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윤리 오예린 -호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는 잇지의 오빠가 시작했다. 지금은 땅처럼 보이지만 이전에 여기에 호수가 있었고 자주 가서 놀고 수영도 하고 그랬었다. 언제가 오리떼들이 몰려왔다. 그 이후 어느날엔가 갑자기 추워졌고 호수가 얼었다. 오리떼들은 다행히 죽지 않았고 저 멀리 조지아로 날아갔다. 그리고 조지아에 호수가 생겼다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하여 무슨 영어 유머인가 싶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라는 문제는 영속적이다. 언제나 물음에 대한 온점과 쉼표를 찍고 언젠가는 느낌표를 찍을 문제이다. 혹은 한 켠에 나를 두고 존재하는 문제일 수 있다. 나는 나의 반경에서 나를 구성한다. 그 곳에서 놀고 수영하고 낚시도 하고 공부를 한다. 때로는 이 곳에 낯선 이가 놀러오고 나는 달라진다. 나의 시선으로만 구성되던 세계에 난입한 타자에 의해 나 또한 시선을 받게 된다.
나와 타자는 서로의 서사에 속하게 되는데, 이것이 내가 타자를 잊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잇지의 오빠와 버디주니어의 팔, 루스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휘슬 스탑의 카페를 중심으로 일어난 호수가 어는 것 같던 일들 또한 오리떼같이 떠나간 주변인들에게 기억된다. 카페에서 여럿이 모여 즐기고 떠들고 위험하기도 했지만 추위같은 위험과 죽음이 발생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남겨진 한 컵의 호수물을 가지고 마을을 떠났다. 방랑병이 퍼진 조지아에서 떠돌며 다시금 호수가 모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우리는 변화한다. 그 한켠에 과거를 놓고서 말이다. 쌓이는 물이 무너져 호수가 될 때면 과거와 경험이 모인 마음의 물길에 이따금 놀러간다. 우리는 그렇게 바다가 된다. 천진난만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타자의 시선에서 최대한으로 자유로워지는 아이가 되면 떠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