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사에서 새로 구입한 트럭의 액맥이감 만든다고 새벽2시 반 까지 서댄 통에 아침까지 늦잠.
산행을 안하긴 그렇고 해서 고민끝에 가까운 회문산을 택했다.
몇 번째일까?
20세기 말엽에 <노동자 산악회>에서 처음 이었고... <전주 시민회>에서 들꽃기행으로도 왔었고...
<호남산악회>에서 시산제로만 해도 세번..(? ) 회문산 근처 계곡의 천렵은 한 때 여름나기 코스였고...
'만일사'..'호정소' 등을 헤맨 것까지 치면 회문산은 정이 붙을만 한데 아직 낯설다.
가볍게 다녀오려던 옷차림을 파고드는 바람이 이제는 겨울준비 단단히 하고 산행하라 이른다.
단풍이 낙엽으로 뒹군지는 오래, 휑한 나목들과 바람소리가 을씨년 스럽다.
바람이 제법 쌀쌀한데도 삼삼오오 산행객과 휴양림에서 산책나온 산객들이 제법 있다.
하산하는 길에 정말 오랜만에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사령부였던 곳을 들렀다.
예전의 토굴은 간데없고 그 자리에 새 콘크리트 구조물이 <회문산 역사관>이란 이름으로 들어서 있다.
건물 안에 들어가 두루 둘러본다.
순창과 회문산의 역사와 인물들을 성의있게 설명해놓았다.
다만 예전 빨치산 사령부를 사실적으로 꾸며놓았던 걸 해체하고 아주 자그마한 모형과 사진설명으로 대신하여
당시의 사실을 정확히 알기 힘들게 해 놓았다.
그나마 빨치산을 설명한 내용이 나름대로 상세하게 기술되어 역사인식에 도움이 되겠다.
문득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형근' 벗이 추억된다.
전북대 재학시절 부터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투옥과 수배생활을 반복했고 어찌어찌 졸업 후
익산역 앞에 <황토서점>이란 사회과학서점을 열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후원했었지만
후배,동료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서점을 접고 전주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했었다.
복권이 되어 관촌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으나
학생들을 데리고 회문산으로 역사기행을 하면서 설명했던 내용이 빌미가 되어 간첩죄로 구속되었었고
후일 전주에서 무소속 국회의원으로도 출마했었던....
어느 당이나 단체, 조직에 소속되지 못한 탓에 암이란 큰 병을 앓음에도 널리 알려지지 못한채 투병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물론 '전교조'에는 가입되어 있었지만 )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장례에는 그를 추억하는 많은 이들이 찾아 그 동안 소원했음을 후회했지만
넉넉하게 친분을 유지할 수 없는 녹녹치 못한 현실을 탓하는 수 밖에.
그를 떠나보내는 노제에서 고대 다닌다는 아들녀석이 흐느끼면서 우리들에게 했던 말.
"저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제 민주화운동 그만 하세요. 가족들이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 김형근 간첩사건으로 그 장소가 소문이 나면서 회문산에 있는 빨치산 사령부 토굴도 없앤 듯 싶다.
우리는 이차 세계대전의 패망국인 일본을 대신하여 외세에 의해 그어진 분단과 한국전쟁의 그늘에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
어느것이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참된 길일까?
회문산을 휘도는 차가운 바람이 매서웠던 빨치산의 겨울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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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에게는 죽는 법이 세가지가 있어.
...얼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맞아 죽거나
첫댓글 가슴에 와 닿는 사연들~~
그 아픔을 승화 시켜 나가신 술래님
항상 고맙습니다~~
요새도 산엘가?
춘디. . .
역시 멋지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