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아동 문학계의 레전드로 뽑히는 로알드 달.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등
제목만 들어도 알 법한 유명 아동 문학 작품들을 썼다.
하지만 소설가는 그의 인생에서 짧은 장에 불과했다.
(젊은 시절의 로알드 달. 1.98m 장신의 미남으로 유명했다)
노르웨이계 웨일스인이던 로알드 달.
로알드라는 이름은 노르웨이의 극지 탐험가, 로알드 아문센에게 따왔다.
세계적인 탐험가에게서 따온 이름 때문일까?
로알드 달은 어릴 때부터 탐험가를 꿈꿨다.
상류 기숙 학교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선배들의 괴롭힘과 꽉 막힌 교육, 엄격한 분위기 때문에 적응을 하진 못했다.
특히 소위 영어, 문학 교사라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글을 못 쓰는 데다 암기만 강요했다고.
그는 지겨운 수업 대부분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탐험하는 공상을 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영국 탐험가 협회에 들어가 정말로 아프리카로 향한다.
달은 석유 회사(현재의 쉘 plc)와 계약하고
독립 계약자 자격으로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석유, 석유개발업자, 직원 등을 차로 수송하고, 야생 동물, 강도, 반군 등에게서 보호하는 일이었다.
계약 탐험가 겸 보디가드라고 하면 될 거 같다.
이 시절 크게 성공한 달은 아프리카에서 저택을 짓고 하인을 두면서 호화롭게 살았다.
그러다 1939년, 2차 대전이 터지자 달은 입대를 결정한다.
달은 장교로 임관되어 아프리카계 흑인 부대를 이끌다가
훈련 후 80공중대 RAF(왕립 공군)에 배속된다.
이 시절 달은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 하고 두개골이 깨져도 살아남는 근성을 보여준다.
(멍청한 상관이 좌표를 잘못 찍어줘서 연료 부족으로 불시착)
참고로 두개골이 깨진 상태에서 군병원 간호사를 꼬시기도 했다.
41년 4월 20일,
영국 최고의 에이스인 팻 패튼, 친구 데이비드 코크와 출격해 독일 전투기 22대(!!)를 격추하는 미친 전과를 올리며
명실상부 당시 영국군 최고의 에이스 파일럿 중 하나로 인정 받는다.
그러나 두개골 부상 후 생긴 두통이 악화된 달은 미국에서 외교관으로 일하게 된다.
달은 전투원이 아니라 후방으로 빠지는 데 불만이 많았지만,
그의 대화 능력과 외교력을 알아본 인사들의 설득 끝에 외교관 역을 받아들였다.
그는 전쟁으로 고통 받던 영국과 달리, 부유한 미국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런 환경에 '죄책감'을 느끼며, 영국으로 돌아가 파일럿으로 복귀하고픈 마음 뿐이었다..
이 시절 그는 자신의 전투 경험을 글로 써서 발표했는데, 이 글을 눈여겨 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007 시리즈의 작가인 첩보 소설가, 이안 플레밍이었다.
영국 상류층 출신이지만, ‘천박한 모험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집안의 천덕꾸러기였던 플레밍은
집안에서 의절 당한 후 미국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이 글을 흥미롭게 읽은 플레밍은 달에게 누군가를 소개하는데……
달은 출판업자나 편집자와 연결해주려나 보다, 생각했지만
나타난 건 영국 스파이, 윌리엄 스티븐슨이었다.
MI6 소속, 인터피드(용맹)란 코드네임으로 알려졌고, 영국의 스파이마스터,
(스파이마스터란 첩보 기관, 혹은 첩보 활동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007 제임스 본드의 모델로도 유명하다.
사실 스파이 소설을 쓰던 이안 플레밍은 진짜 영국 스파이였다.
윌리엄 스티븐슨은 미국에서 BSC(:영국 안보 조정회)라는 MI6 하부 비밀 조직을 운영하는 중이었고,
이안 플레밍은 그 소속이었다.
BSC의 목적은 2차 대전에 미국이 참전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독일의 언론전을 차단하고, 참전파 여론을 조장했다.
여기에는 스파이, 작가와 문화계 출신, 학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있었는데
앞서 말한 이안 플레밍 외에도,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영화 제작자, 에릭 마슈비츠,
현대 광고 이론을 만든 광고의 왕, 데이비드 오길비,
에니그마 기계 정보를 빼내 가능하게 한 여스파이, 베티 소프(혹은 코드네임 ‘신시아’).
(튜링의 암호해독의 단서가 되는 에니그마 기계 단서는 그녀가 빼낸 것이다)
이들은 사교계에 잠입해 상류층의 여론을 돌리는 공작도 시도했었는데,
로알드 달은 거기에 딱이었다.
유럽 상류층 출신의 미남,
자수성가한 젊은 부자,
아프리카 탐험가,
전쟁영웅이자 에이스 파일럿,
외교관,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 작가.
온갖 살롱, 클럽, 상류모임들이 뻑가 죽는 조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말빨이 좋았다.
군과 관이 제발 외교관 하라고 매달릴 정도였던 그의 말빨은 첩보 활동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의 말빨에 대해선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로알드 달은 지갑 없이 술집에 들어가 아무 테이블에나 앉은 다음,
갑자기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서 정신을 빼놔
친해진 테이블 주인들에게 술을 공짜로 얻어 먹는 취미가 있었다.
BSC 소속 요원이 된 그는 미국 상류층 파티를 돌아다니며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장했다.
상류계 유명인사가 된 그는 루스벨트 대통령과도 친하게 지내며 백악관도 드나들었는데,
과연 개인적인 친분이었는지, 첩보 활동이었는지,
소문은 무성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 없음.
공식적인 외교관 업무를 끝낸 그는 다시 공군으로 돌아가
출전만 하면 독일 전투기를 격추하며 비행대장의 지위까지 올라간다.
전후, 그는 아카데미, 골든 글러브 상을 수상한 당시 미국의 최고의 인기 여배우였던 패트리샤 닐과 결혼한다.
종전과 결혼, 그리고 정착 후에도 로알드 달의 인생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수두증이 생겼고,
아내인 패트리사가 뇌동맥류로 마비가 왔으며, 그의 어린 딸을 뇌염으로 떠나 보내야 했다.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불행이 연달아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수두증을 앓는 아들을 위해,
기존의 션트(뇌척수액을 복강으로 보내 뇌압을 떨어트리는 보철물)를 개량해 WDT-션트를 발명했다.
이 WDT-션트의 개발자들은 어떤 이익도 취하지 않아,
세계 3,000명의 아이들이 안전하고 위생적인 션트 삽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뇌염으로 7살 때 잃은 딸을 그리워하며 『홍역: 위험한 질병』 을 써, 백신 장려 운동을 펼다.
그가 쓴 이 글은, 최근에도 백악관이 코로나 백신 불신을 종식하기 위해 인용했을 정도로,
보건복지 분야에서 큰 영향을 끼친다.
뇌동맥류로 마비가 온 패트리샤 닐을 간병하고, 재활을 도와 그녀가 다시 연기계와 은막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뇌동맥류를 이긴 그녀는 《서부전선 이상없다》《고스트 스토리》 등,
유명 작품에 여럿 출연하고, 21세기까지 줄곧 배우로 활약했다.
그리고 이런 병들로 가족들을 잃을 뻔한, 그리고 정말 잃은 로알드 달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고통을 또 겪지 않도록, 그리고 세계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로알드 달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신경계 질병, 혈액병 연구를 하고 있으며, 아동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 운동도 하고 있다.
에세이, 추리, SF, 블랙 코미디, 시나리오 등 다양한 글을 썼고,
이 중 일부는 쿠엔틴 타란티노, 히치콕, 팀 버튼 등 다양한 감독들이 영상화 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동 문학 작가였다.
그 후로도 그는 많은 로맨스, 이별, 창작, 명예를 겨쳤고
1990년, 74세의 나이에 골수이형성 증후군으로 사망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그는 당구 큐대, 아주 좋은 버건디, 초콜릿, HB 연필, 그리고 원형 톱날과 함께 묻혔다.
오늘날, 수많은 아이들이 방문해, 그의 무덤에 동전, 장난감, 그리고 꽃을 두고 간다.
국내에는 일반적으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을 쓴 아동 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탐험가, 에이스 파일럿, 스파이, 여배우와 세기의 로맨스, 발명가, 소설가까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낭만적인 삶을 살았단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