 들은 지 오래지만
능력을 무기로 삼은 지 오래지만
퍼렇게 살아 있지만
자주 손을 뻗지만,
어디 시든 이파리 따온 거 마음에 살라 해봐요
옆집에 누가 사니까 마음 편히 먹으라 해봐요
노래를 크게 부르고 싶을 땐 참으라 해봐요,
세상이 과연 그렇게 돌아가나
그래서 아까 그렇게 말한 거예요
해물파전을 다 먹었을 땐 이렇게 말했어요
앞으로 나는 누굴 만날 수 있을까요?
찐 굴 같은 대답을 들었지만
역시 그럴싸하게 잘 모르겠어요
바닥으로 턱을 괴도 모를 거예요
모르는 사실이지만
세상은 나를 포함하여
느린 것들을 탓할 수 없을 거예요
당기라고 써진 문을 당겨도
당분간은 여러가지가 동시다발일 거예요
계간 《창작과비평》 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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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 1989년 서울 출생.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