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인과 한국인의 꿈 이야기
1)
박미경*
〔요약〕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꿈을 소중히 여기며, 꿈은 미래를 예견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꿈
과 해몽(解夢)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신비스런 힘은 각종 종교나 미신들보
다 훨씬 더 인간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꿈이란 ‘단순히 인간의 운명을 미리 보
여 주는 귀신의 조화’가 아니다. 꿈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창조적인 힘을 가
지며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희망의 원천도 될 수 있다. 이에 꿈을 능동적으로 받
아들였던 히브리인들의 꿈과 우리네 조상들이 꾸었던 꿈을 비교해 보면서 서로 다른 삶 속
에서도 꿈을 통해 희망을 가지고 현실의 삶을 엮어 나갔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Ⅰ. 시작하는 말
꿈은 아주 오랫동안 대단히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원시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꿈이란 영혼이 육체를 떠나 바깥으로 떠도는 것이었다. 영혼이 바깥으로 떠돈다는 것은 귀
신의 지시에 의한 것이고, 그러기에 꿈이란 것은 귀신이 꿈을 꾸는 사람에게 계시를 내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꿈의 내용에 근거해 신의 뜻을 알아차리고 길흉을 미리 예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수메르 라가쉬의 왕 에아나툼(Eannatum, 서기 전 2450년 경) 시
대의 문서에 실려 있다. 여기에서 꿈은 ‘신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라
고 정의된다. 또한 그 왕이 잠을 잘 때 닌거수Ningirsu라는 신이 나타나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1) 옛날의 왕들은 해몽解夢을 국가의 길흉을 관찰하고 나라의 큰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해왔던 것이다.
옛사람들은 신이나 혹은 죽어서 신이 된 인간의 혼령들이 그들을 섬기기 위해 특별히 봉헌
해 놓은 곳에 가장 잘 나타나리라 믿고, 그곳에서 꿈 신탁을 받고자 했다. 그리스의 아테네
에서 가까운 오로푸스 산에 암피아라우스라는 유명한 점쟁이의 사당이 있었다. 여기에서 신
의 응답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그 점쟁이의 죽은 혼령에게 숫양을 제물로 바쳤다. 또한 사당
의 제단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 여타의 신들에게도 숫양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그
들은 제물을 바친 다음, 숫양의 가죽을 땅바닥에 펴고 자면서 신들이 꿈에 나타나 계시해
주기를 기대하였다.2)
*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1) 이상의 설명은 박종수, .이스라엘 宗敎와 祭司長 信託-제비뽑기의 神秘., 한들, 1997년, 71쪽.
2 한국무속학 6집
하지만 사람들이 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해몽 활동이 미신과 엮이면서 병
폐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자 근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꿈은 황당무계하고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조금도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3) 이는 해몽을 신령
이나 혼귀의 뜻을 들추어내는 일종의 미신으로 보고, 해몽이 고대 사회생활에서 부정적이고
유해한 작용을 하기도 한 데 대한 반발작용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4)
근대 이후, 꿈은 인간 ‘소망의 충족 수단’이요, 잠재의식이 표출되는 것으로 설명되면서5) 과
학 발전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듯했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 역시 꿈을 중요시한
다. 현대인들이 꿈을 해몽 미신으로까지 연결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꿈이 반드시 최근에
있었던 사건이나 근심거리를 통해 추적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님을 인정한다.
옛 사람들이 꿈을 소중히 하였듯이, 현대인들 역시 꿈은 미래를 예견해 준다고 여기는 것
같다.6) 요즘 서점마다 진열되어 있는 꿈 해몽 책들이 우리 시대의 정서를 잘 보여 주는 것
은 아닐까? 아울러 컴퓨터 인터넷에 들어가서 보면 꿈 해몽 사이트를 쉽게 접하게 되는 것
도 현대인들 역시 꿈을 소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꿈과 해몽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보
여 주는 예가 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다 비슷할 것이다. 그러기에 어느 민족이
든 꿈 이야기도 비슷한 것 같다. 특히 히브리인들과 우리네 조상들은 유독 어려운 세월을
살아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각자의 문화와 환경이 다른 탓에 저마다 독특한 꿈
을 꾸기도 하지만, 어려웠던 세월에 따라 꿈에서 희망을 찾고 용기를 내는 이야기는 비슷하
기도 하다.
이에 우리는 히브리인들의 꿈과 한국인의 꿈을 비교해 보면서, 그들은 저마다 꿈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꿈을 통해 얻은 지혜를 어떻게 현실에 적극 활용했는지 살펴본다. 그렇게 함
으로써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을 얻어 보고자 한다.
꿈속에서 일어난 일의 참 의미는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 의미가
모호하고 불가사의한 내용도 많다. 이에 미래를 예언하는 참된 꿈과 사람을 미혹하고 타락
시킬 수 있는 가치 없고 혼미한 꿈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이를 생활에 적극적으
로 활용한다면 메마른 듯이 보이는 현대인의 삶에 풍요로움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J.G.프레이저 지음, 이양구 옮김, .구약시대의 인류민속학., 강천, 1996, 467쪽.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서도 역시 꿈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우가릿 왕 케렛에 대한 이야기에서, 왕
은 꿈에 엘(El) 신에게 후계자를 주기를 간구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꿈은 신의 의지를 파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집트에서의 꿈과 해몽에 대한 기록은 스핑크스 문헌에 보이는데, 툿모시스 4세가 꾼 꿈에 신이
나타난 내용을 적고 있으며, 다른 곳에서는 서기 전 664년경에 에티오피아 왕 타누타몬에게 꿈에 두 마리의
뱀이 나타났던 일을 전하고 있다. 왕에 대한 기록에서 꿈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은 그 꿈의 내용이 국사와
관련이 있거나 중요한 신탁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3) 아리스토텔레스는 꿈은 신(神)에게서 온 것도, 신적(神的)인 것도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즉, 꿈은 초자연적인
계시에서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신성(神性)에 가까운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인간 정신의 여러 법칙에서 생긴
것이며 인간이 자고 있는 동안 영혼이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4) 劉文英, 하영삼.김창경 옮김, .꿈의 철학. 꿈의 미신과 꿈의 탐색, 1993년, 436쪽.
5) 프로이트 S., 민희식 역, .꿈의 해석., 정민미디어, 2002, 47쪽.
6) 프로이트(S. Freud, 1856~1939)도 이 점을 인정한다. 유문영, 앞의 책, 436쪽 재인용.
히브리인과 한국인의 꿈 이야기 3
Ⅱ. 생명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꿈
여느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인들도 꿈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다고 믿
었다. 그래서 그들은 꿈과 예언, 제비뽑기에 사용된 우림7)을 합법적인 신탁의 수단으로 받
아들였다.8) 특히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꿈과 밤에 보는 환상은 예언적 계시의 필수적인 현
상이었기에, 그들은 그 어느 문화권의 사람들보다 꿈을 더 중요시했다.
하느님의 계시는 개인들에게9) 그리고 가끔 이교도인에게까지 내렸다.10) 그러나 그 계시들
이 이교도에게 내렸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히브리인들은 믿었다. 하느님의 계시는 꿈을 통해 이스라엘의 성조들을 비추고
인도해 주었다.11)
다른 고대 국가와는 달리 이스라엘에는 공적 해몽가들이 없었던 것 같다.12) 아브라함, 이사
악, 야곱, 사무엘과 솔로몬 등 이스라엘의 성조(聖祖)들은 그들 스스로 꿈을 풀었다. 성전에
서도 왕궁에서도 해몽가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13)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느님은 가끔 이교도의 왕이 꿈을 꾸도록 마련하시기도 했다. 이 때는
어떤 유능한 해몽가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꿈을 주시고 이를 히브리인들 중에서도 오
직 하느님의 종이 풀 수 있도록 하셨다. 꿈을 잘 풀어 높은 벼슬에 오르고, 결국은 히브리
민족을 기아에서 건져낸 요셉 이야기를 한 예로 들어보자.14)
요셉이 당시 이민족의 나라에 와 많은 고난을 겪고 마침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였다. 이 때
이집트의 파라오가 꿈을 꾸었다. 파라오가 나일 강가에 서 있는데, 잘생기고 살진 암소 일
곱15) 마리가 나일 강에서 올라와 갈대밭에서 풀을 뜯었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못생기고 야윈 암소 일곱 마리가 나일 강에서 올라와, 강가
7)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하느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 일종의 제비뽑기를 위해 우
림과 둠밈을 던지곤 했다. 우림은 ‘빛’을, 둠밈은 ‘완전’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
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이 제비뽑기는 후에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들의 활동이 커짐에 따라 점
차 사라졌다.
8) 1사무 28장 6절; 민수 12장 6절과 비교.
9) 욥 4장 12~21절; 집회 34장 6절.
10) 창세 40~41장; 다니 4장.
11) 창세 15장 12~21절; 20장 3~6절; 28장 11~22절; 37장 5~11절; 46장 2~4절; 판관 6장 25~26절; 1사무
3장; 2사무 7장 4~17절; 1열왕 3장 등.
12)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꿈을 풀기 위해 해몽가들을 고용했다고 전한다(창세 41,8; 예레 27,9). 그뿐
인가? 중국은 은나라 시대 때부터 갑골 복사로 왕의 꿈을 해몽해 주는 전문가가 있었다는 문서 기록이 있다.
유문영, 앞의 책, 32쪽.
13) .꿈.,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 대학, 1984년.
14) 창세 41장.
15) 히브리인의 성서 중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첫 날에 최초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은 연이어서 둘째
날에는 물과 하늘, 셋째 날에는 육지와 바다를 만드시는 등 창조 사업을 7일 간에 걸쳐서 하셨다. 이와 같이
해서 7일째가 되자 천지는 완전한 생명으로 넘쳐흘렀고, 그것을 본 하느님은 흡족해 하며 창조의 7일간을 축
하하는 성스러운 날을 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창세 1장). 이로 인해 히브리인들은 ‘7’이라는 숫자를 완전한
수로 여긴다. 숫자 ‘7’에 대한 상술(詳述)은 永田 久 지음, 沈雨晟 역, .曆과 占의 과학., 동문선, 1992, 667쪽
참조.
4 한국무속학 6집
에 있는 그 암소들 곁으로 가서 섰다. 그러고는 이 못생기고 야윈 암소들이 잘생기고 살진
그 일곱 암소들을 잡아먹는 것이었다. 파라오는 잠에서 깨어났다. …(중략)…
아침이 되자 그는 마음이 불안하여, 사람을 보내어 이집트의 모든 요술사와 모든 현인을 불
러 들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파라오의 꿈을 풀이해 주지 못하였다. 그때 헌작獻爵 시종장
이 파라오에게 요셉을 천거하자 파라오는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들은 서둘러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어,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 입혔다. 그런 다음 요
셉을 파라오에게 들였다. 파라오가 자신이 꾼 꿈을 요셉에게 이야기하자 요셉이 해몽을 시
작했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좋은 암소 일곱 마리
는 일곱 해를 뜻합니다. … 그 뒤를 이어 올라온 마르고 흉한 암소 일곱 마리도 일곱 해를 뜻합니다. … 앞으
로 오게 될 일곱 해 동안, 이집트 온 땅에는 대풍이 들겠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일곱 해 동안은 기근이
들겠습니다. 그러면 이집트 땅에서는 전에 들었던 그 모든 대풍이 잊혀지고, 기근이 이 땅을 고갈시켜 버릴
것입니다. … 그러니 이제 파라오께서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 하나를 가려내시어, 이집트 땅을 그의 두
손 아래 두심이 좋겠습니다. …”
그러자 파라오와 신하들은 그의 제안을 좋게 여기고, 요셉을 재상으로 삼아 이집트 온 땅을
그의 수하에 두었다. 과연 그 뒤 이집트 온 땅은 일곱 해 동안 대풍이 들어 풍성한 곡식을
내었다. 요셉은 이 일곱 해 동안, 모든 양식을 거두어 성읍에 저장하였다.
이렇게 해서 요셉이 바다의 모래처럼 엄청난 곡식을 쌓았고, 그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게
되었다. 칠 년 대풍이 끝나고 요셉이 풀이한 꿈대로 칠 년 기근이 시작되었다. 이집트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기근이 심하였기에 세상 사람들이 요셉에게서 곡식을 사고자 이집트로 몰
려왔다. 요셉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었기에 많은 생명을 기아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솔로몬의 경우를 하나 더 들어보자.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후 그는 백성을 제
대로 통치하려는 열정을 가졌지만, 자신이 없었다.16) 그러던 중 그가 산당에서 제사를 드릴
때, 하느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청하라고 하신다.
솔로몬은 하느님께 다른 것을 청하지 않고 백성을 잘 통치할 수 있는 지혜 주시기를 청한
다. 하느님은 그에게 지혜는 물론이요, 부와 명예까지 주신다. 하느님은 솔로몬에게 꿈을 통
해 축복을 약속하셨고, 솔로몬은 꿈을 소홀히 대하지 않음으로써 신적 선물들을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총독부의 촉탁이었던 일본인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은 우리 민족의 기
층문화(基層文化)를 조사, 분석함으로써 식민지 정책의 기저를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상고로부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점복습속(占卜習俗)을 문헌과 현장 답사를 통하여
정리하였다. .朝鮮의 占卜과 豫言.이라는 책을 통해 그는 우리네 조상들의 심성을 분석하고 있
다.17) 그 중 우리 조상들이 ‘꿈’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적고 있는데, 이를
16) 열왕 3장 5절 이하.
17) 일본이 우리네 습속을 조사, 연구할 때는 우리 민족성에서 허점을 찾아 식민통치의 기초 자료로 이용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들어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
이다.
히브리인과 한국인의 꿈 이야기 5
인용해 보자.
“꿈에서는 수면 시 신체는 정지되어 움직이지 않고, 감관(感官)은 일체의 자극을 감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
고 각성 시에 볼 수 없는 기이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연유로 꿈속의 정신 상태는, 보통의 상태와는
다른 일종의 특별한 어떤 상태이리라 사유된다. 이 특별한 상태가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을 때, 이것은 하나의 불가사의한 정신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불가사의한 정신현상을 사람들은
주로 신령의 작위에 의한 것이라 믿었다. 여기에서 수면 시의 정신상태는 신령과 통교할 수 있는 상태이고,
꿈은 전적으로 신령의 계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18)
사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전해 받은 옛 이야기들을 보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꿈을 앞
으로 일어날 일의 조짐으로 여기고, 이를 소중히 했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인이나 우리네
조상들이나 꿈을 소홀히 다루지 않았고, 여기에서 하늘의 뜻을 아는 지혜를 발휘했던 점은
아주 비슷하다. 꿈에 의해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이야기를 들어보자.19)
선조 임진년에 … 회령에서 왜적 경세와 그 일당들이 소리 지르며 모여들어 소란을 피우다, 어둠을 틈타
무작정 쳐들어왔다. 이 때 그 일본인들이 조선의 두 왕자와 신하 넷을 인질로 체포해 길주에 있는 왜장 청정
에게 보내어, 상금을 받고자 하였다.
그들이 일을 꾸미던 경성 근처에는 ‘용성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에는 처사 박공 혼자만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는 강개하고 충의로운 선비였기에, 적의 기운이 바야흐로 타오르고 국세가 장차 위태로우매 밤낮
으로 걱정하고 탄식했다. 홀연히 하루는 꿈에 서쪽 산기슭에 용 두 마리가 내려왔는데, 벌레와 살모사에게
곤경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깨어나서 이를 기이하게 여긴 박공은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과연 그 적들이 모여 있고, 두 왕자와 네
신하들이 막 묶이고 있는 게 아닌가. 일이 장차 예측할 수 없었다. 그곳은 바로 그 꿈에서 용이 내려온 곳이
었다. 화가 난 박공은 몸을 돌보지 않고 칼을 무릅쓰고 곧바로 들어가 충성의 눈물을 쏟으며, 인의(仁義)에
비유하여 깨닫기를 설득하니 적들이 곧 그 정성에 감동하여 두 왕자와 신하들을 풀어주고 흩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꿈을 꾸고 난 후, 이를 단순히 최근의 사건이나 근심거리를 통해 추적할 수 있는
‘하루의 잉여’라고 생각해 버릴 수 있다.20) 하지만 요셉이나 솔로몬 그리고 처사 박공은 이
를 단순하게 여겨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신중하게 이를 받아들
이는 사람들이었다. 그 결과 꿈은 생명을 살리고 지혜를 얻는 원천이 되어주었다.
인간은 자기 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시기나 중요한 시기에 신비한 꿈을 꾼다고 한다. 심층심
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러한 꿈을 ‘원초적인 꿈(primitive dream)’, 또는 ‘원형적인
꿈(archetypal dream)’이라 부른다. 원초적인 꿈이란 통상 한 사람의 생에 있어서 결정적
전환이 되는 사건과 관련해서 꾸거나 자기완성, 자기 생명 보존과 관련된 생의 중요한 순간
에 꾸는 꿈이다.21)
이런 꿈들은 ‘길몽이다’, ‘흉몽이다’를 따질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이는 인간에게 예지를 주
며 생명을 가꾸고 보존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꿈이다. 이러한 꿈은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풍
요로운 삶, 창조적인 삶을 이끌도록 도와주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8) 村山智順, 김희경 옮김, .朝鮮의 占卜과 豫言., 동문선, 1990년, 232쪽.
19)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下), 村山智順, 위의 책, 268쪽에서 인용.
20) 송봉모, .야뽁강을 넘어서-집념의 인간 야곱., 바오로딸, 2002, 81쪽.
21) 송봉모, .생명을 돌보는 인간. 성서와 인간 3, 바오로딸, 1998, 34쪽.
6 한국무속학 6집
Ⅲ. 히브리인과 한국인의 꿈 비교
히브리인들의 꿈과 한국인의 꿈 이야기에는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
습들이 비슷하기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꿈들은 서로 많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문화
의 차이가 꿈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특정 민족의 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믿음과 소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토양과 문화의 흐름을 느낄 수도 있겠다. 이에 먼저 이스라엘
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종말 사상을 한번 살펴보자.
이스라엘 땅에는 종말-묵시 사상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22) 종말 묵시 사상가들은 세
상을 ‘이 세상’과 ‘새 세상’으로 양분하고, 이 세상은 악의 세력이 지배하기에 인간에게 고통
만 안겨 줄 뿐이고, 악화 일로를 걸어 언젠가는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하느님의 직접 통치가 이루어지는 새 세상이 오게 된다. 말하자면 역사란
퇴보로 치닫고 있으며 장차 극도의 혼란이 일어난 후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게 된다는 뜻이
다. 이 사상의 영향으로 히브리인들은 묵시적인 형태의 꿈을 꾼다.
이스라엘에는 묵시 문학 작품이 흔한 반면, 한국 문화에는 묵시 문학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한국인은 묵시적인 꿈을 접하지 않으나, 히브리인들은 이를 자주 언급한다. 이런 꿈의
한 예를 보자.
-에녹의 꿈-동물 묵시서23)
“… 에녹은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의 아들 므두셀라에게 말했다. 나의 아들아, 내가 네게 전하는 나의 말
들을 들어라. 그리고 너의 아비가 본 꿈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너의 어미 에드나를 맞이하기 전에 나는 내
침상에서 한 가지 환상을 보았다.
황소 한 마리가 지상에서 올라오는데 그 황소의 색깔은 흰 색이었다. 그 다음에 어린 암소가 나오고, 이
어린 암소로부터 수소 두 마리가 나왔다. 그 중 한 수소는 검은 색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붉은 색이었다. 그
검은 수소는 붉은 수소를 공격하여 지상으로 밀어내었다.
그 때부터 나는 그 붉은 수소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검은 수소는 자랐고, 어린 암소는 그 검은 수소
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많은 황소가 그와 같이 생긴 검은 수소로부터 나와 그 검은 수소를 따르는 것을 보았
다.
그 첫 암소는 첫 황소와 헤어져 그 붉은 수소를 찾아 나섰으나 그를 찾지 못했다. 그러자 그 암소는 울부
짖으며 그 수소를 계속 찾아 다녔다. 나는 처음의 그 황소가 암소를 만나고 안정될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
때부터 그 황소는 울지 않았다.
이 일 후에 그 암소는 다른 흰 수소를 낳았고, 다시 많은 검은 수소와 암소를 낳았다. 그리고 나는 나의
양 무리 속에 그 흰 수소가 어떻게 자라서 그렇게 크고 흰 수소가 되었는지 지켜보았다. 그 흰 수소로부터
많은 흰 수소가 나왔고 모두 그를 닮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과 닮은 많은 흰 수소를 하나씩 낳기 시작했다.
…”
22) 정양모 외, .성서를 읽는 11가지 방법., 생활성서, 2001, 109~110쪽.
23) 에녹1서 85~86장. 묵시 문학의 대표적인 예로 다니엘서와 요한 묵시록 등은 우리가 성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에녹1서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중간시대에 나온 문헌으로 위경(僞經)에 속한다. 그 외에도 모세 승천
기, 에즈라 4서, 바룩 2서 등 많은 묵시 문학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히브리인과 한국인의 꿈 이야기 7
이 묵시는 인류의 첫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창조, 그리고 카인과 아벨, 천사(별)들의 죄악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 아담은 흰 황소로, 하와는 어린 암소로, 카인은 검은 색의 어린 수소
로, 아벨은 붉은 색의 어린 수소로 상징되었다. 메시아는 아담과 같이 흰 황소로 상징되었
고 종말에 모든 짐승과 새들은 메시아처럼 흰 황소가 될 것이다.
이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담과 하와가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카인은 선을 상징하는 아벨을 죽였고, 이로부터 악의 세력이 득세하게 된다. 하지만 선한
세력이 점점 강해지면서 악의 세력을 꺾는 심판이 있고 나면, 고대하던 메시아가 나타날 것
이요, 그 메시아 시대에 다시 낙원이 도래한다.
히브리인들의 문화적 배경에는 종말-묵시 사상이 기본적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이 사상은
난세에 주로 등장하며, 고통뿐인 현재 역사를 부정하고 초월적인 역사에 그 희망을 건다.
그런 까닭에 히브리인들은 난세일수록 묵시적인 꿈을 많이 꾸었다. 그리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자기 동포들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기 위해 이를 전하고 기록해 두기도 하였다.
반면에 한국인의 꿈 이야기에서 묵시적인 것, 종말론적인 것을 찾아볼 수는 없다.24) 우리가
무교와 유교 문화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예부터 일상사를 넘어서는 힘,
초인간적인 힘에 귀의함으로써 기복양재(祈福禳災)하려는 강한 종교적 심성을 가지고 있
다.25) 즉, 우리들은 민간 신앙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종교성을
잘 보여주는 민간 신앙의 한 형태인 점복占卜에는 꿈과 해몽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전통사회는 확고한 친족 의식에 기반을 둔 대가족 제도와 친족 질서를 기본으
로 삼는다. 이러한 가족 의식은 혈연 공동체를 그 기본 전제로 한다. 곧, 혼인과 자녀의 출
산을 통해 맺어지는 혈연관계의 가족적 유대는 가정의 존립을 위한 근본이 된다. 그렇기 때
문에 맹자(孟子)는 불효 가운데서도 “대(代)를 이을 자식을 두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고
하였다.26)
한국인의 꿈 이야기에는 태몽(胎夢)에 관한 것이 가장 많은 듯하다. 물론 어느 나라든 왕이
나 영웅호걸이 태어날 때는 그 부모가 특이한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27), 우리
조상들은 귀한 가문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가문의 대를 잇겠다는 일념에 태몽을 통해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그 여부를 점치곤 했다.
전해 오는 바 아들을 얻을 수 있는 태몽의 몇 가지 예를 보자.28)
ⓛ 해가 품안으로 들어온다. 해와 달을 삼킨다. 해와 달이 합한다.
조인규는 충렬왕 때 사람인데, 그 어머니가 태몽으로 해가 품 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임
24) 불교는 히브리인들이 ‘종말’이라고 부르는 것을 ‘모든 것이 완전히 무르익었다’는 개념으로 본다. 마치 과일
처럼 말이다. 과일이 무르익어 가다가 일단 다 익게 되면 썩기 시작한다. 어떤 과일도 썩으면 먹을 수가 없듯
이 종말도 그런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현각 엮음 · 허문명 옮김, .선의 나침반., 열림원, 2001, 16쪽 참
조). 하지만 불교인들은 썩어가는 과일 안에 들어 있는 씨에 주목한다. 희망의 씨는 이미 과일 안에 들어 있
다. 씨는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원천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 속에는 불교가 깊이 자리 잡고 있기에,
우리들도 종말을 이런 식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민족이 보여주는 끝없는 희망과 용기가 혹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나름대로 짐작해 보기도 한다.
25) 박일영, .민간신앙을 통해서 본 한국인의 종교성., .효성여자대학교 연구논문집. 49, 1994, 9~16쪽.
26) 금장태, .유교의 사상과 의례., 예문서원, 2000, 22~23쪽.
27) 중국인이 전하는 .帝王世紀.에 보면 요임금은 하늘로 올라가는 용을 타는 꿈을, 순임금은 눈썹이 길어지고
북을 치는 꿈을 꾸었으며, 우임금은 산에서 책을 쓰고 황하에 몸을 씻고 배를 타고 달을 건너는 꿈을 꾸었다
고 한다. 유문영, 앞의 책, 30쪽.
28) 이하의 예는 村山智順, 앞의 책, 240쪽 이하에서 발췌.
8 한국무속학 6집
신하여 그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는 나면서부터 영오하고, 점차 자라 배움에 나아가 문
의(文義)에 정통하였다.29)
② 용을 껴안는다. 용이 사람을 향해 온다. 용을 본 후 구슬을 얻는다. 용꿈을 꾸면 왕자를
낳는다.
고려 태조 장화 왕후는 어린 시절 꿈을 꾸었는데, 용이 뱃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놀라 잠
에서 깨어났다. 왕후가 부모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
아 태조가 수군장군으로 나주에 출진하여 목포에 배를 정박했는데, 어떤 장소에 오색 기운
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태조가 그곳에 가보니 왕후가 앉아 베를
빨고 있었다. 태조가 그를 아내로 맞아 왕후가 임신하니 그가 바로 고려 태조의 뒤를 이은
혜종(惠宗)이다.30)
그밖에도 새로이 관작(官爵)을 받는 꿈이라든지, 호랑이 꿈을 꾸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하지만 흔히 아들 꿈으로 알고 있는 호랑이 꿈, 용꿈을 꿨다고 해서 철석같이 아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태몽으로 아들, 딸을 구별하고자 ‘표상이 무엇이
냐’ 보다는 표상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용, 구렁이 등과 같이 몸집이 큰 사물이 나오면 아들일 확률이 높다. 과일 꿈도
아들 태몽일 수 있다. 열매가 잘 익은 상태일수록 아들일 확률이 높다. 또 작은 표상 여러
개가 아니라 큼직한 표상이 딱 하나 나온 꿈이 아들 태몽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들을 얻
을 수 있는 꿈도 많지만, 아들이냐 딸이냐를 구별하는 기준은 더 다양하기만 하다.
아울러 꿈에 용을 본다거나 호랑이가 크게 우는 꿈 등은 관직에 오르는 대길한 꿈으로도 풀
이하는데, 이를 통해 보면 우리 조상들은 명예를 얻는 것과 아들을 얻는 것을 동등하게 여
기는 듯하다.
또한 스님이 시주를 청하기에 양식을 주는 꿈도 태몽이라고 한다. 우리 문화는 불교의 영향
역시 많이 받았기에 꿈에 불교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기도 하고, 고승(高僧)들의 태몽도
많이 전해진다.
③ 대덕 자장은 김씨로, 본래 진한의 진골 소판(3급의 벼슬) 무림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
는 청관 요직을 지냈는데, 천부관음에게 아들 하나 낳기를 바라고 이렇게 빌었다. “만일 아
들을 낳게 되면 그 아이를 바쳐 법해의 진량으로 삼겠습니다.” 홀연히 그 어머니의 꿈에 별
하나가 떨어져서 품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태기가 있었다. 석존과 같은 날 아들이 태어났
기에 이름을 선종랑(善宗郞)이라 하였다.31)
④ 고려 광종 16년 을축년에 세워진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 탑비에 다음과 같은 기록
이 전해진다. “어미니 김씨가 얼핏 꿈을 꾸니, 유성이 품에 들어오는데 그 크기가 항아리만
하며, 색이 아주 누렇고 윤이 났다. 그 뒤 태기가 있었는데, 이 때부터 매운 내가 나는 것과
비린내가 나는 것에는 맛을 잃었다. 부지런하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배를 어루만지며 보호
하여 정진 대사를 낳았다.”32)
그 외에도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날리게 된다든지33), 아니면 높은 벼슬을 얻어 복락을 누
리는 것과 같이 현세적인 행복과 관련된 꿈도 많이 있다. 꿈을 잘 풀어 후손에게 복을 준
29) .東國與地勝覽. 卷五十五.
30) .東國與地勝覽. 卷三五.
31) .三國遺事. 卷四, 慈藏定律.
32) .朝鮮金石總覽. 上.
히브리인과 한국인의 꿈 이야기 9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⑤ 신라 원성왕 이야기34)
이찬 김주원이 맨 처음 상재(上宰)가 되고, 김경신은 각간으로서 상재의 다음 자리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김경신은 복두35)를 벗고 흰 갓을 쓰고, 열두 줄 가야금을 들고 천관사36)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하니, “복두를 벗은 것은 관직을 잃을 징조요, 가야금
을 든 것은 칼을 쓸 조짐이요,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징조라” 하였다. 김경신
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근심하여 두문불출하였다. 이때 아찬 여삼(餘三)37)이 와서 뵙기를 청
했으나 그는 병을 핑계하고 나오지 않았다. 아찬이 다시 청하여 한 번 뵙기를 청하므로 그
가 이를 허락하매 아찬이 물었다. “공이 꺼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김경신이 자신이 꾸었던
꿈과 그 해몽에 대해 자세히 말하자 아찬이 일어나서 절하고 이르기를 “이는 좋은 꿈입니
다. 공이 만일 왕위에 올라서도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공을 위해서 꿈을 풀어 보겠습니
다” 하였다. 이에 경신이 좌우 사람들을 물리고 아찬에게 해몽하기를 청하니 아찬이 말했
다.
“복두를 벗은 것은 위에 앉는 이가 없다는 것이요, 흰 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요,
열두 줄 거문고를 든 것은 12대손이 왕위를 이어받을 조짐이요,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상서로운 조짐입니다.” 경신이 말했다.
“위에 주원이 있는데 어떻게 상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오?” 이에 아찬이 “비밀히 북천 신
에게 제사 지내면 좋을 것입니다” 하매 그대로 쫓았다.
얼마 안 되어 선덕왕이 세상을 떠나자 나라 사람들은 김주원을 왕으로 삼아 장차 궁중으로
맞아들이려 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주원의 집이 북천 북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냇물이 불어
서 주원이 건너 올 수가 없었다. 이에 경신이 먼저 궁에 들어가 왕위에 오르자 대신들이 모
두 와서 따랐으며, 새 임금에게 축하를 드리니, 그가 바로 신라 38대 원성왕(元聖王)이다.
경신이 왕위에 올랐으나 이때 여삼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왕은 그의 자손들을 불러 벼슬을
주었다.
또한 우리 속담에 “꿈보다 해몽이 좋다”라고 했듯이, 꿈을 흉몽으로 풀이하기보다는 길몽으
로 풀이하는 유연함을 우리 조상들은 지니고 있었다.
⑥ 불상(不祥)으로 풀었다가 다시 길상(吉祥)으로 풀어 이름을 얻다.38)
“이전에 유생 세 사람이 과거에 응시하러 갔다. 한 사람은 거울이 땅에 떨어지는 꿈을 꾸었고, 한 사람은
문 위에 허수아비가 걸려 있는 꿈을 꾸었으며, 또 한 사람은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이 셋
이 해몽가의 집으로 찾아갔다. 마침 해몽하는 사람이 집에 없고 그의 아들만이 혼자 있었다.
33) 김맹(金孟)은 김해 사람으로 자는 자진(子進)이며, 영조 때 등과하였다. 일찍이 용마의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세 아들을 낳자, 아들들의 이름을 모두 마(馬)자를 따라 지었다. 장자는 준손(駿孫), 차자는 기손(驥孫),
막내는 일손(馹孫)이라 하였으며, 모두 글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과거에 급제하였다. .海東雜N..
34) .三國遺事. 卷二, 元聖大王.
35) .頭-귀인이 쓰던 모자, 또는 과거에 급제한 자가 홍패를 받을 때 쓰던 것.
36) 경북 월성군 내남면 일남리에 있던 절.
37) 어떤 책에서는 餘山이라 하였다.
38) ..齋叢話. 卷六.
10 한국무속학 6집
세 사람이 꿈에 관해 물어보자, 그 아들이 점을 치고 말하기를 이 셋은 모두 불길한 물건이니 소원을 이루
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그 때 해몽가가 오더니 아들을 꾸짖고 다시 꿈을 풀어 주었다. 허수아비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바요, 거울이 떨어지니 어찌 소리가 없을쏜가. 꽃이 지면 응당 열매를 맺으리니 세 분 모두 이름
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과연 세 사람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
한국 사람은 본래 꿈을 꾸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맑은 생수를
한 입 머금고, 그 물을 동쪽을 향해 뿜으면서 “악몽이면 초목에, 희몽이면 주옥(珠玉)같이
되라” 하고 중얼거린다. 또한 불길한 꿈을 꾸었을 때에는 벽에 “야몽대흉벽서대길(夜夢大凶
壁書大吉)”이라고 쓴 후, 그 재앙을 지운다고도 한다.39)
한국 민족은 화를 바꾸어 오히려 복이 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긍정적인 사고도 가지고 있
다. 과거가 불행했고 현재도 불행한 사람은 또한 미래도 불행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마
음이 불안하다. 그 반대로 과거가 행복했고 현재도 행복한 사람은 그 행복이 어떤 이유에
의해 깨지지나 않을까 조바심으로 걱정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인간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예언적인 힘에 강하게 의지하게 마련인가 보다.
더욱이 오랜 세월을 고난으로만 살아온 히브리인들이나 우리 조상들은 현실이 고달프고 미
래가 불안하기에 꿈을 통해 미래를 알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 강하게 표출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어려운 현실의 삶을 이겨나가려 애썼던 것이다. 비록 꿈
의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그 속에서 신의 뜻을 깨닫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이끌어가고자 하는 소망은 꼭 같았다. 꿈은 그들에게 그렇게 희망을 건네주었다.
Ⅳ. 맺는 말
꿈과 해몽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색채는 각종 종교나 민간신앙들
보다 사람들에게 훨씬 더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꿈을 꾸었다하더라도 도대체 그 해몽이라
는 것이 각양각색이다. 어떤 이는 길몽으로 해석하고, 또 어떤 이는 그 반대로 해석한다. 그
바람에 일반인들은 어떤 것이 길몽인지, 또 어떤 것이 흉몽인지 근본적으로 분간하기 어려
울 때가 더 많다.
혹시 흉몽이라면 매사에 신중하다 못해 생활이 위축되기도 하고, 천재(天災)나 인재(人災)를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 결과 현세의 모든 고통을 귀신이 재앙을 내린 것으
로, 또 운명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힘으로 극
복할 수 있는 고통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기 쉽다. 결국 세상에는 ‘운명’
과 ‘요행’ 앞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사행 심리만이 판을 치게 된다. 세상이 소란하고 살기가
어려워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성행하게 마련이다.
사행 심리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시대이다. 최첨단 과학으로 무장된 우리들 마음에 운명과
요행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꿈이란 ‘단순히 운명을 미리 보여 주는 귀
신의 조화’가 아니며, 모든 꿈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그러한 꿈은 창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하겠다. 또한 꿈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희망의
원천도 될 수 있음을 상기하면 좋겠다.
39) 村山智順, 앞의 책, 238쪽.
히브리인과 한국인의 꿈 이야기 11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꿈에 대해 그 동안 갖고 있던 통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돼지꿈을 꾸면 길몽으로 여기고,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 반면에 흉몽이
다 싶으면 개꿈으로 치부해 버리거나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원래부터 좋은 꿈, 나쁜 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40)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진리이듯이,41) 모든 꿈은 우리에게서 그 창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앞에 제시한 예에서 보듯이, 능동적으로 꿈을 받아들였던 히브리인들과 우리네 조상
들의 경우처럼 말이다. 우리도 그렇게 꿈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 역시 창조적이고 풍요로
울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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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송봉모, .생명을 돌보는 인간., 47쪽.
41) 현각 엮음, 허문경 옮김, 앞의 책, 154쪽 참조.
12 한국무속학 6집
The Dream Story
in the Hebrews and the Koreans
42)
Park, Mi-Kyung*
Regardless of times, dream is very precious and important for all mankind. We have
considered it as magic and mysterious for a long time. This mysterious power has
had more effect on all people than religions or superstitions.
But dream is not simply what is done by demons to forsee human’s destiny. When
accepted positively, dream has a creative power. And we can gain the source of
hope to enrich our life from it. Particularly the Hebrews and Koreans have
accepted dreams positively. They all have had common difficulty in their lifetime.
And in spite of different environment, they have common dream story. Comparing
with them, we can understand how they have made their life abundantly in dream.
The key point of this story is creative interpretation of dream.
Key Words. dream, magic, interpretation of dream, the Hebrews’ dream, the
Koreans’ dream, lifetime, creative power, source of hope.
* Ph.D. Course,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