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과 나무
화목의 잔치 대동계의 현장을 지켜온 나주 쌍계정 푸조나무
2009-03-20 오후 05:43
나무는 문화재의 원형이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하나의 분명한 기준이다. 사람은 가도, 나무는 사람보다 더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다 보니, 잘 보존된 문화재에는 으레 잘 자란 노거수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지은 정자는 여러 차례 모습을 바꿨지만, 그 앞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는 오랜 연륜과 함께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역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고려시대 이후 천 년 동안 목사 고을로 이름이 높은 천년고도(千年古都) 나주에는 영암 월출산 구림, 정읍 내장산 태인과 함께 호남의 3대 명촌(名村)으로 꼽히는 마을이 있다. 고려 때 지은 정자 '쌍계정'이 버티고 있는 금성산 금안동이 그 곳이다.금안동의 상징이랄 수 있는 쌍계정은 고려 충렬왕 때 여러 벼슬을 지낸 설재(雪齋) 정가신(鄭可臣, ?~1298)이 처음 지었다. 후학 양성의 도량으로 지은 쌍계정을 마을 사람들은 당시 정가신과 함께 이곳에서 활동하던 김주정, 윤보 등 호남의 현사(賢士) 3인을 기리기 위해 삼현당(三賢堂)이라고도 부른다.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정자가 마련되자,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대동계를 운영했다. 오늘날까지도 계는 이어진다. 해마다 음력 4월 20일에 마을 사람 가운데 선행한 사람을 가려내 상을 주며 그를 격려하는 일도 이 대동계 행사의 일환이다. 금안동이 호남의 3대 명촌으로 꼽히는 것은 임진왜란 후 황폐해진 마을을 일으켜 세우자는 자발적인 뜻으로 계를 이루고 발전시킨 결과이다.금안동 대동계는 이 마을의 나주정씨, 서흥김씨, 하동정씨, 풍산홍씨 등 4개 성씨들이 주도하는데, 이 때문에 쌍계정에는 '사성강당(四姓講堂)'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또다른 현판인 '쌍계정'은 조선의 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전한다.쌍계정이라는 이름은 정자 좌우로 개울이 쌍을 이뤄 흐르고 있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쌍계정 좌우의 개울에서 예전처럼 물소리를 듣기는 어려워졌다. 물줄기가 가늘어졌을 뿐 아니라, 옹기종기 모여든 집들로 물 소리가 줄어든 때문이다.무려 7백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쌍계의 물소리가 가뭇없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소리처럼 7백 년 전 정자의 모습도 많이 사라졌다. 전란과 세월의 풍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중수(重修)를 거쳤지만, 마을 어귀를 지키는 정자로서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이 오래 된 정자 앞에는 한 그루의 큰 나무가 있어 이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살림살이가 더 살갑게 다가온다. 별다른 볼거리 하나 없는 이곳 고요한 마을의 정자에는 유난스런 화려함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질박한 삶의 속내가 살아 있다.나무는 문화재의 원형이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하나의 분명한 기준이다. 사람은 가도, 나무는 사람보다 더 오랜 세월을 바로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다 보니, 잘 보존된 문화재에는 으레 잘 자란 노거수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지은 정자는 여러 차례 모습을 바꿨지만, 그 앞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는 오랜 연륜과 함께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역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언뜻 봐도 오랜 연륜을 간직한 이 나무는 푸조나무다. 쌍계정이 있는 나주쯤에서는 푸조나무가 느티나무나 팽나무만큼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 가운데 하나다. 이름에 다소 이국적인 분위기가 실렸지만, 생김새는 영락없는 우리의 정자나무로 알맞춤하다.4백 살쯤 돼 보이는 쌍계정 푸조나무는 키 16m, 가슴높이 둘레는 4m쯤으로 자랐다. 정자 바로 앞에 솟구치듯 우뚝하니 서 있어서, 쌍계정의 운치를 돋운다. 나이로 보아, 7백 년 전 쌍계정을 처음 지을 때부터 있던 나무는 아니다. 나무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쌍계정을 더 아름답게 보전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심은 나무인 듯하다.경기 이남의 해안 지방에서 잘 자라는 푸조나무는 이름에 다소 이국적인 느낌이 풍겨, 중부지역 사람들에게는 생경하다. 그러나 남쪽으로 가면, 느티나무나 팽나무만큼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뿐만 아니라, 나뭇가지를 넓게 펼치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해안가 마을의 정자나무로 무척 잘 어울린다.잎이나 열매가 팽나무와 비슷해서 개팽나무, 개평나무, 곰병나무라고도 불리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팽나무와는 다르다. 푸조나무의 잎맥은 잎 가장자리에 얕게 난 톱니까지 닿아 있고, 5월쯤 피어나는 꽃은 노란색의 팽나무꽃과 달리 연두색이며, 9~10월쯤 자줏빛이 도는 검은 색으로 열리는 열매도 약간 갸름한 달걀형으로, 팽나무보다 훨씬 굵다. 푸조나무의 멋 가운데 하나는 근육질로 발달한 줄기에 있다. 특히 오랜 세월을 살아온 늙은 푸조나무의 줄기에서 볼 수 있는 멋은 그 아름다움의 백미다. 쌍계정 푸조나무의 생김새는 이곳에서 공부하던 선비들이나 마을 사람들의 푸근한 마음씨를 꼭 닮았다. 나무의 줄기는 이곳에서 학문을 탐구하던 선비들의 뚝심처럼 단단하게 피어올랐고, 사방으로 고르게 펼친 나뭇가지는 그들의 후덕함이라든가, 대동계를 펼친 마을 사람들의 넉넉함을 그대로 빼닮았다.쌍계정 뒤란에도 오랜 연륜의 큰 나무가 있다. 느티나무다. 이미 오래 전에 벼락을 맞았는지, 아니면 자연히 썩어 부러져나간 것인지, 4m쯤 되는 높이 위쪽으로는 줄기가 부러지고 없다. 그러나 아래 쪽에 남아 있는 줄기둘레가 5m는 충분히 됨직한 큰 나무다. 줄기는 부러졌지만, 작은 가지들이 넓게 뻗어나가 나름대로 큰 나무의 자취를 그대로 간직했다.사람의 마을에 살아 있는 나무를 찾는 일은 나무보다 먼저 사람의 향기를 느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글·사진 / 고규홍 (나무칼럼리스트)