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있습니다. 또 한신이라고 행정을 잘 했던 소하라고 하는 인물이 있었죠. 그리고 지략가 장량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명장 중의 명장입니다. 참 묘한 게 이 세 사람이 우리가 일생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웅변해줍니다. 장량은 지금도 장량의 꾀라고 말할 정도로 지혜로운 인물입니다.
장량은 나라를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조용히 물러나 유유자적한 인물이었습니다. 소하도 이제 할 일을 다 했다 그러고 물려주고 떠납니다. 그런데 소하, 한신은 자기가 나라를 세우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고 떠벌리고 다니다 결국은 포박돼 살해당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보면 보살의 정의는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바탕으로 해서 모든 유정중생을 열반의 세계로 이끌면서도 자기가 그렇게 했다는 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이름을 얻는 사람들은 사심(私心)을 놓아버릴 줄 압니다.
사람들을 항상 그런 이를 칭송합니다.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면 세월이 흘러도 알게 되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위해 일했는지는 역사가 말해줍니다.
그래서 제가 세상을 살면서 항상 타이밍을 잘 맞춰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잖아요. 부처님도 이 땅에 오실 때 내가 내려갈 때가 되었는가, 아니 되었는가 하늘의 아들들과 상의했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로 갈 것인가, 어느 종족에 태어날 것인가, 어느 부모를 만날 것인가 이렇게요. 누구든지 일어날 때와 앉을 때가 있습니다.
나아갈 때와 멈출 때가 있어요. 사람들은 누군가 열심히 노력해서 뭔가 이루었다 해도 상대가 잘났다는 건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잘났다고 그러면 듣는 사람은 못났다는 얘기니까 그래요. 언제 어떤 경우라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장량 같은 지략가가 되어야 합니다.
한신은 많이 알려진 용맹한 장군이었으면서도 포박돼서 결국 살해되었으니 말입니다. 때를 잘 이겨야 합니다. 때를 잘 읽어야 합니다.
요즘 AI(인공지능)시대다, 4차 산업혁명시대다, 백세시대다 해서 전 세계가 들끓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재양성이 중요하다는 논의가 계속 되고 있지요. 그런데 참 묘한 게 하버드나 MIT, 콜럼비아나 스탠포드와 같은 유수한 대학에서 대학의 교양필수과목으로 음악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하버드에서도 음악교육과정을 교양필수로 집어넣고, 콜럼비아 대학은 과거보다 음악회를 빈번하게 열고, MIT도 꼭 음악을 이수해야 한다는 과정을 집어넣었대요. 스탠포드도 연간 150회 이상의 콘서트를 대학 내에서 열라고 지시했답니다. 음악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걸 연구한 결과입니다.
몸과 마음을 연소하다 보면 여가나 여유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가 사람을 쉬게 해야 한다는 걸 교육행정가들도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앞으로 어떤 시대가 올지 우린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 말씀대로 위대한 용기와 신심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할지언정 마음은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한 시대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글이나 애플에서는 마음을 쉬게 하는 참선이나 명상을 한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무명(無明)이 대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이름을 날리려거나 돈 많이 벌려고 온 것이 아니라 이 몸을 던지러 온 거거든요. 이 몸을 불태우러 온 거예요. 이 몸은 사실 허상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다 죽어요. 죽을 때 아깝다고 백날 울고불고 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이 몸을 불태워서 허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라밀다의 참뜻을 실천하다 가야 합니다. 육바라밀의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가 나를 불태우는 과정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인생을 불태워본 적이 있나’ 생각해보세요.
나이가 들어도 상관없어요. 수행은 이기심을 불태우는 과정입니다. 수행은 어둠을 광명으로 바뀌게 합니다. 우리는 원래 어둠의 존재가 아니에요. 우리는 원래 빛의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