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04일 연중 제 27주일 /
포도밭 소작인들의 비유
[ 복 음 ]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하면서 서로 짜고는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다."
< 마태오 21,33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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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론 ]
† 용심과 용심 †
- 최 영균 신부 -
형제들이 있는 집안은 대개 그렇듯이
형이나 언니가 입던 옷이나 학용품 장난감을 동생이
물려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려 입고 물려받는 것이 어른의 눈으로 보면 경제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어린아이의 눈에는 불공정하고
때론 서러운 감정이 들기까지 할 때가 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똑같이 어여쁜 자녀이지만
동생들은 좋은 것이 있으면 자신은 다음 차례라는 것이
못내 서럽기도 합니다.
저 역시 막내입니다.
형님으로부터 옷이며 장난감을 다 물려받았지요.
그래서 인지 형이 더 많은 것을 가졌다는 생각 때문에
형이 미웠고 심술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순 우리말로 용심이라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형에게 용심을 품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나도 모르게 용심이 들곤 합니다.
그리고 이 용심은 결국 인간의 내적 평화를 깨트리는
'죄'를 낳습니다.
종교인의 일생 과제는 수심(修心)과
또 다른 의미의 용심(用心)을 갖추는 것입니다.
수심이란 마음을 바로 닦는 것이요,
용심은 마음을 바로 쓰는 것입니다.
욕심이 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수심과 용심입니다.
그리고 그런 수행을 위해 선행될 조건이 바로
'버리기'입니다.
더 좋은 것을 갖고,
더 많은 칭찬과 더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이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는 우리의 오그라든 손을 펼 때
용심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떠날 것입니다.
모든 인간적인 부러움(용심)을 놓아버리고
모욕과 고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그리스도의 수심과 용심(用心)이 부럽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1분 묵상 ]
땅이 없는 사람에게 농사지을 땅을 빌려줬으면
도조(賭租, 임대료)를 내고 감사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런데 해코지를 하다니 참으로 배은망덕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내 보따리 내놓아라!' 한다지요.
요즘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여
보따리가 아니라 목숨까지 빼앗는일이
비일비제하니 심히 우려가 됩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데
막가는 인생들이 너무도 불쌍하지요.
다른 사람들을 내 만족의 수단으로 여기고,
인생을 탐욕으로 채우는 사람들은
인생의 땅위에 넘어집니다.
오늘 복음은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이들에게 내릴
하느님의 징벌을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행복한 주님의 날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