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3일 토요일 [(자)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카 예언자는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시기를 기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투덜거리는 이들에게,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작은아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아버지의 비유를 말씀하신다(복음).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4-15.18-20. 주님, 14 과수원 한가운데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15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18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20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3.11ㄴ-32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미카 예언자는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하느님에 대해 알리고 있습니다. 죄인들을 받아 주시고 그들과 어울리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운 행위를 비판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의 인자하심과 죄의 용서에 대해 잘 알려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을 보시고 가엾이 여기시는 분이시며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 나라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이 크더라도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큰아들의 태도입니다. 큰아들은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며 의롭게 사는 신앙인을 상징합니다. 작은아들은 하느님을 저버리고 죄악에 빠져 영적으로 죽은 신앙인을 상징합니다. 큰아들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자만심을 가져 하느님께 되돌아오는 작은아들의 회개를 시기합니다. 큰아들은 죄인에게 철저한 징벌과 보속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는 의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됩니다. 그들은 이해타산을 앞세워 하느님을 섬기기에 하느님의 자비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탕자의 아버지’를 통해 죄인의 회개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작은아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자만심과 시기심에 빠져 죄인을 단죄하는 큰아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류한영 베드로 신부) |
궁금한 하느님 아버지의 얼굴 여러분들, 많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언젠가 이승의 삶을 마무리 짓고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갈 텐데...거기서 그토록 고대하던 하느님 아버지의 실체와 대면할 텐데...과연 그 모습이 어떤 것일까?
저는 개인적으로 자비의 해를 맞아 루가 복음서를 자주 묵상하면서 너무나 쉽게 해답을 찾았습니다. 루가 복음서에는 여타 복음서에 비해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나고 있더군요. 수많은 치유사화들, 죄 많은 여인을 용서하시는 장면, 세관장 자캐오의 이름을 부르시고 그의 집에 묵으시는 장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되찾은 양의 비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그리고 마침내 되찾은 아들의 비유!
언제 읽어봐도 진한 감동과 큰 여운을 남기는 비유가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손에 잡힐 듯이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자기 몫의 유산을 챙겨 먼 길을 떠났습니다. 둘째 아들은 인간의 탈을 쓰고 정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것입니다. 집나가서 잘 되었으면 괜찮았을 텐데...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갑작스레 생긴 공돈이었기에 물 쓰듯 돈을 탕진했습니다. 매일의 스케줄은 술과 여자, 유흥과 도박이었습니다. 윤리 도덕적으로도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둘째 아들은 오래 가지 않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타락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고 동시에 완전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아들이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꿔먹습니다. 그것 역시 하느님 은총의 결과겠지요. 깊이 고개를 떨어트리고 ‘지금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도달하자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 것입니다. 완전 알거지가 되어 한 끼 끼니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아버지 집의 그 풍요로움이 떠오른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린 것입니다.
그런 둘째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올 한해 자비의 해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저 같았으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서 나가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녀석에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그 잘난 상판대기를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게 일꾼들 방에 재우면서 처벌기간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어떠합니까? 둘째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부터 너무 기쁜 나머지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죽었다고 여겼던 둘째 아들의 생환 소식에 너무 가슴이 설레어 동구 밖 어귀까지 나가서 기다리십니다.
이윽고 잔뜩 겁먹은 얼굴로, 거지중의 상거지가 되어, 어깨가 축 처져 터벅터벅 걸어오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아들임을 확인한 아버지는 노구 임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을 향해 내달립니다. 아무 말 없이 격한 포옹을 하십니다. 말없이 오랫동안 그렇게 껴안고 계셨습니다. 한손으로는 잘 돌아왔노라고 어깨를 토닥입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이제 다시는 너를 놓치지 않겠노라고 꽉 움켜쥐십니다.
그야말로 대역죄인인 둘째 아들에게 단 한마지 잔소리나 추궁을 하지 않으시고 극진히 환대하십니다.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 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본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 대전에 나아가게 될 때 우리를 맞이해주실 분도 바로 이런 모습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잔뜩 두려워하며 혹은 전전긍긍하며 아버지께로 갈 것이 아니라 ‘완전’ 행복해하며, 설레는 가슴으로 아버지께로 나야가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순결한 창녀
양승훈 교수의 ‘물에 빠져 죽은 오리’에서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적고 있습니다.
자동차 서비스 회사에 근무하는 동생이 오랫동안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일산에 있는 회사의 부품 창고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울적해진 동생은 기분도 달랠 겸 창고 옆에 오리를 키울 수 있는 작은 수영장을 만들었다. 수영장이래야 꼬마들이 물장구나 치며 놀 만한 크기의 널찍한 물통이 전부였다. 그러고 나서 퇴근하기 전에 오리 농장에 달려가 청둥오리 한 마리를 사서 물에 넣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밤새 안녕할 것을 기대하며 출근을 해 보니 오리가 물통 속에서 죽어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오리를 이리저리 뒤척여 봐도 짐승에게 물린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수영이 ‘전문’인 오리가 물통 턱을 기어 올라오지도 못하고 30cm 정도밖에 안 되는 얕은 물에 빠져 죽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결국 오리 농장에 가서 주인에게 따져 물었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들은 농장 주인은 그것도 몰랐느냐는 듯이 말했다.
“이 오리는 오리 농장에서 부화하고 키운 오리입니다. 그래서 수영을 할 줄 모르지요. 게다가 이 오리는 어릴 때부터 물속에 집어넣지 않았기 때문에 깃털에 기름이 분비되지 않아 물에 잘 뜨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죄를 피한다고만 해서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죄를 허락하셨다면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작은 아들에게 죄를 지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유산을 내어주었다면 그 죄를 통해 무언가를 깨닫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죄는 그래서 유용합니다. 유용하기 때문에 인간 주위에 있기 하신 것입니다. 마치 오리도 물이 없는 곳에서만 살면 더 이상 물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도 죄와 끊임없이 싸워보지 않고서는 죄를 이길 수도, 죄 때문에 겸손해 질 수도 없습니다. 아기들이 엄어지지 않고는 걷는 법을 배울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도 우리가 죄 짓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시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어떤 유혹이 닥치더라도 다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지니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트럭 뒤에 이렇게 써 놓고 다니는 것을 누군가가 보았다고 합니다. 한 쪽에는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써 놓았고, 다른 쪽에는 “내 차를 건드리는 놈은 박살을 내 놓겠다”라고 써 놓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경건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이미 부정한 사람입니다. 사람과 접촉하지 않으면 죄를 짓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순결해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참으로 순결한 사람이 하는 기도가 나옵니다. 그 순결한 사람은 단 두 가지만을 청합니다.
하나는 ‘죄의 용서’입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면 교만하여 순결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우리 죄를 잊어달라고 기도하면서 다른 사람 허물을 들추어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을 판단하는 데에는 자신은 이미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교만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의 나약함을 알아서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것입니다.
“과수원 한가운데, 숲 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나의 힘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다고 말하는 이는 다 거짓말쟁이인 것입니다. 죄와 싸워 본 사람은 죄를 이길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이런 사람이 순결한 사람인 것입니다.
믿으면 순결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성령의 열매인데 성령은 교만한 자 안에는 사시지 않기에 사람을 판단하는 자가 믿는다는 것은 거짓과 위선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 딸을 고쳐달라고 청하는 가나안 여인을 사람들 앞에서 개 취급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자존심도 없이 “저, 개 맞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먹는 빵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당신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낮춘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장하다.”
순결한 사람은 오늘 독서에서처럼 자기 죄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또 자신의 약함을 알기 때문에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입니까, 아니면 그 여인을 향해 돌을 들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 날 그 간음하다 잡힌 여인만이 그리스도께 심판받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구성원은 모두 창녀들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약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순결합니다. 왜냐하면 그 겸손함이 바로 더러움 자체인 뱀을 몰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언제나 교회를 부를 때 ‘순결한 창녀’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는 순결합니까, 부정합니까? 부정한 것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
오늘의 성인
성 에우트로피오 (Eutropius)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연도 : +308년
성 바실리스코 (Basiliscu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308년
성 클레오니코 (Cleonicus)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연도 : +308년
성 클레오니쿠스(Cleonicus), 성 에우트로피우스(또는 에우트로피오), 성 바실리스쿠스
(Basiliscus)와 동료들은 흑해 연안의 폰투스(Pontus)에서 갈레리우스 황제에 의해 순교하였다.
이들 순교자들은 성 테오도루스
(Theodurus, 2월 7일)와 관련이 있다.
성녀 가타리나 마리아 드렉셀 (Catherine Mary Drexel)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지역 : 미국(USA)
활동연도 : 1858-1955년
성녀 카타리나 마리아 드렉셀(Catharina Maria Drexel, 또는 가타리나 마리아 드렉셀)은 1858년 11월 2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Pennsylvania)의 필라델피아
(Philadelphia)에서 유복한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자라면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녀는 흑인과 토착 미국인인 인디언들의 물질적, 영성적 삶의 질에 큰 관심을 갖게 되어 그들을 위한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했으나 이내 정말 필요하고 부족한 것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성녀 카타리나는 인디언과 유색인종의 권익을 위해 일하고 그들을 섬기기 위한 복된 성사의 수도회(Sisters of the Blessed Sacrament)를 설립하였다.
자신의 삶을 헌신하며 기금을 마련한 성녀 카타리나 원장은 1894년 뉴멕시코(New Mexico) 산타페(Santa Fe)에 인디언들을 위한 최초의 선교학교 개교식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미시시피
(Mississippi) 강 서편의 인디언들을 위한 학교와 미국 남부 지방의 흑인들을 위한 학교들도 개교하였다. 1915년에는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 미국 최초의 흑인들을 위한 대학인 사비에르(Xavier)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녀가 선종할 무렵에는 이미 미국 전역에서 500명이 넘는 수녀들이 63개의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성녀 카타리나는 1988년 11월 2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2000년 10월 1일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첼레도니오 (Cheledonius)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연도 : +304년
같은이름 : 첼레도니우스 켈레도니오 켈레도니우스 첼리도니오 첼리도니우스
성 헤미테리오 (Hemiterius)
축일 : 3월 3일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연도 : +304년
같은이름 : 헤미테리우스 헤미떼리오 헤미떼리우스 에메테리오 에메테리우스 에메테리오 에메떼리오
성 헤미테리우스(Hemiterius)
와 성 켈레도니우스(또는 첼레도니오)의 생애와 순교 사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이들을 위하여 장시를 지은 프루덴티우스
(Prudentius)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박해자들은 그들의 순교 사실을 불태웠고, 미래의 영광을 두려워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이 두 성인은 성 마르첼루스(Marcellus)의 아들로 부친을 따라 군인이 되었으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에스파냐의 칼라호라
(Calahorra) 성에서 참수되었다고 한다.
성녀 논나 (Nonna)
신분 : 과부
활동연도 : +6세기경
같은이름 : 논니타 논니따
성녀 논나는 귀족 출신으로 웨일스(Wales)의 디버드
(Dyfed)에서 태어난 듯하다.
그녀는 웨일스의 세인트 데이비드(오늘날의 지명) 교외 티 그윈(Ty Gwyn)의 어느 수도원에서 살다가 샌트(Sant)
라는 어느 족장에게 붙잡혀 가서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성 다윗(David, 3월 1일)이다.
그 후 그녀는 콘월(Cornwall)과 브르타뉴(Bretagne) 등지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논(Non) 또는 논니타(Nonnita)로도 불린다.
성녀 쿠네군다(Cunegundes)
신분 : 동정녀, 과부, 황후
활동연도 : 978-1033/1039년
같은이름 : 구네군다, 구네군데스, 구네군디스, 쿠네군데스, 쿠네군디스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또는 구네군다)는 룩셈부르크의 백작인 부친 지크프리트와 모친 헤드비그로부터 아주 어릴 때부터 신심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독일 바이에른(Bayern)의 공작인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와 결혼하였다. 이때 성 헨리쿠스는 동방의 어느 목수가 제작한 십자가를 선물했는데, 이것이 지금도 뮌헨에 보존되어 있다. 어느 전기작가는 그들 부부는 결혼식 날에 동정서원을 발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당시의 황제인 오토 3세가 서거하자 성 헨리쿠스는 바이에른의 왕으로 추대되었고, 그의 대관식은 마인츠(Mainz)에서 성 빌리지스(Willigis, 2월 23일)에 의하여 성대히 거행되었고, 이어 1013년에 그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 베네딕투스 8세(Benedictus VIII)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았다.
그런데 결혼 첫날밤부터 서로 동정을 지키며 남매처럼 지내던 성녀 쿠네군다는 얼마 뒤에 중상자들의 희생물이 되었고, 남편마저 일시적이나마 아내를 의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확고히 항변해야 할 입장에 선 그녀는 불에 의한 시죄법(試罪法) 적용을 허용해 달라고 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 성 헨리쿠스는 자신의 의혹을 풀고 마음으로 일치하여 살았으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정을 베풀었고, 국내의 신앙 전파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성녀 쿠네군다는 황제에게 청을 드려서 밤베르크(Bamberg) 대성당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짓게 하였고, 교황 성하가 직접 오시어 축성하도록 주선하였다.
그러던 중에 중병을 앓게 되었는데, 그녀는 병이 나으면 카셀(Kassel) 근교 카우푼겐에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하고, 그 후 이 일이 거의 완공될 무렵 남편 성 헨리쿠스가 운명하였다.
1024년 남편의 기일을 맞이하여 성녀는 카우푼겐 성당을 수차례나 방문하고 미사 때 복음을 봉독한 뒤에, 그녀는 원래의 십자가 일부를 제대에 봉헌하였다. 그 후 그녀는 주교로부터 수녀복을 받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지난날의 황녀로서 모든 부귀영화를 잊고 비천한 환경과 초라한 수도원에서 기꺼이 살았으며, 하느님 앞에 흠 없는 삶을 살았다고 주위 사람들이 높이 칭송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1200년 3월 29일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