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00년은 지식습득의 시대…
이젠 '생각하는 법' 아는 게 힘
지식이 경쟁력인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생각이 힘이고, 경쟁력이다.
불과 10년, 20년 전만 해도 뇌에 쌓아둬야 했던 지식이
이제는 전부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인터넷 접속 인구가 현재 10억명에서
10년 후면 50억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지식은 사흘마다 두 배씩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그 많은 걸 머릿속에 넣어 다닐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언제든 검색해서 쓰면 된다. 대학 건물은 머지않아 물류 창고로 전락할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도전이 다가오고 있다. 자동화 물결이다.
'제2의 기계 시대'라는 신간에 따르면, 20세기에는 기계들이 블루칼라 일자리를
잠식한 데 이어, 21세기에는 각종 소프트웨어가 화이트칼라까지 밀어낼 기세다.
이미 법률 자문이나 약 조제, 진료는 스마트 기기들이 맡아서 한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지만, 이제는 생각하는 힘이 인간에게 남은 고유한 능력이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법을 잊어간다는 것이다.
농경과 도시 문명에 진입하면서 사냥하는 법을 잊은 것처럼,
자동화와 더불어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이 급속히 퇴화하고 있다.
결국 2500년 전 '생각하는 법'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기원전 8세기에서 3세기 사이 공자, 맹자, 노자, 부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생각의 대가가 쏟아져 나왔다. 서로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동시다발로 일어났는지 신기하다.
이 뛰어난 사람들은 생각하는 법을 개발하고 지식을 만들어 가르치기 시작했다.
특히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한 생각의 방법들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2500년간 유지된 교육 제도의 기틀이 마련된 것도 그곳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인류에게는 새로운 문제가 시작됐다.
후대 사람들은 선대의 천재들이 만든 지식을 배워다가 사용하는 데 익숙해졌다.
아인슈타인, 다빈치, 셰익스피어 같은 예외가 있었지만,
독자적인 사고 능력은 점점 퇴화했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다시 고대 그리스 생각의 대가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현대 뇌과학의 놀랄 만한 발견 중 하나는 '뇌 신경 가소성(plasticity·可塑性)'이다.
뇌가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뇌는 이에 해당하는 뇌신경세포 네트워크를 새로 만든다.
영어를 공부하면 영어를 위한 뉴런 네트워크가 생기는 식이다.
컴퓨터로 치면 소프트웨어를 까는 것과 비슷하다.
아인슈타인이 죽은 다음 뇌를 분석해 봤더니 특별히 크거나 무겁지 않았다.
하드웨어는 비슷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디서 차이가 났을까.
소프트웨어였던 것이다. 뇌에 은유를 위한뉴런 네트워크가 생기고
문장, 수사, 수를 위한 뉴런 네트워크가 생기게 하는것은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까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는 '생각하는 법'의 원조였던 호메로스, 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프로타고라스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머릿속에 이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때 생각의 방법들은 메타포라(metaphora), 아르케(arche), 로고스(logos),
아리스모스(arithmos), 레토리케(rhetorike)라 불렸다.
우리말로는각각 은유, 원리, 문장, 수(數), 수사에 해당한다.
다섯가지 생각의 도구
①시로 은유를 익힌다.
은유는 이미지를 통해 본질을 꿰뚫어보는 힘이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여류시인 사포는 사랑을 이렇게 묘사했다.
"다시 사랑이 온다. 사지를 부수고 고문하는,
달콤하고 고통스러운 그는 내가이길 수 없는 괴물이다.
"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욕망의 핵심을 은유로 드러내기도 했다.
"입구가 좁은 병에 팔을 집어넣고 과일을 가득 쥔 아이를 생각해보라.
이 아이는 팔을 빼지 못해서 울게 될 것이다.
과일을 버리면 손을 다시 뺄 수 있다. 욕망도 이와 같다.
" 이처럼 차원 높은 사고와 언어의 바탕에는 반드시 은유가 있다.
플라톤의 '동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사다리', 다윈의 '생명의 나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등 모든 사상의 대가들은 은유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한눈에 보여준다. 은유는 천재들의 도구다.
우리가 은유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詩)를 읽는 것이다.
시는 은유의 보물 창고다. 한국의 명시 100선 같은 시집을 하루에 5분만 읽어라.
낭송하거나 외우면 더 좋다.
②추리소설로 가추법을 익힌다.
원리는 자연과 사회현상 뒤의 숨은 법칙이다.
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구성하고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는 생각의 도구다.
만유인력 법칙을 알면 모든 물체가 밑으로 떨어지니
물레방아를 돌려 곡식을 빻고 수력 발전까지 할 수 있다.
원리를 알아내는 방법 중에 가추법(abduction)이 있다.
셜록 홈스가 왓슨이 나갔다 들어오는 걸 보고
"자네 우체국 가서 전보 부치고 왔지?"라고 묻는다. "어떻게 알았나?"
"자네 구두코의 붉은 황토. 그런데 밟을 수 있는 곳은 런던의 우체국 앞뿐이다.
공사 중이라서." "그래? 그럼 전보 부친 건?" "자네는 오전 내내 같이 있었는데
편지를 쓰지 않았다. 책상 위에 편지지와 우편 봉투가 그대로 있으니까.
우체국에 가서 할 일이 전보뿐일 것이다." 이런 추론적 사고가 가추법이다.
우리는 추리소설 읽기를 통해 가추법을 기를 수 있다.
홈스 시리즈에만 217개 가추법 대목이 있다.
③완전한 문장으로 이야기함으로써 관념을 익힌다.
아이들은 인과 개념이 없다. 교육심리학자 피아제는 6세 전후까지 그렇다고 봤다.
백조가 된 왕자를 설명하는데 '나쁜 마녀가 있다.
그리고 왕자가 백조가됐다'는 식으로 이해할 뿐이다.
인과 개념이 형성됐을 경우에는 '나쁜 마녀가 마법을 부렸기 때문에
왕자가 백조가 됐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아이들은 동화책을 읽고 문장을 익히면서
차츰 이런 관념을 키워간다. 뇌가 문장을만드는 게 아니라, 문장이 뇌를 만들어 간다.
따라서 엄마들은 가능하면 아이들에게도 완성된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게 좋다.
이유식을 먹일 때도 그냥 '맘마'보다는 '나는 네게 맘마를 줄 거야'라고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다. 갓난아이 때부터 이런 서술 구조에
자주 노출되면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
문장은 본질적으로 세계에 대한 묘사다. 아이를 안고
책을 읽고 문장을 들려주면 아이의 뇌도 자연과 사물의 이치에 합당하게 형성되도록 한다.
더 크면 교과서나 신문 기사,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베껴 쓰게 하면 좋다.
④이미지로 수(數)를 익힌다.
수의 아버지는 피타고라스다.
그는 혼돈 상태인 자연과 사회 현상에 질서와 패턴이 있다고 봤다.
가령 시간은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다. 하지만 하루를24등분해서 시간을 만들고,
30일을 묶어 달을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절기를 따지고 시간표를 짜고
몇 시 몇 분에 만나자는 약속도 한다.
황금비율의 개념도 수를 토대로 한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에 따르면,
세상 꽃잎 중 92%가 피보나치 수열에 맞춰 개수가 이뤄져 있다.
이 수열 앞 수로 뒤 수를 나누면 갈수록 황금비율(1.618033987…)에 수렴한다.
황금비율은 파르테논 신전, 피라미드, 다빈치,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애플 로고에도 알고 보니 황금 비율이 숨어 있었다.
수는 자연과 사회, 예술에 질서를 부여해 패턴으로 드러나게 하고,
이를 통해 재창조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창의적인 생각의 강력한 도구인 수를
우리는 단지 계량과 계산의 도구로만 쓰고 있다.
수학에 흥미를 가지려면 실생활 속의 이미지와 연결해서 학습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⑤연설문으로 수사를 익힌다.
이제는 많이 아는 것보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설득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다.
유권자를 사로잡지 못하는 후보는 떨어지고,
면접에서 심사위원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수험생은 탈락한다.
직원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리더는살아남을 수 없고,
가족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가장은 존경받지 못한다.
권위의 시대가 가고 설득의 시대를 맞았다.
16세기 그림 '수사학의 여인'을 보면 입에 꽃과 칼을 물고 있다.
꽃은 '문예적 수사', 미사여구법을 나타낸다.
대구,도치, 반복과 같이 광고에 많이 등장한다.
'피자헛, 함께 즐겨요'는 밋밋하지만 '함께 즐겨요, 피자헛' 하면 그럴싸하다.
칼은 '논증적 수사'를 가리킨다.
예증법, 생략 삼단논법, 대증식, 연쇄 삼단논법 같은 것들이다.
이런 기법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연설문을 읽고 외우는 것이다.
링컨, 케네디, 오바마 같은 웅변가들 명연설을 모은 책을 사서 소리 내 읽어라.
베껴 쓰는 것도 좋다. 이런 문장을 외우면 몸에 수사학 뉴런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첫댓글 공감하는 내용들이로군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공감 만땅입니다.^^
무지나 어리석음은 죽음인 시대입니다.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느는게 아님은 현실에서 흔히 보고
많이 배우거나 싸돌아 다닌다고 느는 것도 아닌거 같고...
생각만한다고 능사가 아니라 대부분 이상은 버리거나 없애야할 잡념 등 일뿐이고 생각다운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도 공부와 교육이 필요하며
구체적으론 4가지가 좋지 않나 싶습니다.
경험, 각성, 독서, 바둑.
같은 생각입니다.^^
바둑은 7급 정도까지만 둘 줄 알고, 그 이후로는 평생 끊어야 할 잡기입니다..
원리와 요체만 파악한 후 평생 손 대지 말아야 할 마약이죠..
@레프트사이드(서울) 바둑을 즐겨둡니다.
제 인생의 멘토중 하나는 바둑이며
이 세상에서 바둑계만큼 청정한 분야는 못봤습니다.
혹 제가 모르는 환멸 느낄만한 부분도 있을수 있지만 아직까진 본바도 들은적 1번도 없습니다.
바둑둘때 만큼은 제가 진시황이며 슈퍼갑이며 엘리트를 움직이는 실세입니다.
@milkyway(서울) 언제 여건이 되면 milkyway님 바둑 두시는 거 옆에서 참관 한 번 해보고 싶네요.. 바둑 구경만큼 신나는 것도 없지요.. ㅎㅎㅎ
한데 저는 바둑 타짜.. 일명 [마귀]에게서 마귀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주변에 노름바둑에 중독된 사람도 있고요.. 10집당 담배 한 갑이었나요? 요즘이야 인터넷 바둑이 나와서 부담없이 아무나 붙잡고 조건 없이 바둑 둘 수 있다지만.. 예전에는 기원에 가서 호적수를 만나야만 재미난 바둑을 둘 수 있는데.. 내기 없인 바둑을 두지 않는 것이 유행.. -_-
철학을.....;
거창하네요 ㅎㅎ
좀 더 실전적인 방법으로 프로그래밍을 추천합니다. 자동화를하는 푸로그램 작성은 결국 프로그래머가 담당합니다. 인류 최후의 직업이라고도 하죠.
스티브잡스도 소싯적에 프로그래밍좀 했는데. 프로그래밍을 배운다는 것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법이라고 명확히 정의한 인터뷰가 있더군요. 확실히 내공이 장난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한다고 해서 생각하는 법이 터득된다거나 창의력이 자라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많은 프로그래머들을 목격했지만,
이미 생각하는 법과 문제해결에 대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결국 상급 프로그래머가 되더군요..
프로그래밍은 목적을 위한 [수단]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단지, 그 [수단]의 잠재력을 알고 있느냐 않느냐, 그리고 그 [수단]을 사용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봅니다..
스티브잡스의 그 언급 역시.. 잡스가 그 [수단]의 잠재력과 활용방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레프트사이드(서울) 단순히 프로그래밍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실제로 수행하는 과정이 중요하지요.
결과적으로 잘 동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문제를 잘 정의하는 법과 해결하는 과정이 수행되어야하기 때문에 예를 든 것이랍니다. :)
@청류 네.. 말씀하신 의도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세계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고난이도의 가상체계에 대한 이해도와 창의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 배움의 초입에서 99% 좌절하고 떠나게 됩니다..
간혹 html + php, 혹은 visual basic 따위의 초저급 언어에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뛰어들어 자칭 프로그래머가 되어 경력을 쌓기도 하는데, 대부분 수박의 표면 1mm 정도만 핥아 먹고 막을 내리는 케이스죠..
문제 해결 과정이 필요한 분야는 프로그래밍 말고도 많다고 봅니다.. 프로그래밍은.. 글쎄요.. 그 깊이가 너무 깊어서 범인들이 [능력개발]을 위해 발 담글 분야는 아니라고 봅니다..
@레프트사이드(서울) 차라리 개발 대행 분야를 좀 더 명확히 하고 체계적으로 정비하여 일반인들이 개발자에게 보다 쉽게 명확하게 의뢰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앞서야 한다고 봅니다..
같은 의미로.. 전자장치 개발 -> 일반제품 설계/개발 분야도 동일하게 정비되는 편이 더 유익할 것 같습니다..
쉽게말해서...크리에이티브한사람들....머리속에 생각을 표현하거나 그것자체로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대우받는세상인거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하고있는 교육들과 정반대되는 교육을 해야하는...후후후 그리고 애들을 스마트미디어에서 떼어놓고 자라게해야하는 거죠.. 실리콘밸리 유명 IT업체 임원진들이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 위에 서기위한 방법...
제가 다니는 회사에도 어떤 방법으로건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생각을 정리하는게 필요한데, 안되는 사람들이 더러 있더군요.
좋은글입니다 하지만 지식이 인류최고조로 쌓인 이때 오히려 사람들은 생각하는법을 잊어버리기 시작했죠 네이버 검색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잘못된 습관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본문에도 나왔지만 시를 읽는것도 뇌를 활성화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실제로 예전에 아침출근해서 시 한두편씩 읽기도햇엇다는ㅎ
시도 좋지만.. 동일한 시간을 투자한다면, 성경을 추천합니다.. 아무 성경책이나 읽다보면 구닥다리 번역문장과 문체 때문에 정신이 돌아버릴 수도 있으니, 아가페 출판사 [쉬운성경]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존재이유를 알아가는 재미보다 더 귀중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제일 좋은 건 구약에 나오는 시편을 읽는 겁니다.^^
@열공하자 하지만 시편은 성경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어야만 각 구절의 의미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비추랍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김소월이나 윤동주의 시, 혹은 워즈 워드의 시와는 그 목적과 의미가 매우 큰 차이가 있어서 구약의 시편은.. 너무 난해하므로.. 위에 언급된 은유를 익히는데는 부적합함요..
차라리 예수와 바울의 발언들이 적힌 신약이 은유를 익히는데 더 유익할듯요~
@레프트사이드(서울) 성서는 전체가 위대한 대하소설과도 같은 느낌을 줍니다.
유대인들이 세계를 떡주무르듯이 주무르는 것을 보면 괘씸할 때도 있지만, 그들은 분명 성서라는 걸 만들어낸 위대한 민족입니다.
기독교 자체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성서는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위대한 책인 것은 인정합니다.
@열공하자 우주만물의 비밀.. 무시무시하게 정확한 예언들.. 인류의 미래..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
저의 자질이 모자라고 여건이 허락치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함이 천추의 한이랍니다.. 애통하고 원통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